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66화 (66/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66화

“너희들은 질리지도 않고 또 왔냐?”

“헤- 누나가 1등 하는 꼴을 또 볼 순 없잖아?”

“그래, 너희들은 좋겠다. 여고생들이 허구한 날 따라다녀 주고 스밍도 줄기차게 해 줘서. 근데 이걸 어떡해? 이번에도 또 2등 할 것처럼 보이던데.”

오늘도 어김없이 보이그룹 EXE와 걸그룹 로즈데이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물론, 로즈데이 멤버 중 EXE와 신경전을 벌이는 건 로사밖에 없었다. 오히려 다른 멤버들은 사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비밀리에 만나 연애하기까지 했다.

“저번 주에는 우리가 1등했던 거 알고 하는 말씀이시죠?”

알고 있다.

그때 로사가 대기실에 있던 물건들을 죄다 집어 던지고 쌍욕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는 건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스태프들한테도 막말을 일삼는 건 이제 일상이라 놀랍지도 않았다.

“누나. 요즘 세상 무서워요. 그렇게 하다 사건 한번 터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내가 뭘? 누가 보면 사람 때린 줄 알겠다. 너야말로 말조심해. 너 때문에 괜히 이상한 소문 돌면 가만 안 둬. 너라고 사건 터질 건덕지 없는 줄 알아?”

“하하. 그래서 저도 항상 입 꼭 닫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던 중, 스태프 하나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EXE는 8번째 스테이지입니다. 로즈데이는 9번째고요.”

간단히 순서를 알려주고 나가려는데, 그런 스태프를 로사가 붙잡았다.

“잠깐만. EXE가 8번째이고 우리 로즈데이가 9번째라고?”

“네.”

“우리가 왜 9번째야? 10번째가 마지막 무대 아니야? 오늘 혹시 누구 펑크냈니?”

스태프의 나이가 얼마나 되든 상관하지 않고 반말부터 해 대는 것이 로사의 버릇이었다.

또 이 여자가 지랄을 떨겠구나 라는 걸 직감한 스태프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 마지막 무대는 JJ가 맡기로 했어요.”

“JJ? 그 남매 그룹? 걔네 저번 주부터 안 나오지 않았어? 거기다 내가 분명 우리 로즈데이가 마지막 무대라는 걸 들었는데.”

“네, 저희도 어제 갑자기 순서가 바뀌게 되어서요.”

“뭐?!”

로사의 언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그녀는 스태프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누가? 누가 그걸 함부로 바꾸랬어!”

“그, 그거야 PD님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스태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로사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스태프에게 소리를 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멤버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나 오늘 무대 안 나가.”

“뭐어?”

“아니. 로사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안 나가면 어떡해?”

“됐어. 나가고 싶으면 너희들끼리 나가든지 알아서 해. 넌 가서 PD한테 말해. 나 오늘 무대 안 나갈 거라고.”

로사는 다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EXE도 로즈데이 멤버들도 벙찐 얼굴로 로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기 로사야. 그러지 말고 우리······.”

“시끄러워. 난 분명히 말했어. 오늘 스테이지 안 나간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스태프는 얼른 PD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보통 스태프가 PD에게 직접 말을 걸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상황이지 않은가.

“PD님!”

“응? 왜?”

스태프는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달했다.

어메이징 뮤직쇼를 맡은 이명학 PD는 보고 있던 서류를 땅바닥에 던져 버렸다.

“하- 그게 드디어 미쳤나. 지금 어디서 감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속은 천불이 났지만 일단 무조건 흥분하는 건 옳지 못한 자세였다.

로즈데이가 좀 인기 있는 그룹이던가.

아무리 음악 방송 PD라고 해도 인기가 많은 그룹한테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인기 많은 그룹이 나와야 시청률이 높게 잡히고 녹화 방송을 찾아오는 팬들의 숫자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로사는 대형 기획사 대표의 조카이고, 동시에 현재 걸그룹 중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인상을 가득 쓰고 있었던 이 PD가 막상 대기실 안에 들어가서는 활짝 웃는 얼굴을 보였다.

“우리 로사님.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실까?”

“설마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응? 난 정말 모르겠는데.”

“왜 우리 로즈데이가 마지막 순번이 아니죠? 왜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한테 순서를 양보해 줘야 하냐고요.”

별 같잖은 아이돌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음악 방송에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는 건 그 가수가 대세라는 걸 뜻하니까.

거기다 음원 순위도 거의 1위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의 성적이 아니라면 절대 마지막 순번을 내어주지 않는다.

지금 로사는 자존심이 상한 것이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남매 그룹에게 마지막 무대를 빼앗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냉혹한 경쟁의 세계이지 않은가.

항상 새로운 별이 뜨고, 기존에 있던 별은 별똥별처럼 떨어져 사라지고 만다.

“로사도 잘 알잖아. 우리도 원래는 마지막 무대를 로즈데이한테 주려고 했지. 그런데 요즘 그 남매 그룹이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 영상 못 봤어? 교차 편집으로 맛깔나게 누가 편집해 주는 바람에 우리도 곤란해졌다니깐? 저번 주부터 못 나온 애들을 다시 불러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도 마지막 무대를 내어 준 거고.”

이 PD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저번 주부터 아예 섭외조차 하지 않았던 남매 그룹이다.

음원 순위가 30위에 불과한 팀을 누가 부르려 하겠는가.

그런데 최근 갑작스러운 음원 역주행으로 순위가 크게 달라졌다. 거기다 시청자들의 기대도 매우 커져서 도저히 섭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무대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태클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EXE만 봐도 딱히 순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굳이 마지막 무대에 서지 않아도 어차피 수많은 팬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즈데이도 그와 다르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 로사는 이런 것에 집착하곤 한다.

“미안해. 내가 미리 언질을 줬어야 했는데. 이틀 전에 그쪽 소속사에 섭외 요청하면서 그쪽이 먼저 제안한 거라서······.”

“그걸 덥석 받았고요?”

“받아야지. 안 그러면 다른 프로에 빼앗길 텐데? 그 애들이 우리 음방 안 나오고 다른 곳만 나오면 시청률은 어떻게 하라고?”

“내가 있잖아요, 내가! 그 사람들이 고작 그 남매 보려고 TV를 켰겠어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로즈데이 정도 된다면 충분히 가질 만한 자신감이기는 하나,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대중들은 예전 같지가 않다.

TV가 인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 만드는 세상이다.

그로 인해 반짝 뜨는 것이 몇 배는 더 많아졌고, 그만큼 사라지는 것도 훨씬 많아졌다.

그에 따라 음악 방송도 발을 맞춰 나가며 트랜드를 따라가야 한다.

“아무튼, 난 안 나가요. 마지막 무대 다시 돌려줄 때까지는. PD님이 알아서 결정하세요. 그토록 귀여워해 주시는 JJ가 오래 갈지, 아니면 내가 더 오래 갈지.”

“······.”

더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이 PD는 대기실을 나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어후. 저 미친년. 요즘 잠잠하나 싶었더니, 또 지랄이네.”

잠깐 고민하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대표님. 저 이명학 PD입니다.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오늘 로사가 말이에요. 글쎄······.”

일단 방송을 살리고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괜히 로사 없이 로즈데이를 스테이지로 보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당분간은 여기 안 올 줄 알았는데.”

음원 순위가 30따리밖에 되지 않는 놈들을 불러 주는 음악 방송은 없다. 하지만 옛날에 나온 곡이라도 역주행을 해서 10위권 안에 들면 직접 섭외 요청을 한다고 들었다.

딱 나와 누나의 사례가 그렇다.

뉴튜브 영상 하나로 40위까지 떨어졌던 곡이 10위를 돌파하고 마침내 3위까지 돌파했다. 그러한 이유로 여기 방송국 PD가 우리 대표님에게 전화해 섭외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게. 나도 당분간 안 올 줄 알았어.”

2주 전 방송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는 음악 방송에 못 나올 줄 알았다.

역시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가.

특히 뉴튜브와 우리 남매가 참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때마다 알고리즘의 신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저 바닥으로 묻힐 뻔한 곡을 끌어 올려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운이 좋았지. 다른 프로듀서들한테 들어보니까, 우리가 몇 주 동안 2~30위 유지한 것도 대단한 거래. 보통 노래가 질려서 금방 다른 걸 듣기 마련인데, 우리 곡은 꾸준히 들었다는 거니까. 그만큼 중독성 있고 노래가 좋다는 거지.”

“그럼~ 누가 만든 곡인데. 분명 사람들이 작사를 잘해서 좋아하는 걸 거야.”

“작사는 그냥 거들어 주는 거지.”

“아니야. 내가 쓴 가사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라니깐?”

나와 누나는 의미 없는 설전을 벌이면서 대기실로 찾아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복도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슬쩍 살펴봤지만, 대기실 문이 닫혀 있어서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스태프들을 통해 얘기를 엿들었다.

“저거 로사 맞지?”

“에휴. 또 지랄인가 보네.”

“이번에는 또 왜 저러는 거야?”

“뻔하지. 원래 오늘 로즈데이가 마지막 무대하기로 했는데, 그걸 신인한테 빼앗겼잖아.”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점점 더 다음 상황이 궁금해졌다.

“누나. 우리 대기실은 이따가 들어갈까?”

“응. 궁금하지 않냐? 갑자기 왜 이렇게 신나지? 히히.”

누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복도 끝 쪽에 몸을 숨겼다.

이윽고 담당 PD가 헐레벌떡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이번에도 앙칼진 로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마지막 무대를 내놓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하는 것 같았다.

누나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와~ 진짜 인성 대박이네.”

“그러니깐. 설마 톱스타들이 다 저러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우리는 나중에 인기가 엄청 많아져도 절대 저러지는 말자.”

담당 PD가 나가고 나서 얼마 안 있다 이번에는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대기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또 고성이 오고 간 뒤에 EXE가 먼저 나가고 그 뒤로 로즈데이가 따라 나갔다.

로사가 동행하는 것을 보니, 무대에 나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하다 결국 꼬리는 내린 모양이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이렇게 방송을 펑크내면 안 좋은 소문이 방송가 전체에 퍼져 결국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 그것을 알기에 소속사 대표가 로사의 안하무인 함을 절대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야, 저기 가보자.”

“응?”

“저번에 저 언니가 그랬잖아. 인사 똑바로 하고 다니라고. 그 말대로 해 줘야지.”

누나는 내 손을 붙잡고 로즈데이의 뒤를 따라 앞질렀다.

“어머,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이렇게 또 뵙네요.”

다른 멤버들은 밝은 미소로 인사를 받아 주는데, 로사는 오만상을 다 썼다.

혜나 누나는 로사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말릴 새도 없었다.

“안 그래도 저희가 오늘 첫 마지막 무대를 맡게 돼서 너무 떨리는 거 있죠? 혹시 마지막 스테이지는 특별히 해야 할 게 있나요? 로사 선배님이 이런 쪽에 베테랑 이시잖아요.”

혹시 주먹이 날아오는 건 아닐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