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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95화 (95/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95화

탁-!

강당 문을 닫고 나온 이창호 교수.

덤덤했던 그의 얼굴이 일순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으로 뒤바뀌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혈맥의 피가 빠르게 뛰며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훨씬 빨라졌다.

학생들이 그를 보고 90도로 인사를 하고 있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머릿속에 방금 전 상황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장연욱을 강당으로 데려온 건 어디까지나 교육 목적이었다.

유능한 서울대 학생들의 연주를 듣고 그들의 음악을 마주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라는 의미였다.

허나, 이창호 교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한 꼴만 되었다.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장연욱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서울대로 진학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펼쳤다.

말 그대로 강의.

연욱이의 청음이 수준급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단 한 번만 듣고 외워버리고, 그 안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문제점을 단번에 찾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끄러운 점은 이창호 교수조차 놓쳤던 것을 연욱이 발견해냈다는 것이다.

대체 그놈의 재능은 어디까지 뻗어 있다는 말인가.

그런 놈이 뭐?

벽을 느껴?

도태될까 무서워?

코웃음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연욱이가 봤다는 그 벽,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장애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긴장도 되고 돌발 상황에 당황할 만도 한데, 장연욱은 전혀 그런 모습도 없이 시작부터 끝까지 초연함만을 보였다.

“나중에 교수하면 인기가 엄청나겠어.”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창호 교수조차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 높은 강의였다.

차라리 교수를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저놈이 고리타분한 교수를 할 리가 없다.

“가서 뭐라고 말한담.”

빠르게 걷다 보니 금세 교수실 앞에 도착한 이창호 교수였다.

그는 자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서성이다 뒤늦게 문고리를 잡았다.

* * *

주제넘은 짓이었을까?

나는 조금 고양된 감정으로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서울대 학생 중 대다수가 유아기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올라온 엘리트들이다.

물론, 외국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지만 무조건 외국을 나간다고 음악 실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내 최고의 음악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먼저 실력을 쌓다 기회를 봐서 외국으로 진출을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실력자들 앞에서 내가 주저리 떠들어대며 지적질하고 잘못된 것을 교정시켜 주었다. 저번 생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새삼 전생과는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얻은 것도 있었다.

“흠흠.”

이창호 교수가 헛기침을 뱉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보다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어기적거리다 내 앞에 앉았다.

“그··· 좀 살살하지 그랬냐?”

“네?”

“아니다. 됐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수님 덕분에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뭐? 배, 배워?”

“네. 오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하는 걸 보고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또 무엇을 가르치려 하셨는지도 알았고요.”

이 양반 표정이 왜 이래.

“커흐흠. 그, 그래. 너는 뭐 항상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놈 아니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창호 교수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확히 어떤 걸 배웠다는 건데?”

“말로는 설명하기가 애매해요. 그냥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오케스트라 단위로 연주를 하는 걸 자주 봐야겠어요. 그렇게 쭉 하다 보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어요.”

이제까지 여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오긴 했으나,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창호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자 들었던 것이 아니던가.

그동안 음악 작업을 위해 클래식을 멀리하고 가요만 들어왔었는데, 아마 그것이 내 음악적 발전을 막은 게 아닌가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악이 있고, 또 그것들을 하나씩 접해 보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오케스트라 단위의 합주는 규모가 매우 크고 청음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까다롭기 때문에 실력 증진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여기서 조금 더 연습하면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볼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그런 생각이 들자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응? 아, 내가 딱히 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지금 가려고?”

“네, 해야 할 게 생각나서요. 피아노 레슨은 언제부터 해주실 거예요?”

“아. 그건 내가 따로 연락 줄게. 늦어도 다음 주부터는 시작해야겠지?”

“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창호 교수를 놔두고 교수실을 나왔다.

내가 갈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 *

나는 삼촌 작업실로 찾아왔다.

음악적인 무언가를 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안 계신가?”

벨을 눌러봤지만, 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는 여기 비밀번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버릇처럼 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작업실.

뭔가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원래 이런 작업실에서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지금 내 머리에는 그런 잡스러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나는 당장 컴퓨터부터 켠 다음, 뉴튜브로 들어가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플레이 시켰다.

빠바밤-!

최고급 사운드로 흘러나오는 강렬한 연주 소리가 내 귀를 가득 채웠다.

나는 편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연주를 들었다.

보통 때라면 눈을 감고 들었겠지만, 오늘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음악에 집중했다. 그들이 어떤 자세로 연주를 하고, 또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놓치지 않았다.

고조된 집중력.

그러면서 물 흐르듯 이어지는 몰입.

고양된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때쯤.

40분에 달하는 영상이 끝을 알리면서 검은 화면만 내 눈을 채웠다.

작업실 안에 대양처럼 가득했던 음악도 동시에 사라지면서 공허함이 감돌았다.

“음-”

아직 부족하다.

나는 다른 음악을 재생했다.

이번에도 역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이었다.

웅장하고 세련된 음색.

난 격렬한 지휘자의 움직임과 같이 호흡을 맞추는 연주자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들의 행동을 눈에 각인하고, 그들이 뽑아내는 음악을 귀에 저장시켜 놓는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40분이 넘는 3번째 영상이 꺼지고 작업실 안이 암전되었을 때였다.

“으악!”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삼촌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목소리에 나도 화들짝 놀라며 몸을 들썩였다.

“삼촌?”

“야! 깜짝 놀랐잖아! 불 좀 켜고 다녀!”

영상을 보기 위해 일부러 불은 다 끈 상태였다.

아무래도 컴퓨터 화면에 살짝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랐던 모양이다.

“우리 삼촌, 은근 겁이 많으시구나.”

“이걸 보고 안 놀라게 생겼냐? 난 또 귀신인 줄 알았네.”

“이렇게 잘생긴 귀신이면 놀라기보다는 감탄을 하지 않을까요?”

“어휴. 그래. 내가 쫄보다 쫄보.”

그러면서 삼촌은 주변을 빠르게 획획 돌아봤다.

“왜 그러세요?”

“아니.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이상하게 작업실만 오면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누가 꼭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삼촌 몸보신 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많이 허약해지셨나.”

“끙- 그래야 할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음악 대학에 있을 때도 종종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음악실에 귀신이 있다느니, 누가 꼭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느니와 같은 종류 말이다.

귀신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말이 미신처럼 떠돌기는 한다.

음악 작업을 할 때 귀신을 보면 그 음악은 반드시 히트를 친다고.

“뭐, 귀신 나오면 좋은 거죠. 삼촌이 만드는 음악이 대박을 친다는 얘기니까요.”

“그래도 싫어. 난 음습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그런데 너 여기서 뭐 하냐?”

“아······. 공부?”

“공부? 무슨 공부.”

“음악 공부요.”

나는 내가 보고 있던 영상을 다시 플레이해 보여주었다.

그러자 삼촌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갑자기 웬 클래식? 이걸로 공부할 게 있어?”

“그걸 지금부터 알아보려고요. 근데 삼촌은요?”

“나야 뭐 그냥 왔지. 딱히 프로젝트가 있는 건 아니어도 올 수 있잖아. 여기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여긴 음악 작업만 하는 곳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관 부럽지 않게 볼 수가 있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어느 PC방도 따라오지 못하는 게임룸으로 변해 버린다.

남자들의 로망이 한 곳에 집합되어 있는 곳.

여긴 삼촌의 놀이터나 다름이 없었다.

“저 음악 좀 듣고 가도 되죠?”

“안 된다고 하면 갈 거냐?”

“아뇨.”

“그럼 왜 물어봐.”

“예의라는 게 있잖아요.”

삼촌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어쩌다 이런 놈을 안으로 들였는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게 이런 건가.”

“원래 손님이 주인 행세한다고 하잖아요.”

“하여튼 한 마디를 안 져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눈을 속일 순 없다.

삼촌은 지금 내가 무얼 하려는지 무척 궁금해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것이 과연 어떤 공부가 되는지도 말이다.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거 해.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테니까.”

심드렁한 척, 관심 없는 척하고 있어도 행동에 뻔히 드러나고 있었다.

뭔가를 만지작거리면서 내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삼촌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뉴튜브에서 유명 오케스트라의 곡을 찾아 헤매다 느낌이 꽂히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플레이를 시켰다.

그리고 아까 전과 똑같이 화면을 응시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삼촌은 그런 내 행동을 보고 호기심을 보였다.

“그냥 조용히 음악만 듣는 거냐?”

“삼촌.”

“응?”

“쉿.”

“······.”

그런 기분을 아는가.

여기서 한 발자국만 가면 뭔가가 손에 닿을 것만 같은, 마치 저 너머에 있는 미지의 무언가를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뇌리에 들끓는 그것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사람을 애태우고 있다.

여기서 더, 조금만 더 뚫고 나아가면 정녕 그 감촉을 느낄 수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답답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나와 똑같이 눈을 부릅뜨고 오케스트라를 살펴보던 삼촌은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고, 나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몰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몰아냈다.

그런데 어느샌가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웅장한 교향곡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난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왠지 몸이 한결 가벼웠다.

이대로 탁 놓으면 하늘 위로 쭉 솟아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욱 가관인 건 작업실 내부였다.

작업실 안에 널브러져 있는 악기들이 하나둘 두둥실 떠오르면서 멀리 들려오는 음악에 따라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닌가.

“······.”

꿈인가.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야겠지만, 왠지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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