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00화 (100/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0화

“네가 죽을지, 아니면 그녀를 죽일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를 뽑으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수호자를 뽑을 것이다.

원래 난 잠깐만 드라마에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결국 마지막 화까지 나오도록 추가 계약을 맺었다.

“으으- 진짜 저 캐릭터는 짜증 나면서 동시에 자꾸 호감이 가. 하여튼 저 얼굴이 문제라니깐?”

“왜 하필 저런 얼굴을 캐릭터로 뽑아놔서는 시원하게 욕도 못 하게 만드는 건지 원.”

“······.”

혜나 누나와 어머니는 제대로 드라마에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신이 나와서 주인공을 괴롭힐 때면 둘 다 내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냈다.

“아~ 벌써 끝났네. 다음 주는 또 어떻게 기다려.”

“다음 주가 마지막 화라는데, 정말이니?”

“응. 결말이 진짜 궁금하다. 어떻게 될까?”

“궁금하면 말해 줄 수 있어.”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누나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안 돼! 절대 말하지 마!”

“아들. 그건 이 엄마도 용서할 수 없어.”

사실 난 이 드라마의 결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마 결말을 말해주면 오늘 쫓겨나겠지.

‘그리고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수호자라는 제목은 들어본 적이 없어.’

이상한 일이라면 이것이다.

드라마 수호자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전생에서 이 드라마를 봤던 적이 없다.

혹시 내가 뭔가 착각을 하는 건가 싶어 골똘히 생각을 해봤는데, 전혀 떠오르는 게 없었다.

거기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스토리 라인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남자 주인공.

그러나 환생의 조건으로 그 남자는 평생 그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저주가 걸려 있다.

이건 마치 나와 누나의 이야기를 엿보는 듯하다.

나도 남자 주인공처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내 기억력이 안 좋은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옆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눈을 돌렸다.

혜나 누나가 가사 없는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이번에 내가 서울대에서 지휘 중인 협주곡이었다.

“그 노래 벌써 외웠나 보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을걸? 뉴튜브 보니까 사람들이 피아노랑 기타 같은 걸로 연주해 놓은 거 있던데. 그걸 좀 들었지. 그리고 저번에 서울대 가서 네가 연습하는 거 지켜보기도 했고.”

그때 내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누나.”

“응?”

“만약 그 협주곡에 가사가 들어가면 어떨 거 같아?”

“가사가 들어가?”

“응. 그러니까 가수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거지.”

“오~ 괜찮을 거 같은데?”

방금 들어보니, 누나 목소리가 협주곡이 아주 잘 맞았다.

내가 협주곡을 만들 때 무의식적으로 누나의 목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을 고른 것은 아닐까? 아니. 분명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음색이 잘 맞아 떨어질 순 없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번 협주곡이 다음 앨범을 만드는 데에 힌트로 쓰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

“그거 들었냐? 장연욱이 우리를 다음 앨범 녹음에 쓸 수도 있다는 거?”

“진짜? 이렇게나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한꺼번에 써?”

“와~ 내 연주가 앨범에 실리는 거야 그럼?”

장연욱의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어느덧 3주 차에 이르렀다.

오늘도 연습을 위해 모였던 단원들은 JJ의 차기 앨범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설마 무보수로 쓰진 않겠지?”

“총장님이 협주곡 지휘해 주는 대신, 우리를 다음 앨범에 써도 좋다고 승인했다잖아. 아마 무보수가 아닐까?”

“미친. 아무리 그래도 무보수는 좀 아니지 않아?”

주인은 뭘 한다고 정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강당 문이 열리고 장연욱이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

모두 작은 숨소리만 낼 뿐,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참 보기 힘든 광경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 단원들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지휘자는 이렇듯 등장만으로 사람을 긴장시킨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지휘자가 중학생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학생에 맞지 않게 키도 크고 비율도 연예인이라 그런지 좋아서 누가 따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똑같은 대학생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모두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2주 차까지만 하더라도 소수의 단원은 여전히 장연욱을 어리게만 봤다. 그러나 이제 그 누구의 얼굴에도 그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진정으로 그를 자신들의 지휘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만 봐도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공연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연습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원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미 충분히 빡세게 굴리고 있는데, 여기서 더 굴리겠다는 뜻 아닌가.

“그럼 시작할까요?”

지휘봉이 움직이면서 오케스트라 협주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첫 만남 때처럼 10초 만에 음악이 중단되는 사태가 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30초도 못 넘기고 멈췄다.

이제는 지휘봉만 봐도 연주를 멈춰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음, 연주하는 동안 미스 터치 한번은 인정합니다. 아니. 두 번까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세 번은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한 곡을 연주하는 데에 있어 미스를 세 번이나 하는 건 삼진 아웃과 같습니다. 이건 연습 부족이라는 뜻이죠.”

공포의 피드백이 시작됐다.

단원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스 터치가 있지는 않았나 속으로 점검했다.

“방금 30초 동안 연주에서 미스 터치가 총 7번이나 있었습니다. 그중 3번은 한 사람에게서 나온 거고요. 아직 손이 덜 풀린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럼 계속 이어갈까요?”

이렇게 한번 말해 놓고 나면 신기하게 미스 터치 횟수가 대폭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주가 스무스하게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 외에도 장연욱은 틈만 나면 연주를 중단시켜 지속적인 피드백을 넣었다.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 동안 쭉 달리는 연습이기 때문에 점점 손이 떨려오고 이마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단원 중 누구 하나 좀만 쉬고 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들도 승부욕과 오기가 발동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최고의 연주 실력으로 서울대까지 온 학생들이지 않던가.

음악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하고, 특히 자신의 연주가 형편없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이를 더 악물며 노력하게 된다.

장연욱도 이런 단원들의 승부욕이 참 마음에 들었다.

푸쉬를 하면 할수록 더 치고 올라오려 하는 사람들이기에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단원들의 목표는 하나.

‘완주’

‘어떻게든 완곡을 한다.’

‘절대 틀리지 않고 완곡을 한다!’

3주 동안 연습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완곡을 한 적이 없었다.

딱딱 끊어서 연주해 곡을 끝낸 적은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 없이 연주한 적은 아예 없다는 것.

이들에게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손이 바들바들 떨려도 멈추지 않고 연주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완곡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곡이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지휘자의 지휘봉은 왠지 더 빨라진 것처럼 보이고 연주자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끝없이 손을 놀린다.

이 찰나의 순간에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게 되면 연주가 흐트러진다는 것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악기와 지휘자의 손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후-.”

장연욱이 길게 숨을 내쉬며 봉을 내려놨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완곡하는 건 처음이죠?”

드디어 첫 완곡을 하게 됐다.

“와아-!”

“으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눈물 나오려고 한다.”

단원들은 탄성과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떤 이는 눈물을 찔끔거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모든 힘을 쏟아부은 연주였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연주했던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가슴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쁨과 환희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는 다음 말이 이어졌다.

“자. 이 기세를 몰아 한 번 더 가 볼까요?”

“······?”

진심이냐?

죽고 싶냐?

라는 살벌한 눈동자가 일제히 장연욱에게 꽂혔다.

“농담입니다. 너무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지 말아 주세요. 전 여러분의 지휘자입니다.”

“지휘자님. 아무리 농담이시라도 방금 발언은 크게 선 넘으실 뻔했어요.”

“나 순간 악기 집어 던질 뻔했잖아.”

“하하······.”

왠지 농담이 아닌 것 같아서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다음부터는 그런 농담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 했다가는 바이올린으로 맞을 것 같았다.

“아! 그런데 정말 JJ 다음 앨범에 저희도 참여하는 건가요?”

“네?”

“저희도 소식 들었어요. 총장님한테 조건을 거셨다면서요. 우리 단원들을 차기 앨범에 쓰겠다고.”

단원들에게 있어서 JJ 차기 앨범 참여는 아주 좋은 커리어였다.

JJ 그룹은 첫 앨범부터 크게 히트를 치지 않았던가. 특히 장연욱의 작곡 실력이 워낙 뛰어나 분명 차기 앨범도 모든 음원 사이트를 석권할 게 분명했다.

그런 앨범에 자신의 악기 연주가 들어가는 건 영광스럽고 뜻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로 관심 있어 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혹시 무보수······ 에요?”

연욱은 손을 저었다.

“아니요. 양아치도 아니고 제가 어떻게 여러분을 무보수로 쓰겠습니까. 그리고 아직 결정된 일도 아닙니다. 좀 더 여러분의 연주를 지켜보고 나서 결정할 겁니다.”

한 마디로 평가를 한 뒤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닥 큰 반응이 나오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반응 정도?

그때 단원 하나가 손을 들어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혹시 차기 앨범에 저희가 참여를 한다면 저기 앉아 계시는 혜나 씨와 같이 작업을 한다는······.”

“네. 누나가 보컬이니까요. 여러분의 연주를 직접 듣고 노래를 부를 겁니다.”

“오오오-!!”

방금 전까지 미적지근하게 반응을 보이던 단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렀다.

“혜나 씨랑 하는 거 확실하죠?”

“오늘부터 맹연습 들어가겠습니다.”

“지금 한 번 더 연주하시죠? 이 기세로 2번, 3번 다 완곡해서 아주 마음에 드는 연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단원들이었다.

특히 남자 단원들이 엄청난 투지를 보이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장혜나와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자극이 되는 듯해 보였다.

“······.”

그런 단원들의 모습을 보고 연욱은 생각이 조금 바뀌려 하고 있었다.

단원들을 가져다 쓰겠다는 건 그냥 없던 일로 할까?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전원이 아니라 몇몇 분들만 참여하실 수도 있어요.”

그 말에 단원들 눈동자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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