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5화
“꺄하하-!”
“연욱이 너 왜 이렇게 웃기냐?”
“아. 오늘 진짜 크게 안 웃으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엄청 웃었잖아.”
몸은 중학생이지만, 정신은 성인이다.
그리고 내가 딱히 말을 엄청 잘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이상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사람들이 내 말에 잘 웃어 주는 이유가 있다.
“얼굴도 잘생긴 애가 말도 잘하면 어떡해?”
“난 연욱이가 과묵한 성격인 줄 알았잖아. 근데 완전 반전 매력이 있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들은 쉽게 웃어 준다.
그건 바로 내 외모 때문이었다.
뻔뻔한 소리겠지만, 사람은 심리적으로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보면 호감을 갖고 말을 더 잘 경청해 준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잘생긴 사람이 하면 뭔가 있어 보이고, 별로 영양가 없는 얘기를 해도 예쁜 사람과 나누면 즐겁듯이, 사람 심리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외모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해야 할까.
저번 생에서는 결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뭔가 씁쓸하기까지 했다.
“으-. 진짜 나이만 좀 더 먹었으면 내가 확 대쉬해 보는 건데. 너 대체 언제 성인될 거야?”
“호호. 난 연욱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
“얘들아. 선은 적당히 넘자. 연욱이는 성인되자마자 내가 먼저 들이댈 거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혜나 누나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누나를 끌고 간 정성우 배우를 찾아다녔다.
“아! 혹시 JJ의 장연욱 씨?”
그때 어떤 무리에서 나를 붙잡았다.
“오, 맞네. 내가 누군지 혹시 알겠어요?”
어떻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전생에서 대학교 초청 강의를 듣고 나서 한때 내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 우리나라 탑급 작곡가 중 하나이자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인 강용형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어린 친구가 인사성도 밝네. 반가워요. 그렇지 않아도 한번 꼭 보고 싶었는데, 이 파티에 참석할 줄은 몰랐네요.”
그는 내게 악수를 건네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다면 말 편하게 해도 되죠? 그쪽이 내 아들이랑 동갑이라서.”
“아, 네. 물론입니다.”
강용형과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 기획사에서 일하는 프로듀서들이었다.
그들과 하나씩 인사를 나눈 뒤에야 강용형이 날 붙잡은 이유를 말해 주었다.
“JJ가 이번에 내놓은 미니 앨범은 잘 들었어. 처음에는 나도 네 노래인 줄 모르고 그냥 동네 카페에서 들었거든. 그런데 노래가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이 곡을 누가 만들었는지 수소문을 해봤지. 거의 다 네가 만든 곡이라면서?”
“선배님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이야, 한창 허세로 가득할 나이일 텐데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해. 적당히 아부도 할 줄 알고. 사회생활을 벌써부터 잘하네. 마음 같아서는 우리 기획사로 확 데려가고 싶을 정도야.”
이제 미니 앨범 하나 내놓은 정도다.
겨우 그 정도 성과로 그릇의 크기를 판단하는 건 이르다.
강용형 정도의 급이라면 이 바닥에서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놈들을 수없이 많이 봤을 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만든 곡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이제 앨범 하나 내놓았을 뿐인데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냥 운이 좋았죠.”
“음-. 내가 아는 누구의 말은 다르던데?”
“네?”
“이창호 교수. 그 형님이 나랑 형 동생 하는 사이거든. 내가 웬만해서는 그 형님이 누구를 극찬하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자기가 아주 대단한 수제자를 하나 거뒀다고 자랑을 하더라니깐? 그땐 그냥 별 신경 안 썼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연욱이 너더라.”
그는 어느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어때? 우리 기획사로 한번 와 볼래? 뭐, 지금이야 계약이 되어 있으니 당장 풀긴 어렵겠지. 그래도 계약이 무기한으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잖아. GN 같은 곳은 버리고 차라리 우리 쪽으로 와. 내가 서포트 해 줄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난 작곡가들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조금 유명세를 탄 작곡가들은 자기가 서포트를 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프로듀서들을 한곳에 모은다. 그리고 그들을 노예처럼 굴려 뽑아낸 곡들을 선별해 마치 자기가 만든 것마냥 대중에 내놓는 것이 다반사다.
강용형이라고 해서 안 그럴 것 같은가?
내가 강용형을 롤모델로 삼았다가 금방 손절을 쳐 버린 것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작곡과에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찾아와 대충 강의를 한 뒤, 몇몇 소질이 있어 보이는 놈들을 거둬가서 그 안에 있는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 먹고 본인의 잇속을 챙긴 사람이 강용형이이었다.
내 선배 중에 강용형에게 당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흉흉한 소문이 돌면서 나는 내 롤모델을 그날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즉, 지금 이 양반이 나한테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창호 교수도 이러한 강용형의 횡포를 알고 내게 소개를 시켜주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전 지금 기획사가 좋아서요.”
“쯧.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니깐?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리겠다고?”
나 스스로 노예가 되는 족쇄를 채우라고?
강용형은 매번 이런 식으로 작곡 꿈나무들을 꼬셨을 것이다.
넌 재능이 있다. 나처럼 최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날 위해 일하라.
아마 대다수 사람이 그 꼬임에 넘어갔을 터.
난 그럴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
“괜찮습니다.”
“허허. 생각보다 비싸게 구네. 그런 딱딱한 자세는 이 바닥에서 좋지 않아. 너도 알지? 결국 이 세계는 평판이 중요하다는 거. 이럴 때는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알겠어?”
처음에는 좋았던 분위기가 조금씩 험악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누나가 그 속을 알 수 없는 정성우 배우랑 사라져서 신경이 쓰이는데, 남의 영양분을 빨아들여 탑을 유지하는 노땅이 훈수질을 하는 걸 보니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선배님이야 말로 너무 오지랖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뭐, 뭣?”
“제 길은 제가 알아서 갑니다. 데뷔하기 전부터 오직 제 힘만으로 올라왔고요. 앞으로도 쭉 그럴 겁니다. 전 누구처럼 남의 꿈과 재능을 빼앗아 이름을 유지하고 싶지 않습니다”
강용형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어?!”
“말 그대로입니다. 선배님과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제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건지는 잘 알아들으셨을 텐데요?”
“이,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딜 감히······. 재능이 좀 있어 보여서 예뻐해줬더니 아주 하늘 높은 줄을 모르네. 그래봐야 결국 넌 거기까지야. 한번 반짝이다 끝나는 거라고! 어딜 내 발끝에도 못 미치는 놈이 그따위 말을 해?”
“예. 지금이야 그렇겠죠. 하지만 이거 하나는 보증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 노력과 재능이라면 앞으로 10년 안에는 당신을 높이 뛰어넘게 될 겁니다. 어디 두고 보세요. 나중에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 아시겠어요?”
내 어깨를 붙잡고 있던 강용형의 손을 털어냈다.
갑작스럽게 강용형이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려 있었다.
난 그런 그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누나를 찾고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이리저리 물어보며 다녔다.
“혹시 제 누나 못 보셨어요?”
“아, 혜나 씨요? 아까 정성우 배우님이랑 저쪽으로 둘이 나가던데?”
“둘이서만요?”
“네.”
다른 무리랑 같이 나간 게 아니라 단둘이서만?
뭔가 느낌이 쎄했다.
나는 서둘러 연회장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밖에는 경호원들과 호텔 직원들이 있었다.
“혹시 정성우 배우랑 같이 나가던 여자 못 봤어요?”
“아. 정성우 배우님이요? 그분이라면 아까 이쪽 복도로 지나가셨습니다.”
복도를 지나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정성우 배우 못 보셨나요?”
“아, 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시던데요?”
“에, 엘리베이터? 혹시 방으로 갔다는 말씀이세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단둘이 연회장을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 엘리베이터까지 탔다?
그것도 룸키가 없으면 탈 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정성우 이 새끼가 누나를 자기 호텔룸으로 데려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가고 눈이 돌아갈 것만 같았다.
“혹시 몇 층으로 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아. 그건 프런트로 가셔서 문의를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냅다 프런트로 뛰어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여직원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정성우 배우 룸이 몇 호입니까?!”
“네? 저, 정성우 배우님이요?”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몇 호인지 빨리 말씀해 주세요.”
“아. 저기 그게······ 고객 개인 정보는 저희가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요.”
나는 프런트 데스크를 세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당장 말해요, 얼른! 이러다 큰일 난다고요!”
“아무리 그런 말씀을 하셔도 저희가 대답해 드릴 순······.”
직원들이 끝까지 말을 해 주려 하지 않자 나는 힘을 써서라도 알아내려고 했다.
그만큼 지금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성우 오빠 그랜드 스위트룸 써.”
“······?”
누군가 했더니, 아까 연회실에서 같이 떠들었던 김다혜였다.
“여기 그랜드 스위트룸이 맨 꼭대기 층이었죠?”
“아, 네. 맞습니다.”
“여기 제일 비싼 스위트룸이 딱 한 곳이 있는데, 그 하나를 성우 오빠가 쓴다고 들었어. 근데 대체 무슨 일이야? 화장실 간다 해 놓고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층수가 어딘지 알았으니, 나는 곧바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 날 김다혜가 붙잡았다.
“야. 무슨 일인데?”
“아무 일도 아니라니깐요? 이거 놓으세요.”
“그래. 알겠어. 그런데 너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타게? 룸키 있어?”
“······.”
“으휴. 하여튼 아직 어린애라니깐. 얼른 타. 이 누나가 데려가 줄게.”
정성우와 누나에게 정신이 팔려 지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김다혜의 도움으로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왔다.
“저기 무슨 일인지는 나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마 안 일어났을 거야.”
“······.”
나는 말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룸입구가 보였다.
김다혜는 나를 붙잡으며 한 번 더 말했다.
“연욱아. 참아. 그러다 사고 치면 안 돼.”
나는 김다혜의 손을 뿌리치고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발까지 차며 문을 열으라고 소리쳤다.
이윽고 인기척이 안에서 들리더니 천천히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응? 네가 여긴 어떻게······.”
문을 연 정성우는 당황한 얼굴로 나와 김다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난 앙다문 입으로 물었다.
“누나는······ 안에 있어요?”
“아. 그래. 안에 있지.”
“······.”
그 얘기까지 들으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어? 야?”
“아가리 꽉 물어,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