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84화
“언니~ 여기도 봐주세요!”
“오빠!! 내 손 한번만 잡아줘!”
식당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우린 급하게 밖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인 꼴이 되었다.
어린이부터 성인 할 것 없이 우리의 얼굴을 알고 있으면 전부 다 주변으로 모여들어 핸드폰을 들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다들 고마워요~”
누나는 손을 흔들어 주며 상황을 유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괜히 유명 연예인이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다.
실제로 몇 번 극성팬들이 난입해 누나를 끌어 안으려 한 적이 있었다.
거기다 여기는 경호원들도 없어서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얼른 여길 빠져 나가려고 했는데, 워낙 모여든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 뚫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안녕하세요. 저는 S 월드의 팀장을 맡고 있는 박홍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양복을 입은 남성이 직원들을 이끌고 나와 내게 명함을 건네 주었다.
이 놀이공원의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도움이 필요하실 것 같아 직원들을 조금 데려와 봤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절실히 필요할 때 와 주었다.
전문 경호원들은 아니지만, 우리 기획사에서 쓰는 경호원들보다 더 덩치가 커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네. 저희 놀이공원에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불의의 사고를 대비해서 직원들을 따로 배치를 해 둡니다.”
“저희가 다음에 소속사를 통해서 사례를······.”
“아니요. 따로 사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직원들도 있으니 이제 편하게 팬들을 대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가능하시다면 저희가 아이들 연극을 위해 만든 무대가 있는데, 거기서 노래 한 곡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왜 마케팅 팀장이 이 자리에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우리에게 직원들을 제공해 주는 대가로 놀이공원 홍보를 하려는 것이다.
“좋아요.”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누나가 먼저 말했다.
“여기 오디오 빵빵하죠?”
“아, 물론입니다. 저 멀리서도 들을 수 있게 저희가 항상 음질에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럼 됐네요. 여기 분들에게 싸인 몇 장만 더 해 주고 바로 올라갈게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바로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팬미팅에 이어 공연까지 하게 생겼다.
“괜찮겠어, 누나?”
“뭐 어때. 어차피 이대로 가기도 미안하잖아. 다들 우리 보러 와줬는데.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공연이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
그러다 누나는 옆에 꼭 붙어 있던 지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연아. 미안해. 많이 놀랐지?”
“아뇨. 그냥 오늘 누나랑 연욱이가 너무 멋있어 보여요. 팬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전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들면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은데.”
“이것도 하다 보면 익숙해져.”
누나는 사인을 해 주던 손을 멈추고 소리쳤다.
“여러분~ 오늘 특별히 여러분을 위해 공연을 하게 됐어요! 다들 많이 보러 와 주세요!”
공연 발표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연?”
“진짜 여기서 공연을 한다고?”
“대박. 바로 보러 가야지.”
“언제하는 건데?”
잠깐 사라졌었던 박홍서 팀장이 다시 우리에게 왔다.
“무대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MR은 저희가 가지고 있고, 혹시 필요하실 것 같아 기타와 키보드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역시 대기업이라 그런지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단 몇 분 만에 일사천리로 공연 준비를 끝냈다.
우린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갔다.
벌써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 또 소문이 난 건지, 수많은 인파가 공연장 앞으로 모여 들었다.
곧 퍼레이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우리 공연을 듣고자 모인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JJ의 장혜나라고 합니다! 오늘 갑작스럽게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조금 부족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와아아아-!”
실로 뜨거운 함성이었다.
기타 줄을 만지면서 튜닝을 하고 있던 내가 깜짝 놀라 몸을 들썩일 만큼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가장 앞줄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는 지연이와 눈을 마주쳤다.
진심으로 나와 혜나 누나를 응원해 주는 게 느껴졌다.
“연욱아. 준비됐어?”
혜나 누나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난생 처음 해 보는 게릴라 콘서트.
누나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이 상황이 영 마뜩찮았는데, 누나 표정을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난 흘러 나오는 MR에 따라 기타를 부드럽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의 첫 게릴라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 * *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 곡만 불러 주셨어도 됐는데······.”
원래 얘기가 된 건 딱 한 곡만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5곡을 쉬지 않고 불렀다.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그런데 오늘 퍼레이드는 괜찮았어요? 저희 때문에 괜히 사람들이 많이 안 간 거 같아서······.”
“하하. 괜찮습니다. 퍼레이드는 항상 있는 거니까요. 오늘 특별 공연을 해 주셔서 관람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공연하신 거 따로 촬영을 해 두었는데, 혹시 저희 채널에 올려도 괜찮을까요? 물론 소속사를 통해 그에 따른 인센티브가 따로 주어질 겁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다시 놀이공원 투어를 했다.
물론, 직원들이 밀착 경호를 해 주기도 했고 프리미엄 티켓을 따로 줘서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아~ 내 인생 최고의 놀이공원이었다.”
누나는 모든 걸 다 이루었다는 듯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지연아. 너도 재밌었지?”
“네. 줄도 안 서고 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 또 오자. 알겠지?”
“······네.”
지연이의 대답에 힘이 없었다.
“왜 그렇게 대답에 힘이 없어. 외국 나간다고 영영 한국 떠나는 건 아니잖아.”
“그게······ 이번에 가면 정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거라서요.”
“응? 1년 있다가 다시 오고 그러는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아예 거기서 정착하고 살 거 같아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으로 올 줄 알았는데, 그쪽 부모님은 한국으로 오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부모님은? 부모님도 같이 가셔?”
“아빠는 일 때문에 여기 있고, 엄마만 같이 갈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가 이렇게 노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거잖아?”
지연이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누나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내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지연이를 데리고 도망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괜찮아. 지연아. 분명 이건 너한테 좋은 기회야. 거기 가서 적응 잘 해야 돼. 알겠지?”
“응······.”
지연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기를 데리러 온 차량을 보고 말했다.
“아! 엄마 차 왔다. 저 먼저 가볼게요.”
“응. 어서 가.”
지연이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 누나가 갑자기 내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야이 병신아!”
“뭐야. 나 왜 맞은 거야?”
“뭐? 분명 너한테 좋은 기회가 돼? 거기 가서 적응을 잘해야 돼? 해 줄 말이 그거밖에 없냐?”
“거기서 뭘 또 말할 게 있겠어.”
“으휴. 이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어떻게 여자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냐?”
“······?”
누나는 혼자 성질을 부리며 매니저 형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가 뭘 잘못 말했다는 거지?”
나도 아려오는 등짝을 매만지면서 누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억울하다.
* * *
“으으-”
“그러게 집에 있으라니깐.”
“야. 아무리 그래도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집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건 아니지.”
어제 늦게 잠이 들고 새벽부터 일어난 누나는 기지개를 쭉 피며 하품을 찢어져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공항 오니까 좋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엄마 아빠랑 외국 나간 적이 없네?”
“응. 그러네.”
“우리가 돈 많이 벌어서 외국 한번 나갔다 오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날짜 맞춰서 갔다 와도 괜찮겠다.”
혜나 누나와 나는 오늘 공항으로 나왔다.
어쩌면 오늘이 지연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말을 듣고 새벽부터 나와 지연이를 기다렸다.
이윽고 지연이가 도착해 미안한 얼굴로 다가왔다.
“언니. 연욱아. 정말 안 나와 줘도 되는데.”
“아니야. 괜찮아.”
그 뒤로는 지연이 부모님도 있었다.
“어이쿠. 이거 반갑습니다. 지연이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JJ 노래 항상 잘 듣고 있어요.”
지연이 아버님이 누나와 악수를 나누며 입꼬리가 씰룩였다.
저번에도 우리 그룹 팬이라고 하더니, 빈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셋이 얘기라도 나눌 시간을 주고 싶은데, 이걸 어쩌죠? 지금 바로 들어가야 해서요.”
아침 비행기라 시간이 촉박했다.
아쉽지만 작별 인사는 짧게 해야만 했다.
누나가 먼저 지연이를 껴안아 주면서 말했다.
“지연아. 다 잘 될 거야. 가서 연락 자주 해야 한다? 알겠지? 힘든 일 있을 땐 꼭 누나부터 찾아.”
“고마워요, 언니.”
누나와의 포옹을 끝낸 뒤 지연이와 난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난 그냥 가볍게 악수나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지연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누나도, 지연이 부모님도, 그리고 나도 놀랐다.
“나 다녀올게.”
“어······. 몸조심해. 연락하고.”
“응.”
지연이는 무겁게 대답을 한 뒤 부모님을 따라 출국 수속을 밟으러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누나가 팔꿈치로 날 때렸다.
“하여튼 끝까지.”
“뭐가?”
“지연이한테 해 줄 말이 그게 끝이야?”
“······.”
“이번이 정말 마지막으로 보는 걸 수도 있잖아. 가뜩이나 피아노 포기하고 싶어 하는 얘인데.”
나는 묵묵히 서 있다가 지연이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뛰어가 소리쳤다.
“지연아!”
“응?”
“피아노 포기하지 마.”
“뭐?”
“나도 피아노 포기 안 할게.”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떠들어댔다.
“3년 뒤에는 우리도 국제 콩쿨에 참가할 수 있어.”
국제 콩쿨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가 만 17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콩쿨에 나갈 수가 있다.
“난 국제 콩쿨을 목표로 삼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꼭 나와.”
“저, 정말?”
“응. 거기서 만나자. 나도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올라갈 테니까. 그리고 저번처럼 안 봐 줄 거니까, 각오해.”
지연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번에는 내가 꼭 이길 거야.”
지연이는 손을 흔들면서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연이 엄마는 고마움이 담긴 얼굴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왠일이냐, 장연욱?”
누나는 아주 잘했다며 내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후련했던 기분도 잠시.
내 얼굴이 빠르게 일그러져 갔다.
“누나······.”
“응?”
“나 아무래도 X 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