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72화 (72/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2화

람보르기니에서 내리고 난 뒤에도 여전히 여운이 남았다.

삼촌 말대로 승차감은 솔직히 별로였지만, 온몸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배기음과 엔진의 파워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네가 작곡으로 성공하면 이 정도 차는 껌이야.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이거보다 아까 네가 들은 골드문트 스피커가 더 비싸다는 거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지?”

성공한 작곡가는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연 수십억을 그냥 번다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차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건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오늘 직접 타보고 만져보니, 언젠가 이 차는 꼭 갖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들었다.

“무언가를 갖고 싶다, 뭔가를 하고 싶다. 이런 걸 동기부여로 삼아서 곡 만드는 것에 매진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지. 속물 같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어. 세상은 돈이 최고거든.”

“은근 설교를 길게 하시네요.”

“야, 너도 이 나이 돼 봐라. 꼰대라는 소리 들어도 계속 설교가 나온다니깐?”

쉬지 않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명언들을 섞어 가며 삼촌이 인생 교훈을 주는 사이, 우린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고. 형님. 오셨습니까. 연욱 씨도 와 주셨네요.”

“김 감독. 촬영은 잘 되고 있어?”

“순조롭습니다. 느낌이 아주 좋아요. 그런데 오늘 샘플곡 가져오신 거예요?”

“응. 여기 챙겨 왔지. 촬영 끝나면 확인해 봐.”

“예. 두 분은 따로 자리 마련해 드릴게요. 거기서 촬영장 구경하시면 됩니다.”

“그려. 바쁠 텐데 얼른 일하러 가.”

삼촌과 내가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자 갑자기 배우들이 하나둘 인사를 하러 왔다.

작곡가는 배우들과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특히 이용재처럼 탑급에 속하는 작곡가들은 입김도 세기 때문에 배우들 역시 한 번쯤은 눈도장을 찍어 놓으려 한다.

인맥이라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바로 연예계니까.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사회생활이 뭔지를 배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배우 정성우라고 합니다.”

“어휴. 우리 스타 배우님께서 황송하게 인사를 다 해 주시고······.”

“하하. 아닙니다. 이번에 저희 드라마 OST를 맡으셨다고 들었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우리 이번에 사고 한번 크게 내 봅시다.”

이번 드라마에서 인기도 최고라는 정성우 배우가 직접 와서 삼촌에게 인사를 하다 옆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나를 한눈에 알아보는 듯한 눈치였다.

“혹시 JJ 아니에요?”

“아, 네. 맞습니다.”

“와~ 이거 반가워요. 진짜 팬입니다. 오늘도 촬영장 오기 전에 JJ 노래만 듣고 왔는데.”

인기 많은 탑스타가 나와 누나의 팬이라고 하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정성우 씨가 JJ 팬이라고? 다행이네요. 여기 연욱이가 이번 OST 제작에 참여하거든.”

“오. 혹시 노래를 부르는 건가요?”

“아뇨. 일단은 프로듀싱만 하고 있어요.”

“꼭 불러 주셨으면 좋겠네요. 기대 많이 하고 있을게요.”

정성우가 가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김다혜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녀의 목적은 삼촌과 인사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진짜 팬이에요! 혹시 사인 한 장 해 줄 수 있어요?”

“아······.”

“그리고 실물이 더 잘생기셨네요. 혹시 배우 할 생각은 없는 거예요? 예능에도 아예 안 나오는 거 같은데, 소속사가 신비주의 컨셉 잡으라고 안 내보내는 건 아니죠?”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듯했다.

도도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붙임성이 좋은 김다혜는 기어코 내 사인이 적힌 종이를 받아갔다. 그런 날 보고 이용재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넌 좋겠다.”

“네?”

“으휴. 대체 전생에 뭘 했기에 다 가진 거냐? 난 평생 저렇게 살가운 여자들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

“그거야 삼촌은 포스가 철철 넘치잖아요. 아마 그것 때문이겠죠.”

칭찬 한번 해 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삼촌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래? 내가 포스 있어? 카리스마 있고 막 그런 건가?”

“그럼요~”

왠지 그 포스가 오늘 풀풀 사라지는 것 같지만.

이윽고 스태프가 확성기로 모든 배우에게 소리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면서 배우들은 감정을 잡고 있었다.

드라마 촬영장이라고 해서 영화 촬영장과 다를 바 없었다.

모두 프로답게 행동하고 있었고, 다들 진지한 분위기 속에 촬영을 시작했다.

“그녀의 목숨을 지킬 수만 있다면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설령 그녀를 영영 못 보게 된다고 할지라도······.”

유월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정성우 배우는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참 조각 같은 미모라고 해야 할까.

저런 걸 보면 정말 신은 가끔 실력 발휘를 하여 몇몇의 대작 조각품을 만들어 놓는 것 같다. 저게 오직 유전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컷! 좋습니다. 여기서 이제 신의 음성이 들릴 겁니다. 그게 나왔다고 생각하고 바로 다음 대사로 넘어가 주세요.”

감독은 한창 흥이 넘쳐 보였다.

빛나는 외모와 명품 연기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따로 자리에 앉아 구경하는 나도 즐거운데, 감독은 오죽하겠는가.

“저기 감독님. 그런데 그 죽음의 신이라는 건 따로 등장하지 않는 거예요?”

“네. 그냥 목소리로만 대체를 할 생각으로······.”

“음. 저는 상대 역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정성우 배우의 의견을 마냥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상 이 드라마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정성우 배우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성우 씨의 의견이 그러하다면야 일단 논의는 해 보겠지만······ 저희가 역할을 따로 구해 놓지 않아서요. 거기다 따로 추가를 시키려면 대본도 수정을 해야 하고요.”

“아, 저도 그냥 가볍게 의견만 말해 본 거예요. 감독님이랑 작가님이 곤란하시다면 어쩔 수 없죠. 사실 제가 추천해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겨서요.”

김 감독과 이은영 작가는 귀가 솔깃해진 모양이다.

“성우 씨. 그게 누군데요?”

“네. 성우 씨 의견이라면 저희가 적극 반영해 볼게요. 혹시 소속사에 눈에 드는 신인 배우라도 있어요?”

“저희 소속사 사람은 아닌데, 오늘 참관하러 오신 분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참관?

오늘 참관하러 온 사람이 나랑 삼촌 말고 또 있나?

아니나 다를까 촬영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우리 쪽으로 쏠렸다.

“응? 서, 설마 나?”

삼촌이 스스로를 가리키자 그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정성우가 너를 찍었겠냐는 무언의 욕설 같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얘기였다면 미안해요. 저는 그저 오늘 연욱 씨를 보고 나니까 오늘 내용에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네?”

정성우 배우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어때요? 같이 촬영하면 엄청 재밌을 거 같은데.”

여심을 흔드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정성우를 보면서 문득 쎄한 기분을 느꼈다.

* * *

“응? 드라마? 갑자기? 대체 어디서?”

강세원 대표는 갑작스러운 드라마 출연 소식에 어리둥절했다.

드라마 OST를 만들라고 보냈더니, 뜬금없이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연락을 주니까 당황할 수밖에. 그런 강 대표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김 감독이 조심스레 전화를 바꿔 받았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김우종 감독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한참을 통화하던 김 감독은 이윽고 내게 핸드폰을 넘겼다.

“그래, 연욱아. 얘기는 다 들었다. 아주 좋은 기회인 거 같더라. 어차피 이번 한 번만 출연하는 거라면서? 그다음부터는 계획이 없다던데.”

“이 정도면 카메오 출연 아니에요?”

“그치. 그래도 페이는 챙겨 주겠다는데? 그리고 이거 정성우 배우가 널 추천한 거라면서. 이야~ 둘이 같이 TV에 나오면 화면 죽이겠다.”

강 대표는 내가 꼭 출연했으면 하는 뉘앙스였다.

“좋은 기회잖아. 혜나 일 때문에 너희들이 예능 프로에도 안 나간 것도 있고, 여러모로 홍보가 필요한 시기기도 해서. 드라마는 빠르면 2개월, 늦어도 3개월 뒤에는 나간다고 들었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해.”

“그럴게요, 그럼.”

저번에 딱 잘라 거절한 건 감독과 작가가 나에게 맞는 캐릭터를 만든다고 해서였다.

그건 앞으로 계속 촬영장에 나와 한다는 건데, 난 그게 싫어서 거절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카메오로 출연해 딱 한번만 나오는 거라면 나쁘지 않은 기회인 것 같았다.

강 대표 말대로 미디어 홍보 효과라는 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와~ 대표님이 허락해 주셨어요? 다행이다. 난 혹시 안 된다고 거절하시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정성우 배우의 저 말투와 행동이 뭔가 찝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냥 내게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목적이 있어서 이러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겠다.

사람들은 모르는 거 같은데, 내 눈에는 정성우 배우의 모든 행동이 가식처럼 느껴지고 이것 또한 하나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가?

“연욱 씨. 대본은 여기 있어요. 어차피 대사도 그리 길지 않아서 금방 외울 수 있을 거예요. 뮤지컬이랑 영화도 했었죠? 그때를 떠올려 보면 오늘 촬영도 쉬울 겁니다.”

“잘 부탁해요, 연욱 씨. 제가 대사를 연욱 씨에게 맞게 수정해 봤어요.”

대본은 별로 길지 않았다.

한 컷만 나오는 장면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분장이었다.

“음. 진짜 죽음의 신처럼 분장을 해야 하나?”

“아뇨. 저 잘생긴 얼굴이 돋보일 수 있도록 해야죠. 오히려 이상하게 분장을 시키는 것보다는 심플하게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감독이 여러 사람과 회의를 하는 동안 나는 외운 대본을 몇 번 읊조리며 그에 맞는 상황 연기를 혼자 펼쳐보았다.

대사는 어렵지 않으나, 어떤 눈빛을 지어야 하고 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 연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성우 배우가 다가왔다.

“연욱 씨. 연습 도와줄게요.”

“아, 네.”

상대 역할과 합을 먼저 맞춰 보고 촬영을 해야 하기에 나는 정성우와 같이 연습했다.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 그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네요. 어릴 때 연기도 많이 하셨다더니, 잘하시네.”

어차피 신 하나만 하면 되는 거라서 어렵지 않은 연기였다.

“특히 눈빛 연기가 마음에 들어요. 정말 15살 맞아요? 그리고 이제 우리 말 편하게 할까요? 형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그럴게요, 형.”

“그래. 고마워. 그런데 너희 그룹은 활동 따로 안 해? TV에서 못 본 지 좀 된 거 같아서.”

“둘 다 학교 다녀서요.”

“아아-. 그럼 네 누나도 학교 다니고 있겠네?”

“그렇죠 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물었다.

“너랑 네 누나는 아직 다른 연예인들이랑 친분이 별로 없지?”

“네.”

“알다시피 이 바닥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인맥이거든. 그래서 가급적이면 서로 알고 지내는 게 좋아. 얼굴도 자주 보고 말이야. 그런 편의를 위해 소속사에서, 혹은 유명 연예인들이 모임을 만들어 파티를 열곤 해.”

정성우는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며 내게 건넸다.

“너랑 네 누나가 여기 오면 여러모로 이득 볼 게 많을 거야.”

그가 내게 준 것은 VIP라고 적힌 골드 티켓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