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99화
장연욱이 이번에 화제가 된 악보로 직접 지휘를 맡는다는 공지가 올라오면서 여러 논란이 일었다.
작곡 실력은 인정하나, 과연 누가 중학생 밑에서 연주를 하겠느냐였다. 하지만 총장이 직접 승인한 것이기도 하고, 음악 실력만 보자면 결코 중학생의 것이라 볼 수 없었기에 오히려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접수 첫날, 오케스트라 단원에 지원한 사람은 무려 300명.
그중 교수들이 간추려 내놓은 것이 30명이었는데, 워낙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10명을 추가로 더 뽑았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좋은 마음만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작곡은 수준급이라고 해도 지휘는 그 격이 다르지.’
‘작곡을 좀 잘한다고 해서 지휘를 맡아? 어림도 없지.’
장연욱에 대한 흥미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다수가 그의 실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온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장연욱이 웃음거리로 전락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웃음을 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연욱아. 잘하고 와.”
장연욱과 같이 강당으로 들어온 장혜나.
단원들은 멀리서도 후광이 번쩍이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적개심 가득했던 눈동자가 부드럽게 풀리기까지 했다.
“반갑습니다. 장연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금방 다시 정신을 차렸다.
공공의 적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기한이 넉넉하지 않으니, 오늘부터 강도 높게 연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곡 연습은 해 오셨겠죠?”
저번에 장연욱이 피드백을 준 팀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걸 맞춰야 했다.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지휘를 이창호 교수님께 배운지 얼마 안 돼서 많이 부족할 겁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단원들은 비웃음 젖은 입가를 보이며 각자 악기를 들었다.
장연욱이 주는 신호에 따라 다 같이 도입부로 들어갔다.
“잠깐만요.”
그런데 곡이 시작된 지 몇 초도 안 지나서 연욱은 연주를 중단시켰다.
“거기 바이올린. 뒤 보지 마시고요. 그쪽 부른 거 맞습니다.”
“네? 저요?”
“예. 바이올린 튜닝 다시 하세요.”
“여기 와서 했는데요?”
“제대로 안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하세요.”
“아니······.”
“얼른요. 시간 없습니다.”
장연욱의 재촉에 바이올린 연주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튜닝 기계를 꺼내 다시 음을 맞췄다.
‘잘 되어 있는데, 왜 저놈은 갑자기 사람 무안을 주고 난리······.’
“응?”
여기 와서 분명 조율하며 음을 잘 맞춰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세하게 줄 두 개의 음이 따로 놀고 있었다.
설마, 이 사소한 차이를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고?
‘우연이겠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말이다.
“자, 그럼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곡이 재개됐다.
“잠깐만요.”
하지만 이번 역시 30초도 지나지 않아 연주를 중지했다.
“합이 잘 맞지 않아요. 특히 바순이 옆으로 새는 느낌입니다. 이 파트는 바이올린이 메인이긴 하지만, 바순이 리듬감을 꽉 잡아줘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 중요한 걸 못 해 주고 있어요.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언제 저놈이 실수할까만 기다리고 있던 단원들은 연주 중단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이번에는 바이올린이 너무 빨리 치고 올라갑니다. 갑자기 리듬이 빨라져서 헷갈릴 수 있다는 거 압니다. 그래도 악보를 충실히 따라 박자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15초, 30초, 40초, 55초.
그러다 다시 15초로 복귀해 문제가 되는 것을 계속해서 지적했다.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을 제대로 잡아내 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바이올린. 연습을 제대로 안 하셨나 보네요. 자꾸 미스가 나시는 거 같은데, 차라리 연습할 시간을 더 드릴까요?”
“아, 아니요. 연습은 충분히 했습니다.”
“그럼 본인의 실력 문제인가요? 연습은 충분히 했지만, 악보에 따라 연주를 하지 못한다는 건 지극히 개인의 실력 문제겠죠. 안 그렇습니까?”
“······.”
처음 강당에 들어섰을 땐 그 잘생긴 얼굴이 울상으로 바뀌기를 바랐건만, 이건 완전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흡사 졸업 연주회를 봐주는 학과장의 성난 얼굴을 보는 듯했다.
지적과 비판도 서슴지 않으며 채찍질을 해대고 있었는데,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것도 없었다.
특히 청음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 오히려 그걸 어떻게 들었지? 라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개인 연습할 시간을 드릴 수도 없어요. 우린 한 달 안에 이 곡을 무대로 올려야 하니까요.”
한 달.
매우 촉박한 시간이다.
잘 알려진 클래식 곡이었다면 한 달 안에 충분히 손발을 맞출 수 있겠다만, 장연욱이 직접 작곡한 협주곡이지 않은가.
모든 게 처음이기 때문에 손발을 빠르게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가겠습니다.”
벌써 처음부터 연주를 다시 시작한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기필코 마의 1분을 넘기리라 모두 다짐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장연욱이 연주를 중단시켰다.
“이번에는 플루트가 문제네요. 너무 강하게 음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있는 듯 없는 듯 힘 조절을 잘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단조가 바뀔 때 실수를 자꾸 하시는 거 같은데, 주의해 주세요.”
“아, 네!”
“다시 갈게요.”
오늘 장연욱이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지휘 한번 해 보지 못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찍어 세상에 알리려 했던 것도 모두 잊은 채 단원들은 그의 지휘 속도에 따라가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장연욱도 그렇고, 단원들도 그렇고 모두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건 분명했다.
* * *
“혜나야. 옆에 앉아도 되니?”
“아, 네. 교수님.”
장연욱 옆에 멀뚱멀뚱 서 있다 아예 장혜나 옆으로 자리를 잡은 이창호 교수였다.
“교수님은 옆에서 도와주셔야 하지 않아요? 연욱이 혼자 힘들 거 같은데······.”
“뭐? 내가 도와줘? 네 동생 하는 걸 봐라. 내 도움이 정말 필요해 보이나.”
사실 혜나가 보기에도 연욱은 아주 능숙하게 단원들을 다루고 있었다.
뭔가 처음인 것 같지 않은 모습이랄까.
“연욱이가 어디서 저런 걸 해 본 적은 없지?”
“없죠. 지휘도 교수님이 단기로 가르쳐준 거잖아요??”
“맞아. 이번에 갑자기 지휘를 맡게 되면서 내가 속성으로 가르치긴 했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연스럽단 말이지.”
자연스러운 걸 넘어 프로급이었다.
“원래 지휘자랑 단원들끼리 처음에 기 싸움을 하거든. 만약 거기서 밀려 버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자가 단원들을 이끌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기만 해.”
“그래요? 아까 다들 보니까 표정이 좋진 않던데.”
“너도 알겠지만, 중학생한테 지휘를 진지하게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상대를 깔보게 되어 있어. 아직 연욱이는 어리니깐. 그래서 단원들이 기 싸움도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지금 보면······.”
단 몇 분 만에 기 싸움은 고사하고 단원들을 휘어잡아 버렸다.
저들의 표정을 보라.
냉담하기만 했던 얼굴빛이 사라지고 지금은 연욱의 지휘에 따라가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꼭 카라옌을 보는 거 같네.”
“카라옌?”
“위대한 지휘자로 꼽히는 인물이지. 지금 연욱이가 하는 행동이 딱 카라옌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 양반도 한번 연주를 시작하면 30초를 넘기는 법이 없다고 하더라. 완벽주의자이면서 워낙 실력도 뛰어나 자기 귀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연주를 멈추고 피드백을 주는 거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자 중 하나로 뽑히는 카라옌.
그는 대단한 지휘자이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악마 그 자체였다.
미세한 음도 가려낼 수 있을 정도의 청음 능력을 갖췄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곡을 풀어내고자 단원들을 쥐잡듯 잡은 것이다.
보통 때라면 단원들이 들고일어나 못 하겠다고 때려쳤겠지만, 카라옌의 경우에는 지적이 억지스럽지 않고 연주자의 본인 기량이 올라가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한번 그에게 피드백을 받으면 그 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 장연욱에게 지적을 받고 있는 저 단원들이 딱 그래 보였다.
억지스럽지 않은 피드백.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피드백.
거기다 스스로의 기량까지 늘릴 수 있는 피드백.
장연욱이 주는 건 바로 저것들이었다.
그저 이창호 교수가 의문인 것은 대체 저놈은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기에 카라옌의 모습을 떠올릴 정도의 지휘 실력을 갖추었냐는 것이다.
단원들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원래 지휘자라면 권위가 있어야 하고 단원들이 조금은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수월하게 단원들을 다루며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연욱이 단원들에게 휘말려 제대로 된 지휘 한번 해 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인 모양이었다.
“이거 내가 피아노를 가르칠 게 아니라 지휘를 가르쳤어야 했나.”
피아노 콩쿨이 아니라 차라리 지휘자 콩쿨에 나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 *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느새 시간은 3시간이나 흘렀다.
50분을 하면 10분을 쉬는 게 보통이지만, 오늘은 쉬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3시간 동안 연습에 매달렸다. 웃긴 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많이 지났다는 걸 아무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연습은 게을리하지 마시고, 다음에는 오늘보다 더 많은 진도가 나가길 바라겠습니다.”
연욱은 그 말을 남기고 먼저 강당을 나갔다.
그가 사라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후- 존나 빡세네.”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냐.”
“화, 화장실. 화장실이 급해.”
그제야 긴장이 풀린 단원들이 하나둘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쉬지 않고 연주를 하느라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손가락이 아파왔다.
특히 높은 폐활량을 요구하는 악기의 연주자들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너무 굴리는 거 아니냐? 졸업 연주회도 이거 보단 덜 빡세겠다.”
“그러니깐! 뭔 10초마다 한번씩 연주를 중단시키냐?”
“대체 틀린 걸 어떻게 다 듣는 거야? 완전 괴물이야, 괴물.”
“에이씨. 확 때려 쳐?”
죽는소리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속마음은 비슷했다.
이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협주곡을 잘 끝내면 한 단계 더 높은 기량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이다.
더군다나 장연욱의 실력은 서울대에 있는 그 어떤 학생들보다 지휘가 뛰어났다. 즉, 그에게서 배울 게 넘쳐난다는 것이다.
“너 다음 연습 때 나올 거야?”
“응? 어······ 이미 하기로 한 건데 나와야지.”
“맞아. 약속은 약속이잖아? 이거 튀면 교수님이 우릴 어떻게 보시겠어.”
다들 어쩔 수 없이 연습에 참여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모두 내심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다음 연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