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1화
“이거, 예상했던 것보다 홍보 효과가 굉장합니다. 장연욱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언제 시작하는 거냐는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기도 하고요.”
서울대학교 이사진 회의는 최소 한 달에 한번씩 이뤄지고 있었다.
예산 정리와 때때마다 바뀌는 정부의 교육 정책, 또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기에, 더는 홍보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통계로 보면 또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항상 최고의 성적을 받은 사람만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최고의 성적을 가지고 있어도 서울대를 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대다수가 서울대보다는 차라리 외국에서 공부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해, 외국과 연결된 학교로 들어가 그곳에서 해외로 진출을 한다.
이미 이번 연도만 해도 꽤 많은 상위 성적의 학생들이 외국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플랜을 짜고 있다.
그들을 한국에 붙잡아 놓기 위해서라도 서울대의 위상을 높이는 홍보를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음. 그렇습니까?”
“예. 홍보팀에서도 따로 홍보비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화제가 많이 되고 있답니다. 커뮤니티 사이트를 봐도 서울대 이름이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고요.”
홍보비를 아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돈을 쏟아부어 홍보해도 그 효과가 미미하게만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건 돈을 쏟지 않아도 알아서 홍보가 되는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적지근하게 홍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번 오케스트라 공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세요. 어차피 축제 아닙니까? 우리 서울대는 축제 때 재미가 없다는 오명을 이번엔 한번 없애 봅시다.”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서울대는 공부만 하느라 축제 때도 외부인들만 잔뜩 있고 학교 사람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노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단지, 놀 시간이 없을 뿐.
“교수들에게도 전달하세요. 이번 축제 때는 학생들을 좀 풀어 주라고 말입니다. 과도한 과제 때문에 즐기고 싶은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예, 총장님.”
회의를 끝내고 나서 총장은 두툼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일만 하다 보니 조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땐 잠깐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리프레시를 하는 게 최고였다.
“오늘 연습이 있다고 했던가?”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오늘 장연욱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생각해 보니 거의 억지로 오케스트라를 맡겨 놓고 한번도 연습을 구경하러 간 적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한번 해 볼까?
그는 비서와 같이 오케스트라 연습 중인 강당으로 향했다.
“연습이 잘 되고 있을는지 모르겠군.”
시간이 좀 촉박하긴 했다.
그리고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매우 즉흥적인 것이었다.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총장 개인의 유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금 총장은 홍보의 마술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만약 장연욱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개판으로 해 버리면······.
“괜히 했나 싶기도 하고. 자네 생각은 어때?”
그의 비서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래?”
“아직 나이도 어리고, 거기다 지휘 수업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으니까요. 제아무리 이창호 교수가 옆에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지휘라는 건 단순히 손만 흔들어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단원들을 다스리고 그들이 내는 음색을 컨트롤 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오~ 자네가 음악에 대해 그리 잘 아는 줄은 몰랐는데.”
“저도 클래식을 좋아해서 종종 공연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래? 다음에 나랑도 같이 보러 가지.”
비서의 말대로 황석현 총장도 걱정이 되긴 했다. 그리고 자신이 벌린 판이니,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기대보다 못 미친다고 해도 장연욱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반쯤 비우고 강당에 들어선 순간.
빠바밤-!
문을 열자마자 온몸에 닿는 강렬한 음률이 그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는 제자리에 선 채로 저 강당 위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연주를 하고 있는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땀방울마저도 기품 있게 흘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연욱이 있었다.
지휘봉을 잡은 우아한 손짓.
흐르는 물결같이 팔이 움직이면 단원들 역시 그에 맞춰 연주를 이어 간다.
그리고 그가 눈과 양팔로 신호를 보낼 때마다 단원들은 강약을 조절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 나갔다.
“총장님. 일단 앉을 자리를······.”
비서가 앞으로 나서려는 걸 총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냥 이대로 듣지.”
“아- 네.”
황석현 총장은 멍하니 장연욱의 지휘를 지켜보며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 * *
대학 오케스트라 축제.
서울 음악 대학교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축제다.
말이 축제지, 사실상 중간 평가라 봐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황석현 총장이 서울대학교를 맡게 되면서부터 그는 딱딱하게 오케스트라 축제를 열기보다는 일반 축제와 통합해 조금 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자기들만의 리그라고 조롱받던 오케스트라 축제 대신 가수 초청과 더불어 중간중간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섞이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달라졌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JJ 그룹의 가수, 장연욱 씨가 직접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립니다. 현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벌써부터 분위기가 뜨겁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JJ의 팬분들이 대거 모였다고 하던데요? 오늘 JJ는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하기 전, 축제 초청 가수로 나와 공연을 하기로······.”
악보 자체로도 이미 여러 음악가 사이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중학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장연욱이 직접 지휘를 한다는 말에 더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그로 인해 서울대 축제는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저번 축제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고,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자리 선점 경쟁이 치열해 앉을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또한 방송국에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취재진을 파견해 생생한 현장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좋게 보고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곡은 좋다지만, 지휘가 쉬울까요? 신기하긴 하겠네요.”
“이번에 서울대에서 너무 자극적인 광고 효과를 노린 게 아닐까 싶네요. 이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껴질 정도죠. 어떻게 중학생한테 오케스트라를 맡길 수 있습니까? 그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작곡을 잘한다고 해서 지휘까지 잘한다? 이건 어불성설입니다. 오늘 공연이 엉망이 돼서 괜히 연욱 씨만 욕을 먹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
사실 기사가 나오면서 오히려 이게 장연욱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의견이 있었다. 아무리 그가 작곡의 천재, 음악 천재라고 불려도 지휘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번에도 그 꼴이 나서 장연욱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래도 전 우리 연욱이를 믿어요!”
“장연욱 파이팅!”
그런 의견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장연욱을 믿고 응원해 주는 팬들은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공연 시간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사회를 맡게 된 서울대학교 학회장, 김선호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축제 사회는 학회장이 맡았다.
오늘 방송국 카메라가 여럿 준비되어 있는만큼 이 기회에 자신의 얼굴을 알려 보겠다는 흑심이라기보다는, 원래 학회장이 축제 사회를 맡는 게 이곳의 전통이었다.
“자~! 그럼 초청 가수들부터 먼저 만나보시겠습니다.”
시청자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건 항상 마지막에 나오는 법.
원래 일반 축제였다면 그 이름만으로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터트리게 만드는 네임드 가수들이 하나씩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반응이 다들 시원찮았다.
놀랍게도 다들 관심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가수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
그 기이한 반응을 직감하고 가수들은 빨리 자기 곡만 부르고 내려가기 바빴다.
그렇게 한창 뜨겁게 타올라야 할 분위기가 점점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이번 순서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JJ입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나오자마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관객들의 안색이 일순 달라졌다.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러댔고, 무대 위로 장혜나와 장연욱이 웃으며 걸어 나왔다.
마이크를 먼저 잡은 건 장혜나였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네~!”
항상 공연을 가면 관객들에게 멘트를 던지는 건 장혜나의 몫이었다.
장연욱은 그저 뒤에서 누나가 말하는 걸 지켜보며 웃기만 했다.
최대한 혜나가 많이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많다 보니, 한때 장연욱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뒤에서 자기 누나를 바라보는 영상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저희가 먼저 여러분에게 공연을 해 드리고, 그다음 순서는 그토록 기다리고 계셨던 우리 귀여운 동생, 연욱이의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혜나는 뒤에 있는 연욱이를 앞으로 끌고 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우리 동생이 준비한 연주회, 기대하셔도 됩니다. 정말 엄청 좋거든요. 제가 보증해요!”
“안 좋으면 어떡해요?”
그때 앞자리에 있는 어떤 관객의 말에 혜나가 대답했다.
“그럼 제가 마음에 드실 때까지 앵콜 공연해 드릴게요!”
“오오-!”
그렇게 한껏 기대치를 높여 놓은 혜나 덕분에 장연욱의 양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처럼 느껴진달까.
“그럼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JJ의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다른 초청 가수들이 나왔을 땐 느껴보지 못한 후끈한 공기가 관객들 사이에 감돌고 있었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그 열기에 선선한 날씨가 왠지 덥게만 느껴졌다.
또한 JJ 노래를 잘 듣지 않는 사람도 오늘만큼은 관객들의 흥에 물들어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동안 왜 이 노래를 듣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 만큼 JJ의 라이브 공연은 음원으로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연욱이 공연도 예쁘게 봐 주세요!”
원래는 딱 2곡만 부르고 내려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관객들의 지속된 앵콜 요청으로 인해 결국 5곡까지 부르다 가까스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토록 기대하던 오케스트라 연주회만 남게 되었다.
이미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 의자를 세팅하고 단원들도 함께 도왔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을까.
단원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지휘자를 기다리자 한껏 뜨거웠던 열기가 사라지고 왠지 정숙해진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윽고 장연욱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JJ라는 모습으로 혜나와 같이 올라왔을 땐 왠지 사이좋은 남매를 보는 것 같이 미소가 절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접근하기 힘든 품격이 느껴지는 걸음걸이와 중학생의 비율이라고 보기 어려운 검은 슈트핏이 모두의 눈을 홀렸다.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주변이 고요해졌다.
별다른 멘트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이 곡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탄생하게 되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해석이란 건 결국 저들이 듣고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장연욱은 들고 있던 지휘봉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