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03화 (103/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3화

“광고 잘 봤다. 아주 TV나 핸드폰 영상 하나만 켜면 네 얼굴이 자꾸 나와서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하면서 왠지 모르게 삼촌은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 돈 좀 벌었겠다? 오케스트라 협주곡 하나 작곡했다고 이 난리라니.”

“그만큼 잘 만들었나 보죠.”

“아냐. 잘 만든 건 둘째치고 네 나이랑 비주얼 때문이지. 생각해 봐라. 나이 좀 있고 그냥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그 곡을 썼다고 하면 누구 하나 관심이라도 줬겠어? 아마 쓰레기통에 처박혔겠지.”

솔직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이긴 했다.

그 어떤 분야에서든 외모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참. 그리고 강용형 그놈은 갑자기 왜 또 급발진이래?”

“모르죠. 제가 신경이 좀 쓰이긴 했나 봐요.”

“흐흐. 멍청한 새끼. 언론 플레이로 네 평판을 깎아내리려 했던 거 같은데, 오히려 반응을 보니까 그 반대가 된 거 같더라.”

강용형이 좋은 의도로 그런 기사를 냈을 리 없다.

분명 내 흠을 잡기 위한 기사였을 텐데, 내 예상대로 그의 인터뷰는 내 평판을 올려 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 톱 작곡가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어린 천재 가수가 되어 있었다.

이거 강용형한테 밥이라도 한 끼 사야 하는 건가?

“삼촌. 제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데리고 와서 녹음을 좀 해 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마음대로 해. 난 옆에서 구경하지 뭐. 근데 곡은 완성했고?”

“아뇨. 앨범에 쓸 곡은 몇 가지 생각해 두었는데, 아직 종이에 옮기진 않았어요. 오늘 좀 더 생각을 해 보려고요.”

“그래. 그 사람들 부를 때 말해. 준비할 거 있으면 내가 따로 준비시켜 놓을 테니까. 그런데 그 많은 단원이 다 모이기에는 공간이 좁지 않을까?”

“정식 녹음은 당연히 다른 곳을 빌려서 따로 해야죠. 여기서는 악기별로 녹음을 따로 해둘까 해서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같이 규모가 크면 녹음실을 따로 구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녹음실이 있는데, 거길 빌려서 녹음을 할 생각이다.

다만, 거기서 녹음을 한다고 하여 곡이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악기별로 필요한 부분을 추가로 녹음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녹음본을 하나로 합쳐 수정하는 것이다.

“한번 해 볼까.”

나는 작업용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건 내게 큰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고 음악적 영감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단원들을 연습시킬 때 떠오른 악상들을 기억해 두었고, 이제 이곳에 풀어낼 차례였다.

“첫 곡은 청명하고 단아한 느낌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깔끔한 음색으로 사람들의 귀를 홀리고, 시원시원한 진행이 듣는 이의 답답함을 날려 주는 것.

내가 생각한 첫 곡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미 구상을 해 둔 악상이 있었다.

나는 잠깐 동안 하던 생각을 마치고 얼른 악보에 음표를 적어 놓았다.

뒤에서 삼촌은 힐끔거리며 내 악보를 훔쳐보기 바빴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더 많은 악기를 머릿속에 떠올려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에도 여러 악기를 머릿속으로 연주시켜 곡을 만드는 게 가능했지만, 오케스트라처럼 30~40개가 넘는 악기를 한꺼번에 떠올릴 순 없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지휘 연습과 더불어 심상화 연습도 꾸준히 하면서 지금은 그 많은 악기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여기 오기 전 충분히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플레이를 해 봤고, 악보에 하나씩 적어 두기만 하면 됐다.

우리 새 앨범에 들어가는 협주곡.

기존 협주곡이 보통 20분 가까이하는 것에 비해 이건 길어봐야 4분 안에 끝이 나는 가요였다. 그리고 이곳에 누나의 목소리와 가사도 넣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난 그 여러 조건이 곡에서 이탈하지 않고 잘 부합되도록 조율을 해나갔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 흘렀을까.

나는 완성된 악보를 훑어보았다.

저번처럼 대충 협주곡을 만들어 보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이며 마디 하나씩 뜯어 보기를 반복했다.

비록 저번 곡보다 많이 짧기는 해도, 더 좋은 곡을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에 시간은 그보다 더 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분명 여길 들어왔을 땐 밖에 해가 쨍쨍했는데, 지금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삼촌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난 졸고 있는 삼촌한테 다가가 조용히 불렀다.

“삼촌?”

“으헉!”

화들짝 놀라는 삼촌 덕분에 나도 뒷걸음질을 쳤다.

“뭘 그렇게 놀라요.”

“어후. 난 내가 잠든 지도 몰랐어.”

“내가 다 놀랐녜. 삼촌. 배도 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요.”

“응? 작업은 다 했어?”

“어느 정도는요. 일단 러프 느낌으로 악보를 만들어뒀어요. 나머지는 내일 또 하려고요.”

“그래. 뭐 먹을래?”

“오늘은 삼촌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지금까지 저 비싼 거 사주기만 하셨는데, 오늘은 제가 왕창 쏘겠습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카드를 삼촌 앞에서 흔들었다.

“오~ 짜식. 돈 좀 벌었다 이거지?”

“흐흐. 제가 요즘 핫하잖아요. 왕창 벌고 있죠. 삼촌한테 1년 내내 소고기 사줄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드시고 싶은 거 말만 하세요.”

“크- 역시 은혜를 아는 놈이구먼. 그런데 아쉽다. 네가 성인이었으면 벌써 비싸고 좋은 곳에 가서 술 한잔 딱 했을 텐데.”

“그건 나중에 제가 다 크면 하시죠. 미리 예약 걸어 두겠습니다.”

“너 클 때까지 언제 기다리냐. 그때쯤이면 난 다 늙어서 술 한 모금도 못 마시는 거 아니야?”

삼촌은 나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유명한 고급 한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1인당 기본 2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런 곳은 처음이지?”

당연히 처음이다.

“여기 맛있어요?”

“비싼 값 하지. 여기 나오는 물도 맛있게 느껴지더라. 그 물도 엄청 비싼 브랜드라고 하던데? 하하. 좀 쫄리냐?”

이 양반, 오늘 정말 제대로 뜯어 먹으려 작정했구나.

그런데 이제 20만 원은 한강 물을 바가지로 한번 푸는 것보다 못하다.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몇 번이고 사드릴 수 있죠.”

“돈 쓸 줄 아네.”

우린 자리에 앉아 직원에게 주문을 받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삼촌. 제가 저번에 뉴튜브 영상을 보다가 하나 생각해 둔 곡이 있어요.”

“음? 무슨 영상?

“바이올린이요. 제가 바이올린도 한번 배워볼까 싶어서 이것저것 들어봤거든요.”

“네가 바이올린을? 그거 나름 그림이 괜찮겠네. 피아노에 기타, 이제는 바이올린까지. 아주 네가 다 해 먹어라.”

“원래는 배울 생각이었는데, 딱히 배울 필요가 없을 것 같이서 그냥 포기했죠. 그런데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를 들어보니까 뭔가 필이 오더라고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그 연주법이 기괴하고 놀라워서 그가 정말로 악마와 계약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떠돌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악보들은 전부 다 괴랄할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했는데, 피아노계의 악마라고 불리는 리스트도 파가니니를 보고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피아노로 전향할 정도로 그 실력은 엄청났다고 한다.

지금도 그가 남긴 곡들이 편곡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연주되고 있다.

“저도 뭔가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곡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서 하나 끄적인 게 있어요.”

파가니니의 음악을 연주하는 유명한 바이올리스트들을 보면서 여러 음악적 영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저것처럼 괴랄한 난이도의 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문득 생겨났다.

“그날 몇 시간 동안 침대에 누운 채로 악보를 만들었거든요.”

“누워서 어떻게 악보를 만들어?”

“아. 제 머릿속으로 만들어 두고 옮기는 건 좀 나중에 옮겨뒀죠.”

“······그러니까 악보를 머릿속으로 만들어서 기억해 뒀다가 옮겼다는-. 아니다. 됐다. 그런 걸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 아무튼 그래서?”

“한번 봐보세요. 제가 잠깐 미쳐서 만든 악보이긴 한데, 이게 너무 난이도가 어려울까요?”

삼촌은 내가 건네 준 악보를 열어봤다.

첫 마디부터 인상이 세게 찡그려진다.

“야!”

그리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걸 지금 사람이 치라고 만든 거냐?”

“너무 난이도가 높죠?”

“괴랄한 수준이잖아. 아니. 그 뭐냐. 왕벌의 비행이라는 곡 알지? 바이올린 난이도 중에 끝판왕이라는 거. 이것도 거의 그 수준이잖아.”

“그래요? 너무 별로예요?”

“아니. 그렇다고 딱히 별로인 것 까진 아니야.”

삼촌은 턱을 괸 채로 악보를 살펴보았다.

얼굴에는 이미 심각한 빛이 서려 있었다.

“뭔가 더럽게 어렵긴 한데, 이게 또 곡은 괜찮네.”

“음이 상상이 되세요?”

“나도 그 정도 기본은 할 줄 알거든. 작곡가가 악보 보고 음을 못 떠올리면 그건 때려쳐야지.”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한다면 4분 정도에 끝나는 곡이다.

그러나 4분 동안 정말 쉴새 없이 손을 놀려야 한다. 그것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삼촌은 악보를 계속 넘겨 가면서 감탄을 터트렸다.

“하. 곡 참 재밌네. 진짜 욕 나올 정도로 음표도 많고 난이도가 헬인데, 이게 음은 참 괜찮단 말이지. 이걸 연주하면 어떤 음색이 나올지 궁금한데?”

“그래요?”

“응. 원래 보통 난이도가 어려운 곡들은 음색이 지저분하기만 하고 전체적 밸런싱이 무너질 때가 많거든. 그러니까 저명한 작곡가들도 함부로 난이도 높은 곡을 만들지 않는 거야. 오죽하면 파가니니가 지금도 기교에 미쳐서 겉멋만 든 사람이라고 욕을 먹겠냐?”

파가니니의 연주 실력은 대단하다만, 그가 작곡한 곡들은 전부 기교에만 치중되어 있어 음악적 가치가 없다는 비판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근데 이건 달라. 곡이 무진장 어려워도 꼭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달까? 근데 이걸 누가 연주할 수 있기는 하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거 같은데.”

그날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음악성도 챙기는 곡을 만들고자 했다. 사실 무슨 음악적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고고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재미를 위해서 만든 곡이다.

그런데 삼촌한테 저런 평가를 받으니,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이걸 정말로 연주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삼촌이 그런 말 하니까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아마 바이올린 연주자들한테 이 곡 돌려서 한번 연주해 달라고 요청하면 욕만 먹고 쫓겨날걸? 이걸 누가 연주하려고 하겠냐. 너무 난이도가 괴랄해.”

직접 연주를 듣는 건 아무래도 포기를 해야 하나.

그때 문득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삼촌. 굳이 내가 곡을 연주해 달라고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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