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2화
“제니. 이것 좀 봐봐.”
“응? 뭘?”
“누가 동영상 공유를 해 준 건데, 한국 어느 대학에서 중학생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 거래.”
“중학생이?”
제니 웨이든.
희대의 바이올린 천재.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까지 불리며 바이올린 하나로 세계를 석권한 여성.
이미 19살에 각종 세계 바이올린 콩쿨에서 우승을 하고, 영국에서는 그녀에게 따로 지위를 내릴 정도였다. 또한 그녀가 공연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티켓도 굉장히 구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나이는 아직 20대 초반.
한 가지 단점은, 흥미가 없으면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성격 탓에, 그녀의 공연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제니에게 오랜만에 볼 만한 무언가가 나왔다.
매니저가 보여 주는 영상 속에는 오케스트라와 그 앞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있었다.
“음, 고든. 아무리 봐도 중학생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아니야. 진짜 16살 맞아.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 연예인이래. 자기가 직접 작곡한 곡이 화제가 돼서 지휘를 맡게 되었다더라.”
“그래?”
조금 흥미가 들 것도 같았다.
물론, 노래가 별로면 자리를 뜨겠지만 말이다.
“한번 들어나 보지.”
제니는 턱을 괸 채로 모바일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상과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보았다.
‘도입부는 나쁘지 않네. 신선해. 요즘 트렌드에 맞춘 건가?’
도입부부터 화끈하게 폭죽을 터트리는 것만 같다.
요즘 클럽 노래가 한창 뜨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시작부터 귀를 쾅쾅 때리는 노래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지금 이 노래가 딱 그렇게 보였다.
전자음이 들어간 가요는 아니지만,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만드는 강렬한 음률이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과감한 도입부에 이어 중반부는 한층 더 음색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첫 부분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듯, 쉴새 없이 몰아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제니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곡에 감명을 받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 지휘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훌륭한 지휘자는 단원들의 잠재력을 밑바닥까지 끌어내 그것을 대중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것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는 하나, 찰스는 지금처럼 보는 눈도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듣는 귀가 더욱더 기뻐할 테니 말이다.
“아름답네.”
“으응?”
“저 지휘자 말이야. 수트핏도 그렇고, 지휘봉을 흔드는 모습도 품격 있어 보여. 꼭 귀족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랄까? 다른 사람이 지휘를 했다면 아마 이 정도까지 곡이 고급스럽게 들리진 않았겠지.”
“확실히 잘생기긴 했네.”
“잘생긴 것과는 별개야. 완전히 저 오케스트라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지휘를 꼭 해야 하는 숙명. 딱 그런 주인공 같다니깐? 저 손끝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좀 봐. 너무 아름답지 않아?”
매니저가 보기에도 지휘하고 있는 동양인이 매우 잘생기긴 했다. 하지만 제니가 말하는 것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캐치하기에는 힘들었다.
“곡도 아주 재밌어.”
휘몰아치는 중반부가 끝이 나고 후반부는 앞에 있던 음률이 전부 허상처럼 느껴질 만큼 간결하고 부드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는 곡이었다.
다시 한번 듣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좋다. 역시 세상에는 천재들이 참 많구나.”
세상은 참 넓고, 천재들은 많았다.
언제나 그것이 자신을 흥분시킨다.
“이 사람 이름이 뭐야?”
“아! 장연욱. JJ라는 남매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어. 여기 프로필.”
프로필에 있는 사진은 정말 중학생처럼 꾸민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이것도 멋있긴 했지만, 방금 전 봤던 그 영상 속에서 수트를 입은 그 모습이 훨씬 눈길을 끌었다.
“JJ 노래도 들어볼래. 틀어줘.”
제니는 매니저가 틀어주는 JJ의 곡들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장연욱에 대한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과연 그는 어떤 음악가일까.
도대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직접 만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나 결심했어.”
“으응?”
“당장 한국으로 가자.”
“뭐, 뭣?”
“얼른 비행기 표부터 알아봐 줘.”
“저, 저기. 제니. 갑자기 그렇게 결정해 버리면······.”
“얼른!!”
매니저는 괜히 영상을 보여줬다고 후회했지만, 제니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절대 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항공권을 알아보게 생겼다.
* * *
“후-.”
잠에서 깬 지 오래됐지만, 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이틀 전 있었던 축제 때의 휴유증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좋은 공연을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는지, 거기서 모든 힘을 지휘에 쏟아부었다. 다행히 내 지휘는 연습했던 그대로였고, 단원들 역시 이를 악물고 연습을 한 덕분에 미스 터치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했던 공연.
문제는 공연이 끝난 뒤였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소리는 대단했고, 앵콜 요청 쇄도에 진땀을 빼야 했다.
만약 앵콜 공연을 하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 같아, 나는 곡 중반부이자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재차 연주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관객들은 만족할 줄 몰랐고, 결국 누나와 같이 추가 공연까지 하면서 가까스로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고 난 뒤에서 무수한 사인 요청에 곤욕을 치른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장연욱~! 아직도 자냐?!”
누워서 멍하니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누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응?”
“누나는 21세기의 문명인이야. 그렇지?”
“어······ 그렇지.”
“그럼 제발 노크 좀 해.”
“왜? 내가 혹시 타이밍 잘못 맞춰서 절대 봐서는 안 되는······.”
“아무튼! 노크 좀 하라고.”
“흐응. 그래. 알겠어. 옆으로 좀 비켜봐.”
그러고서는 내 옆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아까 대표님이 연락했었어. 너 또 대표님 전화 다 씹었냐?”
“······핸드폰이 비행기 모드야.”
누나는 내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인터넷은 잘만 하네?”
“그냥 방해금지 켜 놔서 그래.”
자는 동안 사방에서 전화가 오기에 그냥 방해금지를 켜두고 아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소속사로 광고 요청이랑 인터뷰 요청이 엄청 들어온대. 그리고 이거 봤니? 지금 뉴튜브에서 인기 동영상 순위에 올라온 건데, 네가 오케스트라 지휘한 영상이야.”
나는 힐긋 누나가 보여 주는 영상을 봐보았다.
사실 눈이 가는 건 영상보다는 댓글들이었다.
-진짜 대한민국의 귀중한 보물이다 보물.
-모차르트 환생이 딱 저런 거 아니냐?
-중학생이 곡 만드는 건 별로 안 신기한데.
-현재 음대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중학생이 곡 만드는 게 안 신기하다고요? 저거 그냥 가요가 아니고 오케스트라 협주곡이에요. 음대생이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든다는 그 협주곡이라는 겁니다. 괜히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게 아닙니다.
-맞아요. 음대생들도 협주곡 하나 만들려면 몇 달을 고생하는데요. 근데 저건 하루도 안 걸려서 만들었다면서요? 그것도 혼자······. 진짜 자괴감 드네요. 음대 때려치워야 하나.
이 영상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내 곡을 분석하는 영상들이 올라왔고, 개중에는 외국 스트리머가 만든 리뷰 영상들도 있었다.
“흐흐. 방금 이 사람이 어메이징, 판타스틱, 아주 쓸 수 있는 영어 표현은 다 썼어. 너 진짜 대단하다고. 믿겨 지지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한둘이야?”
“으- 짜증나. 재수 없어. 아참! 아까 엄마가······.”
우리 두 사람은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영양가 없는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난 이 시간이 가장 평화롭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누나도 그런 내 맘을 잘 아는 건지, 몇 번씩 이렇게 방에 찾아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물론, 90%는 누나가 쉬지 않고 떠들고 난 그냥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만 해 주는 게 전부다.
누나와 같이 살다 보니 여자의 마음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니. 누나가 항상 강조하며 말했다.
여자는 공감해 주는 걸 좋아한다고 말이다.
“응? 대표님이다.”
누나는 강 대표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네. 아! 옆에 있어요. 아, 네. 바꿔 드릴게용.”
그리고 나한테 전화기를 건넸다.
“받아.”
“쳇.”
오늘은 가급적이면 전화를 안 받으려 했건만.
“네. 여보세요.”
“‘쳇’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네. 그럼요.”
“으음. 뭐,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강 대표의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너 인터뷰 요청 엄청 들어오는 건 알지? 광고도 찍을 거 많다. 네가 연락을 안 해 줘서 일단 미뤄 두긴 했다만.”
“그건 제가 내일 회사 가서 확인할게요. 찍을 건 찍고 거를 건 걸러야죠.”
“아니. 지금 당장 와야 할 거 같은데.”
“네?”
“너 진짜 뉴스 안 보나 보네. 기다려 봐. 내가 링크 하나 보내 줄 테니까.”
나는 강 대표가 보낸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았다.
어느 언론사가 쓴 기사인데, 강용형 작곡가를 인터뷰한 기사였다.
‘장연욱, 그 친구를 한번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더군요. 이번에 오케스트라 협주곡까지 만들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커리어에 대해 떠들기만 하면 되는 인터뷰에서 갑자기 내 이름을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저 능력이 정말 장연욱 본인의 것이 맞을까? 수많은 프로듀서들이 붙어서 만든 곡이 장연욱의 자작곡으로 탈바꿈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건 그냥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
추측이라고 하면서 내가 만든 곡들은 다 가짜라는 듯이 몰아갔다.
수많은 프로듀서들이 붙어서 만든 곡?
그건 강용형 본인 얘기이지 않은가.
‘그 능력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솔직히 상관 없습니다. 작곡가라는 건 결국 노래로 승부를 봐야 하는 거니까요. 부끄럽지만 저도 이번에 협주곡을 하나 제작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앨범도 준비 중에 있지요. 장연욱이 언제 새 앨범을 내놓을지는 모르겠다만, 제가 노래를 내는 시기는 피하는 게 좋을 겁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내가 노래를 낼 때 네가 노래를 내면 완전히 묻혀 버리게 될 테니 알아서 피해 가라는-.
‘하지만 굳이 피하지 않겠다면 연륜이라는 게 뭔지 보여 줄 수밖에요. 아마 그 계기로 배우는 게 많을 겁니다.’
마지막 멘트까지 도발적이었다.
나는 웃으며 기사를 내렸다.
“이거 제대로 뿔이 났나 본데요?”
“내가 알아보니까, 원래 인터뷰 원본은 그게 아니야. 네가 오만하고 예의도 없는 가짜라고 몰아가는 인터뷰를 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을 거 같아서 바꾼 거라던데? 끝까지 남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지.”
“아뇨. 이 인터뷰, 나쁘지 않아요.”
“응?”
“실직적으로 이건 강용형 작곡가가 절 인정한 꼴이 되었으니까요.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뉘앙스만 보면 완전히 절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 진짜 그러네?”
“절 은연중에 깎아 내리려고 기사를 낸 거 같은데, 오히려 대중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로 불리는 강용형과 장연욱의 대결 구도로 볼 거예요. 제가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걸 알려 준 꼴이 된 거죠.”
강용형은 내 평판을 깎아 먹으려고 기사를 낸 거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번 기사로 인해 내 평판이 한층 더 올라갈 듯보였다.
저 양반이 쓰레기이긴 해도, 현재 대한민국 톱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곡가인 건 맞으니까.
그리고······
이런 도발은 썩 나쁘지 않다.
지루함에 퍼져 있던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하고, 공허하던 눈에 열정이 차오른다.
판을 깔아 주었으니, 그 판 위에서 내가 승자로 군림하기만 하면 된다.
강용형 작곡가는 곧 저 인터뷰 내용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