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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82화 (82/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82화

“언니~!”

“어머, 지연아.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많이 컸다.”

서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삼촌이 핀잔을 주었다.

“혜나야. 누가 보면 이모가 조카 만나는 줄 알겠다.”

“삼촌이 몰라서 그래요. 지연이 키도 엄청 컸고, 얼굴은 더 예뻐졌다고요. 전이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랑 연욱이도 그래. 이제 다 컸나 싶었는데, 아직도 쑥쑥 자라고 있잖냐.”

혜나 누나가 몇 번 작업실로 놀러 오면서 어느새 삼촌과도 친해져 있었다.

친화력 하나만큼은 연예계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니가 꾸준히 연락도 해 줘서 너무 좋았어요. 진짜 심심하고 외로웠을 때 큰 힘이 됐다니깐요?”

“에이. 연락하는 것 정도야 별거 아니지. 연욱이도 너한테 자주 연락했을 거 아니야.”

“연욱이는······.”

지연이는 짜게 식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연락 거의 안 했는데······.”

“정말? 와~ 장연욱. 매일 지연이 오는 날만 체크했던 게 연락은 한 번도 안 했어?”

“아니. 난 괜히 방해될까 봐 그랬지. 그런데 누나는 연락 자주 하면서 나한테는 얘기도 안 했어?”

“내가 누구랑 연락하는지 일일이 너한테 보고해야 돼?”

누나는 지연이 손을 잡고 말했다.

“미안하다. 지연아. 내가 동생을 잘못 가르쳤네.”

“아니에요. 언니. 이게 다 제 탓이죠. 연욱이도 얼마나 귀찮았겠어요.”

“아니야. 누가 너 같은 애를 귀찮아할 수 있겠니?”

난 그래도 나름 연락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연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거기다 누나가 지연이와 꾸준히 연락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아주 관심 없는 척은 다 하더니, 뒤로는 몰래 연락하고 있었다는 거지?

처음으로 누나한테 배신감을 느꼈다.

“자자. 연욱이 갈구는 건 거기까지 하고, 이제 일들 해야지? 오늘 빨리 끝내면 이 삼촌이 너희들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돈 쓰는 데에는 항상 통이 큰 삼촌이 지갑을 살랑거리자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일단 혜나 너는 노래 연습해 온 거부터 들어보자. 연욱이 넌 지연이가 연주하는 거 녹음하고 있어.”

작업실이 크니까 각자 일도 따로 할 수가 있었다.

삼촌이 누나와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지연이와 같이 피아노에 앉았다.

“연습은 좀 했어?”

“응! 하루종일 했지.”

“오케이. 그럼 녹음 들어가기 전에 한번 쳐 볼래?”

지연이의 얼굴은 더 없이 밝아 보였다.

하지만 피아노에 손을 올리는 순간, 그 밝아 보이던 얼굴에 금이 갔다.

집중을 해서 그런가?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은 온전히 집중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원래 피아니스트의 감정은 연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하지 않던가.

처음에는 지연이가 일부러 슬픔과 애절한 감정에 힘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어보니 본인이 원해서 힘을 준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힘이 실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연주를 마치고 나서 지연이는 다시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이번 곡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주였다.

하지만 연주에 담긴 감정에 나도 휩쓸려 버린 것일까.

“지연아.”

“응?”

“혹시 너 피아노 치는 게 싫니?”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지연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고 그녀는 두 손을 저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왜 피아노 치는 걸 싫어해? 전혀 그렇지 않아.”

“그래?”

“응. 피아노는 내 인생인걸? 이거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

“미안. 방금 전 말은 잊어. 연주는 아주 좋았어. 바로 녹음하면 되겠다.”

“응······.”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지연이가 필사적으로 본인의 마음을 숨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본인이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말하게 할 생각은 없다.

난 힘없이 대답하는 지연이를 놔두고 녹음실을 나갔다.

“바로 녹음 시작할게. 아까처럼 연주해 주면 돼.”

녹음 버튼을 누르고 지연이의 연주를 다시 한번 감상했다.

방금 전 연주보다 요동치는 그녀의 감정이 느껴졌다.

***

“오~ MR 아주 좋아.”

몇 번의 반복 끝에 나는 가장 좋은 지연이의 연주 버전을 골라 기존에 있던 여러 악기의 녹음 파일들과 합쳤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MR 완성본을 삼촌에게 들려주었다.

“확실히 기계음과는 다른 뭔가가 느껴지긴 하네.”

“피아노 연주가 다르잖아요. 제가 연주했으면 그런 느낌이 안 났을걸요?”

“너도 피아노 엄청 잘 치잖아. 쓸데없이 겸손하기는.”

삼촌은 녹음실 안에 들어가 있는 혜나 누나에게 말했다.

“혜나야. 방금 따끈따끈한 MR이 도착했거든? 그거 듣고 해 보자.”

“네~”

샘플로 만든 MR로 연습 중이었던 누나도 완성본을 듣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오~ 뭔가 느낌이 팍팍 살아 있어.”

그러고는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걸 듣고 있던 삼촌이 미소를 지었다.

“네 누나는 참 보배야. 내가 여러 가수랑 협업을 해 왔지만, 저런 매력적인 목소리는 처음 듣는다. 아마 외국에서도 찾기 힘들걸?”

“그렇긴 하죠. JJ가 뜰 수 있었던 것도 누나의 목소리 덕분이니까요.”

“네 작곡 능력도 뛰어났던 거지.”

“누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제 곡들은 아마 벌써 묻혀서 없어졌을 거예요.”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목소리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누나와 비슷한 목소리를 찾긴 힘들 것이다.

괜히 삼촌이 누나의 음색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와~ 언니 정말 잘 부르신다.”

“그치? 목소리가 얇은 것 같으면서도 파워풀한 성량이 그걸 쫙 커버한다니깐? 참 스릴 있는 음색이야.”

스릴 있는 음색.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의 얇은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음이탈이 되거나, 혹은 목소리가 갈라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뛰어난 성량이 그 의문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다.

그래서 스릴 있는 목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가사도 이 정도면 훌륭해. 노래랑 아주 잘 어울려.”

“그럼 오늘 걸로 마무리하시는 거예요?”

“응. 몇 번 더 녹음해 보고 마무리하자.”

좋은 곡과 가사, 거기다 그것을 부르는 가수의 능력까지 뛰어나다면 프로듀서로서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지금 나와 삼촌의 모습이 그러했다.

완벽한 재료들을 가지고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게 더 어렵다.

난 세세한 부분들을 삼촌에게 맡겼다.

몇 가지 수정할 부분이 있는 곳은 삼촌이 직접 지시를 내려 고치게 했고, 누나는 그에 잘 맞춰 주었다.

“어때? 나 어땠어?”

녹음이 끝난 누나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너무 좋았어요, 언니.”

“아니야. 이게 다 지연이가 연주를 잘해 준 덕분이지. 나 피아노 소리만 듣고 울 뻔했다니깐? 진짜 연주가 슬프더라.”

누나의 칭찬에 지연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의 장르가 장르인 만큼, 이번 곡은 전체적으로 무겁고 슬픈 멜로디였다.

연인의 아픈 사랑을 부르는 노래이니, 그 음이 결코 발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연이의 연주가 이번 곡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했던 것이다.

“삼촌. 마무리는 우리끼리 하고, 이제 그만 갈까요?”

“그러자. 오늘 고생들 했으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비싼 거 먹어도 돼.”

그 말에 지연이가 눈빛을 반짝였다.

“유, 육회 먹어도 돼요?”

“응? 또?”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오늘 육회를 먹지 않으면 집에 가서 울 것만 같았다.

“삼촌. 먹으러 가죠. 거기 맛있던데.”

“하하. 그래. 혜나 너도 괜찮지?”

“거기 육회도 맛있고 토시살도 맛있던데.”

“그래. 아주 다 뜯어 먹어라. 가자.”

혜나 누나는 아주 능숙하게 서랍을 뒤져 차키 하나를 꺼냈다.

“오늘은 이거 타면 안 돼요?”

포르쉐 카이엔.

요즘 누나는 저 차에 빠져 있었다.

작은 승용차보다 덩치가 큰 SUV를 좋아하는 듯했다.

“오늘 사람도 많은데 이거 타고 가지 뭐.”

그리고 SUV부터 슈퍼카까지 없는 게 없는 삼촌도 참 대단했다.

키를 아무렇게 보관하는 것까지 말이다.

나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억소리 나는 차량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도 무심할 수 있을까?

***

쪽- 쪽-

나는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고 있는 혜나 누나와 지연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소고기를 잔뜩 먹고 배가 터질 것 같다면서 징징대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더 가관인 건 케이크 두 조각을 시키고 그것들까지 남김없이 먹었다는 점이다.

원래 여자의 배는 두 개가 있다고 했던가.

밥 배와 디저트 배는 정말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연아. 학교는 어디로 가기로 했어?”

“하, 학교요?”

“응. 한국에 계속 있을 거 아니야? 그럼 학교도 다녀야지.”

지연이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여기서는 안 다녀요.”

“응? 안 다닌다고?”

“네. 곧 다시 외국으로 갈 거 같아요.”

“헐? 뭐야. 계속 있는 거 아니었어? 연욱이가 그러던데. 너 계속 한국에 있을 거라고.”

나도 지연이가 계속 한국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다. 그럼 언제 떠나는데?”

“아마 이번 달 안에는······.”

“뭐야. 금방이잖아? 그럼 한국은 왜 왔던 거야?”

지연이의 표정을 보니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눈치 하나는 백단인 혜나 누나가 말했다.

“굳이 대답할 필요 없어. 괜찮아.”

궁금하긴 했지만, 나도 구태여 캐묻진 않았다.

그래서 다른 화제로 대화를 옮기려는데, 입을 다물고 있던 지연이가 말을 꺼냈다.

“사실······. 제가 한국 오자고 졸랐어요.”

“응?”

“너무 힘들었거든요. 거기서 잠깐 학교를 다니긴 했었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저 혼자 동양인이라서 무시도 당하고 그러다 보니 친구도 없고······.”

나와 혜나 누나는 묵묵히 지연이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뭐, 한국이라고 해서 딱히 친구가 많은 건 아니지만, 언니랑 연욱이가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유일하게 날 따뜻하게 대해 주니까요.”

“······.”

“솔직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어요. 혼자 있는 건 아무래도 적응이 돼서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지연이의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연욱이 네가 나한테 아까 그랬지? 혹시 피아노가 치기 싫냐고. 사실 내가 한국으로 오려고 한 건 그냥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야.”

“도망치고 싶었다고?”

“응. 피아노가 정말 치기 싫었거든.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 피아노가 없는 곳으로. 음악이 없는 곳으로.”

그 말을 하고 나서 눈물 몇 방울이 지연이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한국에 와도 달라지는 건 없었어. 그냥 부모님은 내가 외국 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 잠깐 슬럼프가 온 줄로 알고 계셔.”

피아노가 싫다고, 음악이 싫다고 직접 말씀드리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지연이에게 돈을 쏟아부으며 음악 교육에 힘을 섰던 분들이니까.

“하지만 점점 힘들어.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아. 그렇다고 피아노를 포기할 순 없어. 난 이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누나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L=OK물론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얼른 지연이를 위로해 주라는 신호 같았다.

난 얼떨결에 지연이 옆자리로 가서 울고 있는 지연이를 안아 주었다.

“괜찮아. 마음껏 울어.”

나는 등을 토닥여 주면서 누나에게 이 정도면 괜찮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미묘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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