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8화
“야, 그러다 거울 깨지겠다.”
분명 이 대사를 저번에 들은 거 같은데, 오늘은 듣는 사람이 혜나 누나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왜 또?”
“너 1시간째 거울만 보고 있는 거 알아? 혹시 자기 얼굴 보면 막 행복하고 쾌락이 느껴지고 그래?”
“아, 아니야.”
아니라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이 얼굴을 보고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릴 땐 아직 자라는 중이라 잘 몰랐는데, 지금은 내 얼굴이 천상계에 있을 법한 조각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고작 중학생 얼굴이 이 정도인데, 20살이 되면 과연 얼마나 더 업그레이드될지······.
이제는 내 스스로가 무섭다.
내가 거울 앞에서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며 혜나 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맞네. 너 그거 병원 가야 돼. 중2병 중증이야.”
“아니거든.”
누나는 심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좋냐?”
“응?”
“오늘 너 지연이 만나러 가는 거잖아.”
“······어떻게 알았어?”
“지연이가 나한테도 연락했었어. 자기 한국 왔다고. 그거 보고 딱 감이 왔지. 조만간 둘이 만나겠구나. 그런데 오늘 너 하는 행동 보니까 알겠네.”
이런 건 참 귀신같이 눈치를 챈단 말이지.
그만큼 내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도 있다.
지연이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을 땐 사실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흥분이 됐다고 해야 하나.
“지연이가 그렇게 좋니? 솔직히 둘이 많이 만나지도 못했잖아. 지연이가 워낙 외국에 자주 다녀서.”
“그런 거 아니라니깐?”
“아! 혹시 그런 건가? 원래 서로 자주 못 만나면 더 애가 타고 그런다잖아.”
그러다 누나가 손뼉을 탁 쳤다.
“어머. 그런데 연욱이 너 혼자만 좋아하는 거면 어떡해? 지연이는 정말 친한 친구로만 생각하는 건데, 너만 진지한 거 아니야?”
“······.”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조심스레 누나에게 물었다.
“보통 관심이 없으면 안 만나지 않을까?”
“여자의 마음이란 게 꼭 그렇지가 않아요.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혜나 누나는 재밌다는 듯 나를 관찰했다.
“히히. 진짜 지연이가 관심 없을까 봐 갑자기 쫄은 거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다 보이거든?”
괜히 누나 말을 듣고 심란해졌다.
“지연이가 관심이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나도 지연이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
“어딜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진짜거든. 그런데 누나는 어디 가?”
누나도 오늘 약속이 있는지 차려입은 상태였다.
“아~ 오늘 언니들이랑 쇼핑 가기로 했어. 연예인들은 대체 쇼핑을 어떻게 가나 싶었는데, VIP들만 받는 쇼핑몰로 가면 누구한테 사진 찍히거나, 귀찮은 일은 아예 없다더라.”
VIP들만 받는 쇼핑몰?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근데 누나는 VIP가 아니잖아.”
“뭐, 언니들이 VIP니까 꼽사리 껴서 가는 거지. 선물 사 올 수 있으면 사 올게.”
“VIP들만 다니는 쇼핑몰인데 선물을?”
“그, 그러니까 사 올 수 있으면 사 온다고.”
할 말이 없어진 누나는 먼저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마무리로 머리를 대충 만져 봤다.
역시 내가 만진 머리는 항상 이상하게 보인다.
누나가 나가기 전에 머리 좀 만져 달라고 말해 볼걸.
***
지연이와 만난 곳은 어느 작은 카페였다.
“우와~ 너 키 엄청 많이 컸다. 이렇게 보는 건 1년만인가?”
한국을 넘어 이제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피아노를 공부 중인 손지연도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키도 조금 커졌고, 귀여웠던 얼굴이 점점 성숙해져 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말투와 행동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았다.
참 순수하고 발랄했다.
“항상 너랑 혜나 언니 나오는 음악 방송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챙겨 봤어. 그리고 뉴튜브에서 나오는 두 사람 영상도 다 봤다? 사람들이 직접 찍은 직캠 영상도 진짜 많더라. 그거 다 챙겨 보다가 레슨 시간 놓친 적도 있어.”
“레슨 시간을 놓치는 건 심각한 거 아니야?”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잔소리 엄청 들었어. 그런 식으로 하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지연의 부모님은 딸을 엄하게 가르치는 것 같았다.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연습량이 살인적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런데도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 같았으면 다 때려치우고 진작 집을 뛰쳐나왔을 텐데 말이다.
“힘들지는 않아?”
“응. 괜찮아. 피아노가 내 전부인걸? 피아노를 칠 때가 가장 행복해.”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저런 마인드로 피아노를 치니까 훗날 세계 무대를 점령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거겠지.
나는 마시멜로가 올라간 코코아를 호호 불며 마시고 있는 지연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응? 왜? 뭐 묻었어?”
“뭐가 묻긴 했네.”
나는 지연이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아 주었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지연이는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
“응? 아니야. 나 안 놀랐어.”
겉모습만 보면 완전히 놀란 거 같은데.
나도 그렇지만, 지연이도 거짓말을 잘 못 한다. 왜냐하면 겉으로 다 드러나거든.
“그런데 연욱아.”
“응?”
“넌 이제 피아노 아예 안 치는 거야?”
피아노?
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작곡할 때 항상 기타와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연이가 그런 의미로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콩쿠르 같은 건 딱히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지금은 일단 가수 활동에 전념하게.”
“그렇구나······.”
“왜?”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분위기가 다운되기 전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피아노 실력 많이 늘었겠다. 이제는 내가 못 이기겠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원래 너보다 훨씬 더 잘 쳤어.”
“오~ 그렇게 말하니까 한번 치는 거 보고 싶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기 지연아. 혹시 따로 스케쥴이 없다면 내가 녹음하는 거 도와줄 수 있어?”
“응? 녹음?”
“내가 지금 드라마 OST 작업 중이거든. 그냥 기계로 피아노 음을 뽑아내도 되지만, 이왕이면 나는 사람이 직접 치는 피아노 소리가 더 좋을 것 같아서. 처음에는 내가 다 쳐 볼까 싶었는데,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치잖아.”
“아~ 드라마 OST 반주를 쳐 달라는 거지?”
“응, 괜찮아?”
요즘 음악을 만들 때 따로 피아니스트를 구하거나, 혹은 기타리스트를 데려와 녹음을 시키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음악 장비가 발달하면서 기계로도 충분히 그와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기계음을 빌리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쳐서 녹음하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눈앞에 있는데,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순 없지 않은가.
“좋아.”
“괜찮아? 내가 괜히 피아노 레슨 방해하는 거 아니지?”
“응. 그런데 부모님한테 먼저 물어보긴 해야 돼.”
“그래. 만약 네가 해 준다면 우리 소속사에서 페이도 지급할 거야.”
“돈? 에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그냥 연욱이 네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고 싶어서 하겠다는 거니깐. 잠깐만 기다려 봐.”
지연이는 곧장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엄마~ 나야. 응. 다름이 아니라······.”
그 엄하고 깐깐한 지연의 부모님이 안 된다고 선을 그어 버리면 나도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엄마가 괜찮대!”
“응? 정말?”
“이번 기회에 녹음실 구경도 하고 음반 녹음하는 것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하셨어.”
조금 의외였다.
좀 더 꼼꼼하게 물어보고 알아본 뒤에 허락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럼 바로 녹음실로 갈까?”
“어? 지금 바로?”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어떻게 생겼는지만 오늘 한번 구경해 봐.”
“응. 좋아.”
나는 지연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녹음실로 향했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지금에서야 데이트를 하는 느낌이 났다.
***
“허허. 나참. 나도 녹음실에는 여자를 안 데려오는데 너는······.”
“그런 거 아닙니다, 삼촌. 인사하세요. 제 친구 손지연이에요.”
“안녕하세요!”
지연이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삼촌은 금방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반갑다. 연욱이 여자친구니?”
“네? 여, 여자친구요? 그게요······.”
“여자친구 아니에요. 바람 잡지 마세요.”
삼촌은 나와 지연이를 번갈아 쳐다본 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래. 아직은 아니겠지. 참 풋풋할 나이다.”
“이번에 노래 녹음할 때 지연이가 피아노를 쳐 줄 거예요. 그래서 작업실 먼저 구경시켜 주려고 데려왔어요.”
“오. 그래? 피아노를 잘 치나 보네.”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도 했고, 지금도 엘리트 코스 밟으면서 꾸준히 연습 중이에요. 두고 보세요, 삼촌. 나중에 지연이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우뚝 서게 될 테니까. 지금 우리 완전 땡잡은 거예요.”
“그래? 근데 연욱아.”
“네?”
“지연이 얼굴 터지겠다.”
그 말에 지연이를 돌아보자 삼촌 말대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톡 건들면 터질 것처럼 보였다.
“아니······. 난 아직 그 정도까지는······. 내가 어떻게 감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지연이었다.
“편하게 구경하렴. 여기 없는 장비가 없어. 내가 연욱이 이놈 때문에 피아노도 그랜드 피아노로 하나 맞춰 놨다니깐?”
음악에 돈을 쓰는 데에는 망설임이 없는 삼촌이다.
내가 직접 생으로 연주해서 녹음하겠다고 하니, 아예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공수해 오기까지 했다.
나도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삼촌처럼 시원하게 쓸 수 있을까?
“와- 진짜 신기한 거 많다.”
지연이는 내가 이 작업실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여러 장비들을 구경하고 직접 만져 보면서 눈을 반짝이는 것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피아노 앞에는 가지 않았다.
“피아노도 같이 봐볼래?”
“응? 아. 그래.”
지연이는 피아노 앞에 앉아 몇 번 건반을 두드려 보았다.
“소리 좋다.”
매일 피아노만 쳐서 그런가.
딱히 감흥이 없어 보였다.
하긴. 집에 있는 피아노가 이것보다 더 비쌀 것이다.
“아참. 그 녹음해야 할 노래가 뭐야? 악보 보여 줄 수 있어?”
“물론이지. 그렇게 어렵진 않아.”
피아니스트들이 치는 클래식보다는 비교적으로 쉬운 것이 가요다.
코드를 치는 게 대부분이고, 반복적인 부분이 많으며 클래식보다 길이가 짧다.
지연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금방 외우고 치는 게 가능할 것이다.
“오. 피아노 치는 거야? 한번 구경해야겠네.”
삼촌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그 옆에 앉아서 지연이가 연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더니, 이내 악보를 확인하고 나서 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과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재목인가.
터치부터가 남달랐고, 내가 내는 피아노 소리와는 뭔가가 많이 달라 보였다.
오랜만에 귀가 호강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기분 좋게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반면, 옆에 있던 삼촌의 얼굴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지금은 심하게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