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93화
교수실을 나온 이창호 교수는 나를 데리고 학교 안 건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이자마자 달려와 허리를 숙였고, 강당 안으로 들어섰을 땐 팬미팅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일제히 인사를 올린 뒤 모두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악기를 다루었다.
이곳은 서울대학교.
가히 대한민국 천재 음악가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부면 공부, 악기면 악기.
둘 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들어올 수가 없는 곳이지 않은가.
“저기, 교수님.”
“음?”
“혹시 옆에 계신 분은 JJ의······.”
“자네, 곧 있으면 연주회 있지 않나?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텐데.”
“아! 죄, 죄송합니다.”
냉랭한 목소리에 말을 걸려던 학생이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역시, 바깥에서의 이창호와 학교 안에서의 그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연주회 기간인가요?”
이창호 교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음악 대학은 최소 학기에 한 번씩 연주회를 연다.
물론, 작곡과 학생들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위해 자잘한 연주회를 열긴 하지만 교수들과 많은 학생이 참관하는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성적 반영은 물론, 특정 교수의 눈에 들기만 하면 음악가로서의 활로가 열리기 때문에 모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벤트였다.
나는 우리 쪽을 흘깃 바라보는 학생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이창호 교수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고, 내 얼굴을 알아보고 흥미를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왜 여기로 널 데려왔는지 알겠냐?”
“아뇨.”
“한번 보라고. 우리 학생들이 연주회를 어떻게 준비하나.”
단지 그것뿐인 거 같진 않았다.
분명 뭔가를 가르치려고 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순순히 알려 줄 생각은 없으니, 알아서 보고 배우라는 건가?
나는 묵묵히 학생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 교수의 눈치를 살피느라 느릿느릿 움직이던 그들이 지금은 빠르게 자리를 잡고 앉아 악기를 조율했다.
바이올린, 피아노, 바순, 등등.
여러 악기가 한 곳에 집합했고, 수십 명의 학생이 각자 악기를 든 채 지휘자를 기다렸다.
지휘자는 당연히 이 학교의 학생이다.
작곡 역시 이 학교의 학생들이 만든 것이고.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저명한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순수 이 학교의 학생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을 연주하는 자리인 것이다.
나는 옆에 있던 이창호 교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진지한 눈으로 학생들의 연습을 살피는 중이었다.
빠밤-!
이윽고 시작된 연주.
그러나 1분도 채 되지 않아 지휘자가 연주를 중단시켰다.
“여기 포르테가 들어가는 단조는 조금 더 강하게 연주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바이올린의 소리가 너무 약해요.”
“네~”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지휘자다.
사람들은 지휘자가 앞에서 나와 손만 휘젓고 다니니 대체 저놈은 뭘 하는 놈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기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손 흔들기만 열심히 해 대니, 저놈 없어도 알아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음악을 연주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휘자다.
사람들에게 공연을 올려보내기 전, 그는 세밀한 부분까지 조율하며 단원들을 연습시키고 자신이 가진 해석을 단원들로 하여금 풀어낼 수 있게 만든다.
똑같은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지휘자 하나가 바뀌면 내놓는 소리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단원들은 군대, 지휘자는 그들을 이끄는 장군인셈.
지휘자가 흔들리면 오케스트라 단원들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지휘자가 지휘를 재개하면서 단원들은 진중하게 연주에 임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감상했다.
귀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아름답게 음률이 이어졌다. 그러나 정확히 50초가 지난 뒤부터가 문제였다.
조금씩 불협화음이 생기면서 내 귀가 그 부조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스파크가 튀고 절로 짜증이라는 감정이 솟구치게 만든다.
음과 양이 서로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상극으로 치닫는다고 해야 할까.
난 감고 있던 눈을 떠봤다.
지휘자는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인지 연주를 속행하는 중이었다.
“왜? 뭐가 마음에 안 드냐?”
알면서 물어보는 걸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걸까.
이창호 교수의 표정은 굳어 있기보다는 뭔가 웃기다는 얼굴이었다.
“듣기 거북하긴 하네요.”
“오~ 거북하다? 천재들만 모여 있는 오케스트라에서 감히 그런 말을?”
“교수님은 아시잖아요.”
“난 모르겠는데?”
이 양반이 또 날 놀리고 있다.
“학생들이 연주하는 거잖냐. 넌 뭐 대단한 오케스트라가 있기를 바라기라도 했니? 아무리 서울대라고 해도 아직 학생들일 뿐이야. 하지만 국내 최고의 인재들이라는 건 변함 없지.”
그러거나 말거나 거북스러운 건 거북스러운 것이다.
“그래도 저건 좀······.”
“흐흐. 그렇단 말이지.”
이창호 교수는 음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그만.”
그러더니 뜬금없이 연주를 중단시켰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하던 걸 멈추고 이창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강당 위로 올라갔다.
***
“자, 주목. 여기는 누군지 알지? 그래. JJ의 그놈 맞아. 하지만 여기서는 연예인이 아니라 내 제자다.”
제자.
이창호 교수는 제자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권위적으로도 당연히 위치가 높은 사람이라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바닥을 기는 학생들이 많았을 터.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제자를 만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사태가 터진 건 몇 년 전.
학부모가 돈을 싸들고 와 찾아와서 머리를 조아려도 제자 하나 들이지 않던 그가 돌연 초등학생을 데리고 콩쿠르에 나타나 자신도 이제 제자가 생겼음을 선포했다.
당연히 그 파장은 학교 내부로까지 이어져 여러 학생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서울대학교에 모이는 음악 천재들이 대체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사람이 초등학생을 제자로 삼아?’
‘음악만 하다 보니 드디어 미친 거지. 노망이라고 하나 그런 걸?’
학생들은 은연중에 그를 조롱했다.
아마 그 조롱의 근원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고작 초등학생에 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마음.
하지만 제자가 생겼다고 선포한 이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아 그대로 엎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많았다.
그것 참 잘됐다며 더 많이 비웃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그와 함께 나타났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관심을 받고 있는 JJ의 장연욱.
이미 여러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작곡 천재로 알려져 있고, 얼굴과 비율, 연기력까지 뛰어나 고작 1분 출연한 걸로 엄청난 화제성을 끌어모았다.
그런데 그 장연욱이 이창호 교수의 제자였단 말인가?
“연주는 잘 듣고 있었어. 그런데 자네들이 듣기에 이 연주가 괜찮다고 보나?”
다른 날 같았으면 저 교수 놈이 또 꼰대 짓을 하러 왔구나, 라고 생각했겠지만 상대는 이창호다. 여기서 그의 입김 한번에 사람 인생 하나가 달라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연주가 개판이었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일.
결국 모두의 시선을 받아 지휘자가 총대를 메었다.
“교수님. 아직 연주가 잘 다듬어지지 않긴 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그래? 그럼 정확히 뭐가 다듬어지지 않았는지 얘기해 봐.”
“그건-”
지휘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연주는 완성 단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뭔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찾아내기보다는 기한 내에 연습을 끝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연욱아.”
“네.”
“방금 연주 들었을 때 어땠어? 아까 나한테 했던 말 똑같이 해 봐.”
모두가 장연욱에게 시선이 꽂혔다.
이창호 교수의 제자가 된 아이.
연예인이라는 후광이 반짝이고, 나이에 맞지 않은 큰 키와 기품 있는 비율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것 빼고는 이들 눈엔 그저 자신들이 꼭 들어가고 싶어 했던 자리를 빼앗은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저놈이 서 있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건방져 보인다.
“뭐해? 얼른 말하라니까.”
진심인가?
연욱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단원들을 마주한 뒤 입을 열었다.
“듣기 거북했습니다.”
빠직-
관자놀이의 혈관이 튀어나오는 소리였다.
혹은 누군가의 얼굴에 금이 가는 소리였을 것이다.
“언밸런스라고 하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음악이 부조화를 일으킨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제가 듣기에는 그랬습니다. 아마······.”
연욱은 단원들 앞에 서 있는 지휘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기한에 쫓겨 디테일한 부분을 건드리지 못하고 나아가다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여러분의 실력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놓친 부분을 고쳐 나가다 보면 기간 내에 충분히 완성도 높은 연주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3학년 지휘과를 전공 중인 석태훈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건방진 새끼.
뭐? 디테일한 부분을 건드리지 못해?
여러분의 실력이라면 놓친 부분을 고쳐 나가?
시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하하. 그렇습니까? 매서운 비판이네요.”
음악에 대해, 클래식에 대해, 이들이 여기까지 오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린 그 시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이 감히 그따위 말을 하다니.
비단 석태훈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단원들 모두 간신히 화를 참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열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꼽을 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거기다 저놈 뒤에는 이창호 교수가 있다.
아마 그 백을 믿고 나대는 모양인데,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저 영감탱이의 코도 납작하게 만들 겸.
“그럼 정확히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TV를 통해 많이 봤습니다. 음악 천재라고 많이들 칭송한다죠? 거기다 이창호 교수님이 인정한 인재이시니, 진지하게 피드백을 받아 보고 싶네요.”
석태훈은 이 교수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괜찮겠습니까, 교수님?”
이 교수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대답했다.
“자네들이 원한다면야. 배움에는 귀천이 없고 위아래도 없다고 했으니까.”
이 교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 속으로 조소를 띠었다.
저 어린 놈의 새끼가 교수 앞이라고 시건방을 떨다 추락하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담아 둘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조화에 대해, 이 신비로운 학문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놈이 뭘 알고 피드백을 준단 말인가. 분명 두루뭉술하게 말하다 오히려 책을 잡혀 자기만 쪽을 당하는 일이 벌어질 게 뻔했다.
동시에 이창호 교수도 이번 일은 쉴드를 쳐 주지 못할 테니, 장연욱은 한 마디로 하이에나 무리 앞에 홀로 놓인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하지만.
“한번 해 볼까요?”
그런 하이에나들 앞에 선 장연욱의 모습은 겁먹은 양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호랑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