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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67화 (67/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67화

“선배님들 오늘도 파이팅하세요!”

“그래, 혜나 너도~!”

로즈데이 멤버들과 인사를 마친 혜나 누나는 씨익 미소 지었다.

로사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혜나 누나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다.

“속이 다 시원하네.”

나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살얼음판 위를 걸어온 느낌이다.

“누나,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갑자기 사람을 왜 건드려.”

“저 여자 얼굴만 보면 그 눈빛이 안 잊혀서 그래.”

“눈빛?”

“응. 나랑 널 꼭 벌레 보듯이 경멸스럽게 바라봤잖아. 나한테 그러는 건 괜찮은데, 너한테까지 그러니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통쾌하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줄곧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기회가 왔네?”

저번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었나 보다.

하긴. 그때 누나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화를 많이 내긴 했었다.

본인을 욕했다는 것보다는 동생인 날 깔보고 무시했다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는 항상 본인의 일 때문에 화를 내기보다는 나와 관련된 일을 더 신경 쓰고 나보다 더 화냈던 것 같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응······.”

“누나 대신 내가 할게.”

“응?”

“누나가 굳이 앞에 나설 필요 없다고. 이런 건 앞으로 내가 할게.”

“됐어. 너는 이 누나만 믿고 뒤에 있기만 하면······.”

나는 누나의 팔을 낚아채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진심이야.”

“······.”

“약속해.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맡기겠다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이윽고 누나가 내 손을 뿌리쳤다.

“에잇! 뭘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어. 그냥 아무나 하면 되지.”

그러고는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대기실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로즈데이 멤버 로사와 혜나 누나 사이에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걸 같이 있던 스태프들이 봐 버렸다. 물론, 겉으로 보면 누나가 아주 공손하게 물어보는 거였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선배에게 질문을 하고자 온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터.

거기다 웃긴 건 로즈데이 멤버들의 반응이었다.

제자리에 딱 굳어서 아무 말 못 하는 로사를 대신해 버럭 화라도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혜나 누나에게 축하한다며 몇 가지 조언까지 해주었다.

그것만 봐도 평소 로사와 멤버들의 관계가 어떤지 유추할 수 있었다.

“뭐, 서로 욕하고 싸운 건 아니니까.”

로사가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질러 버렸으면 사태가 심각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걸 보면 그 여자도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누나한테 구태여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나도 꽉 막혔던 체증이 쭉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사와 함께 있었던 멤버들도 같은 걸 느꼈던 걸까?

아무리 속이 다 시원해졌다고 해도 두 번 다시 누나가 나를 대신해 앞으로 나서게 하고 싶진 않았다.

***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로사는 다가가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졌다.

멤버들도 슬쩍 눈치를 보며 애써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고 했다.

“아, 오늘 무대 괜찮았던 거 같지 않아?”

“맞아, 팬들도 호응이 엄청 좋았고.”

“로사야, 오늘도 느낌상 우리가 1등 할 거 같다.”

멤버들은 그렇게 자축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 무대는 최악이었다.

무대 위에서 로사가 계속 굳은 얼굴로 있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거라도 놓치지 않는 팬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는 중간엔 아예 하던 응원을 멈추고 웅성거리기까지 했다.

오늘 검색어 순위에 로사의 이름이 올라가고 멤버 불화설도 함께 딸려 올라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야, 대표님 지금 난리 났어. 오늘 너희들 무대 대체 뭐냐고.”

허겁지겁 달려온 매니저의 말에 멤버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뭐? 대표님이 벌써 봤어, 그걸?”

“오늘은 특별히 라이브로 체크하셨지.”

로사가 초장부터 무대에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소속사 대표는 간신히 설득해 무대 위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해 직접 라이브로 무대를 확인한 것이었다.

“로사야. 대표님이랑 좋게 잘 해결된 거 아니었어? 오늘 팬들 반응 봤지? 등골이 서늘하더라.”

로사는 매니저 말을 무시하고는 멤버들을 스윽 둘러봤다. 그런 뒤 차가운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배신자 년들.”

“······뭐?”

“내 덕분에 탑 걸그룹 된 것들이 은혜도 모르고 나대니까 좋아?”

멤버들은 입을 쩍 벌린 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로사는 그런 그들을 놔두고 먼저 대기실로 돌아가 버렸다.

가운데에 낀 매니저만 죽을 맛이었다.

“로, 로사야! 곧 있으면 다시 스테이지로 올라가야 하는데 어디가!”

매니저가 바쁘게 로사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멤버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년.”

“아까 혜나한테 한 소리 듣더니 멘탈이 나간 거야? 고작 그걸로?”

“난 아까 혜나가 로사 한 방 먹이는 거 보고 기분 째지더라. 근데 방금 저 발언은 선 넘은 거 같은데.”

“언니. 우리 계속 참고 지내야 하는 거예요?”

멤버들도 참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로사의 인기가 가장 많고 소속사 대표의 조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지만, 이런 대우를 하는 건 점점 참기가 힘들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여기 남아 있을 생각 없어요.”

“나도.”

처음에는 로사의 눈치만 보던 멤버들은 혜나를 만나고 난 뒤부터 이대로 팀이 깨진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살면서 걸그룹 생활을 하는 게 옳은 건지 의문이 든 것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이라는 명예가 오늘만큼은 별로 자랑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

나와 누나의 첫 마지막 스테이지가 끝나고 나서 오늘 출연한 가수들이 전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디지털 음원 순위와 팬들의 투표로 뽑은 1위 가수를 위한 시상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E와 JJ는 여기 양옆에 서주세요!”

수상 후보로 세워진 건 보이 그룹 EXE와 JJ였다.

로즈데이가 최종 후보로 올라올 줄 알았는데, EXE에게 살짝 밀린 것처럼 보였다. 거기다 방청객에서 투표를 해줘야 할 로즈데이 팬들은 아까 무대에서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이다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보니 로사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후- 긴장돼.”

누나는 나와 손을 꼭 잡은 채로 발표가 나기를 기다렸다.

사실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왠지 모르게 더 긴장됐다.

마침내 1위 발표가 시작됐다.

“축하합니다! 오늘 1위 수상자는 JJ입니다!”

MC가 발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연히 1위는 EXE가 가져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호명한 건 EXE가 아닌 우리 JJ였다.

근소한 차이이기는 했으나, 우리 음원이 EXE를 눌렀다.

“꺄악-!”

누나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제자리에서 총총 뛰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하하, 우리 혜나 씨가 엄청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MC가 건네는 상을 받고 나서 누나는 팬들이 있는 곳을 향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아까 마지막 무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오늘 음방 녹화에 직접 나와 준 우리 JJ의 팬들이 꽤 있었다.

“연욱 씨는 소감이 어떠세요?”

흥분한 누나가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하자 MC는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아직 얼떨떨한 기분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금방 차분함을 되찾았다.

“오늘 이렇게 큰상을 주신 팬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인데, 벌써부터 이런 큰 행운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으로 보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 연욱 씨는 꼭 몇 번 상을 받아본 것처럼 보이세요.”

“인터뷰를 아주 침착하게 잘하시네요. 앞으로도 남매 그룹 JJ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어메이징 뮤직쇼를 다음 주에도 기대해 주세요~!”

나와 누나는 수상자만 할 수 있다는 앵콜 무대를 끝마치고 나서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여러 가수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EXE도 그중 하나였다.

“축하드려요~”

“다음에는 우리가 1등 가져갈 겁니다. 하하.,근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누구와는 다르게 참 포근한 사람들이었다.

딱히 이들은 음방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EXE는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보이 그룹이지 않은가. 당분간 이들의 인기를 압도할 그룹은 없을 것이다.

“혜나 씨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아, 고등학교 1학년이에요.”

“오- 아직 많이 어리시구나.”

“가수 생활하면서 고등학교 다니기 힘들지 않아요?”

포근하다는 말은 취소.

나는 EXE 멤버들이 늑대 무리마냥 혜나 누나 주변에 모이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넘볼 게 따로 있지 어디서 감히······.

나는 누나 손을 붙잡고 놈들의 포위망에서 빼냈다.

“흠흠, 저희는 이제 그만 가볼게요. 바로 다음 스케쥴이 있어서.”

“아쉽네. 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제 뜨는 스타잖아. 스케쥴 많겠지.”

누나는 내 마음도 모르고 귓속말로 물었다.

“우리 오늘 다른 스케쥴 있어?”

“그냥 있다고 해.”

“······?”

이럴 때 보면 참 둔하단 말이야.

나는 누나를 데리고 대기실을 나와 버렸다.

그런데 대기실을 나온다고 해서 끝날 게 아니었다.

“혜나야~ 연욱아~!!”

저 멀리서부터 불안한 기운이 감지된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는 강세원 대표가 매니저 형과 같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준비한 듯 보이는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서.

***

우리 JJ가 음방 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이 방송에 나가고 나서 누나는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반응을 살폈다.

당연히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커뮤니티 사이로 짤 하나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건 누나가 1위 발표를 듣고 나서 소리를 지르며 방방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이었다.

“으- 사람들은 이런 걸 참 잘 찾는단 말이야.”

“근데 나도 누나가 그러는 거 보고 짤이 나올 거 같긴 했어.”

누나는 차마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에 반해 내 눈에는 인생짤이 탄생한 것처럼 보였다.

네티즌들도 귀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수상 소감만 보면 내가 누나보다 몇 살 더 많은 거 같다는 얘기도 많았다.

“아참, 너 그거 봤어? 로즈데이 불화설 떴더라.”

저번 라이브 때부터 불화설이 조금씩 나오더니, 녹화본이 나가고 나서 논란이 한 층 더 커졌다. 특히 로사는 자기 무대 때도 그렇고, 마지막 수상식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인성 논란이 붉어졌다.

거기다 그날 녹화 장소에 있던 스태프들이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면서 더욱 논란이 커져만 갔다.

나와 누나에게 꼰대 짓을 하고 평소 스태프들과 멤버들에게도 갑질을 하는 등. 한번 터지기 시작한 폭로전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음악 방송 마지막 무대를 두고 아예 무대에 나오지 않으려 했다는 것까지 폭로되면서 로즈데이의 이미지가 계속 추락하고 있었다.

“이러다 그룹 해체되는 거 아니야?”

내가 로즈데이 로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었다.

로즈데이의 말로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던가.

로즈데이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펑 터져버리고 만다. 그 당시 잘 나가던 걸그룹이 갑자기 폭파돼서 구설수가 많았는데, 이번에 로사를 보고 왜 그룹이 폭파됐는지 알았다.

“그래도 다른 언니들은 성격 좋아 보이던데.”

혜나 누나는 대충 기사를 확인하다 SNS 계정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DM이 왜 이렇게 많이 왔지?”

평소에도 많이 오지만, 오늘은 그에 몇 배는 더 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것들을 확인하던 누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누나?”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싱글벙글 웃고 있던 누나가 못 볼 걸 봤다는 듯 하얗게 안색이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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