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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76화 (76/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6화

나는 정성우의 멱살을 잡고 그를 벽으로 밀쳤다.

이러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꽉 쥔 주먹을 놈의 면상에 내리꽂으려는 찰나.

“장연욱!”

집 나갔던 이성이 순식간에 돌아오게 만드는 목소리.

혜나 누나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누나······?”

이곳에 누나와 정성우, 단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야?”

“뭔 일 생겼어?”

몇몇 아는 얼굴들이 하나둘 누나의 뒤로 나타났다.

그중에는 처음 연회장에서 봤었던 로즈데이 멤버들도 있었다.

소란을 듣고 사람들이 전부 모이기 전에 정성우가 멱살을 잡고 있던 내 손을 얼른 뿌리쳤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오늘 파티에 연욱이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데려왔어.”

“누가 욕하는 소리를 들은 거 같았는데.”

“잘못 들은 거야. 다들 들어가 있어. 곧 따라 들어갈게.”

“네~”

별일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모두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우리 넷만 입구에 남게 되었다.

김다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가 그랬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아니라고. 성우 오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다행히 내가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풀린 건 아니었다.

“누나를 데리고 가면 어디로 데리고 간다고 말씀은 해 주실 수 있잖아요? 거기다 호텔룸으로 데려오다니. 다른 사람들이 괜한 오해를 하면 어떡합니까?”

“여기 스위트룸은 젊은 애들끼리 파티룸으로 쓰라고 특별히 배정해 주신 곳이거든. 그래서 형이 좀 부주의했네. 많이 놀랐다면 미안해.”

“······아니요. 저도 갑자기 흥분해서 멱살부터 잡은 거 죄송합니다.”

“하하. 그런데 너 포스가 장난 아니다. 멱살 잡혔을 때 진짜 맞아 죽는 줄 알았어. 혹시 운동하니?”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일인데도 정성우는 일을 크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냐고 길길이 날뛸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정말 좋은 사람인 건가?

그동안 찝찝하다고 느꼈던 건 단순히 내 기분 탓인가?

“이왕 온 거 같이 놀다 가.”

“아뇨. 이제 저희는 그만 집에 돌아가려고······.”

모든 게 오해였다고 해도 여기서 노닥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만 누나를 데리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뒤에 있던 김다혜가 불쑥 내게 팔짱을 꼈다.

“그래~ 연욱아. 그러지 말고 놀다 가자.”

그러나 저 뒤에서 눈을 희번덕 뜨고 있는 혜나 누나 때문에 김다혜는 슬그머니 팔짱을 끼던 손을 풀며 어색하게 웃었다.

“호호. 그,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김다혜가 들어가고 나서 혜나 누나는 쿵쿵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내게 폭풍 잔소리를 할 기세였다.

“저기 혜나야. 연욱이도 오해를 한 거니까, 흥분하지 말고······.”

하지만 정성우의 우려와는 달리 혜나 누나는 내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

정성우가 살짝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혜나야. 벽에 밀쳐진 건 난데?”

“오빠는 다 큰 성인이잖아요. 우리 연욱이는 이제 중학생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봐도 몸은 연욱이가 나보다 더 좋을 거 같은데?”

“오빤 먼저 들어가기나 하세요.”

“······응.”

혜나 누나의 앙칼진 목소리에 정성우는 축 처진 어깨로 돌아갔다.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야? 왜 웃어? 혹시 머리 다쳤어?”

“아니. 그냥 웃겨서.”

방금 전까지 수십 가지의 잔소리가 떠올랐는데, 지금은 머리가 텅 비어 버렸다.

“하여튼 내가 너 때문에 심장 떨려서 못 살아. 잠깐 눈에 안 보이면 사고를 치려 한다니깐? 슬슬 그 시기라서 그런가?”

“뭔 시기.”

“사춘기.”

“나 사춘기 같은 거 없어.”

“퍽이나 그러겠다.”

“아니. 정말로 없다니깐?”

혜나 누나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보통 젊은 사람들 파티라면 DJ가 노래를 틀고 술을 마시며 수영장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걸 생각했는데, 여기 젊은이들은 의외로 건전했다.

놀랍게도 이들이 하고 있는 건 보드게임이었다.

“혜나야. 너 오는 것만 기다렸어.”

“아. 미안해요, 언니. 내 차례였지?”

혜나 누나가 뛰어가서 주사위를 잡자 아이돌 응원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7! 제발 7!”

“혜나야. 너만 믿는다.”

“에이. 설마 7이 나오겠어? 그냥 1이나 떠라.”

누나는 흡사 야바위꾼처럼 두 주사위를 손안에 넣고 흔들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다들 깜짝 놀랄 준비 되셨죠?”

무슨 게임인지는 몰라도 지금 막 보고 있는 나도 사뭇 기대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누나가 판 위에 주사위를 던졌다.

떠들썩했던 룸 안이 일제히 고요해지고 모두 또르르 굴러가는 주사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

주사위의 합은 7이었다.

“우와아아-!”

“뭐야. 진짜 7이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무리가 있는 반면,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자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혜나! 장혜나!”

“기다린 보람이 있네.”

“이게 진짜 7이 나온다고?”

주사위 한번 굴렸을 뿐인데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이 젊은이들이 건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내 고정관념이 썩은 것인지 모르겠다.

“놀랐어?”

“네?”

부드러운 목소리지만, 이상하게 내게는 섬뜩하게 들리는 정성우가 내 뒤로 다가왔다.

“보통 연예인들이 파티한다고 하면 대개 술 마시고 마약도 하고 그럴 거 같잖아.”

“사람들 고정관념인가 보죠.”

“아니야. 그 사람들 생각이 맞아. 나도 여러 파티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건전하게 노는 건 여기 밖에 없을걸? 오늘 혜나가 온다고 해서 다들 최대한 자제하면서 노는 거긴 해. 거기다 나도 술을 거의 안 마셔서 나랑 있을 땐 가급적이면 다들 술을 안 마시려고 하는 거 같더라.”

정성우가 술을 못 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그리고 연예인은 인기순으로 서열이 나열된다고 했던가.

나이와 상관없이 무리의 주도권은 인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너도 딱딱하게 있지 말고 같이 놀아. 보기보다 애들이 참 순수해. 그리고 아까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오히려 혜나가 부럽네. 이렇게 좋은 동생도 있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가다 뭐라고 작게 읊조렸다.

“······.”

“네?”

“응? 별말 안 했어.”

나는 무리 속으로 자연스레 들어가는 정성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가 뒤를 돌아 내게 미묘한 미소를 보냈다.

사람들은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칭송하지만, 역시 나는 여전히 그가 찝찝하고 의심스러웠다.

***

“뭐야. 벌써 간다고?”

“으-. 아쉽다.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돼?”

“우리의 에이스 혜나가 이렇게 가면 어떡해.”

이들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 파티의 시작이겠지만, 아직 청소년에 불과한 나와 혜나 누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자꾸 잊으시는 거 같은데, 우리 아직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에요.”

“야. 갈 땐 가더라도 주사위 한 번 던지는 건 괜찮잖아?”

“다음에 또 같이 모여요.”

“그래. 혜나야. 저번에 언니가 말했던 곳 있지? 나중에 거기로 쇼핑 가자.”

“응. 언니.”

인싸력이 충만한 누나라서 그런지, 금세 여기 사람들과 친해졌다.

특히 로사의 일로 그룹 자체가 폭파당한 로즈데이 멤버들은 혜나 누나와 가족이라도 된 것 같은 친밀감을 보였다.

“아~ 너무 재밌었어.”

많이 아쉬워했지만, 나는 칼 같이 밤 10시가 되기 전에 나는 누나를 데리고 연회장에서 나왔다. 대표님도 그렇고, 부모님도 밤 10시 전에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혜나 누나는 오늘 모임이 아주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거기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졌네? 처음 갔을 땐 긴장된다고 하더니.”

“응. 다들 착하더라. 서로 번호도 나눠 갖고 그랬지.”

“주로 남자들이 번호 교환하자고 그러는 거 같던데.”

“호호. 이 누나의 인기가 어디 가겠니? 그런데 꼭 나만 번호 뿌리고 다니는 사람처럼 말한다? 너도 여자들한테 둘러싸여서 SNS부터 번호까지 다 줬잖아.”

“크흠.”

처음에는 몇 분만 있다가 호텔룸을 빠져나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무리에 끼게 되었고, 정신없이 놀다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러모로 나도 만족스러운 파티였다.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 진지하게 할 말 있어.”

“응?”

“누나 너무 경계심이 없는 거 아니야? 남자가 호텔룸으로 들어가자고 하는데, 그걸 덥석 따라가?”

“뭐라는 거야. 단둘이었으면 내가 따라갔겠니? 사람들 거기 다 있다기에 따라간 거지. 그리고 성우 오빠가 가자고 한 거 아니야. 로즈데이 멤버 언니들이 먼저 같이 올라가자고 했지. 그래서 뒤늦게 오빠랑 둘이 따라 들어간 거고.”

“아무튼 조심해. 다시는 그런 곳 따라 들어가지 마.”

“흥. 여배우들한테 정신 팔려서 먼저 누나 버린 놈이 말이 많아. 그리고 성우 오빠 진짜 착해. 괜히 평판이 좋은 게 아닌 거 같아.”

내가 민감한 건지, 정성우란 이름이 나오면 인상부터 찌푸려진다.

“그 형이랑 또 언제 만나기로 했어?”

“음······ 나중에 다 같이 한 번 더 모이자고는 하던데? 일정 정해지면 말해 준다고 했어.”

“그 사람이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

“응?”

“그냥 섬뜩해. 뭔가 쉬지 않고 연기를 하는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그가 착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의 인생 자체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웃는 얼굴을 봐도 진짜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냥 평소에도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난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데.”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난 그렇게 보였어.”

“흠-.”

혜나 누나는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정성우가 착하다고 하는데, 누나는 내 말을 믿어?”

“뭐, 넌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잖아. 괜히 우리 동생이 천재 소리 듣겠어?”

네가 틀렸다.

남들은 다 정성우를 좋게 보는데 왜 너만 삐딱하게 보느냐- 라고 충분히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누나는 내 말을 믿어 주었다.

찝찝했던 기분이 누나 덕분에 싹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애들아. 잘 놀다 왔어?”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매니저 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기다리기만 하고.”

“아니야. 나도 다른 곳에 있다가 너희들 시간 맞춰서 온 거야. 그리고 바로 집에 가려 했는데, 회사로 가야 할 거 같다.”

“네? 갑자기 회사로요?”

“응. 방금 대표님한테 전화 왔었어. 지금 빨리 회사로 오라고 하시네?”

“왜요?”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근데 톤이 좀 올라가신 걸 보니까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봐.”

그 말을 듣고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설마 그것 때문인가?

혜나 누나는 아무 말이 없는 날 수상하게 보며 물었다.

“뭐야. 너 뭐 알고 있지. 뭔데? 혹시 너 나 없는 사이에 또 무슨 사고 쳤니?”

“사고는 무슨. 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말하면 입 아프지. 그래서 이번에는 뭔데? 아까 성우 오빠 일 때문은 아닐 테고.”

“아니야. 그런 거.”

대답하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좀 큰 사고를 친 거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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