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53화 (53/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53화 >

“사진으로 봤을 땐, 참 잘 커주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거 사진이 실물의 반도 못 따라가는 거였네.”

현재 대한민국 예능 순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스타 탤런트.

그 프로그램의 PD인 황태현 감독은 강세원 대표와 친분이 깊은 듯 보였다.

“우리 연욱이, 절대 비주얼로 밀고 가는 애 아니야. 실력파라고, 실력파.”

“나도 비주얼로만 먹고 사는 놈들 싫어해요. 거기다 음악으로 승부 보려고 나온 거라며. 형님 말대로 제대로 된 실력파라면 아주 환영이지.”

황태현 PD는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욱 씨. 말 좀 편하게 해도 될까요?”

“아, 네.”

“좋아. 그럼 우리 프로그램을 위해 뭘 해 줄 수 있는지 말해 줄래?”

황태현 PD의 눈빛을 보니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음악과 관련되어 나오는 능력자들이 많다 보니, 이제는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나는 준비했던 멘트를 전부 지워 버렸다.

“어떤 것이든요.”

“으응?”

“뭘 주문하시든 맞춰 드리겠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들보다는 PD님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맞추도록 할게요.”

황태현 PD의 표정이 일순 달라졌다.

“그 말은 내가 뭘 주문하든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건가?”

“네. 음악과 관련된 거라면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어요.”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강세원 대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주 당돌한 친구네요.”

“뭐, 그만큼 능력이 된다는 거겠지?”

“하하, 이러면 내가 기대를 안 할 수 없지. 정말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허세인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부르셨어요, PD님.”

“아, 김은영 작가. 여기는 누구신지 알지? 강세원 대표님이야. 그리고 이쪽은 저번에 말했던 애.”

뭔가 피곤에 절어 보이는 김은영 작가는 나와 강 대표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김 작가가 그렇게 원하는 사람이 온 거 같다.”

“제가요?”

“응, 여기 연욱이가 글쎄 우리가 원하는 건 다 보여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지 뭐야? 음악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 보여 줄 자신이 있대.”

그러자 김 작가가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음악을 한다고 했죠? 피아노 콩쿠르에 우승한 경험도 있고.”

“네.”

“다른 악기도 할 줄 알아요?”

“기타도 칠 줄 압니다.”

“저번에 들어 보니까 작곡에도 일가견이 있다던데.”

“맞습니다.”

그녀는 들고 다니던 패드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럼 청음은요? 혹시 절대음감? 어떤 노래를 들으면 어디가 틀린 부분인지 알아맞힌다든가 하는······.”

“한번 들으면 거의 전부 기억하는 편입니다.”

“응? 한번 들으면 기억한다고요?”

“네.”

이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황 PD도 관심을 드러냈다.

“정말이야? 한번 들은 노래를 다 기억해? 그 말은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악보도 만들 수 있다는 거지?”

“네, 처음 듣는 노래도 대부분 기억합니다.”

김 작가와 황 PD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음대에 다닐 때 한번 들은 노래를 전부 다 외워 버리는 괴물 같은 놈들이 가끔 있었다.

대체 저놈들의 뇌는 어떻게 되어 있기에 그걸 다 기억할까-라는 의문이 평생 나를 괴롭혔지만, 지금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나도 그들과 똑같은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그들은 딱히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럽게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처음에는 이런 내 능력이 의심스럽기도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지만, 지금은 덤덤했다.

“저기 한번만 테스트 해 봐도 돼요?”

“네, 얼마든지요.”

김 작가는 핸드폰을 꺼내 재생 목록에서 노래 하나를 골랐다.

“인디 밴드가 만든 곡인데, 아마 처음 듣는 걸 거예요. 대중화된 건 아니라서.”

“네, 틀어 주세요.”

그녀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빛으로 노래를 재생시켰다.

약 3분 40초가량 되는 재즈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타와 드럼이 섞인 곡이었는데, 나는 중간중간 눈살을 찌푸렸다.

스파크 터지는 듯한 잡음이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래서 내가 노래를 가리고 가려서 듣는 것이다.

거기다 이 곡은 남성 보컬 2명이 메인이었고, 가끔 여성 보컬이 끼어들어서 노래를 불렀다. 난 그 여성 보컬의 목소리를 듣고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때요?”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나서 김 작가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황 PD와 강세원 대표도 기대감이 잔뜩 실린 눈알을 굴리는 중이었다.

“A4용지 하나만 주세요.”

“오선지는 필요 없어요?”

“네.”

김 작가는 얼른 어디선가 A4용지 하나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난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바로 악보를 써 내려갔다.

“오······.”

그들은 공백만 가득하던 A4용지에 음표가 생성되고 그것들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도 안 걸려서 나는 악보 그리기를 마쳤다.

“가사는 안 적었습니다. 발음이 뭉개지는 곳이 많아서 알아듣기가 힘들었거든요.”

“아, 그래요?”

“네, 그리고 혹시 이 곡, 정식으로 발매된 건가요?”

“왜요?”

“정식으로 녹음한 것처럼 들리진 않아서요. 원래 인디 밴드들도 정식 앨범을 내놓을 땐 큰돈 들여서 녹음하고 프로듀서에게 여러 수정을 받거든요. 근데 이건 그냥 수정 없이 내놓은 거거나, 아니면 녹음을 잘못한 것처럼 들려서요. 그리고······.”

나는 김 작가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나오는 여성 보컬은 작가님이시죠?”

그러자 김 작가를 포함해 모두 깜짝 놀랐다.

“뭐? 방금 그게 김 작가 목소리였어?”

“에이. 아닌데. 목소리가 완전 다르던데?”

“원래 사람 목소리가 노래 부를 땐 많이 달라져요. 그리고 자세히 들려보면 그 여성 보컬 분 목소리가 작가님과 비슷하게 들리는 곳이 있었어요. 그래서 추측해 본 거에요.”

적잖게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던 김 작가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PD님.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람이 왔네요. 악보 보니까, 틀리지 않고 다 쓴 게 맞아요.”

“뭐야? 진짜야? 정말 김 작가 목소리야? 언제 이런 노래를 다 녹음했어?”

“그냥 대학 동기들이랑 같이 만든 밴드에요. 연욱 씨 말대로 아직 정식으로 발매한 곡도 아니고, 녹음만 해 놓은 거고요. 근데 노래를 듣는 중간에 표정이 좋지 않던데,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어요?”

“아 그건······.”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그냥 대답해 주었다.

“제 귀에 거슬리는 곳이 있으면 나오는 버릇입니다.”

“그 말은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손 봐야 할 곳이 많습니다. 악보를 보시면 제가 체크를 해 둔 곳이 있는데, 거기만 뜯어고치시면 훨씬 좋아질 것 같아요.”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가 서로 기분만 상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오히려 그게 나았던 것 같다. 김 작가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내가 따로 체크를 해 준 부분을 다시 한번 동그라미 쳐 놓았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나도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체크해 준 부분만 잘 수정해볼게요. 훨씬 좋아질 거 같아요.”

처음에는 좀 딱딱해 보였던 김 작가의 목소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PD님. 오디션은 이제 그만 끝내고, 방송에서 뭘 보여 줄지 결정만 하면 될 거 같은데요?”

“김 작가 생각도 그렇지? 사실 나 방금 소름 돋았잖아. A4용지를 막 휘갈기면서 악보를 만들어 내는 거 보고 무슨 모차르트가 환생한 줄 알았다니깐? 완전 천재네. 형님은 알고 있었어요?”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처음에는 그냥 막 휘갈기는 줄로만 알았어.”

오디션은 끝났다.

이제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지가 중요하다.

악보 한 장 달랑 써 내리려고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던가.

김 작가와 황 PD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구상에 들어갔다.

* * *

“다들 녹화 전에 충분히 연습은 하셨죠? 차례가 되면 어디서 나오고 또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잘 숙지해 놓으셔야 합니다.”

방송국과 일주일 동안 준비 기간을 갖고 그 뒤에 나는 스타 탤런트 녹화를 위해 촬영장으로 왔다. 그곳에는 오늘 녹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스태프들은 주의 사항을 알려주며 순서를 정해 주었다,

“와, 강대웅이다.”

“진짜 몸 크다.”

“격투기 선수였잖아. 지금도 운동 열심히 한다던데.”

스태프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던 와중에 스타 탤런드의 메인 MC이자 대한민국 3대 MC 중 하나로 뽑히는 강대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직 스포츠맨답게 풍채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저 험악한 얼굴이 어떻게 예능 MC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는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TV에서 볼 땐 그냥 웃음거리였지만, 막상 앞에서 보니 그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강대웅을 보고 잠깐 호들갑을 떨던 참가자들은 그가 가까이 오자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아이고~ 여러분. 반갑습니다. 강대웅이라고 합니데이.”

그런데 생긴 인상과는 다르게 그는 푸근하게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나씩 악수를 건네기까지 했다.

“오늘 촬영 자~알 부탁할게요. 이 스타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라 억양이 확실히 남달랐다.

그가 구수한 어투로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꺼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어붙어 있던 참가자들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머,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팬이에요! 사진 한번만 같이 찍어도 될까요?”

“하하, 뭐가 어렵겠습니꺼.”

연예인들 사이에서 군기 반장으로 알려져 있고 워낙 성격이 불같아서 무서워하는 후배들도 참 많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역시 소문은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생애 첫 녹화 방송이라 많이 긴장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나서는 것을 보면 말이다. 과연 국민 MC라는 명함이 아깝지 않아 보였다.

“녹화가 꽤 깁니다. 기다리기 힘들어도 저~얼대 힘든 기색을 보이면 안 됩니더. 아시겠죠?”

“네~!”

강대웅은 그렇게 내가 있는 곳까지 다가와 버릇처럼 큼지막한 손을 건넸다.

“자. 오늘 잘 부탁드······.”

그는 손을 맞잡더니 갑자기 멈칫거리며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내 위아래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친구분은 어떤 탤런트로 나오셨어요?”

“아, 저는 오늘 음악 쪽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 PD가 말했던 그 참가자구나. 인물이 살아 있네. 차례도 마지막이죠?”

“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해. 알죠? 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무대인 만큼 보여 줄 걸 다~ 보여 주면 돼요.”

그는 잡은 내 손을 놓아주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내가 한창 운동할 땐 말입니다. 항상 마지막이 중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또······.”

쉴새 없이 명언을 만들어 내는 제조기라더니 그게 딱 맞는 듯하다.

그는 한참을 떠들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골격이 좋네. 운동해도 되겠어. 혹시 나이가 어떻게 돼요?”

“이제 14살입니다.”

“14살?! 나는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 이름은 어떻게 돼요?”

강대웅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니 참가자들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전부 강대웅과 내가 있는 쪽에 시선이 집중됐다.

슬슬 이런 관심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쯤이었다.

황 PD가 구원자처럼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형님,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요.”

“아, 황 PD. 왔어? 오늘 이 친구가 마지막 차례라며?”

“네.”

“크-. 예감이 좋아. 오늘 마지막 마무리할 때 그림이 좋게 나오겠어.”

그는 야무진 손길로 팡팡 내 등을 때리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강대웅은 살짝 때린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 저릿한 손맛이 온몸에 전달될 정도였다.

“우리 친구. 이따 봐요. 오늘 기대가 아주 커.”

강대웅이 지나가고 나서 뒤에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들이 감독의 신호에 맞춰 앞으로 나왔다.

“준비해주세요~ 곧 촬영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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