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64화
“오, 저 남매 그거 맞지? 홍대에서 레전드 영상 찍었다는.”
“맞아, 나 그거 10번도 더 넘게 봤잖아.”
“하- 진짜 데뷔하는 거였네. 어디 대기실에 있었던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구경 좀 해 놓을걸.”
대기실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던 로즈데이 멤버들은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뉴튜브와 각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가 된 남매 그룹을 이들도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유독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건 로사였다.
“너희는 저 얘들이 좋니?”
“왜~ 엄청 귀엽잖아.”
“특히 저 남자애가 잘생겼어. 내가 보이 그룹 많이 봐왔지만, 쟤처럼 잘생긴 사람은 드물다니까?”
“맞아, 맞아. 뭔가 고풍스럽게? 아니, 귀족스럽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이미 다른 대기실에서 저 남매와 부딪혔던 로사는 멤버들의 반응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로사도 저 남매가 인터넷에서 연이어 화제를 일으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 한눈에 알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왠지 자기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 같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저 혜나라는 여자애는 멀리서 봐도 광채가 난다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평소 외모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로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광고와 모델 요청이 오늘부터 줄어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원래 이 바닥이 그런 식으로 순환되지 않던가.
처음에 반짝이던 스타는 금방 다른 스타에게 묻히고 만다.
이곳에서 영원히 탑을 유지하는 스타는 없다.
“난 잘 모르겠는데.”
“뭐? 진짜? 저 얼굴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래, 비주얼도 미쳤는데, 목소리는 더 미쳤잖아.”
TV에 저 두 연놈이 나오는 게 그렇지 않아도 짜증 나는데, 멤버들의 반응은 더 짜증 났다.
로사는 몸을 획 돌리고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TV에 시선이 갔다. 저 매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려고 해도 문득 망설여졌다. 저 노래를 끝까지 듣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새 그녀의 고고한 자존심마저 넘어서 버렸다.
결국 그녀는 이어폰으로 다른 노래를 듣는 척하면서 라이브 화면에 흘러나오는 저 남매의 음악을 감상했다.
“저기 관중들도 엄청 조용하다.”
보통 인기 없는 가수가 나오면 관중석은 고요해진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모두 저 남매가 만들어내는 무대에 흠뻑 빠져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절절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신나는 박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인데도 무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예술적인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무대를 감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썩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무대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무대가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남매가 함께 손을 잡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올리자 멤버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뭐야. 벌써 끝났어?”
“으- 한 곡만 더 불러줘.”
그들은 뒤편에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로사에게 말했다.
“이래도 안 좋아? 노래도 진짜 좋은데?”
“난 안 들어서 모르겠어. 들으나 마나 뻔하지.”
일부러 노래를 듣지 않은 척하며 로사는 악평을 퍼부었다.
“저 남매가 얼마나 오래 갈 거 같니? 지금이야 관심 좀 받았다고 확 뜰 거 같다지만, 남매 그룹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어? 저것도 결국 한순간이야. 거기다 애들이 싸가지가 없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싸가지가 없다니?”
“얘들이 어려서 그런지 인사성도 없고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르더라고. 저런 얘들이 활동해봐야 뻔하지. 몇 달도 못 버틸 거다.”
거기서 그쳤으면 됐는데, 로사는 괜히 멤버들에게도 핀잔을 주었다.
“너희들은 다른 얘들 신경 쓸 시간 있으면 연습이나 더 해. 그러니까 우리 걸그룹이 원툴 멤버라고 욕먹지.”
“······.”
멤버들은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로사에게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로즈데이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가 바로 로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룹의 스케쥴부터 사소한 것까지 로사의 영향력이 컸다. 더군다나 소속사 대표의 조카이기도 해서 멤버들은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로사의 뒤를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갔다.
***
“잘한 건가? 잘했겠지? 아니. 못했나? 혹시 우리가 뭘 실수를 한 건 아닐까?”
무대에 올라서기 전에는 자기가 다 부숴버리겠다는 둥, 무대를 뒤집어 버리시겠다는 둥 자신만만했던 사람이 지금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누나를 붙잡아 의자에 앉혔다.
“누님. 진정하세요. 아까 무대에서 보니까 하나도 안 떨고 정말 잘하던데, 왜 내려와서 그래?”
“진짜? 내가 잘했어?”
“잘했다니깐.”
“아니, 관객들 반응이 좀 이상해서. 너무 반응이 없었잖아.”
아이돌 그룹만 나오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관객들이 우리가 나왔을 땐 정말 도서관에 온 것마냥 조용했다.
나도 의아하긴 했지만, 그게 나쁜 의미로 고요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우리 노래를 조용히 감상하고 싶었던 거겠지.”
“아니야. 우리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으으- 내가 혹시 음정을 잘못 잡은 걸까? 오늘 목 상태가 좀 이상했거든. 데뷔 무대를 다 망친 거면 어떡하지?”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누나의 두 볼을 붙잡으며 말했다.
“장혜나.”
“뭐? 자, 장혜나?”
“그래. 장혜나. 앞서 걱정하지 말고 조용히 마음 진정부터 시켜. 심호흡하고.”
“······.”
누나는 갑자기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왜 그래?”
“니, 니가 코앞에서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입냄새나게.”
나도 정신을 차려보니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흠흠. 아무튼, 진정 좀 해. 우린 충분히 잘했어.”
사실 난 지금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누나와 함께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토록 누나가 원하던 가수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내가 그 옆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전생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고 누나의 이름이 정상에 올라서야 마음 놓고 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다행이고. 히히.”
워낙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조금 전 자신을 불안하게 했던 근심이 전부 사라진 모양이다.
“아~ 배고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을 거 좀 챙겨 올걸.”
“몸매 관리해야지.”
“엥? 내가 무슨 걸그룹도 아니고 무슨.”
“대표님이 그랬잖아. 우리 그룹은 노래도 노래지만, 비주얼로도 승부를 봐야 한다고.”
“그렇다고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이 굶어서 쓰겠어? 거기다 이 누나는 먹어도 살이 안 찐단다.”
젠장. 부럽다.
특이하게 누나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그에 반해 나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었다. 그나마 소속사에서 매주 3~4번씩 춤을 추고 헬스도 하면서 몸이 유지가 되는 중이다.
“혹시 기생충 있는 거 아니야? 먹어도 살 안 찌는 사람은 기생충 검사해봐야 한다는데.”
“응, 구충약 이미 먹었어.”
“······아니면 진화가 덜 되었다거나. 원래 살 안 찌는 사람들은 진화가 덜 된 거래.”
“응, 너 많이 해 진화.”
말하면 말할수록 내가 지는 거 같다.
그래, 마음껏 먹어라.
난 닭가슴살만 챙겨 먹을 테니까.
물론, 아직 나도 한창 자랄 때라서 식단 관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빡센 관리를 통해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얘들아~!”
우리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매니저 형이 빵과 음료수를 들고 나타났다.
“어머. 오빠! 그거 빵이야?”
“응, 너희들 배고플 거 같아서 가져왔지. 오늘 무대 진짜 좋더라. 고생 많았어.”
사람 좋은 매니저는 허기진 우리를 위해 빵을 뜯어 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아참, 이거 대표님한테 말하면 안 된다? 살찌는 거 주지 말라고 했거든.”
“역시 오빠가 최고라니깐.”
“고마워요, 형.”
누나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척이나 허기진 상태라 열심히 빵을 뜯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 TV에는 로즈데이의 마지막 무대가 이어졌다.
빵을 반쯤 먹고 있던 혜나 누나는 로사의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우는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
“아,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네.”
“왜?”
“아니. 글쎄 아까 대기실에서······.”
누나는 매니저에게 일러바치듯이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 주었다.
“음, 오빠도 여기에 그리 오래 있진 않았지만, 다른 선배님들한테 연예인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지. 나도 로사에 대해서 몇 개 듣긴 했었어. 스태프들한테 갑질이 그렇게 심하다더라. 매니저는 말도 못 하고. 뭐 촬영할 때도 갑자기 성질부리면서 판 엎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던데.”
“와~ 그 정도야?”
“나도 들은 이야기야.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래. 인성 좋은 연예인 만나보기 힘들어. 다들 TV랑 현실이랑 이미지가 많이 다르거든.”
누나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여기 말고 다른 음방 가면 또 마주칠 거 아니야.”
난 그런 누나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그럼 조용히 인사만 하면 돼.”
“그냥 인사하라고?”
“응, 원래 여기가 성적순이라면서. 잘 나가기만 하면 선배도 후배처럼 보이는 법이야. 생각해 봐. 만약 우리가 로즈데이보다 더 잘 나가게 돼서 로사랑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음. 잠깐만.”
그냥 한 말인데, 누나는 진지하게 눈을 감고 혼자 망상을 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괜히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 우리가 인사를 하려고 하기도 전에 그쪽에서 먼저 도망갈걸?”
“생각만 해도 짜릿하겠네.”
누나처럼 망상을 펼치진 않았지만, 나도 왠지 벌써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인사 같은 거야 100번이고 1,000번이고 해 줄 수 있다. 설사 내가 더 좋은 성적을 내며 그 사람 위에 있어도 말이다.
누나는 다시 빵을 들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려면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오기가 섞인 의지를 활활 불태우며 누나는 TV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로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
일주일 동안 3대 음악 방송 녹화를 전부 마치고 난 뒤, 나와 누나는 첫 방송만을 기다렸다. 방송이야 이미 우리 남매가 스테이지에서 노래를 부른 녹화본이 있기 때문에 딱히 중요하진 않았다.
첫 방송이 중요한 건 바로 음원 발매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 직후 곧바로 음원이 발매된다.
“솔직히 10위권은 바라지도 않는다. 100순위 안에만 들어도 선방한 거야.”
생각보다 강 대표는 야망이 작았다.
누나가 그런 강 대표를 팔꿈치로 툭 치며 잔소리를 해댔다.
“대표님. 이왕 노릴 거면 10위는 노려야죠.”
평소 망상이 심한 누나도 뻔뻔하게 1위를 노릴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하, 10위? 그러면 대박이지. 쟁쟁한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거니까. 연욱이 너는?”
“네?”
“넌 몇 위 할 거 같냐?”
“음-”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1위?”
“······.”
두 사람 모두 말없이 날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혜나 누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보면 니가 나보다 더 망상이 지나친 거 같아.”
강 대표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우는 시늉을 했다.
“만약 1등 하게 되면 나한테 갖고 싶은 거 다 말해. 뭐든 사줄게.”
내가 너무 현실 감각이 없는 건가.
하지만 저번 생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뭐든 하면 잘 될 것만 같은 묘한 기대감이 자꾸만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