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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70화 (70/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70화

“스타 탤런트 이후로는 처음이지?”

“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럼. 저번에 너한테 전화번호 받고 나서 몇 번이나 연락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그럴 건수가 없어서 꾹 참고 있다가 이제야 만나게 되네.”

이용재 작곡가는 손에 힘을 꽉 주며 나와 악수를 나눴다.

이번 프로젝트에 내가 꼭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그의 작업실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과연 톱 작곡가의 작업실은 남달랐다.

세팅된 장비들도 그렇고, 시설 규모도 우리 소속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내가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는 이용재 작곡가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한 것들이 많지? 이따 실컷 다 써봐. 근데 작업하기 전에 먼저 만날 사람이 있다. 따라와.”

나는 이용재 작곡가의 뒤를 따라 작업실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몇몇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이고. 형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쯧. 이제 더는 드라마 안 찍는다고 하지 않았냐? 용케도 살아 나왔네?”

“흐흐. 이게 마지막 기회에요. 이번에 못 터트리면 저 진짜 한강으로 뛰어내릴 겁니다.”

“야, 요즘은 한강에 떨어져 봤자 못 죽는단다. 거기 깔린 구조요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저 모자를 쓴 남성과 잘 아는 사이인지, 이 작곡가는 실없는 농담을 나누었다.

그 남성은 옆에 있는 날 알아보는 듯한 눈치였다.

“아. 여기는······.”

“TV에서 봤지? 이번에 음원 차트 올킬한 놈이야.”

“잘 알죠. 저도 그 노래 엄청 들었다니까요? 귀에 쏙쏙 달라붙더라고요. 반가워요. 김우종 감독이라고 합니다. 실물로 보니까 진짜 어마어마하게 잘 생기셨네. 가수 말고 혹시 배우해 볼 생각은 없어요?”

“헛물켜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소개해줘.”

이 사람이 이용재 작곡가에게 프로젝트를 맡긴 드라마 감독인 모양이다.

“여기는 우리 드라마를 집필해 주신 이은영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은영 작가는 나와 악수를 나누면서 묘한 눈길을 보냈다.

김 감독은 곧바로 보조 감독들도 소개해 주었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꽃은 OST이다 보니, 우리가 전반적인 스토리를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이랑 보조 감독들도 함께 데려왔어요.”

김우종 감독, 그리고 이은영 작가.

둘 다 내가 모르는 이름이었다.

드라마에 관심이 없어도 유명한 작가들 이름 정도는 다 알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이름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 말인 즉슨, 이 두 사람은 내가 기억할 정도의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OST가 잘 뽑히면 미적지근한 장면도 기가 막히게 좋아진단 말이죠. 그래서 형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형님만한 작곡가가 또 없지 않습니까?”

김 감독의 입에 발린 말에 이용재 작곡가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튼 그놈의 주둥이는 여전하네.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유명 작곡가들 다 찾아갔다가 퇴짜 맞았다며.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막 리스트에 있는 날 찾아온 거겠지.”

그러자 김 감독의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아니. 혀, 형님은 대체 그런 걸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내가 전부터 그랬지? 너는 내 손바닥 위라고. 뭐, 이해한다. 아무리 형 동생 하는 사이이지만, 한물간 작곡가인 나한테 곡을 맡기고 싶진 않았겠지.”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형님을 적극 추천했죠. 그런데 기획사에서 다른 작곡가를 알아보라고 압력을 주는 바람에······.”

“나도 알아. 농담으로 한 소리야.”

감각을 잃은 작곡가.

이렇다 할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감독과 작가.

이런 걸 두고 세 박자 모두 잘 맞아떨어진다고 하는 건가?

과연 이 팀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낼지가 의문이었다.

“사실 저 진짜 절박합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시나리오가 꽤 괜찮다는 거?”

“제목이 뭐라고 했지?”

“수호자입니다.”

수호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저번 생에서 내가 드라마를 잘 안 챙겨 본 것도 있지만, 인기 많은 드라마는 가끔씩 챙겨 봤었다.

근데 이 드라마는 이름을 들어도 모르겠다.

그만큼 인기가 없었다는 건가?

“여기 이은영 작가님도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번 드라마에 사활을 거셨어요.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합니다.”

“조합이 좋네. 나도 이번 프로젝트까지 말아 먹으면 진짜 은퇴해야 하거든.”

이용재 작곡가도 스스로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그가 작곡한 노래의 성적이 그닥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에 또 말아 먹을 것 같단 말이지.”

“네? 형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인마.”

그는 내 어깨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내가 연욱이를 데려온 게 아니겠냐.”

김 감독은 나를 조금 못 미더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중학교 2학년밖에 안 된 놈이 프로젝트에 끼어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김 감독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용재 작곡가가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그런데 음악이란 세계는 나이로 통용되지 않아. 짬 더 처먹었다고 명곡이 뽑혀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빈말 안 하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이번에 JJ가 부른 노래 들어봤지? 그거 다 연욱이가 만든 곡이야. 이놈은 재능의 크기가 아예 다르다니깐? 괜히 데뷔하자마자 음원 차트를 올킬한 게 아니지.”

이들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과연 이 어린놈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었다면, 지금은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시간 끌지 말고 바로 해 볼까? 스토리 설명부터 해봐. 정확히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원하는지도.”

이은영 작가는 자신이 쓴 원고를 나와 이용재에게 나눠 주었다.

“이 드라마는 남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죽음의 신과 계약을 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내용이에요. 불행한 인생을 살다 결국 불운하게 죽는 여자를 지키고 나아가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라고 해야 할까요?”

대본을 넘기던 내 손이 멈췄다.

“하지만 죽음의 신은 조건을 하나 걸었어요. 그건 절대 그녀와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미 주인공은 사랑에 빠져 있지만, 그녀와 가까운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죠.”

“오- 그거 참 잔인한 신이네요.”

“그렇죠? 하지만 신은 그녀를 지킬 수 있는 힘도 함께 줬어요. 쉽게 말해서 초능력을 준 거죠.”

“초능력?”

“네. 원래 그녀는 죽을 운명이잖아요. 그것을 주인공이 강제로 바꾸려는 거니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여주인공을 죽이려 하지만, 우리의 수호자가 나서서 그걸 계속 막는 거고요. 완전 불공평한 건 아니죠?”

이용재 작곡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으- 그 남자만 개고생하는 거 같아서 괜히 불쌍하네. 여자랑 가까이 지내지도 못하고 몰래 따라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잖습니까?”

“그게 바로 순정이라는 거예요! 우리 작곡가님이 드라마를 잘 모르시네. 시청자들은 이런 거에 미친 다고요.”

과거로 돌아와 사랑했던 여자를 지키는 남주인공이라.

내가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은 듯했다.

“전 그런 절절한 남주인공의 마음을 노래로 잘 표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끝내 과거로 돌아와 자신의 여자를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을요.”

소재는 나름 괜찮아 보였다.

죽음의 신과 계약한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내용도 그렇고, 여주인공과 연인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 거기다 자꾸만 들이닥치는 소용돌이에서 여주를 지키고자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웃긴 게 있다면 하필이면 이용재 작곡가가 맡은 드라마가 이런 시나리오를 하고 있었고, 그의 추천으로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뭐, 나도 미래에서 온 건 똑같지만 죽음의 신과 계약을 하거나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김 감독. 아직 샷은 안 찍었고? 배우는 다 섭외했나?”

“네. 배우들은 이미 다 섭외해 놓았어요. 진짜 크게 한 건 터트리고 싶어서 출연료는 아끼지 않았습니다.”

배우 라인업을 살펴보니, 남자 주인공은 20대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는 배우 정성우와 여주인공은 청순한 외모로 유명한 배우 김다혜였다.

그 외 배우들도 준수한 편으로 최대한 출연료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쓴 것 같았다.

나와 이용재 작곡가는 음악적 영감을 위해 작품에 대한 내용을 몇 가지 더 들었다.

필요한 건 다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용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일단 샘플 몇 개 만들어서 보내줄게. 한번 들어보고 괜찮다 싶은 게 있으면 골라서 다시 보내.”

“네,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연욱 씨도 잘 부탁해요. 우리 드라마가 잘 되면 연욱 씨 커리어에도 아주 좋을 겁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러다 뭔가가 떠올랐는지 김 감독이 말했다.

“아, 연욱 씨. 혹시 촬영장에 한번 와 줄 수 있어요?”

“촬영장에요?”

“네, 거기 분위기가 어떤지도 한번 보시고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는 걸 보면 왠지 더 좋은 곡이 뽑히지 않을까 해서요.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나도 촬영장 한번 둘러보려고 했어. 배우들이 연기하는 거 앞에서 보면 나름 도움이 되거든.”

유명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직접 눈앞에서 보는 기회는 흔치가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은영 작가가 전혀 생각지 못한 제안을 했다.

“오늘 연욱 씨 보니까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이런 얼굴을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많이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리 작품에 참여해 볼 생각 없어요?”

미리 감독과 논의를 한 제안이 아닌 것 같았다.

김 감독이 저렇게 당황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작가님. 갑자기 그게 무슨······. 연욱 씨가 나올 자리가 있던가요?”

“새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보죠, 뭐.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딱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어서 그래요. 감독님도 생각해 보세요. 이 비주얼로 우리 작품을 빛내 준다면 시청자들이 더 많이 붙지 않겠어요?”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감독이랑 제대로 상의조차 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결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나는 김 감독이 크게 화를 내며 바로 무시해 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얼굴이 카메라에 담긴다면 찍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눈 호강을 할 거 같긴 하네요.”

김 감독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기는 하지만, 연욱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도 이 작가님이랑 캐릭터 하나 새로 만들 의향이 있는데. 물론, 가끔씩 등장하는 캐릭터로 만들 생각입니다.”

OST를 만들기 위해 미팅을 하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이용재 작곡가도 거들기 시작했다.

“연욱이가 뮤지컬도 하고 영화도 찍은 경험이 있잖아. 너도 봤지? 그 ‘악마’라는 영화. 거기서도 연기가 끝내줬지. 그 재능이 어디 가겠어?”

음악 작업을 해야 하니 출연은 어림도 없다고 못을 박을 줄 알았더니, 이용재 작곡가는 오히려 내 등을 떠밀었다.

난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결론내렸다.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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