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91화
이데올 한국 지사의 대표, 정지윤은 좀처럼 늘지 않는 판매량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해 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황.
“본사에서 마케팅에 돈을 엄청 쏟아붓고 있는 거 다들 아시죠?”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임원들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판매량을 보세요. 여러분 눈에는 실적이 오른 거 같나요?”
“······.”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셨을까? 뭐라도 말 좀 해보시라고요!”
“그, 그게 홍보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임원의 구질구질한 변명이었다.
정 대표의 눈동자 안이 분노에 일렁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임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끝없는 잔소리가 시작됐구나- 라는 걸 직감하며.
“3개월 동안 유명 연예인들을 섭외해 보고 SNS에 홍보물을 마구잡이로 퍼뜨렸어요. 거기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는 잘 아시죠? 그런데 아무런 효과도 없어요. 판매량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고, 명품에 민감한 여자들이 이데올이 뭔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뭐? 홍보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아? 시간을 두고 지켜봐? 언제까지 지켜보려고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기였다.
“음. 탑급 연예인들을 섭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SNS를 통해서 홍보를 적극 권장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저번 모델들이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특색 있는 모델을 섭외해 마케팅을 이어가는 것이······.”
또 똑같은 말이었다.
이래서는 3개월 전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새로운 모델을 섭외하지 않을 순 없었다.
이미 뽑아 놓은 연예인들과의 계약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모델을 뽑긴 해야 한다는 것인데 대체 누굴 뽑아야 판매량이 급등하게 될지가 문제였다.
“후-”
귀로는 임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딴 짓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현재 대중들에게 이데올이라는 이름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나름의 작업이었다.
그녀는 포털 사이트와 SNS를 돌아다니며 이데올을 검색했다.
보통은 그녀의 회사가, 혹은 돈을 받은 연예인이 이데올의 제품을 올려 놓은 사진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응?”
광고밖에 보이지 않던 그 이름이 오늘은 웬일인지 일반인들 사이에서 언급이 되고 있었다. 설마 저 탁상공론만 하는 저 치들이 말한 대로 홍보 효과가 뒤늦게 나타난 걸까?
아니. 명품 시장은 장기적인 흐름을 보고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판매량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된 마케팅 효과였다. 그런데 왜 이제야?
“지금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래도······.”
임원들이 하는 얘기는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빠르게 손을 놀리며 누가 나비 효과를 일으킨 것인지 찾아 나섰다.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JJ가 오늘 우리 매장에!!]
어떤 이가 올린 사진들.
아마 이데올 매장 중 하나를 관리하는 점장인 듯했다.
그런데 그 매장에 현재 남매 그룹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찾아왔다.
당연히 광고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데올에서 이 둘에게 광고비를 준 적이 없다.
그냥 이 두 사람은 이데올 제품이 마음에 들어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예쁘다······.”
깜찍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과 간단한 액세서리를 들고 있는 사진까지.
광고처럼 조명 효과를 받으며 찍은 것이 아니기에 날 것으로 보였지만, 정 대표 눈에는 사진들이 예뻐 보였다.
이 둘에게 이데올의 제품이 참 잘 어울려 보인다고 해야 할까.
특히 핑크색 백팩과 패딩이 눈을 확 사로잡았다.
이데올을 상징하는 핑크빛 계열 색감이 더욱 부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정 대표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데올? 그런 브랜드가 있었나? 색감 너무 예쁘다.
-저 남매는 뭘 들고 찍어도 화보네.
-패딩이 진짜 너무 예뻐. 완전 내 스타일임
-이데올 매장이 어디에 있어요? 저 백팩 한번 보고 싶은데.
-아아 장연욱! 제발 드라마에 많이 좀 나와!!
네티즌들의 평가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데올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제품이 마음에 든다는 언급이 많았다.
“다들 잠깐만요. 이것 좀 보실래요?”
정 대표는 현재 화제 중인 글을 임원들에게 보여 주었다.
“JJ? 이 그룹 알고 있습니다.”
“저도 운전하면서 이 그룹 노래를 종종 듣곤 하는데······.”
“제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는 그룹입니다.”
하지만 임원들은 조금 망설였다.
“리스트에 있는 연예인들보다는 화제성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급의 차이가 있을 거 같은데요.”
급의 차이?
정 대표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저도 JJ에 대해 알고 있어요. 데뷔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데뷔하자마자 음원 역주행을 해서 차트 올킬을 했잖아요. 거기다 드라마 수호신 알죠? 거기서 여기 장연욱이 죽음의 신으로 나와서 엄청 화제가 됐던 거. 그런데도 급이 딸려요?”
“그, 그렇습니까?”
이럴 줄 알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우린 트랜드에 민감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요즘 누가 잘 나가는지도 모르면 안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미성년자이지 않습니까? 우리 제품들은 모두 젊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만든 것들이라 이 둘이 모델을 맡게 되면 아무래도 간극이 생기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일리 있는 소리를 했다.
“나이는 상관없어요. 누가 우리 브랜드를 빛내게 해주느냐가 중요한 거죠. 여기 사람들 반응을 보세요. 다들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잖아요. 여러분이 봐도 이 두 사람이 우리 제품이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맞습니다.”
“우리 제품을 이렇게 예뻐 보이게 해주는 사람을 찾는 것도 드물어요. 이제 여러분이 뭘 해야 할지 아시겠죠?”
임원들도 꽉 막히기만 한 멍청이가 아니었다.
“바로 JJ 소속사에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요. 다른 곳에서 먼저 알아보고 낚아채 가기 전에.”
“네!”
어지러웠던 회의가 끝이 났다.
정 대표는 어둡기만 했던 앞길에 한 줄기 빛을 본 듯했다.
***
“이러한 이유로 그쪽에서 너희에게 모델 제안이 들어왔다.”
강 대표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돈이 들어온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참 일감 잘 물어와. 혹시 노린 거냐?”
“아뇨. 그냥 사진 몇 장 찍어 주면 할인해 준다고 해서요.”
“하하. 그 사진 몇 장 덕분에 보너스도 왕창 챙기게 생겼다.”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
지금 같은 상황은 운구기일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이데올이란 브랜드가 사실 생소하긴 해. 알아보니까 이태리 브랜드고, 거기서는 나름 인지도를 쌓고 있어. 이번에 한국에 진출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더라고. 그런데 효과는 별로 없었나 봐. 그래서 국내 철수설도 슬슬 나오는 중이었고.”
이데올에게 그런 일이?
나는 이데올이 성공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지, 그들이 어떤 위기를 겪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사실 무조건 덥석 문다고 좋은 건 아니야. 생각해 봐라. 너희들이 모델을 맡고도 눈에 보이는 실적이 없어서 이대로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그건 나와 누나에게 치명적인 이미지 타격으로 이어진다.
광고계에서도 은연중에 있는 미신 같은 것이 있다.
특정 연예인이 광고를 맡은 브랜드는 꼭 무슨 문제가 터진다든지 하는 그런 징크스 말이다. 그래서 톱 연예인이더라도 그러한 인식 때문에 광고에 잘 쓰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한번 그런 이미지로 굳혀지면 진짜 뒤집기가 힘들거든. 너희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연예인 중에서도 파괴왕 같은 이미지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서 광고로 얼굴 보기가 힘들지. 미신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원래 그쪽 사람들이 징크스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거든.”
반대로 이 사람이 광고를 맡은 브랜드는 항상 히트 친다! 라는 이미지를 굳힌 연예인들도 있다. 난 누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다.
“누나도 여기 브랜드 좋지?”
“응. 오늘 내가 입고 온 것도 이데올 브랜드잖아.”
핑크색을 좋아하는 누나에겐 최적의 광고였다.
“대표님. 나 이거 하고 싶어요. 여기 브랜드 진짜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우리 혜나가 좋다면 해야지. 그런데 만약 이데올이 이대로 철수해 버리면 당분간 광고 끊기는 건 각오해야 돼.”
글쎄.
과연 그럴까.
이미 SNS를 통해 크게 화제가 됐다.
사람들이 이데올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고, 나와 누나가 브랜드 광고를 맡으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물론, 예정에도 없던 우리 두 사람이 모델을 맡게 되면 이데올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른다. 정말 강 대표 말대로 허망하게 한국에서 철수를 할 수도 있는 뜻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면서 내 감은 거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아참. 그리고 빅뉴스가 하나 더 있다.”
강 대표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박태중 감독 있잖냐.”
“네.”
“그 감독이 무려 CY 엔터테이먼트에서 투자금을 받는다더라.”
이미 알고 있던 일이라 난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 대표가 내 앞에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야. 반응이 왜 이렇게 미적지근해? 무려 CY 엔터라니까? 엄청난 거물을 잡은 거야.”
“대표님도 시나리오 보셨잖아요. 사실 이제까지 투자처가 없었던 게 이상했던 거죠.”
“뭐··· 그건 그래. 원래 무명한테는 한없이 차가운 시장이잖아. 아마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어 준 곳도 없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CY를 잡게 된 건지······ 하하. 세상 일 참 모르는 거야.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반응이 재미가 없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대표님도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 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뭘?”
“CY 엔터가 전부 다 삼켜버릴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처음 내건 조건이 엎어질 수도 있다는 거죠.”
CY 정도의 대형 투자사라면 충분히 기존에 들어와 있는 투자사를 쳐내고 작품을 독차지할 수도 있다. 보통 70% 이상은 차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작의 냄새가 나는 작품을 남과 나누기 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거 하나 안전장치 안 만들었을까 봐?”
하지만 강 대표는 뛰어난 수완가였다.
그는 내 앞에 계약서를 흔들어 보였다.
“이미 계약을 해뒀지. 최소 30%는 우리한테 지분을 넘겨줘야 한다고.”
어쩌면 강 대표도 대형 투자사가 이 시나리오를 물어갈 수도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그는 철저하게 대비를 해 두었다.
“우리가 내 건 조건은 확실하게 받아 주겠죠?”
“아~ 그 조건. 당연히 계약서에 적어 뒀지.”
줄곧 가만히 있던 누나가 궁금증을 드러냈다.
“조건? 무슨 조건?”
나는 강 대표와 같이 웃으며 혼자 멀뚱멀뚱 있는 누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