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1화
“푸하하하-!”
또 저런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이용재 작곡가를 쳐다보았다.
집중하려고 하면 갑자기 저 양반이 낄낄 웃으며 방해했다.
자기도 잘못한 걸 아는지 손을 저었다.
“아, 미안. 계속 아까 전 일이 생각나서 미치겠네. 완전 웃음벨이야.”
“선배님은 그게 재밌으셨나 봐요. 전 하나도 안 웃긴데.”
“어허. 내가 선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그냥 편하게 삼촌이라고 부르라니깐?”
푼수처럼 보이는 양반이라도 경력이나 나이도 내게는 아득히 높은 대선배였다.
작곡의 길을 가는 사람이 감히 어떻게 그를 삼촌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네, 삼촌.”
하지만 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먼저 삼촌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건 저쪽이니까.
“이제 그만 좀 웃으세요, 삼촌. 이러다 음표 하나 못 그리고 삼촌 웃는 얼굴만 보다가 집에 가게 생겼어요.”
“쯧, 은근 빡빡한 구석이 있네.”
그러다가 또 푸훕!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이용재였다.
아까 전 상황이 웃기긴 웃겼나 보다.
“걔네 얼굴 봤잖아. 네가 딱 잘라서 ‘싫어요’ 하고 말하니까 순간 넋이 나가 버리는 거. 원래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면 꽁으로 잡아먹히기 일쑤거든. 그런데 거기서 바로 손절을 쳐 버리니까 그 두 사람이 아무 말도 못했잖아.”
드라마 감독과 작가가 뜬금없이 내게 출연 제안을 넣었을 때 난 별로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다지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도 없고 나한테는 이번 OST를 만드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근데 촬영장도 아예 안 가볼 생각이냐?”
“거긴 가야죠. 어떻게 연기하는지도 볼 겸.”
“흐흐, 그때 또 날파리들이 꼬이겠구먼.”
이용재는 뿔테 안경을 위로 올리며 드디어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기계부터 돌려볼까?”
그는 이번 곡에 맞는 장르를 설정한 뒤 프로그램을 돌렸다.
“이게 5분 안에 곡 수십 개를 알아서 만들어 놔. 네 기획사에는 어떤 걸 쓰는지 모르겠다만, 그거보다 내가 쓰는 게 몇 배는 더 좋을걸?”
“그렇게 좋나요? 어느 정도 가격이 비슷하면 다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는데.”
“소리가 다르지.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의 숫자도 다르고. 효과음도 훨씬 더 많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AI 수준이지. 대중들이 요즘 어떤 노래를 선호하는지 딥러닝을 해서 그에 맞는 샘플을 뽑아내는 거야.”
이런 기능이 벌써부터 되는 장비라니.
내가 저번 생에서 대학을 다닐 때, 작곡가들 사이에서 딥러닝을 하는 AI 작곡 프로그램들이 유행한다고 들었다.
단 몇 분 만에 수십 곡을 알아서 만들어내 거기서 마음에 드는 것을 선정해 대충 편곡만 거치고 시중에 내놓는 것이다.
이게 유행하려면 거의 10년은 더 있어야 하는 일인데, 이 삼촌은 벌써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내가 이거 가져온다고 수억 넘게 처발랐어. 장비값만 수억을 하느냐? 아니야. 세팅하는 데에도 돈이 엄청 들어. 거진 10억은 넘게 들어갔다고 봐야지. 아마 이 작업실에 들어간 돈을 다 따지면 30억은 족히 넘을 거다.”
음악 장비만큼 비싼 게 없다.
악기도 좋은 걸 사려고 하면 기본 수천에서 수억 원을 호가한다.
또한 좋은 음질을 뽑아내는 스피커와 마이크도 억 단위가 넘는다.
“내가 또 자랑하려는 건 아닌데, 이게 바로 7억이 넘는다는 골드문트 아폴로그다. 이걸로 뭐 들어본 적 없지? 한번 들어볼래?”
“아폴로그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스피커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것이 바로 아폴로그다.
예전에 딱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 틀어 준 걸 들어본 건데, 그때 당시만 해도 내 귀가 막귀라서인지 큰 차이점을 느끼진 못했다.
“이거 들을 때 주의할 게 있어. 너처럼 귀가 민감한 사람은 이걸로 한번 뭔가를 듣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어떤 스피커로 좋은 소리를 들어도 만족하지를 못해.”
나도 저 얘기를 많이 들었다.
골드문트 스피커에 한번 귀를 열어 버리면 다른 걸로 만족을 할 수가 없어 크게 고생한다고 말이다. 특히 귀가 민감한 사람은 더더욱.
“여기까지 와서 안 듣는 게 더 이상한 거죠.”
“괜히 듣고 후회하지 마라.”
“괜찮아요. 듣고 싶으면 앞으로 삼촌 작업실 계속 놀러 오면 되니깐요.”
“오~ 그것도 나쁘지 않아. 이따 내가 여기 비밀번호 알려 줄게. 알아서 따고 들어와.”
프로그램이 알아서 곡을 만들어 놓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스피커의 맛을 보았다.
빠바바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그 강렬한 첫 시작 부분에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낮은음부터 고음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담아내는, 마치 내가 실황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음향이 내 귀를 꽉 채웠다.
그동안 내가 작업실에서 들었던 음향은 전부 다 거짓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멍하니 감상하고 있다 보니 금세 곡이 끝이 났다.
“어때?”
정신을 차렸을 땐 벌써 30분이 지난 뒤였다.
“······삼촌.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요.”
“으하하! 짜식. 엄청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이건 솔직히 사기 아닌가요? 아무리 막귀라도 이걸 한번 듣고 나면 다른 건 절대 못 듣겠는데요?”
“꼭 그렇지도 않아. 일반인들은 그냥 웅장하다? 이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100만 원짜리 홈시어터 스피커로 들려주나, 7억짜리 스피커로 들려주나 거기서 거기일 거다.”
어떻게 이걸 구분할 수가 없다는 거지?
하지만 나의 한심했던 전생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가는 일이었다.
나도 처음에 이걸 듣고 이게 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
“네가 아주 넋을 놓고 듣는 통에 제대로 말도 못 붙였네. 이제 슬슬 작업 시작해야지?”
그는 프로그램이 뽑아 놓은 곡들을 보여 주었다.
“한번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찾아봐. 혹시 너 감성파는 아니지?”
감성파, 혹은 낭만파라고 함은 작곡 프로그램을 거의 쓰지 않고 직접 자신이 악기들을 연주해 멜로디를 따고 곡을 완성하는 것을 뜻한다.
작곡가들 사이에서 쓰는 말인데, 시대에 뒤처진 놈들이라고 은근 돌려 까기 위해 만든 말 같았다.
“기계에 의지하는 건 뭔가 적성이 안 풀려서요.”
“그 말은 감성파라는 거네. 그래도 들어는 봐. 앞으로 세상은 계속 발전할 거고,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올 거야. 이미 지금도 그런 추세고. 사실 나도 너처럼 감성파였어.”
“삼촌이요?”
“내가 이거 기계 새로 들여온 게 얼마 안 됐어. 고전 작곡가답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내 힘으로만 작곡하자는 고집을 내세웠지. 그러다 이 지경이 된 거 아니겠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세상이 더럽게 빨리 바뀌고 있잖아. 이것저것 많은 걸 접하다 보니 사람들도 듣는 귀가 많이 달라졌고. 그러다 보니 노래의 특색도 자주 바뀌어 줘야 해. 요즘 사람들은 뭐든 금방 질려 버리거든. 그런 대중의 니즈를 빠르게 캐치해야 하는 것이 우리 작곡가들이고.”
“근데 기계의 힘이 없으면 그게 힘들다는 거죠?”
“그래,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곡을 뽑아줘야 하는데, 작곡가들은 이상하게 고정관념이 깊이 박혀 있거든. 자신만의 스타일을 잘 벗겨내지 못해. 예전에도 먹혔으니, 이번에도 내 노래가 먹힐 거라는 근자감이 올라오면서 이도 저도 안 되는 거야. 내가 딱 그런 케이스지.”
그동안 자신이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했던 건 오롯이 본인의 능력만을 신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넌 아직 어리고 신세대이기 때문에 그 트렌드에 잘 맞춰 나갈 수 있어. 하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면 점점 감이 무뎌져. 나를 성공시켜줬던 능력이 오히려 함정으로 작용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거지.”
저번에 이은지 디렉터와도 작업을 하면서 나는 기계에 의존하기보다는 오직 내 감으로만 노래를 작곡했다.
기계에 기대고 싶지 않았던 건, 이 곡이 내 거 같지 않다는 찝찝함과 노래에서 강렬한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걸 음악에 담긴 소울이라고 하던가.
“시대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너 같은 낭만파 작곡가들은 거의 남아나질 않겠지. 낭만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특유의 감성도 사라질 테고. 하지만 네가 끝까지 뜻을 고수한다면 난 널 응원할 거다. 네게 뭔가를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그냥 선배의 쓰라린 인생 경험담을 얘기해 준 거야.”
쓰라린 인생 경험담치고 그는 지금 굉장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여기 쫙 깔린 장비들만 봐도 이용재 작곡가가 틀린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벽을 느끼고 기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조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
며칠 동안 샘플 작업을 거듭하면서 최종적으로 샘플곡 10개가 완성되었다.
말 그대로 샘플이라, 그냥 엎어질 수도 있고 완벽하게 완성이 된 것도 아니었다.
“힘들었지? 고생했다. 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만.”
이용재 삼촌,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완벽주의자였다.
샘플은 말 그대로 샘플이라 곡을 완벽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대충 멜로디가 어떤지만 보여 주면 되는 건데, 이 양반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거의 정식 앨범을 만드는 것마냥 힘을 쏟아붓는 걸 보니, 그가 결코 대충 곡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너 5곡, 나 5곡. 그쪽에서 뭘 고를지 궁금하네.”
우리 작업 방식은 좀 특이했다.
삼촌은 기계로 뽑아낸 곡 중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선정해 샘플을 만들었고, 나는 기계보다 그냥 내가 떠오르는 악상으로 악보를 만들어 내가 직접 악기들을 연주해 샘플을 만들어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작업 속도가 무척 느려 한참 걸리기도 하는데, 나와 삼촌의 작업 속도는 비슷했다.
내 빠른 메이킹 실력을 보고 삼촌은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삼촌 곡들만 선정되면 엄청 억울할 거 같아요.”
“흐흐. 괜히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들이 나오는 게 아니야. 진짜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날이 온다니깐?”
그는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 뒤 샘플곡들이 담긴 외장하드를 챙겼다.
“근데 우리 어디 가는데요?”
“어디긴. 우리한테 프로젝트 던져 주신 물주님들 만나러 가야지.”
“아, 방송국 가는 거예요?”
“오늘 마침 촬영이 있다네? 거기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보면 곡 만들 때 도움 되지 않겠어?”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지 않고 먼저 샘플곡을 만들긴 했다만, 언제든지 곡은 다른 걸로 제작할 수가 있어서 괜찮았다.
“그리고 거기 감독이랑 작가가 널 엄청 보고 싶어 하더라. 제발 한 번만 와 달라고 얼마나 사정을 하던지.”
뭔가 그들에게 음흉한 속셈이 있는 것 같았지만,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보여 줄 명품 연기를 놓칠 순 없었다.
특히 이번에 여주인공으로 뽑힌 김다혜는 평소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라 실물을 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20대들에게 가장 인기 많다는남배우 정성우와 김다혜를 직접 보면 더 아름다운 악상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근데 너 어떤 차 좋아하냐?”
“자동차요?”
“응.”
“그냥 무난하게 람보르기니?”
“그게 어딜 봐서 무난해?”
삼촌은 서랍을 뒤적뒤적 거리더니, 저 구석에 쳐 박혀 있는 차키를 꺼냈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차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거 설마······.”
“뭐긴 네가 말하는 람보르기니지. 타본 적 없지? 난 승차감이 별로라서 잘 안 타고 다니긴 하는데, 오늘 특별히 타게 해 줄게.”
부아아앙-!!
굵은 배기음이 내 가슴팍을 거칠게 두드렸다.
오늘 처음으로 삼촌이 멋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