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73화 (73/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3화

“네가 알고 있는 탑 연예인들은 이번 파티에 참석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유명해. 신인들이 한번만이라도 발을 들였으면 하는 곳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초대장이 없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한 마디로 탑 연예인들을 두루두루 사귈 수 있는 모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걸 갑자기 나한테?

내 그런 눈빛을 인지한 정성우가 미소를 지었다.

“왜? 의심스러워? 보증인이 난데?”

“그냥 오늘 막 만난 저한테 이걸 주시니까요. 형이랑 저랑 친분도 없고, 전 탑 연예인 정도의 급도 아닌데요 뭘.”

“하하. 원래 윗물에서 노는 사람들은 윗물로 올라올 사람을 자연스럽게 알아본다고 하잖아. 그리고 너무 겸손한 거 아니야? 너랑 네 누나 정도면 스타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지. 음원 순위 올킬 하고, 뉴튜브를 통해서 얼굴도 많이 알렸잖아.”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너한테 이 티켓을 줬을 거야. 나는 그저 그 영광을 누군가 뺏어 가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거고. 별 의도는 없어.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앞으로 이쪽 바닥에서 좀 더 수월하게 생활하라고 주는 내 배려니깐.”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건 결국 누나를 데리고 꼭 오라는 무언의 압박이지 않은가.

“생각해 볼게요. 아시다시피 저희가 미성년자라서요.”

“아아, 그래. 혹시라도 오게 되면 꼭 연락해. 내 번호는 여기.”

정성우는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직함은 없고 이름과 핸드폰 번호만 있는 명함.

자신의 이름만으로 충분하다는 프라이드가 담겨 있었다.

“그럼 우리 이제 촬영하러 갈까?”

나는 티켓을 챙기고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아, 연욱 씨. 잠깐 와 볼래요?”

김 감독은 어떤 식으로 촬영을 할지 결정을 내린 듯해 보였다.

“처음에는 죽음의 신답게 여러 분장을 해 볼까 했는데, 오늘 당장 촬영해야 하기도 하고 분장팀도 따로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려서 차라리 심플하게 하기로 결정했어요.”

“심플하게요?”

“네, 그냥 검은 정장을 하나 입는 거예요. 모자도 써 볼까 했지만······ 오히려 모자가 역효과를 낼 것 같아서요.”

죽음의 신이라기에 뭔가 어지러운 분장을 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럼 저쪽에 가면 스타일리스트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거기서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도 하고 오면 돼요.”

분장실로 들어가자 스타일리스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정장을 입히고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조명 효과를 잘 받을 수 있게 얼굴에 광을 조금 내주고 머리는 왁스를 조금 발라 옆으로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것이 단 5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와우. 별로 뭘 만진 거 같지도 않은데······.”

“결과물이 장난 아니네.”

“혹시 이것도 소화 가능할까?”

그들은 마지막으로 내게 뿔테 안경을 하나 씌었다.

표정들을 보니 매우 만족하는 듯해 보였다.

“끝났습니다.”

“응? 벌써?”

김 감독은 날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작가님 예상이 맞았네요. 검은 정장 입히는 게 신의 한 수였다.”

“그러니까요. 솔직히 나도 이렇게 멋있을 줄은 몰랐네. 근데 뿔테 안경은 누구 아이디어에요?”

“아, 넵. 한번 씌어 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제가······.”

작아지는 스타일리스트의 목소리에 이은영 작가는 짧게 박수를 쳤다.

“너무 좋아요. 이따 등장할 때 안경을 천천히 벗으면서 양복 주머니에 넣어 놓는 장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오- 그거 괜찮네. 그림이 좋게 뽑히겠어.”

촬영장에 모여 있는 스태프들도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내 모습을 찍기 바빴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삼촌도 입을 떡 벌린 채로 다가왔다.

“옷이 날개야, 날개. 그냥 정장 한번 입었을 뿐인데, 이렇게 멋있으면 어떡하라고? 이러다 정성우 배우가 괜히 밀리는 거 아니야?”

“그러다 정성우 배우 들어요.”

“흐흐. 아마 다들 말은 못 하고 있지만, 내심 나랑 똑같은 생각하고 있을걸?”

삼촌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

김 감독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연욱 씨. 여기는 우리가 CG 처리를 할 건데, 마치 우주의 어느 한 공간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런 걸 잘 생각해서 걸어 나와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정성우 배우가 있는 쪽으로 가서 대사 치면 돼요. 알겠죠?”

“네.”

정성우는 말없이 내게 눈을 찡긋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

촬영이 끝나고 나서 나는 바로 퇴근한 것이 아니라 감독과 같이 녹음실로 갔다.

원래 죽음의 신은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 음성으로만 주인공과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음성 녹음을 해야 했다.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녹음은 금방 끝났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연기도 아주 잘해준 덕분에 촬영도 단번에 끝이 났고요.”

김 감독은 아까부터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했다.

촬영도 NG 한 번 없이 스무스하게 끝이 났고, 녹음도 금방 끝냈으니 여러모로 만족한 얼굴이다.

“저도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네, 이번 OST 샘플도 최대한 빨리 선별해서 보내 드릴게요. 형님도 오늘 촬영장에서 기다리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냐, 오히려 재밌더라. 다음에 한 번 더 갈까 봐.”

“하하. 그래 주시면 고맙죠. 전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김 감독과 헤어지고 나서 삼촌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두드렸다.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겠다.”

“일주일은 안 드셔도 될 거 같은데······.”

“어허, 사람의 배고픔을 겉으로 판단하는 거 아니야.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과연 이 삼촌이 어디로 날 데려갈까 싶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어느 허름해 보이는 닭갈비 가게에 도착했다. 작은 주차장에 세워 둔 람보르기니가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의외라는 눈치네.”

“사실은······ 그렇죠. 뭔가 휘황찬란한 곳에서 식사하실 줄 알았거든요.”

“거긴 다 외형만 삐까번쩍하지, 맛대가리 하나도 없어. 그런데 여길 봐라.”

밤 8시.

동네 아저씨들이 각각 자리를 잡고 소주를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짜 맛집은 이런 곳이야. 동네 아저씨들이 소자 한 잔씩 하면서 정치 얘기, 세상 얘기하는 곳. 너도 아마 먹어보면 알 거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음식이 차려지고 나서, 양념과 부드러운 닭갈비살이 내 혀를 자극해 끝없이 먹게 만들었다. 한참을 먹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삼촌이 날 보며 실실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내 말이 맞지?”

“인생 꿀팁을 오늘 여기서 배우네요.”

폭식을 한 배를 두드리고 있을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참, 혹시 연예인들이 주기적으로 파티 같은 걸 열어서 인맥을 쌓고 그러나요?”

“그런 거야 많지. 그게 왜?”

“사실 아까 촬영장에서······.”

나는 정성우 배우가 줬던 골드 티켓을 삼촌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흠, 나도 이런 모임에 몇 번 나가보긴 했어. 강남에 있는 클럽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하는 경우도 있었고, 여기처럼 호텔 하나를 빌려서 하는 경우도 있었지.”

“그런데요?”

“어린 네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연예계만큼 더러운 곳이 또 없어요. 술, 담배는 기본이고 마약 같은 것도 성행해. 서로 약에 취해서 누가 누구랑 자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연예계 스캔들이 다 이런 곳에서 터지는 거야.”

“그런 말씀을 하시니 갑자기 가기가 싫어지네요.”

“근데 정성우 배우가 너한테 이걸 줄 정도면 건전한 모임이라는 뜻 아니겠어?”

삼촌은 정성우 배우에 대한 평가를 높이 하고 있었다.

“나도 듣는 귀가 있잖아. 원래 그렇게 잘생긴 놈치고 사생활 깨끗한 놈 없는데, 정성우는 별 잡음이 없잖아. 언론이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아도 우리끼리 아는 더러운 것들이 있기 마련이거든. 그런데도 정성우에 대한 건 들어본 게 없어. 선행을 많이 한다는 것 정도?”

나도 저번 생에서 정성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여러 성매매 스캔들이 터지고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 버릴 때 정성우는 아무런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아 더 많은 팬이 생기게 된다.

삼촌도 저리 말하는 것을 보니, 연예계 쪽에서도 정성우에 대한 평판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너희들이 미성년자라는 것도 알고, 문란한 파티에 초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데 그 티켓을 줬을까? 내가 처음에 나쁘게 말하긴 했지만, 무조건 약 빨면서 노는 파티만 있는 게 아니야. 좋은 의미로 모여서 서로 덕담을 나누는 지루한 파티도 있기 마련이지.”

그런 파티를 삼촌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음악을 빠방하게 키고 술 먹으면서 노는 걸 좋아하는 거겠지.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라. 난 그냥 그런 파티가 싫어. 서로 의도가 뭔지 뻔히 보이는데 가식적으로 웃어 주는 게 내 성격이랑 안 맞다는 거야. 그리고 시끄러운 파티도 잘 안 가는 게, 내가 원래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 차라리 집에서 혼자 청승맞게 술 마시면서 악기 만지는 게 훨씬 나아.”

외형만 보면 클럽 입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어깨였지만, 실상은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집돌이였다.

“잘 생각해서 가봐. 너네 소속사 대표랑도 한번 얘기해 보고. 그쪽이 나보다 정보가 더 많겠지.”

탑 연예인들이 모이면 어떤 파티를 여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삼촌 말을 듣고 보니 무작정 좋은 곳이라 보긴 힘들었다.

강세원 대표라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

“오~ 네가 이 티켓을 받았어?”

강 대표는 내가 건네준 티켓을 보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표님도 아세요?”

“잘 알지. 이 티켓, 진짜 귀한 거야. 탑 연예인들은 무조건 오는 파티라고 보면 돼. 그 이기철이라는 분 알지?”

이기철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작곡가 중 하나이며 동시에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CH 엔터테이먼트를 운영 중인 사람이다.

“이기철 그분이랑 강태산 배우님이 공동 주최하는 파티야. 내가 듣기로 이 파티를 연 게 한 15년 정도 됐을걸?”

우리나라 원로배우이자 신인 배우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강태산도 이 파티의 주최자였다.

“나도 여긴 못 가봤어. 얘기로만 들었지.”

“뭐, 마약을 한다거나 불손한 의도로 모이는 그런 곳은 아니죠?”

“흐흐. 영화를 많이 봤네. 연예인이 모이는 모임은 무조건 마약부터 빨고 본다는 건 다 고정관념이야. 이런 건전한 모임도 많아. 거기다 너랑 혜나를 초대한 게 정성우 배우라며? 그 사람 평판이 이쪽 바닥에서 얼마나 좋은데.”

뒤늦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누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달려왔다.

“뭐? 누가 줬다고? 정성우?!”

“아, 응. 이 티켓 준 사람이 정성우 배우야.”

“아니. 넌 그걸 왜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가야지!”

“······?”

처음 이 티켓을 보여줬을 땐 딱히 관심 없다며 딱 잘라 말하던 누나가 정성우란 이름에 눈을 희번뜩하게 떴다.

“안 그래도 네가 우리 정성우 배우님 혼자 보고 왔다고 해서 얼마나 질투 났는지 알아? 근데 그분이 초대해 주신 거라면 가야지. 아싸~ 안 그래도 사인회 못 가서 엄청 아쉬웠는데.”

“사인회를 가려고 했어?”

“응, 근데 시간이 안 돼서 못 갔지.”

“아- 그랬구나.”

나는 웃으며 강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표님. 그 티켓 다시 주세요.”

내 미소가 섬뜩했는지, 강 대표가 갑자기 움찔거렸다.

“응? 왜?”

“찢어 버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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