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58화 (58/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58화 >

“음? 벌써 녹음 끝났어?”

강세원 대표는 회사 카페에 앉아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 장혜나와 이은지 디렉터에게 다가왔다.

“이제 작곡만 하면 돼요. 리딩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요.”

“고작 하루 만에 리딩이 끝나? 너무 대충한 거 아니야?”

대충이란 말에 이은지 디렉터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떴다.

“지금 저한테 대충했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평소에 무표정이다 가끔 저렇게 화난 표정을 지으면 이은지 디렉터만큼 무서운 사람이 또 없을 것이다.

강세원 대표는 얼른 본인의 입을 때리며 말했다.

“아, 미안. 내가 말실수했네. 우리 이 감독이 대충 할 사람이 절대 아니지. 그렇고말고. 그냥 나는 평소보다 일찍 끝난 게 의아해서. 보통 리딩 한번 하면 몇 주 걸리잖아.”

“저도 얘들이 첫 녹화라서 좀 오래 보고 시작하긴 했어요. 그런데 연욱이가 너무 빨리 캐치를 해줘서 저야 뭐 하는 것도 없이 잘 끝냈죠, 뭐.”

“그래? 이번에도 연욱이가 한 건 했다는 거지?”

요즘 들어 장연욱에게 관심이 많아 보이는 강세원 대표였다.

외모면 외모, 음악이면 음악, 마케팅이면 마케팅.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재다능한 아이이지 않은가.

“혜나한테 물어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빡세게 같이 연습을 했나 봐요. 아무래도 합을 많이 맞추다 보면 금방 리딩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렇긴 하지. 이 감독이 옆에 있었으니, 방향도 잘 잡았을 테고. 그럼, 이제 전체적인 틀만 만들어 주면 되는 거네?”

“아뇨. 그냥 다 연욱이한테 맡겨 보려고요.”

“뭐?”

강 대표는 장연욱의 능력을 매우 높이 산다.

뭔가 미스테리한 놈이라고 해야 할까.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남들과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또한 음악적 재능은 그 이용재 작곡가가 TV에서 대놓고 인정할 정도로 굉장했다.

하지만 이제 데뷔하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모든 걸 맡기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데뷔는 장난으로 하는 게 아니다.

몇 년 동안 공을 들이고 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해 준비하지 않았던가.

“저도 대표님이 뭘 걱정하시는지 알아요. 일단은 한번 맡겨 보려고요. 만약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제가 과감히 커트할 거예요.”

“음, 그래. 이 감독은 생각이 다 있겠지.”

“네, 대표님도 연욱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이번 기회에 본인이 가진 재능이 뭔지 발견하고 그걸 연마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맡겨 본 거고요.”

GN 엔터테이먼트에서 나가는 곡 중 이은지 디렉터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곡에 이름을 올리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다듬어 주거나 아예 곡을 발표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은지 디렉터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강세원 대표가 일찍부터 그녀에게 막강한 권한을 내려 준 것이었다.

그런 이은지가 곡에 간섭하지 않고 전부 장연욱에게 맡겼으니, 당연히 강 대표로서는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하. 이번에는 또 무슨 재능을 발견하셨기에 이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을까?”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연욱이의 음악적 재능이 과연 어디까지인지. 그저 이번 기회로 그 아이가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에요.”

천재는 고작 한 단계 상승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아니. 그 괴물들은 애초에 보통 사람과의 단계 상승 개념이 다르다.

이은지 디렉터가 말한 대로 이번 기회에 장연욱이 본인의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다른 이들보다 몇 단계는 더 높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득 녹음실에 혼자 남아 있는 장연욱이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강세원 대표였다.

마치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환생한 것마냥 오선지 위에 한 폭의 예술 작품을 그려내고 있지 않을까?

***

“으아아아-.”

나는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머리를 책상 위에 박았다.

두통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너무 힘을 주면서 쓴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조금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발전은 있었다.

한 음표도 적혀있지 않던 오선지에 그래도 코드 몇 개가 들어가긴 했으니 말이다.

“근데 묘하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심상법을 통해 혜나 누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은 가능하나, 내가 새롭게 곡을 창조하여 대입하는 것이 힘들었다.

노래를 상상 속에 대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날 미치게 하는 건 새롭게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심상법이 수월하게 가능했던 건, 기존에 있던 곡을 대입했기 때문이다. 혹은 누군가가 새로 만든 곡을 듣고 부족한 점을 찾아 수정을 하거나, 편곡을 하는 건 쉬웠다.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기계를 쑤셔 넣은 듯이 알아서 음률이 떠오르는 신기한 경험도 몇 번 했었다. 그런데 심상법을 통해 전혀 새로운 곡을 만들어야 하니,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생생한 입체감이 사라지고 들려오던 감미로운 누나의 목소리도 난도질당한 것처럼 거칠게 들려왔다.

“연습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머리가 아파도 끝까지 밀어붙이니, 막혀 있던 벽에 조금 구멍이 생기면서 저 무의식이란 공간에 갇혀 있는 음률이 살짝 흘러나왔다. 그것을 듣고 바로 악보에 적어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그나마 꺼내 온 음률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재생을 시켰을 땐 귀에 스파크가 파직 거리는 잡음이 들리지 않았지만, 무조건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곡이라 할 수 없다. 어쩔 땐 잡음이 들려와도 듣기에 좋은 곡들이 있다.

“으아. 뻐근해.”

3시간 동안 책상머리 앞에서 버틴다고 해서 공부가 잘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나 역시도 작곡이 잘 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슬슬 엉덩이가 뭉친 것처럼 아플 때쯤.

“장연욱~!”

카페에서 커피 하나만 사다 주고 이은지 디렉터와 어디론가 홀랑 사라져 버렸던 혜나 누나가 돌아왔다.

밝은 얼굴로 작업실 안에 들어오던 누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뒷걸음질을 쳤다.

“헉!”

“······왜?”

“너 왜 이렇게 못 생겨졌냐? 몇 시간 만에 애 얼굴이 다 죽었네.”

“뭐?”

뒤따라오던 이은지 디렉터가 누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내게 달려왔다.

“정말? 그게 무슨 소리야!”

이윽고 이 감독은 미간을 찌푸리며 혜나 누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이게 어딜 봐서 못생긴 얼굴이야. 완전 퇴폐미 쩌는데.”

“하-. 연욱이 넌 좋겠다. 다들 이 감독님처럼 네 얼굴을 보고 있을 거 아니야.”

“근데 한 3시간밖에 안 지난 거 같은데, 많이 지쳐 보이긴 한다.”

이은지 디렉터는 책상에 올려져 있는 악보를 들어 내가 적어 놓은 음을 확인해 보았다.

“음······.”

침음을 흘리던 이 감독이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곡은 역시 쉽지 않지?”

“그렇게 보이나요?”

“원래 작곡가는 자기가 쓰는 악보에서 감정이 느껴져. 지금 네 악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답답함?”

“제가 어지간히 속마음을 못 감추나 보네요.”

“호호.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한 거야. 작곡이라는 게 어떻게 하루 만에 될 수 있겠니. 기계로 마구잡이로 뽑아내지 않는 이상.”

이은지 디렉터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노력해봐. 결국 천재도 노력이 필요한 거야. 될 때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어. 알겠지?”

“네.”

“그럼 계속 잘 해봐. 회사에 말해 둘 테니까, 당분간 여기는 너희들이 써. 결과 나오면 나한테 제일 먼저 보여 주고.”

힘없이 대답하는 내게 다시 악보를 건넨 뒤 이은지 디렉터는 나와 혜나 누나를 놔두고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에혀. 역시 세상 쉬운 일 없구나.”

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날 혜나 누나가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재밌는 걸 보고 있다는 듯, 얼굴에 앙증맞은 미소가 가득했다.

“누님. 아우가 집중이라는 걸 할 수 있게 잠시 고개 좀 돌리시죠?”

혜나 누나가 저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잘 되던 집중도 갑자기 끊겨 버린다. 그건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풉-. 귀여워.”

“나도 알아. 나 귀여운 거.”

“헐, 넌 진짜 점점 더 뻔뻔해진다.”

“이건 뻔뻔한 게 아니라 그냥 운명을 받아들인 거랍니다. 귀여운 얼굴을 안 귀엽다고 계속 부정하는 게 더 재수 없지 않겠습니까?”

“······.”

누나는 할 말이 없어지면 꼭 저렇게 볼이 부풀어 오른다.

나는 오늘도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시켰다는 편안함에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나마 누나 덕에 머리 아픈 것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작업 다시 하게?”

“응, 대중 앞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우리 남매 데뷔곡인데, 대충 만들어선 안 되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 곡을 떠올리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그래도 이은지 디렉터 말대로 노력하다 보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누나, 나 잠깐 집중 좀 할게.”

“응, 방해 안 해. 옆에서 조용히 게임이나 하고 있을게.”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심상화에 들어갔다.

그런데 누나의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빼.”

“······응?”

“힘을 빼고 하라고. 너 너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나는 눈을 뜨고 핸드폰 게임을 하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한 척하고 있지만, 누나는 날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뭔가 인정하면 지는 것 같지만, 넌 뭐든 잘하잖아. 특히 음악 쪽에서는 남들이 차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그런 네가 남들이랑 똑같은 방법으로 노력을 한다고 하면 손해가 아닐까?”

“무슨 뜻이야?”

“다른 사람들처럼 발버둥 치면서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피나는 노력 끝에 결과물을 얻지만, 너는 그럴 필요 없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얻곤 하니까.”

평소에는 가벼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가끔 저렇게 진지한 어투로 내게 조언해줄 때가 있다. 그땐 진짜로 든든한 내 누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어리면서 또래들과는 다르게 생각이 깊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거기다 내가 누나를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누나 역시 나를 옆에서 가장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 아니던가.

내 성격과 습관이 어떤지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콕 집어서 알려 줄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힘 쓰지 마. 항상 잘해왔던 거잖아. 너무 의식하지 말고 그대로 흘러가게 놔둬. 평온한 강처럼 말······ 악! 너랑 말하다 죽었잖아!”

잘 나가다 갑자기 원래의 혜나 누나로 돌아왔다.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진지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기도 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다.

‘힘을 빼라는 거지?’

지금까지는 물기 없는 행주를 쥐어짜듯이 힘을 주기만 했다. 하지만 평소 내가 했던 걸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억지로 힘을 준 적이 없었다.

누나 말대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그냥 평온하게 의식에 몸을 맡기고 알아서 흘러가게 놔두었다.

계속 머리가 아팠던 건 내가 흐르는 강물을 강제로 역행시키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무식하게 힘을 주기보다는, 흐르는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듯이 몸을 맡겼다.

왠지 누나의 조언이 맞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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