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90화 (90/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90화

“괜히 시간 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미팅 약속을 잡고 나온 강세원 대표는 여전히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장연욱, 그 아이가 추천해준 감독이지 않은가.

만약 다른 사람이 해 준 조언이었다면 그냥 깔끔하게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욱이의 말은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그 아이의 말은 계속 머리를 맴돌며 자신을 괴롭힌다고 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연욱이는 예술적 감각뿐만이 아니라 사업적 감각도 굉장히 뛰어난 아이였다. 사실상 JJ는 연욱이 혼자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제까지 그 아이가 무언가를 시도해서 실패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명 감독을 만나러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아! 먼저 기다리고 계셨네요. 혹시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이윽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나타난 박태중 감독.

강 대표는 빠르게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빈틈 없이 양복을 입은 강 대표의 옷차림과는 사뭇 대조되는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공식석상에서도 양복을 잘 차려입는 감독들을 찾아 보기 힘드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만 했다.

“GN 엔터테이먼트의 강세원 대표라고 합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연락 받고 많이 놀랐습니다. 저 같은 무명 감독을 대표님이 왜······.”

“혹시 시나리오는 가져 오셨습니까?”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일단 커피부터 드시죠. 전 시나리오 좀 살펴 봐야해서요.”

박태중 감독의 첫 인상은 별로였다.

원래 오기 싫었던 자리라 더욱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가 똥이기만 해 봐라.’

그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갈 생각이었다.

강세원 대표는 대충 시나리오를 훑어 보려 했다.

길어 봐야 10분.

하지만 그 10분이 30분이 되고, 30분이 1시간으로 변했다.

“······.”

거의 2시간 가까이 되어 서야 강 대표는 두툼한 시나리오 원고를 상 위에 내려 놓았다.

“허-”

그리고 내뱉은 첫 마디는 허탈과 당황, 그 외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섞인 탄성이었다.

그가 원고를 집중하며 읽는 사이 박태중 감독은 혼자 커피 3잔을 마셨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다는 표정이 들어 있진 않았다. 오히려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상대가 원고에 완전히 빠져들어 읽었다는 걸 겉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어 주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마음에 드십니까?”

강 대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역시 사람은 겉보기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니. 이제는 박 감독의 후줄근한 옷차림이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천재들만이 갖는 특별한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래. 이 사람은 다른 감독들에게서 볼 수 없는 뭔가가 있다.

그건 아마도 연욱이에게 넘치도록 있는 천부적인 재능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기대 안 했습니다. 그냥 딱 10분만 보고 사이즈 안 나오면 여길 나가려고 헀죠.”

“이제 그런 건 익숙합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앉아 계시는 게 보였어요. 다른 이유라도 있으셨습니까?”

“뭐, 제가 옆에 끼고 있는 점쟁이 하나가 있는데, 거기서 그러더군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네? 점쟁이 말을 들으신다고요?”

“하하. 농담입니다. 장연욱 아시죠?”

어떻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멀리서 봐도 광채가 나는 그 아이가 자신의 시나리오를 보고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아이가 뜬금없이 저한테 명함 하나를 던져 주고는 드라마 투자에 뛰어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나왔죠.”

“그··· 장연욱 씨 나이가 많이 어리지 않나요?”

“네. 그런데 연욱이를 만나고 나서 나이는 정말 아무짝 상관도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말했죠? 점쟁이라고. 그 아이 감각이 저보다 더 뛰어나요. 그래서 이렇게 나온 겁니다.”

GN 엔터테이먼트는 결코 작은 기획사가 아니다.

그런데 그곳의 대표라는 사람이 중학생의 조언을 귀담아듣는다?

역시, 장연욱의 첫인상부터가 남달라 보이긴 했다.

박태중 감독도 그 얼굴을 직접 보고 난 뒤부터 종종 떠오르곤 했으니까.

“장연욱 씨가 대표님처럼 시나리오를 길게 읽어본 것도 아닌데, 잠깐 만난 거로 절 추천하다니······. 저한테 뭘 본 걸까요?”

“그건 저도 알 수 없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연욱이는 감독님의 작품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이미 연욱이는 5억을 감독님에게 투자하겠다고 선언까지 했어요.”

“네? 5억을요? 그만한 돈이 있다는 겁니까?”

“연욱이 성공한 연예인이에요. 음원 차트 올킬하고 드라마까지 씹어 먹은 놈 아닙니까. 아마 몇 년 흐르면 연욱이한테 5억은 침대 밑에 있는 500원짜리처럼 하찮게 느껴질 겁니다.”

아직 그 정도의 액수를 만져 본 적 없는 박 감독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아이에게는 지금 5억원이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도 그걸 감독님에게 투자하겠다는 건······ 솔직히 말리고 싶지만 자기가 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5억으로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턱도 없습니다.”

“예. 그러니까 제가 여기 온 거죠. 참고로 저희 GN 엔터테이먼트는 한 번도 드라마나 영화에 투자해본 적이 없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투자처 리스트를 만들어 발품을 팔아가며 돌아다닌 박태중이었다.

GN 엔터는 아직 연예인을 양성하기만 하고 직접적인 투자를 하진 않고 있었다. 그래서 리스트에도 없었던 것이다.

“저희가 감독님이 만들려 하시는 드라마의 40% 이상은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100%를 하겠다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세상 어떤 드라마에 100%를 투자하는 회사가 있답니까. 아무리 대기업의 투자라고 해도 최대 70%가 맥시멈이잖아요.”

드라마, 혹은 영화에 투자할 때 100%를 전부 다 투자해 주는 곳은 거의 없다.

대신, 대형 투자 기업이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여기저기서 달라붙어 투자금을 낸다. 그렇게 해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더 홍보를 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GN 엔터가 40% 이상 투자금을 낸다고 소문을 내세요. 저희 쪽에서도 내겠지만, 감독님도 열심히 홍보해 주셔야 합니다.”

“무, 물론입니다.”

“그리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이건 연욱이가 내세운 조건이긴 한데······.”

말을 하면서도 강 대표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튼 장연욱 이놈은 무엇이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자기 누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

“룰루~.”

아버지는 요즘 콧노래를 부르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너희 아빠, 요즘 헤벌쭉 웃기만 하는 거 있지?”

“응? 왜?”

“왜긴 왜야. 이번에 너랑 연욱이가 아빠 차 바꿔줬잖아. 아직 출고까지 3개월 남았는데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저런다.”

내가 세상 가장 잘한 지출이 있다면 부모님의 차를 바꿔 드린 것이다.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외제차를 한 대 뽑아 드렸다. 그것도 파워 좋고 차체가 튼튼한 SUV로 말이다.

그토록 꿈꿔 오던 외제차를 둘러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분이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야겠다.

“엄마는 건강검진 예약하셨죠?”

“응. 하도 너희들이 난리를 쳐서 내가 제일 비싼 걸로 했어. 무슨 검진 한번 하는 데에 350만 원이나 든다니? 난 아직도 손이 떨려.”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 건강이 최고인 거 몰라? 이제 나랑 연욱이가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덜컥 아파서 병원 가면 안 되잖아.”

차를 사드리고 나서 부모님 건강검진 예약부터 잡아드렸다.

두 분 모두 오래오래 건강해야 가족의 평화도 오랫동안 이어지기 때문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짝 쓸모도 없으니까.

“그런 돈은 아까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랑 누나 이제 돈 잘 벌어요. 내년에는 더 많이 벌 거고요.”

“그래도 너희들이 피땀 흘려서 번 돈을 우리가 어떻게 함부로 쓰겠어?”

“그런 말씀 마시고 펑펑 쓰세요. 다른 청담동 사모님들처럼 명품으로 위아래를 다 휘감으셔도 되니까, 제발 부담 갖지 말고 써 주세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단순히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히 나도 사람이기에 갖고 싶은 것이 있다. 아니.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원초적인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호강하고 원하는 걸 사면서 행복을 느꼈으면 했다.

그 마음은 아직도 변치 않고 있다.

“그래. 고맙다. 우리 예쁜 아가들.”

붉어지는 어머니의 눈시울을 보니 왠지 나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만 같았다.

드르르-.

그때 걸려오는 전화.

발신자를 보니 강세원 대표였다.

이 아저씨는 참 분위기 깨는 데에 전문인 것 같았다.

“네, 대표님.”

“방금 만나고 왔다.”

“누구요? 아. 저번에 말씀하신 그 여자분?”

“야! 그거 말고.”

“대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후-. 박태중 감독.”

떨떠름하게 반응하기에 안 만나는 줄 알았더니, 기어코 만났구나.

“얘기는 잘하셨어요?”

“응. 네가 칭찬한 그 시나리오도 읽어봤다.”

“그래서 결과는요?”

“참나. 내 어이가 없어서.”

“네?”

“박태중 감독 첫인상 진짜 별로였거든. 근데 원고는······ 크. 내가 읽어본 원고 중에서 제일 재밌더라. 시나리오만 봐도 천재성이 팍팍 느껴지더라고. 실제 촬영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재밌었어. 넌 대체 그런 걸 어떻게 발굴한 거냐?”

박 감독의 시나리오야 당연히 재밌겠지.

근데 그게 드라마로 나오면 까무러치게 된다.

한국을 넘어 전 아시아를 평정하는 드라마가 탄생하게 되는 거니까.

“저도 뭐 우연히 보고 알게 된 거죠.”

“넌 참 운이 좋아. 매일 우연히 됐다고 하고.”

“아무튼, 투자는 하시기로 했어요?”

“그래. 네 5억도 같이 들어간다고 말해줬지. 문제는 그 사람이 나머지 60%를 어떻게 챙기느냐야. 만약 끝까지 투자처 못 구하면 나도 이거 손 뗄 거야.”

“그건 당연하죠. 그런데 왠지 느낌이 좋아요. 분명 대형 투자사에서 박 감독 작품을 물 겁니다.”

“생초짜 신인한테 대형 투자사가? 가능할까 모르겠녜.”

아니. 가능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투자사 중 하나인 CY 엔터테이먼트에서 거액의 투자금을 던지게 될 테니 말이다.

내가 알기로 CY 엔터테이먼트는 박 감독이 하겠다는 모든 작품에 투자하게 된다. 이 작품이 그 첫 시작이라는 것.

CY가 완전히 낚아채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발을 담그게 된 걸 강 대표는 나중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오늘 그거 때문에 연락한 게 아니야.”

“그러면요?”

“너희들 SNS 잘 안 하나 보네. 이번에 SNS에서 화제된 사진 못 봤어?”

“사진이요?”

강 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