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57화 >
어떤 것이 우리의 데뷔곡이 될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앨범을 만들기 전에 먼저 리스트에 있는 곡들을 하나씩 녹음해 보면서 검토를 하는 것이 주된 방식이다.
“곡은 다양해. 일단 이것저것 다 불러 보자. 그러다 잘 맞는 곡이 있으면 비슷한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내는 거야. 어때?”
“네~”
“오늘 부를 거 엄청 많으니까, 너무 무리해서 목 쓸 필요 없어. 오늘은 그냥 느낌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해.”
이은지 디렉터의 말대로 오늘은 정식 녹음이 아니기 때문에 무리해서 부를 필요는 없었다.
“음, 연욱이는 악기 연주를 하면 좋겠는데.”
“악기요?”
“응, 녹음실 안에 보이지? 미리 기타랑 피아노도 다 준비해 놨어. 만약 앨범 수록곡이 결정되면 대부분의 곡을 네가 연주해야 할 거야. 나중에 공연 나가서도 네가 직접 치면서 혜나랑 맞춰 줘야 하고. 너희들 컨셉이 그거니깐.”
우리 남매 그룹의 컨셉은 오래 전에 정해졌다.
내가 기타나 피아노를 치면 누나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둘이 듀엣을 하며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다.
“준비한 곡 중에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것들도 있고, 아직 우리 기획사에서 발표하지 않은 것들도 있어. 너희들이 직접 불러 보고 필이 딱 오는 걸 골라. 먼저 혜나부터 들어가 볼까?”
“네, 언니.”
언제부터인가 이은지 디렉터와 혜나 누나는 언니 동생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혜나 누나는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 헤드셋을 꼈다.
“자, 하나씩 돌려 보자.”
이은지 디렉터는 준비된 곡들을 하나씩 재생시켰다.
누나는 악보를 확인해가면서 아는 곡은 따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건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나도 이은지 디렉터 옆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인 채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연욱아, 어때?”
그녀는 주로 내게 의견을 물었다.
“혜나 누나한테 의견을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은지 디렉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몇 년 동안 너희를 지켜봤잖니. 결정은 네가 내려야 해. 왜냐하면 네가 이쪽으로는 감이 엄청 좋아 보이거든. 거기다 혜나는 혜나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어.”
“어떤 강점이요?”
“무슨 노래를 하든,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다는 거? 저런 목소리는 정말 흔치 않아. 그리고 혜나는 자기가 부르는 모든 곡에 본인의 색깔을 입히는 능력이 있어.”
그 말은 어떤 곡을 던져줘도 잘 소화해낼 거라는 뜻이다.
이은지 디렉터가 혜나 누나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노래나 시킬 순 없지. 혜나가 최고로 잘 부를 수 있는 곡을 고르는 건 너랑 내 역할이야. 그러니까 귀 쫑긋 열어.”
혜나 누나와 내 첫 앨범이 걸린 작업이다.
결코 대충할 생각은 없다.
“음······.”
그렇게 여러 곡을 듣던 중이었다.
아는 곡도 있었고, 처음 듣는 생소한 곡도 있었다.
대부분 곡에서 귀에 잡음이 들려와 영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곡 하나에 눈이 번쩍였다.
“잠시만요. 이거 곡 이름이 뭐에요?”
“응? 아. 이거 ‘더 스타’라는 영화 알지? 거기서 나온 ost 곡이야. 제목은 I found you.”
영화 더 스타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영화 촬영 기법이나, 스토리가 좋아서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OST들이 하나 같이 명곡들이라 성공을 거둔 사례였다.
그중 I found you라는 노래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듀엣으로 부르는 곡이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피아노랑 드럼으로만 구성된 곡이야. 남주랑 여주가 같이 듀엣으로 부르는 곡이긴 한데, 메인 곡이 아니라서 영화에서도 아주 잠깐만 나와.”
더 스타에 이런 곡이 있었구나.
타이틀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
I found you 라는 이 곡도 그중 하나인 듯 보였다.
“노래가 괜찮네요. 드럼이 섞여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냥 빼도 될 정도고요.”
“그래? 이 노래가 혜나한테 맞을 거 같아?”
일단 내 귀에는 괜찮았다.
다른 곡들과 달리 귀에 잡음도 잘 들리지 않았고.
나는 혜나 누나가 이 곡을 부르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녹음실 안에 있던 혜나 누나의 모습이 내 앞에 생생하게 나타났다.
누나는 흘러나오는 음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 역시 투영되는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또렷하게 들려왔다.
“연욱아?”
“······.”
“장연욱!”
“네?”
“갑자기 눈 감고 뭐해? 사람이 불러도 모르고.”
“아, 누나가 이 노래를 부르면 어떤지 한번 상상해 봤어요.”
그러자 이은지 디렉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너 심상법도 따로 배운 거야?”
“심상법이요?”
“그래. 방금 네가 한 게 심상법이잖아. 상상만으로 여러 가수의 목소리를 떠올려서 곡에 대입해 보는 거지. 원래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나서 누구한테 줘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거든. 나 같은 경우에는 그냥 무작정 여러 가수 노래를 들어 봐. 근데 심상법을 익히고 있으면 그럴 필요 없이 바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다더라.”
딱히 배운 적은 없다.
그리고 그런 게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나도 예전에 배워 보려고 연습했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고. 근데 천재 소리 듣는 놈들은 그냥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된다더니, 그게 너였구나?”
오래 전부터 누나와 같이 다양한 노래를 연습해왔다.
당연히 직접 듣지 않고도 눈만 감으면 누나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고, 그 어떤 노래에도 대입할 수 있었다.
이게 단순히 누나에게만 적용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거 대단한 재능이야. 계속 연습해. 심상법을 계속 연습해서 발전을 시키면 나중에 혼자 상상만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내서 복잡한 클래식 곡도 정밀하게 연주하거나, 작곡도 가능하다고 들었어. 베토벤이 청각을 잃었는데도 오직 상상만으로 작곡했다잖아.”
그러고 보니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음악성이 극한에 달하면 굳이 귀로 듣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만 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베토벤이 그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합창 교향곡이라는 명곡을 만들어냈다.
이은지 디렉터 말대로 한번 진지하게 연습해 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혹시 아는가?
베토벤이 보았던 풍경을 나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지.
“아무튼, 이 곡이 마음에 든단 말이지?”
“네. 이런 스타일의 곡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게 좋아 보여서요.”
“음, 박자도 빠르고 피아노 연주도 강렬하네. 대충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알겠어.”
첫 곡이 정해지자 이은지 디렉터는 혜나 누나가 곡을 부르게 했다.
처음 듣는 곡이라서 누나는 여러 번 반복해 곡을 들은 뒤에야 녹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도 팝송 부르는 걸 좋아했던지라 가사가 영어라도 거부감이 없었다.
초반에는 버벅이며 박자를 놓치기도 했지만, 점점 나아지면서 나중에는 곡을 원만하게 소화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될 거 같다.”
감을 잡았는지 이은지 디렉터가 녹음을 중지시켰다.
“강렬한 피아노 연주에, 후렴도 시원하게 치고 올라가는 곡을 만들어야겠네. 박자도 빨라야 하고. 연욱이 덕분에 엄청 빨리 끝났네?”
가수에게 딱 어울리는 스타일의 곡을 정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앨범이라는 것이 매번 똑같은 컨셉으로 낼 수가 없고, 가수 본인도 때때마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다 달라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꼭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리딩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보통 디렉터는 가수에게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다양한 곡을 부르게 하며 방향을 잡는다. 그래야 어떤 곡을 만들지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만에 끝을 냈다.
“운이 좋았네요.”
“글쎄, 운일까, 아니면 다른 걸까?”
미묘한 미소를 보이면서 이은지 디렉터가 내게 물었다.
“작곡은 네가 해 볼래?”
“디렉터님이 전체적으로 폼을 잡아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원래 대표님도 그러라고 했는데, 생각이 달라졌어. 내가 틀을 잡기보다는, 차라리 네가 처음부터 만들어 보는 게 어때?”
우리 남매 그룹은 내가 작곡을 하고 누나가 그것을 부르는 컨셉이다. 하지만 이제 막 데뷔한 어린놈한테 모든 걸 맡길 순 없으니, 강세원 대표는 이은지 디렉터의 도움으로 틀을 잡게 해 주려 한 것이었다.
나도 첫 데뷔이기 때문에 이은지 디렉터와 같은 베테랑이 나서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군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늘 나에게 총지휘권을 맡겨 버렸다.
“만약 내가 들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땐 다시 하면 돼.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여기 작업실은 곡 다 쓸 때까지 네가 써. 혜나야. 넌 이제 그만 거기서 나와. 나랑 커피 마시러 가자.”
혜나 누나는 총총 걸음으로 녹음실을 나와 이은지 디렉터와 팔짱을 꼈다.
“응? 언니. 연욱이는 안 가요?”
“연욱이는 바빠. 앞으로 매일 여기로 출근해야 할지도 몰라. 곡 써야 하거든.”
“아~ 연욱아. 너 카페모카 마실 거지? 아이스로 사온다?”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작업실을 나가 버렸다.
왠지 귀찮아서 나한테 다 짬 때린 거 같기도 하고.
기분이 좀 묘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근거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곡을 작곡하는 것이니까. 거기다 통과만 되면 그 곡이 나와 혜나 누나의 데뷔곡이 된다.
“묵직하면서 빠른 템포로 구성된 곡이어야 하는데.”
막상 멍석을 깔고 앉으니 크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은지 디렉터가 있을 땐 뭔가 슝슝 머릿속에서 떠올랐는데 말이다.
이게 창작의 고통인가.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아까 심상법이라고 했었지?’
혜나 누나의 노래 연습을 해 주면서 생긴 버릇이 심상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은지 디렉터는 마치 무슨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능력마냥 묘사를 했는데, 속는 셈 치고 나는 눈을 감은 채 누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흐릿하기만 했던 형상이 차츰 또렷하게 변하면서 혜나 누나가 의자에 앉아 I found you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까 녹음실에서 보았던 누나의 노래가 똑같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녹음테이프를 반복 재생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 뭔가 더 집중을 하면,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끙-.”
처음에는 신음을 짧게 흘리며 안간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짰다.
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I found you 와는 전혀 다른 곡을 누나에게 대입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고, 오히려 뚜렷해 보이던 주변 풍경이 일그러져만 갔다.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머리는 아팠다.
과연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아니. 어쩌면 심상법이라는 건 그냥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괜히 이은지 디렉터가 헛바람을 넣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벽을 넘으면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만약 여기서 포기한다면 계속 찝찝한 기분이 남아 집중도 안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상상 속의 이미지와 음률을 만들어냈다.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내 손에 잡힐 때까지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내 앞에 있는 벽을 허물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맨손으로 벽을 파내는 듯, 매우 더뎠지만, 손가락 하나 들어갈 듯이 작은 구멍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벽 너머와 이어지는 순간.
“······!”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던 새로운 음률들이 허물어진 벽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