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7화
“그래. 파티는 재밌었고?”
“네. 다들 잘해 주셔서 재밌게 놀다 왔어요. 그런데 대표님. 무게를 엄청 잡으시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연욱이가 또 이상한 사고 친 거 맞죠?”
누나 말대로 강세원 대표는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후- 일단 앉아 봐라.”
우리를 앉혀 놓고 강 대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연욱아.”
“네.”
“파티장에서 강용형 작곡가랑 언쟁이 있었다면서?”
역시 그 일 때문이었나.
속 좁은 양반 같으니라고.
그새를 못 참고 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압박을 넣은 것이 틀림없다.
“가벼운 언쟁이 있긴 했죠.”
“내가 들었을 땐 결코 가벼운 언쟁이 아니던데. 강용형이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가 CH라는 건 알고 있지? 그 회사를 세운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작곡가라고 칭송받던 이기철이란 분이야. 뭐, 지금이야 은퇴했지만 강용형은 아직 필드에서 뛰고 있지. 이기철 다음은 강용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잖냐.”
“그렇죠.”
“난 네가 생각 없이 그런 언쟁을 벌였다고 보지 않아. 분명 뭔가 사연이 있겠지. 그런데 하필이면 상대가 강용형이라는 게 문제야.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줄래?”
“그게······.”
강 대표와 혜나 누나는 조용히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을 경청했다.
다 듣고 나서 누나가 먼저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 아저씨 미친 거 아니야? 대놓고 자기 기획사로 오라고 한다고? 거기다 그거 한 번 말 안 들었다고 그따위 말을 해?”
그에 반해 강 대표는 차분했다.
“연욱아. 강용형 작곡가가 제안을 할 정도면 아주 매력적이었을 텐데, 왜 거절한 거야?”
그는 내가 거절한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단순히 의리 때문에 거절했다고 보지 않는 것일까.
“음- 일단은 이 기획사가 전 좋아요. 대표님도 좋고 직원분들이랑 프로듀서님들도 다 좋고요. 앞으로 여길 떠날 생각은 없어요.”
“······.”
갑자기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은 빙그레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중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건 강 대표였다.
“그리고 강용형 작곡가의 술수가 훤히 보였거든요.”
“응? 그 양반의 술수?”
“그 사람이랑 같이 있는 프로듀서들을 봤어요. 다들 젊고 유능해 보였는데, 모두 얼굴이 어둡더라고요. 분명 강용형이 저한테 했던 소리를 똑같이 듣고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간 거겠죠. 하지만 막상 가 보니까 거긴 노예 수용소와 다를 바가 없는 거고요.”
작곡계의 적폐 세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기철의 후배인 강용형은 자신의 선배한테 온갖 만행을 다 배운 것인지 신인 작곡가들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
강세원 대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였다.
“너 강용형, 그 새끼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니?”
갑자기 ‘새끼’라는 욕이 튀어나왔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저번 생에서 들은 거지, 여기서 들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역시 감이 좋구나. 강용형 그 새끼 쓰레기인 거 맞아. 신인 작곡가들을 끌어모아서 자기 곡 만드는 데에다 쓰고 나중에 쓸모가 없어지면 바로 버린다고 하더라. 그렇게 계속 반복을 하는 거지. 결국 그 밑에서 큰 놈은 한 명도 없고 말이야.”
“그런 짓을 해도 여전히 탑 작곡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네요?”
“그만큼 연예계가 썩은 곳이니깐. 그리고 강용형 뒤에는 이기철이랑 CH 엔터가 떡하니 버티고 있잖아. 누가 하나 뭘 폭로하려고 해도 기획사에서 언론사에 돈 뿌리기 시작하면 금방 묻혀. 마약 사건도 여러 번 묻히고 버젓이 TV에 나오는 놈들도 많잖아.”
연예계가 썩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다.
충분히 예상했고, 굳이 이걸 바꿀 생각은 없다. 그저 누나만 이 더러운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내가 앞에서 막아 줄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강용형이 너한테 단단히 삔또가 상했나 봐. 벌써부터 여기저기 전화 넣고 압력을 넣고 있어. 방송국 PD랑 CH와 연관이 있는 기업들 등등. 너희들이 TV에 나오거나 다른 광고에 들어가지 못하게 철저히 막겠다는 거지.”
대형 기획사의 무서움이 바로 이것이다.
언론사와 정치권, 거기다 여러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연예인 하나 수장시켜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부끄럽지만, CH가 저렇게 작정하고 나오면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하지만······.”
강 대표는 짐짓 비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희 둘은 내 가족이야. 그런데 내 가족을 건드리는 놈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들한테 피해가 없도록 노력할게.”
“괜찮으시겠어요? CH 정도의 대형 기획사가 덤벼들면 우리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도 다 같이 힘들어질 텐데.”
“한번 숙이면 계속 숙여야 돼. 그럴 바에는 한 번쯤 싸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일에 피가 끓거든.”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 거 같다.
여러 기획사 중 GN 엔터를 고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회사 자체를 본 게 아니라, 그 회사를 이끌어 가는 강세원이란 사람을 봤기 때문에 누나를 이 기획사에 맡긴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든 싸움을 강 대표에게 맡길 생각은 없다.
***
“으하하하-!”
이용재 삼촌은 뭐가 그리 웃긴 지 한참을 배를 잡고 웃는 중이었다.
“삼촌. 이게 재밌으세요? 우리 기획사는 지금 심각하던데.”
“야. 이러니까 개그 프로그램들이 다 망하지. 넌 대체 뭔 배짱이기에 강용형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그런 소리를 했어?”
“그냥 좀 짜증 나잖아요. 젊은 사람들 등에 빨대 꽂고 다니는 사람 주제에 훈계란 훈계는 다 늘어놓고 있으니까요.”
“흐흐. 내가 널 처음 봤을 때도 보통 아니라는 걸 딱 알아봤다니깐.”
내가 삼촌을 싫어하지 않는 건, 그는 적어도 남의 재능을 강탈해 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힘만으로 뭔가를 해내려고 한다. 이것이 독불장군처럼 비춰질 순 있어도 탐관오리마냥 남의 것을 빼앗진 않는다.
“이 얘기는 그만 해요.”
“그래. 근데 강용형 그 개념 없는 놈이 너한테 그 얘기 듣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 굉장히 궁금하네.”
“삼촌?”
“그래. 알았어. 어린놈이 성질 급하기는.”
삼촌은 일 이야기로 돌아갔다.
“김 감독이 연락 줬다. 샘플 중에 마음에 드는 거 몇 개 골랐대.”
“누구 걸 가장 많이 골랐는데요?”
“나도 몰라. 너랑 같이 확인하려고 리스트 보낸 문자 아직 안 봤어.”
나와 삼촌 모두 각각 5곡씩, 총 10곡의 샘플을 만들어 감독에게 전달해줬었다.
그래서 과연 누구 노래가 많이 뽑힐 것인지에 대해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결과가 저 스마트폰 문자함 안에 있었다.
이걸 내가 올 때까지 안 열어 본 삼촌도 참 대단하다. 난 궁금해서 바로 열어봤을 거 같은데.
“한번 봐 볼까?”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삼촌과 같이 눈이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며 리스트를 확인했다.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 반해 삼촌은 스마트폰을 잡고 있던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 자식 이거 음악 듣는 귀가 없네!”
“그래요? 전 아주 잘 들으신 거 같은데.”
최종 결과.
내가 4, 삼촌이 1이었다.
김우종 감독은 누가 어떤 샘플을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자기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만 골랐을 것이다.
“그리고 김 감독님만 노래를 들었겠어요? 보조 감독들이랑 작가도 같이 들었겠죠. 그분들이 투표를 해서 지금 결과가 나온 걸 테고요. 다들 제 곡들이 마음에 드셨던 거예요.”
“끄응. 이러면 내 체면이 안 서는데.”
“거기다 제 곡이 많이 안 뽑혔으면 엄청 억울했을 거예요. 삼촌은 기계로 쭉쭉 뽑아내서 거기에 몇 가지 수정을 더한 거지만, 전 처음부터 생으로 제가 악기들을 다 연주해 가며 만든 거잖아요.”
들인 공과 시간은 내가 훨씬 더 많았다.
“감성파의 붐은 반드시 옵니다, 삼촌.”
“너나 열심히 해.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내가 그걸 고집하고 있겠냐.”
좀 삐졌나.
그래도 프로답게 일을 할 땐 철저했다.
“뼈아픈 패배이긴 하나, 어쩌겠냐. 그쪽이 마음에 드는 곡으로 해 줘야지. 이제 제대로 만들어 보자. 이번 주에 완성을 시켜서 보내줘야 돼.”
“네. 작업 시작해 보죠.”
삼촌은 삼촌 나름대로 곡을 들으며 수정할 부분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촬영장에서 봤던 주인공과 여주인공.
그 둘이 절절한 연기를 하던 모습을 이 눈에 담아 놓았다. 또한 이 드라마의 스토리 역시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상태다.
공교롭게도 나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 남주인공.
자꾸만 그 섬뜩한 정성우의 얼굴이 떠올라 집중이 끊어지려 했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따라 이어지는 드라마의 모습을 그려보니 점점 이미지가 뚜렷해져 갔다.
과연 이 음악이 맞는 것인지, 만약 틀리다면 어떻게 수정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가며 내 머릿속으로 노래를 완성해 나갔다.
처음에 심상화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무의식이 알아서 노래를 뽑아내도록 방관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 상황에 맞게 노래가 맞춰지게 할 수 있었다.
나름의 레벨업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렇게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영상과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
이윽고 눈을 떴을 땐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는 삼촌의 얼굴이 보였다.
“왜 그렇게 보고 계세요?”
“나 처음에 너 자는 줄 알았어. 3시간 동안 거기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
심상화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였다.
나는 체감상 30분밖에 안 흘렀는데, 실상은 벌써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전 보통 이렇게 작업을 하니까요.”
“저번에도 봤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네. 심상화 기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처럼 그렇게 푹 빠져들어 가서 만드는 사람은 처음 보거든.”
난 짧게 웃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악상을 고스란히 악보에 옮겨 두었다.
악기마다 각각 쳐야 하는 음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여러 개의 악보를 만들었다.
삼촌은 신기하다는 듯 내가 작업 중인 걸 가만히 구경했다.
“일단 전자기타가 들어가야 할 거 같고, 기계로 전자음을 만들어서 여러 개 넣어야 할 거 같아요. 그 부분은 제가 따로 악보를 만들어뒀어요.”
“여기 장비에서 무슨 악기가 있는지 벌써 다 외웠어?”
“네. 어느 정도는요. 저번에 삼촌이 마음껏 써보라고 해서 하나씩 다 들어서 외워뒀죠.”
“······.”
삼촌은 이상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휴. 이래서 천재들은 싫어.”
허탈한 한숨을 쉬고는 내가 만든 악보를 확인해 가며 그에 따라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심상화에 빠져 있을 동안, 자신이 직접 수정한 악보도 내게 보여 주었다.
“이것들은 그냥 폐기하는 게 낫냐?”
“아뇨. 여기서 괜찮은 건 따로 뽑아서 비교해 봐야죠.”
결코 삼촌이 음악을 못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악보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둘이 협업을 해야 최고의 OST가 뽑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웅-.
그때 한창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가까운 지인들 말고는 번호를 알지 못하는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혜나 누나인가 싶어서 확인을 하려고 했는데, 반가운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연욱아. 나 오늘 한국 왔어.]
오랜만에 귀국한 손지연의 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