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9화
지연이가 연주를 하는 내내 삼촌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야 비로소 웃는 얼굴로 돌아왔는데, 형식적인 미소를 보이는 게 전부였다.
“이야. 정말 잘 친다. 연욱이 이놈 치는 것만 듣다가 네 걸 들으니까 귀가 호강하는 느낌이네.”
지연이와 나 사이에 격차가 벌어져 있다는 걸 방금 연주로 느꼈다.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왔구나.
왠지 나도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삼촌.”
“응?”
“지연이가 연주하는 동안 표정이 안 좋으시던데. 왜 그런 거예요?”
오히려 삼촌이 깜짝 놀라 내게 되물었다.
“나도 본 걸 넌 못 봤다는 거야?”
“네?”
삼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보다 더 감성이 풍부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빠르게 캐치하는 놈이 저 애 표정 하나 제대로 안 살펴봤어?”
“······.”
그러고 보니 난 피아노를 연주하는 지연이에게 집중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음악에 중점을 두었다.
자연스레 눈을 감고 귀만 열었다는 것이다.
삼촌은 피아노에서 내려오는 지연이를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찼다.
“지연이, 아무래도 피아노를 죽을 만큼 싫어하는 거 같다. 아니. 무서워해야 한다고 할까?”
“삼촌이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원래 예술 하는 것들이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하잖아. 무시하냐?”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지연이가 피아노를 싫어하는 줄은······.”
“쯧쯧. 이거 이제 보니까 완전 숙맥이었네. 지연이 같은 애들은 원래 많아. 피아노나 혹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지만, 점점 치면 칠수록 그 악기를 혐오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쉽사리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이고. 자기는 놓고 싶지만, 남이 억지로 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러는 걸 수도 있어.”
순간 지연이의 부모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부모님 때문인가?
아니. 그전에 정말 지연이는 피아노를 치는 게 싫은 걸까?
“뭐, 그래도 연주는 잘하네. 피아노를 싫어하는 것과 연주 실력은 역시 별개인가 봐. 하지만 저렇게 고문까지 시키면서 녹음을 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그건 네 결정에 맡기마.”
“······삼촌은 의외로 이런 걸 잘 아시네요.”
“지연이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봐왔으니까. 저게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이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하지. 내 친누나가 그랬거든.”
내가 놀란 눈빛을 띠자 삼촌은 손을 저었다.
“이미 다 지난 일이야. 내가 20대 때 일어난 일이고.”
“그럼 그분은 극단적인 선택을······.”
“야. 멀쩡히 잘살고 있는 누나를 왜 네가 죽여?”
“아니, 삼촌 뉘앙스가 꼭 그랬잖아요.”
“소동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자살까진 아니었어.”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우리에게 걸어오는 지연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슬픔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의 얼굴도 과연 저럴까.
그리고 저 얼굴은 진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촌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지연이의 웃는 얼굴이 왠지 거짓처럼 느껴졌다.
***
“외국에서도 피아노를 열심히 치다가 국내에서도 여러 경험을 쌓으려고 왔어요. 학교도 여기서 다녀볼까 생각 중이기도 하고요.”
작업실 구경이 끝나고 나서 삼촌은 나와 지연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 나이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아니고, 우린 지금 한우 육회집에 와 있었다.
누가 보면 삼촌이 우릴 억지로 데려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육회를 먹고 싶다고 한 건 지연이었다.
“너무 맛있다. 외국에는 이런 게 없었거든.”
“외국은 어디어디 다닌 거야?”
“독일, 프랑스, 영국 등등. 주로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면서 유명 대학 교수님들한테 레슨도 받아봤고요.”
“오~ 좋은 경험 했네. 역시 조기 교육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니깐? 연욱이 너도 이참에 외국 한번 나가 봐.”
“됐어요. 한국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외국을 나가면 어떡해요?”
“바쁜 척하기는.”
나와 삼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연이가 은근슬쩍 물었다.
“외국으로 가는 게 싫어?”
“응?”
“아니. 정말 싫은 건가 해서.”
“뭐, 나중에 가족 여행은 가려고. 근데 외국을 나가서 음악을 공부하는 건 글쎄.”
“······그렇구나.”
왠지 대답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지연아. 부모님이 언제까지 돌아오라고 하셨어?”
“응? 아. 이미 다 전화 드렸어. 이거만 먹고 돌아가겠다고.”
“그래. 밥 다 먹으면 이 삼촌이 데려다줄게.”
어느새 지연이에게도 삼촌으로 불리고 있었다.
애들을 참 좋아하는 거 같은데, 왜 결혼을 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부터 비혼주의인가?
삼촌이 누구와 결혼을 해서 이혼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터는 한국에서 열심히 해 보려고요. 당분간 외국으로 나갈 생각은 없어요.”
“생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네가 나가기 싫은 거야?”
“······네?”
삼촌의 날카로운 질문에 지연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삼촌도 얼른 다른 걸로 화제를 돌렸다.
“그냥 물어본 거야.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학교는 어디서 다니기로 했어?”
“아. 그건······.”
지연이와 삼촌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내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오고 있었다.
아까도 똑같은 번호로 와서 그냥 무시했는데, 몇 번 반복하며 오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중요한 전화 같았다.
“네. 여보세요?”
- 혹시 장연욱 씨 핸드폰 맞나요?
뭐지.
사생팬 전화인가? 아니면 기획사?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네. 맞습니다.”
- 휴- 다행이네요. 설마 번호도 가짜로 쓰고 나갔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네? 무슨 말씀이시죠? 아니. 그전에 누구세요?”
- 저 지연이 엄마에요.
아무래도 지연이가 외출을 하기 전 내 번호를 적고 나가도록 시킨 모양이다.
“네, 안녕하세요, 어머님.”
- 그래요. 내가 경황이 없어서 안부는 못 묻겠고, 우리 지연이 거기 있어요?
“네. 육회집에서 지금 밥 먹고 있습니다.”
- 육회? 아니. 누구 마음대로 지금 애를 육회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죠?
“네?”
- 거기다 이 늦은 시간까지 대체 뭐하고 다니기에 애를 집에 안 돌려보내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됐는 줄 알아요?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아서 하마터면 실종 신고도 할 뻔했잖아요.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연이가 허락을 맡은 게 아니었나요? 저랑 오늘 작업실 간 것도 그렇고, 여기 식당 온 것도?”
- 작업실? 그건 또 무슨 얘기죠?
이런.
왠지 순순히 허락을 했다 싶었는데, 처음부터 지연이는 부모님 허락을 맡고 온 게 아니었다.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 됐고, 지연이부터 바꿔줘요. 얼른.
나는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 삼촌과 웃고 떠드는 지연이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응?”
“네 어머님 전화야. 받아.”
“······.”
지연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전화를 들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삼촌은 한숨을 쉬고 있는 날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지연이가 돌아왔다.
“연욱아. 미, 미안해.”
“······.”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 저희 좀 데려다 주시면 안 될까요?”
“아, 그래. 밥도 다 먹었는데 얼른 가자.”
차에 타고 나서도 나는 지연이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덕분에 차 안 공기가 매우 싸늘해져 삼촌도 우리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렇게 지연이가 사는 곳에 도착했다.
동네부터가 역삼동이라 누가 봐도 잘 사는 곳이었고, 거기다 여기는 고급 주택가다.
지연이네 집도 당연히 으리으리한 곳 중 하나였다.
“지연이 가족은 여기 사는구나?”
“네.”
“좋은 곳에서 사네. 아무튼 오늘 재밌었다. 조심해서 들어가고.”
“네. 안녕히 계세요.”
“삼촌. 저도 여기서 내릴게요.”
“응? 네 집은 여기가······ 아니다. 그래. 내일 보자.”
나는 지연이와 같이 차에서 내려 문 앞까지 말없이 데려다주었다.
지연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얼굴이 훤히 보였다.
화를 내야 하는 게 마땅한데, 저 얼굴을 보니 화보다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그래. 내가 화를 낼 이유도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유가 듣고 싶었다.
“지연아. 왜 그런 거야?”
“미안. 너랑 오랜만에 만나서 길게 놀고 싶었어. 외국에서는 나랑 놀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 한국에도 친구들이 거의 없고······. 거기다 네가 작업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너무 궁금했고. 그런데 엄마는 내가 그런 곳에 간다고 하면 절대 허락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여기서 좀만 뭐라고 했다가는 펑펑 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진짜 실종 신고까지 하셨으면 어쩔 뻔했어.”
“미안해······.”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리해서 나랑 같이 놀 필요 없어. 굳이 밖으로 나올 필요도 없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로 이해했는지, 지연이가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이제 못 만나는 거야?”
“아니. 왜 울고 그래. 만나지 말자는 뜻이 아니야.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잖아.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여기로 놀러 올게.”
“······응?”
“그럼 되잖아. 내일 시간 어때? 언제라도 상관없어. 너희 집도 구경할 겸, 내가 여기로 놀러 올게. 너희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러자 지연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돼! 무조건 돼!”
“어?”
“엄마도 괜찮다고 할 거야. 진짜야.”
“그래? 오늘 보니까 화가 많이 나신 거 같던데.”
“그건 내가 들어가서 싹싹 빌면 돼. 그럼 내일 네가 놀러 올 수 있을 거야. 내가 꼭 되게 할게.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어. 그, 그래.”
방금까지 울고 있던 지연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핀 얼굴로 집에 들어갔다.
부모님께 혼이 많이 날 예정이라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좋은가?”
유독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 있었다.
외국에서는 아무도 놀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도 친구가 없다.
한국에서도 하루종일 피아노만 치고 있으니,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려웠을 테고 외국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친구들 없이 피아노만 끼고 살아야 하니, 그 외로움이 얼마나 사무쳤을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지연이였다면?
오직 피아노만 바라봐야 하는 삶이 저주스럽고 끔찍하지 않을까.
삼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저것이 음악가의 숙명일지도.
나는 씁쓸한 마음을 곱씹으며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요즘 하도 매니저 형 차만 타고 다니다 보니 버스를 타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정류장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던 와중에 문자 하나가 왔다.
[연욱아. 내일 몇 시에 올 수 있어?]
지연이의 문자였다.
[엄마가 허락해줬어. 와도 괜찮다고 하셔!]
벌써 혼이 다 나고 허락까지 받은 모양이다.
[몇 시가 좋을까?]
삼촌이 말했던 지연이의 그 얼굴을 내일 나는 과연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