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60화 >
휘파람을 부르며 출근한 강세원 대표는 이상한 보고를 하나 듣게 되었다.
이은지 디렉터와 여러 프로듀서들이 어제 낮부터 오늘 아침까지 작업실에 붙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공동 작업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나?”
“아니요. 그런 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하네.”
그는 이은지 디렉터와 여러 프로듀서가 작업실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
아무리 그래도 밤을 새가며 작업을 하는 경우는 드문데, 다 같이 모여서 뭘 하고 있던 걸까. 궁금증에 강 대표는 해당 작업실로 향했다.
“아니. 여기서 다들 뭐해?”
그러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누군가 대답했다.
“연욱이가 준 숙제하고 있어요.”
“엥? 숙제라니.”
“여기 악보들 보이시죠? 이거 다 연욱이가 쓴 거예요.”
프로듀서들이 상위에 어질러져 있는 악보들을 가리켰다.
단순히 몇 장이 아니라 수십 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악보들이었다.
“무려 100장입니다, 대표님.”
“100장? 혼자 악보를 100장이나 썼다고?”
“네, 그것도 일주일 만에요. 처음에는 다른 악보집에서 베껴온 줄 알았다니깐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이게 다 자기가 창작한 곡들이에요.”
강 대표는 입을 떡 벌렸다.
“농담하는 거지?”
“진짜라니깐요? 오죽하면 이 감독님이 우리를 다 집합시켜 놓고 검토해 보라고 하셨겠어요.”
뭔가 특별해 보이는 악보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구잡이로 휘갈겨 쓴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어지러운 악보들이었는데,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냥 쓰레기라고 욕하며 그 자리에서 폐기 처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은지 디렉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장연욱이 만든 악보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건 이것들이 쓰레기라고 치부될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감독. 우리 정규 앨범 내는 게 아니라, 싱글 앨범으로 내는 거 알지? 많아 봐야 3~5곡만 내는 거야. 그런데 악보를 100장이나 준비하라고 했어?”
그러자 악보에 파묻혀 있던 이은지 디렉터가 안경을 벗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제가 그러라고 했겠어요?”
“당연히 안 그런 거 잘 알지. 그런데 초짜인 내 눈으로 봐도 악보가 좀 엉망인 게 보이는데? 기승전결이 없는 것도 많고. 이건 그냥 낙서 수준 아니야?”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죠. 음악 좀 공부한 사람들이면 이 악보가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걸요?”
“응?”
강세원 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완성인 이 악보들에 대체 무슨 가치가 담겨 있다는 것일까?
“이건 곡을 완성시키려고 쓴 게 아니에요. 자기한테 떠오르는 악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거죠. 악보의 기승전결을 보는 게 아니라, 이 안에 담긴 음률이 뭔지를 봐야 한다는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연욱이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악보라는 거죠.”
“그래?”
“네, 제가 왜 프로듀서들을 한곳에 모았겠어요. 이거 다 오픈 소스에요. 연욱이가 곡 제작에 도움을 조금 주는 대신, 소스는 오픈한다고 했거든요.”
오픈 소스라는 건, 작곡가가 만들어 놓은 틀을 타 작곡가들이 가져다 쓰는 걸 허용한다는 뜻이었다. 매번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프로듀서들에게는 단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표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요. 바겐 세일할 때 얼른 달려들어야죠.”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어휴, 그럼요. 솔직히 연욱이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대체 머리가 어떻게 되어 먹었기에 틈만 나면 머리에서 악상이 떠오를 수 있답니까?”
“다 좋은 소스는 아니어도 진짜 쓸 만한 것들도 있어요. 진짜 천재에요, 천재.”
“천재가 아니라 괴물이지. 나랑 넌 방에 가둬 놓고 하루 종일 악보만 쓰라고 해도 몇 장 못 쓸걸?”
이들도 무작정 아무거나 휘갈겨 쓸 순 있다. 하지만 이 악보들은 언뜻 보면 마구잡이로 쓰인 것처럼 보여도 규칙이 존재하고 귀에 듣기 좋은 음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이들이 혀를 내두르며 악보를 열심히 탐구하는 것이었다.
소스를 오픈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대어를 낚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 대단하지 않아요? 이 많은 소스를 그냥 오픈하다니.”
“그만큼 쉬지 않고 악상을 떠올릴 수 있다는 뜻이겠지.”
“부러워라. 난 그중에서 딱 10%만 떠올라도 소원이 없겠다.”
프로듀서들의 푸념을 들어주다 강 대표는 작업실을 나왔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최대한 빨리 연욱이와 혜나를 데뷔시키려 했다. 그런데 이런 속도라면 더 빠른 일정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연욱의 재능이 빛을 발하면 발할수록 더욱 바빠지는 건 강세원 대표였다.
***
여러 프로듀서가 모여 100개의 악보를 검토했고 그중에서 가장 듣기 좋은 악상만 모아 곡을 완성했다. 나 혼자 했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와 혜나 누나가 대중들을 향해 부르게 될 첫 번째 곡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대망의 첫 녹음이다.
모든 앨범이 그러하듯, 첫 녹음에 곡이 완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가능하면 많이 녹음해서 더 나은 버전을 찾아야 비로소 앨범에 수록되는 것이다.
“혜나야. 준비됐지?”
“네~”
헤드셋을 끼고 먼저 녹음실에 들어간 혜나 누나는 조금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가이드 보컬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나, 기존에 있던 노래들을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누구의 가이드도 없이 오직 누나의 목소리로만 이 노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한 것이다.
곡의 스타일이 어떻게 결정되었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어떻게 소화를 시키느냐에 따라 기존에 있던 스타일도 완전히 바뀌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할게.”
내가 직접 녹음한 빠른 리듬의 피아노와 드럼 소리가 작업실 안을 가득 채웠다.
“무엇을 하든 나와 함께 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잠에 드는 것도 나와 함께 해.”
누나의 청명한 목소리까지 더해지면서 노래의 맛이 한층 더 살아나고 있었다.
우리의 첫 곡의 제목은 ‘함께 해’로 정했다.
사실 곡은 내가 만들었지만, 작사한 건 바로 혜나 누나였다.
전형적인 사랑 노래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닌데, 누나가 작사한 것을 보고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은지 디렉터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몇몇 글자를 수정하는 것 외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곡을 누나가 며칠 동안 연습하며 마침내 녹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함께 해~ 달빛이 흐르는 이 거리를 걷는 것도 함께 해.”
비트가 빠르기도 하고 ‘함께 해’라는 말이 반복되면서 묘한 중독성을 일으키는 것이 이 노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누나의 목소리에 최적화된 곡이라 내 파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첫 녹음을 하는 동안 이은지 디렉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렇게 몇 번 녹음을 반복하다 결국 그녀는 잠깐 노래를 중단시켰다.
“혜나야. 잠깐 휴식 좀 할까?”
“아, 네.”
누나도 녹음이 수월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는 목소리에 힘이 없어졌다.
“연욱아. 너도 들으면서 뭐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니?”
“음······. 사실은 그래요.”
난 이은지 디렉터가 왜 인상을 굳히며 녹음까지 중단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누나도 알고 있을 걸요?”
“그래. 평소랑은 목소리가 좀 달라. 이건 네가 원한 목소리가 아니잖아? 이걸 뭐라고 해야 되지?”
“어딘가 막혀 있는 거 같은 느낌?”
“그래. 목에 뭔가 낀 것처럼 답답한 느낌이야.”
혜나 누나는 울상이 된 얼굴을 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 오늘 저 엄청 못 하죠.”
“잘 아네.”
이은지 디렉가 원래 빈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비판을 하는 것에 있어도 거침이 없었다.
“너 컨디션 조절 실패한 거 아니야? 아니면 어제 너무 연습을 많이 했나? 목이 나간 건 아니지?”
“아니에요. 어제도 일부러 노래 연습 조금만 하고 일찍 잤어요. 근데 저도 자꾸 뭔가 빼 먹은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이상하게 노래에 집중이 안 돼요.”
솔직한 누나의 대답에 이은지 디렉터의 앙칼진 목소리도 조금 풀어졌다.
“아마 정식 녹음은 처음이라서 그래. 거기다 가이드 보컬 없이 부르는 거잖아? 혼동이 올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이걸 극복 못 하면 앞으로도 너만의 곡은 절대 못 불러. 알지?”
“네.”
“결국 연습이 최고의 답이야. 일단 더 해 보자. 다시 들어가. 하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은지 디렉터는 누나를 다시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냥 최대한 많이 부르게 해서 익숙해지도록 해야 할 거 같다. 하다 보면 자기도 어디가 문제인지 저절로 알게 되겠지.”
그렇게 다섯 번을 더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건 없었다.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온 프로듀서들도 한숨을 쉬는 이은지 디렉터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접어야 하나.”
두 번을 더 시도하고 나서도 진전이 없자 아예 다음 날을 기약하려 하는 것 같았다.
“잠시만요, 감독님.”
“응?”
여기서 녹음을 중단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첫 녹음을 이렇게 망쳐 버리면 두 번째 녹음 때 나아질 거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안 좋은 기억들 때문에 더 실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즉, 극복하려면 여기서 극복을 해야 한다.
“차라리 제가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무슨 소리야?”
“MR 틀지 마시고, 제가 들어가서 피아노 연주 직접 할게요. 드럼만 MR로 넣어 주세요.”
네가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프로듀서들의 눈빛이 내게 쏘아졌다.
하지만 이은지 디렉터는 날 똑바로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둘이 같이 들어가서 해 봐. 라이브 연주도 나쁘지 않지.”
난 헤드셋을 챙기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다.
“힝. 연욱아.”
“누나, 여기 내 옆에 앉아 봐.”
나는 누나와 같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마이크 세팅을 피아노 앞쪽으로 돌려놓았다.
“MR은 딱 드럼만 나올 거야. 피아노는 내가 직접 여기서 연주할 거고.”
“그래? 같이 부르는 거야?”
“응, 같이 불러 보자. 어차피 우리 둘이 같이 부르는 노래잖아? 뭐, 내 파트는 쥐꼬리만 하긴 하지만.”
침울했던 누나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이 감독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곧 헤드셋으로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난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뜨던 눈, 이젠 그대와 함께 뜨죠.”
누나의 본래 목소리가 감미롭게 흘러나왔다.
헤드셋을 통해서 들리는 음색이 방금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무엇을 하든 나와 함께 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잠에 드는 것도 나와 함께 해.”
이어지는 노래도 안정적으로 소화를 하면서 방금 전 일은 전부 다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평소보다 더 잘 부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저 너머에 있는 이은지 디렉터와 프로듀서들의 표정도 밝아진 것을 보니, 단순히 내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누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열심히 연주를 이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불러야 할 파트가 나왔다.
“서로 오래 떨어져 있던 우리. 이젠 헤어지지 않고 모든 걸 함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