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4화
“그러다 거울 깨지겠다. 그만 봐.”
“음-. 오늘 나 어때? 괜찮아 보여?”
벌써 2시간째 저러고 있다.
“다 괜찮아.”
“으휴. 너한테 물은 내가 바보지.”
“평소에 신경도 안 쓰더니, 오늘따라 왜 그래?”
“그거야 당연하지. 오늘 유명한 연예인들 엄청 많이 모인다며. 그리고 오늘 성우 오빠도 온다면서.”
어제는 정성우 배우님이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호칭이 오빠로 바뀌었다.
뭔가 많이 불편했다.
“정성우 배우가 그렇게 좋아?”
“야! 요즘 여자 애들 중에 정성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야말로 꿈속의 남자잖아. 만인의 오빠라고!”
“아~ 그렇구나.”
나는 잠깐 고민해 보지도 않고 티켓을 꺼냈다.
“그래. 역시 이걸 진작 찢어버려야 했어.”
“장연욱!!”
신들린 몸놀림으로 누나는 번쩍 날아올라 내 손에 있던 티켓을 낚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피할 새도 없었다.
“미쳤어? 이걸 찢어 버리게.”
“평소에도 좀 그렇게 빨리 움직여 봐.”
“그렇게 싫으면 넌 오지 마.”
“누나 혼자 보내느니 차라리 내가 혼자 가는 게 낫지.”
시간에 맞춰 나도 대충 준비했다.
처음에는 편한 일상복으로 입고 갈까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탑 연예인들이 모이는 파티인데 아무렇게 입고 나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번 촬영장에서 감독과 스태프들의 의견을 빌려 집에 있는 검은 양복을 차려 입었다.
양복을 입을 나이는 아니지만, 중요한 행사 때 입을 만한 옷이 필요해 소속사에서 특별히 하나 장만해 준 것이다.
“매니저 형이 온다고 했나?”
“오빠가 오늘 와서 데려다준다고 했어. 근데 너 오늘······.”
누나는 내 위아래를 짧게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멋있다? 아까는 나한테 엄청 뭐라 하더니, 자기가 더 신경 써서 나가고 있네. 역시 넌 양복이 제일 잘 어울려.”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양복 입은 거 본 적 있어?”
“응? 아니. 그냥 그럴 것 같았거든. 아! 시간 거의 다 됐다. 얼른 나가자.”
시간에 맞춰 내려가자 이미 매니저 형이 차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형. 많이 기다렸어요?”
“아냐. 나도 지금 막 왔어. 다들 오늘 엄청 예쁘고 멋있게 꾸몄네? 청담동 헤어샵이라도 가야 하나 싶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다.”
매니저 형은 운전하면서 강 대표의 말을 전달했다.
“너희들이 아직 많이 어려서 거기 오시는 분들이 다 귀여워해 줄 거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혹시라도 누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면 그땐 빠르게 자리를 피하는 게 좋아.”
“불순한 의도요?”
“뭐, 자기들 기획사로 너희들을 스카우트해 가려는 사람들 있잖아. 그런데 이번 모임은 워낙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명하기도 하고 초대권으로만 참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또라이들은 아마 없을 거라고 하셨어.”
서울에 있는 고급 호텔을 하나 빌려서 파티를 열 정도면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초대장을 가진 사람만이 참석을 할 수 있는 곳이라 그만큼 선별된 사람들만 모인다는 뜻이기도 했고.
“언론 통제도 확실하고, 기자들도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사진 찍힐 일은 없다더라. 그래도 실수할 일 없도록 조심해.”
“네~”
그랜드 호텔에 도착하자 주차장 입구부터 경호원들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었다.
티켓을 보여주니 주차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티켓을 확인 후,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로비에서도 한 번 더 티켓 검사를 해,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그렇게 삼엄한 경계를 뚫고 나서야 오늘 파티가 열리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와아-”
넓은 연회장 중심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얼굴만 보면 다 아는 연예인들이 저마다 샴페인 잔을 하나씩 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광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만 모여서 그런지, 뭔가 화려해 보이는 것이 없어도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연욱아.”
“응?”
“갑자기 괜히 온 거 같다는 생각이 팍 드는데.”
탑 연예인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그 중압감이 대단했다.
우린 저 사람들을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도, 저들은 우리를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당연히 친분도 없기에 우린 그저 뻘쭘하게 서 있어야 할 판이었다.
다들 우리를 힐끔 쳐다보다 이내 신경을 꺼 버리는 등, 점점 살얼음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치 구원자처럼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와줬구나?”
뒤를 돌아보니 정성우 배우였다.
누나는 벌써 감격에 젖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정성우 배우가 나타나니 주변 공기도 싹 달라지는 것이, 저 남자 인기가 많긴 정말 많은가 보다.
“오빠······ 아니. 정성우 배우님. 정말 팬이에요. 전 연욱이 누나, 혜나라고 해요.”
“하하.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리고 저도 혜나 씨의 엄청난 팬이랍니다. 오늘도 JJ 노래만 들으면서 온 거 알아요?”
“정말요?”
“네. 연욱이한테도 그 얘기 했었는데, 너 누나한테 말을 안 해줬구나?”
누나는 팔꿈치로 날 툭 치며 작게 말했다.
“왜 말 안 했냐?”
“진짜 팬인 줄은 몰랐지.”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성우 배우가 직접 우리의 타이틀곡을 따라 부르는 것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런 곳은 처음이죠? 초대하고 나서도 조금 후회했어요. 괜히 내가 부담을 준 건 아닌가 싶어서요. 대신, 오늘은 둘 다 제 옆에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분들이랑 만나게 해 줄게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오빠.”
정성우 배우는 나와 혜나 누나를 데리고 연예인들이 각자 모여 있는 곳에 비집고 들어갔다.
“성우 씨. 왔어? 근데 그 옆에는 누구야?”
“네, 선배님. 인사하세요. 이쪽은 요즘 가요계에서 핫하다는 JJ 그룹이에요. 다들 노래는 들어보셨죠?”
“아~ 그 남매 그룹 맞죠?”
“어머. 저도 오늘 그 노래 들었는데. 요즘 길에 걸어 다니다 보면 JJ 노래만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원로 배우들은 우리를 잘 못 알아봤다.
“오. 그런 그룹이 있었어? 이거 미안하네. 내가 요즘 노래 같은 건 잘 안 들어서.”
“그런데 둘 다 정말 예쁘게 잘 컸네. 혹시 배우 할 생각은 없어?”
“내가 의류 회사를 하나 하고 있거든. 거기 모델로 한번 써 보고 싶을 정도인데? 이름이 뭐야? 검은 정장이 되게 잘 어울리네.”
정성우가 소개시켜 주는 곳마다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다른 이야기 거리로 넘어가곤 했다.
부동산, 주식 투자, 정치 얘기 등등.
주로 돈과 관련된 얘기들뿐이었다.
영화, 드라마, 혹은 노래와 관련된 얘기는 단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나와 혜나 누나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대화 내용들이 다 딱딱하지? 원래 여기 모이는 목적이 다 저거 때문이야. 다들 무슨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어.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어서 돈을 굴릴 생각만 하고 있지.”
연예인들이 땅과 건물을 사서 대박을 냈다는 기사는 자주 보인다.
다들 정보를 어디서 얻나 했더니, 다 이런 곳에서 서로 좋은 정보를 공유하며 상부상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재밌게 노는 곳도 있어.”
그 다음으로 정성우 배우가 우릴 데려간 곳은 젊은 가수들과 배우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저기 멀리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로즈데이 멤버들도 보였다.
“어? 성우 오빠.”
“응. 너희들 다 여기 있었구나.”
“어머, 연욱이도 왔네?”
저번 촬영 때 만나서 지금은 서로 말을 놓게 된 김다혜도 이 파티에 있었다.
그녀는 같이 수다를 떨고 있던 동료들에게 날 소개시켜 주었다.
“장연욱이라고 알지? 다들 인사해.”
“당연히 알지. 네가 저번에 촬영장에서 만났다고 엄청 자랑했었잖아.”
“와, 근데 진짜 네 말대로 실물이 장난 아니네. 정말 중학생 맞아?”
어느 순간 내 주위를 여배우들이 에워쌌다.
그들이 쏘아 대는 질문에 하나씩 대답을 해 주다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혜나 누나와 정성우 배우가 보이지 않았다.
“혜나 누나랑 성우 형이 어디로 갔지?”
“응? 아까 너는 우리한테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던데?”
“그래, 네 누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잘 놀고 있겠지. 그래서 학교는 언제 졸업해? 으-. 미성년자만 아니면 같이 술 한 잔 하는 건데.”
“야! 어린애한테 응큼하게 그게 뭔 소리야.”
“뭐~ 성인되면 술 정도는 같이 마실 수 있는 거지.”
연회장이 워낙 넓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아서 사라진 혜나 누나와 정성우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기 여배우들이 날 에워싸고 있는 통에 찾으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내가 계속 두리번거리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김다혜가 말했다.
“그냥 맘 놓고 놀아. 오늘은 그러라고 있는 자리잖아. 그리고 성우 오빠가 좀 착한 사람이야? 알아서 잘해 주겠지. 너무 걱정 마.”
“그래. 오늘은 누나들이랑 놀자. 이따 다른 사람들도 우리 쪽으로 모일 거야. 그때 다 같이 놀면 진짜 재밌어.”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부터 떨쳐 내고 가봐야겠다.
* * *
장연욱 이 요망한 것이 누나는 나 몰라라 한 채, 여배우들 둥지에 쏙 빠져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혜나가 자꾸 뒤를 돌아보자 정성우는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동생이 많이 신경 쓰여?”
“네? 아, 아니요.”
“네 동생은 내가 봐도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더라. 중학생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니깐? 학교에서도 인기 엄청 많지? 특히 여자애들한테.”
“연욱이 남중이에요. 근데 이상하게 남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아요.”
“오. 그래? 혜나 너는?”
“전 여고 다녀요.”
“거기 애들한테 인기 많지?”
“음······. 없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장연욱도 다니는 중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건 혜나도 마찬가지였는데, 혜나를 좋아하는 팬클럽이 따로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를 싫어하는 안티팬들도 있어서 여러모로 학교생활이 피곤한 점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냥 이유 없이 절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니깐요? 제가 남한테 피해를 끼친 적도 없는데 말이죠.”
정성우의 팬이기도 했고, 처음에는 긴장이 돼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학교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혜나는 봉인이 풀렸다.
그동안 느낀 설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정성우 앞에서 풀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처음 보는 분한테 이상한 말만 했네요.”
“아니야. 나도 충분히 공감해. 나도 날 좋아하는 팬들이 많지만, 그만큼 날 싫어하는 안티팬들도 많아.”
“정말요? 오빠가 얼마나 선행을 많이 하는데요. 연예계에서도 오빠가 선한 이미지로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부끄럽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평소 좋아하던 일을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높게 평가해 준 거지.”
과연 다른 연예인들과는 확실히 뭔가가 달랐다.
대부분 인위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대중들을 속이지만, 정성우는 정말 본인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고 있었다.
“뭐, 대충 인사는 다 한 거 같고. 여기서부터는 나이 드신 분들밖에 없어서 아마 재미없을 거야.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갈까?”
“다른 곳이요?”
“응. 여기보다 훨씬 재밌는 곳. 어때?”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정성우는 혜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