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56화 (56/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56화 >

참 버라이어티 했던 녹화가 드디어 끝났다.

“흠흠, 혹시 핸드폰 번호 알려 줄 수 있을까?”

방송 마지막 멘트를 낯 뜨겁게 마무리한 이용재 작곡가가 뜬금없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난 상업적인 미소를 보여 주었다.

“물론이죠. 영광입니다.”

“아휴, 무슨 영광까지야. 내가 미리 줄 서는 거지.”

“네?”

“오늘 딱 보니까 감이 와. 아까 내가 했던 말 있지? 그거 절대 빈 말 아니다. 넌 우리나라 안에서만 놀고 있을 애가 아니야. 앞으로 10년 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되어 있을걸? 아니. 10년도 안 걸리려나?”

줄곧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만 보던 사람이 중간에는 아예 방송을 파토 내려고 대본에도 없는 일까지 벌였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덕담을 해 주고 있었다.

“피아노 말고 혹시 작곡이나 다른 쪽에 관심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해. 나도 종종 연락할 테니까. 알겠지?”

그는 명함을 내 손에 강제로 쥐여준 뒤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그가 준 명함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SC 엔터테이먼트 작곡가 이용재.

방송에서 그가 어떤 태도를 보여줬든, 이런 인연은 나쁘지 않다.

이런 거물급 작곡가를 인맥으로 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이다.

“연욱아.”

이용재 작곡가가 사라지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이 황 PD가 다가왔다.

“고생했다. 너 아니었으면 오늘 방송 분위기 완전 이상해질 뻔했어.”

“그랬나요?”

“그래, 이용재 저······.”

목소리를 높이던 황 PD는 잠깐 주변을 살피더니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저 양반이 갑자기 뻘짓 하는 바람에 너만 곤란해졌었잖아. 진짜 대처 잘 해줬다. 그런데 대체 그건 어떻게 한 거야?”

“네?”

“이용재 그 양반이 치던 곡을 똑같이 따라 치는 것도 모자라서 피드백까지 줬잖아. 내가 이걸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모르겠다니깐? 하하.”

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걸 보니 오늘 녹화가 대성공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황 PD!”

그때 뒤에서 황 PD를 찾는 강대웅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를 쿵쾅거리며 다가오던 강대웅은 날 보자마자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날 끌어안기까지 했다.

“이야. 연욱이 너 오늘 진짜 멋있었다. 대체 황 PD는 이런 천재를 어디서 찾았니?”

그는 특유의 오버액션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난 아까 소름이 쫙 돋았다니깐? 황 PD는 안 그랬어? 이용재 그 사람이 아주 깨갱거리면서 꼬리 내리는 게 완전 대박이었어. 혹시 이용재 작곡가랑 미리 말 맞춘 거였어?”

“아뇨.”

“허-. 그러면 그 양반이 오늘 방송 엎을 뻔했다는 거네?”

“그렇죠. 연욱이 아니었으면 진짜 녹화분 다 날아갈 뻔했어요.”

강대웅 MC는 아까 터트리지 못한 화를 여기서 다 터트리려는 모양이다.

“아니. 아무리 선배라도 그렇지. 선배면 모범을 보여야 할 거 아니야. 남의 프로그램 와서 그렇게 깽판 쳐도 되는 거야? 다음부터는 절대 부르지 마.”

“안 그래도 PD들한테 연락 돌릴 생각입니다.”

이래서 PD들의 뒤끝이 무서운 거다.

영향력 있는 PD한테 찍히면 서로 방송사가 달라도 연락망이 닿아 있기 때문에 철저히 방송국에서 매장해버릴 수가 있다.

아마 당분간 이용재 얼굴을 TV에서 보긴 힘들 것 같다.

이거 괜히 떨어지는 끈을 받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연욱아.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방송하면서 쫄깃했어.”

그는 어깨동무를 풀지 않고 있었다.

점점 어깨가 아파왔다.

“그런데 연욱이 연예인한다고 했나?”

“네, 이미 소속사에도 소속이 되어 있어요. 가수로 데뷔한다는데요?”

“오, 그럼 예능도 나오고 그러겠네. 나이가 어리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내가 기회되면 꼭 불러 줄게.”

이건 좋은 신호다.

이용재에 이어 강대웅도 내게 큰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국민 MC라고 불리는 사람이지 않은가.

사람 하나 방송에 꽂아 넣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연욱아. 오늘 녹화 너무 재밌었어.”

“가수로 데뷔한다면서? 넌 그냥 차라리 배우해도 되겠다. 나 오늘 너 보고 벌써 팬 됐잖아.”

강대웅 MC 외에도 오늘 녹화에 참여한 패널들이 하나씩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중 내 번호를 가져간 사람들도 다수.

오늘 여러 인연을 이곳에서 쌓게 되었다.

***

스타 탤런트 커뮤니티.

인기 있는 방송일수록 그와 관련된 커뮤니티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잠잠하던 커뮤니티가 방송날만 되면 뜨겁게 타올랐는데, 그날 글이 얼마나 올라왔느냐에 따라 그 방송의 인기와 재미를 알 수 있었다.

[오늘 마지막 참가자 뭐냐?]

-아무리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거 같던데. 저게 말이 돼? 음대생들 설명 좀.

-나도 오늘 방송 보고 좀 아니다 싶었음. 어떻게 사람이 노래 한번만 듣고 외울 수가 있냐? ㅋㅋㅋ 주작도 적당히 쳐야지

-주작 아님. 절대 음감 중에 노래 한번만 듣고 다 외우는 사람 있다고 했음

-모차르트도 어떤 노래든 한번만 들으면 편곡까지 다 했다면서.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님.

-내 친구 중에도 저런 애 있긴 함. 근데 한번 듣자마자 바로 피아노로 치라고 하면 못할 듯.

-이용재 오늘 찐으로 놀라는 거 같던데. 주작은 아닌 듯.

오늘 커뮤니티가 유독 불타오른 건 스타 탤런트 마지막 참가자 때문이었다.

눈을 끄는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베테랑 작곡가를 침묵시키는 신비스러운 음악 재능까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는 죄다 포함한 역대급 출연자였다.

특히 방송사에서 자극적이게 편집을 잘해 놓아 더욱 사람들이 방송에 몰입한 것도 한몫했다.

[오늘 마지막 출연자가 누군가 했더니······.]

-영화 ‘악마’ 나왔던 그 아역이었네. 왠지 ㅈㄴ잘생겼더라

-아 진짜? 그 아역이었어?

-나 그 영화 5번 더 봤는데, 전혀 눈치 못 챘음.

-와. 아역 때보다 어떻게 더 잘생겨질 수가 있는 거지? ㅎㄷㄷ

-놀라운 건 이제 나이가 겨우 14살이라는 거임

단순히 스타 탤런트 커뮤니티만 반응이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방송에 나온 장연욱의 사진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도 올라갈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 기회를 그냥 놓칠 리 없던 GN 엔터테이먼트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음악 천재 장연욱, 프로필 떴다.]

-알고 보니 GN 엔터테이먼트 소속임. 거기다 최근에 ‘그분’으로 화제 됐던 장혜나 알지? 둘이 남매라고 함

-이야. 유전자 성능 확실하네.

-남매가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거야? 동생은 피아노 치는 거 아니었어?

-가수로 데뷔한다는 말이 있던데.

-저 얼굴이면 진짜 뭘 해도 될 듯.

GN 엔터테이먼트 마켓팅 팀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퍼다 나르고 연욱이와 혜나의 사진을 뿌려댔다. 그럼 알아서 회원들이 그 사진을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연욱이 직접 강세원 대표에게 전수한 나름의 비법이었다. 웃긴 건 이 남매 덕에 주식 커뮤니티도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형들. GN 엔터테이먼트, 이거 사야 할까?]

-장씨 남매 보니까 풀매수해야 할 거 같아서.

-ㅋㅋ 지금 안 주우면 호구임

-3대 기획사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상장은 해 놨네.

[GN 엔터테이먼트 주식 풀매수 간다.]

-관상 투자법이라고 아냐? 관상은 과학임. 모르겠으면 혜나랑 연욱이 얼굴 보고 오셈.

-보고 오니까 진짜 저 쓰레기 주식이 선녀로 보이네.

-선동당하려면 일찍 당하자. 바로 매수 가즈아!!

방송 반응도 매우 좋았고 덩달아 주가까지 상승하니 강세원 대표는 요즘 하도 웃고 다녀서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정말 삼고초려를 하는 유비처럼 끈질기게 찾아가 그 남매와 계약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 한 아이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복덩이 같은 남매.

앞으로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아이들이다.

***

“안녕하세요. YM 엔터테이먼트의 김대의 실장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연락 오는 곳이 많은데, 방송을 나간 뒤부터는 몇 배로 더 많아져서 핸드폰이 불이 날 것처럼 쉴 새 없이 연락이 왔다. 그중에는 소속사들의 계약 제의도 많았다.

- 저희 소속사와 함께 한다면 연욱 씨는 분명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다른 소속사와 이미 계약이 되어 있다고요? 걱정 마세요. 최고의 법무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계약이야 파기하면 그만인······.

내가 이미 다른 기획사와 계약이 되어 있다고 말해도 그런 건 언제든 파기시키고 새로 할 수 있다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오빠. 완전 팬이에요!

- 꺄악-! 전화 받았어. 어떡해!?

그 외에도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지는 등, 하루 종일 전화만 받다가 끝날 것 같았다.

“쩝. 번호를 바꿔야겠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방송 나가고 나서 바로 번호부터 바꾸라고.”

혜나 누나는 이런 일이 익숙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커뮤니티에서 한번 반짝 뜨고 난 이후 누나에게도 별 이상한 전화들이 다 왔었다.

대체 번호를 어떻게 안 건지, 1분마다 한번씩 연락이 오는 통에 결국 누나는 번호를 바꾸고 정말 친한 친구들 외에는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바꾸고 나서도 전화는 계속 오는 거 있지? 다들 참 대단해. 이 정도면 내 개인정보 다 털린 거 아니야?”

“그래도 바꾸고 나서는 연락이 많이 줄었잖아.”

“너도 얼른 바꿔. 괜히 힘들이지 말고.”

“응.”

그래도 혹시 내가 빼 먹은 중요한 연락이 있을까 싶어 +999개가 찍힌 문자들을 대충 확인해 보았다.

워낙 양이 많아서 그냥 포기할까 싶던 중에 유독 눈을 끄는 문자 하나가 있었다.

[연욱아. 방송 나오는 거 봤어. 엄청 잘 나왔더라.]

저번 콩쿠르 때부터 쭉 연락을 끊지 않고 있던 손지연의 문자였다.

“뭐야?”

“응? 뭐가?”

“왜 갑자기 헤벌쭉 웃어? 누구야? 딱 봐도 여자인 거 같은데.”

“여자들한테 가장 많이 연락이 오긴 해.”

“아니야. 너 원래 무덤덤하게 다 씹어 버리잖아. 그런데 방금은 실없이 웃었단 말이지. 혹시 지연이니?”

뜨금 했지만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흐음.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나도 왜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왠지 지연이라고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핸드폰 줘봐.”

“싫어. 사생활 침해 멈춰.”

“뭘 또 멈춰 타령이야. 혹시라도 이상한 연락이 왔을까봐 누나가 확인해 보려는 거지!”

“누나거나 신경 써.”

핸드폰을 빼앗으려 드는 누나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이었다.

“얘들아~”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은지 디렉터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아주 눈만 마주치면 싸우네.”

“싸우는 거 아니에요.”

“그래그래. 서로 애교 부리는 거라고 해 줄게. 근데 녹음할 때는 제발 싸우면 안 된다? 그럼 녹음이고 뭐고 그날 하루 종치는 거야.”

그녀는 우리에게 얼른 나오라고 손짓했다.

“얼른 가자. 세팅은 다 해 놨어. 이제 가서 부르기만 하면 돼.”

“네~”

혜나 누나는 얼른 내게 팔짱 끼고 이은지 디렉터의 뒤를 따랐다.

방금 전 일은 벌써 잊어버린 듯 말이다.

“아, 오늘 잘할 수 있겠지?”

내 팔을 붙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누나도 조금은 긴장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사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오늘이 우리 남매의 데뷔곡 첫 녹음 날이기 때문이다.

둘의 인기가 갑자기 높아진 덕에, 소속사에서 데뷔 일정을 미루지 않고 크게 앞당겼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겠다는 것이다.

“응, 누나라면 금방 잘할 거야.”

드디어 나와 누나가 같은 무대에 서서 대중에게 노래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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