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81화
“지연아.”
“응.”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지연이에게 말했다.
“너 혹시······.”
똑똑-.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와 지연이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지연아. 엄마야. 들어간다?”
“아, 응!”
지연이 어머니는 쥬스와 간식을 들고 오셨다.
“이거 먹고 해.”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나를 물끄러미 살펴보다 물었다.
“저기 내가 묻고 싶은 게 있거든?”
“네. 말씀하세요.”
“우리 지연이를 데리고 음원 녹음을 하고 싶다면서?”
“네. 제가 이번에 작곡 중인 드라마 OST가 있는데, 지연이가 피아노 연주를 꼭 해줬으면 해서 부탁했습니다.”
“음. 그래?”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대를 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많이 아쉬울 것이다.
다른 전문가들도 있지만, 지연이 연주만큼의 느낌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번에 작업실에서도 봤지만, 지연이 연주 스타일이 내 노래와 잘 어울린다.
“제가 말씀도 드리지 않고 지연이를 작업실로 데려간 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뭐······ 아니야. 지연이가 나한테 거짓말한 게 잘못이지. 그런데 혹시 어떤 드라마 OST니? 지금 방송하고 있어?”
“아뇨. 지금 준비 중입니다. 수호신이라는 드라마인데.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어머님이 손뼉을 크게 치셨다.
“응? 수호신? 혹시 정성우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거?”
“아, 네. 맞습니다.”
정성우가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태도가 돌변했다.
“어머. 나 그 배우 완전 팬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신작 나온다고 해서 엄청 기대하고 있었거든. 그 OST를 만드는 거였어?”
역시 정성우의 이름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 같다.
“대단하다. 그럼, 정성우 배우도 만나봤니?”
“네. 몇 번 만나봤습니다.”
“어휴. 부러워라. 나중에 기회 되면 사인 한 장 받아 주면 안 될까?”
이 어머님.
겉으로 봤을 땐 드라마 한 편 안 볼 것처럼 같았는데, 완전히 정성우 광팬이었다.
“기회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지연이가 OST 연주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네. 한번 해봐.”
지연이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마. 나 진짜 해도 돼?”
“응.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 우리 딸이 녹음한 OST가 나온다는데, 왜 그게 싫겠니?”
지연이 어머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재밌게 놀다가렴.”
내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뭔가 못마땅한 눈빛을 하고 있던 어머님이 지금은 아주 호의가 넘쳐흘렀다. 정성우라는 이름을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어머님이 나가고 나서 지연이가 짧게 환호성을 질렀다.
“다행이다. 처음에는 엄마가 반대했거든. 그런데 웬일로 허락해 주셨지? 난 너랑 작업하는 거 꼭 해 보고 싶었거든.”
“그래? 오히려 내가 더 다행이네. 난 어머님이 허락해도 네가 싫어하면 어떡하나 고민했거든.”
“에이. 너랑 하는 건데 내가 싫어하겠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지연이가 짐짓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연욱아. 아까는 무슨 말 하려고 했던 거야?‘
“아. 그거······.”
나는 하려고 했던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 그래?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려 했던 거 같았는데.”
“다음에 얘기해 줄게. 오늘은 너랑 놀려고 왔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이미 타이밍도 놓쳤다.
거기다 내가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잘못된 발언으로 인해 피아노를 향한 지연이의 마음이 비틀어져서 모든 미래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당장 뭔가를 하기보다는, 지금은 그냥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이곳에 놀만 한 게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있어 봐야 피아노에 관련된 것들 정도?
“음. 지연아.”
“응?”
“혹시 너 폰 게임은 하니?”
“어? 아니.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
그 말을 듣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어린양 하나를 즐거운 게임 세상으로 데려갈 것 같다.
***
“연욱이 잘 배웅해 주고 왔어?”
“응.”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니깐 빨리 갔네.”
“해야 할 일이 많은가 봐. 작곡이 다 끝난 게 아니라서.”
“그래? 아쉽네.”
가장 아쉬운 건 엄마가 아니라 지연이 자신이었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연욱이는 오해 머물 시간이 없었다.
“연욱이 참 어른스럽더라. 말투나 행동도 그렇고. 가정 교육을 잘 받았나 봐. 아참. 녹음은 언제 해?”
“다음 주에 하기로 했어.”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 알겠지?”
“응!”
그래도 한 가지 기쁜 점이 있다면 다음 주부터 오랜 시간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지연아. 외국은 언제 갈래?”
“응?”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순 없잖아. 한국에서는 널 제대로 가르칠 사람이 없어.”
“······.”
연욱이 덕분에 밝아졌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꼭 가야 돼······?”
“당연히 가야지. 넌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 꿈을 이루려면 외국에 나가서 좋은 교수님들에게 레슨을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지.”
“하지만 거기에는 친구들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해.”
“그건 공부를 하면 되잖아.”
한인혜는 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네가 너무 적응을 못 해서 엄마가 잠깐 한국에 널 데리러 온 것뿐이야. 알지? 절대 여기서 오래 머물러서는 안 돼. 이게 다 널 위한 일이란다. 엄마 아빠는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 알지?”
엄마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지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인혜가 웃으며 딸을 품에 껴안았다.
“착하다. 우리 딸. 넌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냥 하라는 대로만 연습하면 돼. 그럼 알아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을 거야.”
“응······.”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지연은 꾹 참으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
“나보고 뭘 부르라고?”
“이번에 나 드라마 OST 작업하는 거. 그중 한 곡은 누나가 불러 줘.”
“오~ 그래? 안 그래도 그 드라마 사람들이 기대 많이 하던데. 내 목소리가 거기 나온다는 거지?”
이번에 OST를 작업하면서 나는 처음부터 그중 한 곡을 혜나 누나에게 줄 생각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스타일도 누나에 맞춰 작곡했기 때문에 누나의 목소리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곡이었다.
“그래서 페이는?”
“응?”
“그냥 불러 달라는 건 아닐 거 아니야.”
“······.”
나는 누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말했다.
“남매 찬스 쓰겠습니다.”
“그게 뭔데?”
“말 그대로 누나를 공짜로 쓸 수 있다는 거지. 누나는 동생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영광을 누리는 거고.”
“응. 괜찮아. 안 사.”
“아니야. 사양하지 않아도 돼.”
“야. 됐어. 안 가. 안 불러. 다른 사람 구해.”
나는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 누나를 붙잡았다.
“아니. 장난이지, 장난. 내가 설마 진짜 누나를 그냥 막 부려 먹고 그러겠어?”
토라져 있던 누나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그렇지? 우리 동생이 그런 양아치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지.”
“10% 떼어 줄게. 대신 작사는 누나가 해.”
“고작 10%? 안 해.”
“······15%?”
“다른 사람 알아보라니깐?”
가수한테 15%를 주는 곳도 솔직히 많지 않다.
10%도 많게 책정이 된 거라고 하는데, 누나는 그보다 더 많은 15%도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
“알겠어. 20% 해 줄게. 됐지? 이거 진짜 남는 거 없이 다 주는 거야. 이렇게 분배해 주는 대신, 작사는 누나가 해.”
“음······.”
누나는 턱을 긁적이며 고민하고 있었다.
설마 20%도 성에 안 차는 건가?
“누나. 이번에 지연이도 와서 내 작업 도와주기로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누나도 좀 도와줘. 지연이가 피아노 연주하고 누나가 거기에 맞춰서 노래 불러 주면 정말 좋은 노래 하나 나올 거 같아서 그래.”
“잠깐. 누구? 지연이가 와?”
“어. 저번에 말 안 했나? 지연이가 우리 녹음 도와주기로 한 거.”
“니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니?”
방금 전까지 밀당하던 누나가 지연이 이름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나왔다.
“할게. 작사도 내가 하지 뭐. 언제 가면 되는데?”
“다음 주에 녹음할 거야. 근데 혹시 지연이 때문에 하겠다는 거야?”
“응? 절대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냥 느낌이······.”
“기분 탓이겠지. 아무튼, 다음 주에 한다는 거지? MR 있는 거 보내. 가사 만들어 놓을 테니까.”
누나는 유독 지연이를 경계하는 것 같다.
내가 정성우 배우를 경계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
둘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정성우는 뭔가 느낌이 안 좋아서 최대한 멀리하려는 게 아니던가.
“누나. 혹시 성우 형이랑 아직도 연락해?”
“어. 그 오빠한테 종종 연락와. 저번에도 쇼핑할 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만났었어. 아 맞다. 어제 성우 오빠가 너 주라고 사 온 선물 있었는데.”
“어제 만나는 게 성우 형이었어?”
“아니. 다 같이 만난 거라니깐? 난 성우 오빠 나오는 것도 몰랐어.”
누나는 어제 정성우가 날 위해 샀다는 카드 지갑을 꺼냈다.
“무려 명품이야.”
브랜드만 봐도 비싼 티가 확 났다.
“어제 거기 VIP 백화점 가 보니까 완전 신세계인 거 있지? 웃긴 건 아예 가격표가 없더라? 근데 거기 사람들은 다 가격도 안 보고 사는 거야.”
돈이 넘쳐나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지 않은가.
일반인들의 통제는 철저히 하고 오직 회원들만 받는 곳이라고 들었다.
“아무튼, 거기서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성우 오빠가 갑자기 선물을 사 주겠다는 거야.”
“거절하지 그랬어.”
“언뜻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백을 하나 보여 주더니, 사 주겠다고 하기에 얼른 거절했지. 내가 미쳤다고 그걸 받겠어?”
“그런데?”
“그렇게 실랑이 몇 번 벌이고 나서 갑자기 카드 지갑 두 개를 사더니, 나한테 그냥 가지라고 줬어. 너랑 나눠 가지라고. 꼭 하나쯤은 사 주고 싶었대. 그것도 안 받으려고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 받으라고 해서 그냥 가져왔어.”
정성우가 막무가내로 선물을 들이밀면 누나도 계속 거절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대체 그 양반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사심 없는 호의인지, 그게 아니라면······.
“아무튼, 가급적이면 그 형 있는 곳은 가지 마.”
“넌 성우 오빠가 정말 싫은가 보네. 유독 그 이름만 나오면 발작을 하더라.”
“그냥 그 형이랑은 친해지기 싫어. 누나가 그 형이랑 같이 있는 것도 싫고.”
“흐응- 그래?”
“그리고 내가 언제 발작까지 했어? 누나야말로 지연이 이름만 들어도 발작하잖아.”
“하!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안 그랬거든?”
“그래. 안 그랬다고 하자.”
“와~ 진짜 국회의원 납셨네. 너 그렇게 사람 모함하고 정치질하면 안 돼.”
난 누나가 조잘대는 말을 들으면서 정성우가 줬다던 카드 지갑을 살펴보았다.
5장 정도의 카드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지갑.
명품 브랜드답게 손에 촉감이 부드럽고 좋았다.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잘 빠져서 사람들이 왜 명품을 쓰는지 조금은 알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 선물해 준 사람은 정성우다.
그래서인지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