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52화 >
“대표님, 터졌습니다.”
“터져? 뭐가?”
“혜나요! 지금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온통 혜나 얘기밖에 없어요.”
강세원 대표는 아침부터 호들갑을 떠는 마케팅 팀장, 이정화을 따라 사무실로 이동했다.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 화면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대체 뭔데 그래?”
“저번에 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J&D에서 나오는 사진들 커뮤니티 사이트에 쫙 뿌려 보라고요.”
“그랬지. 별도의 설명 없이 사진만 쫙 뿌리라고 했잖아.”
“네, 혜나가 모델인 사진을 보고 대체 이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 글 하나가 올라왔었는데, 그게 조회수가 대박나면서 인기글로 올라가고 크게 이슈까지 됐어요.”
“정말?”
강세원 대표는 직원들이 보여 주는 화면을 쭉 훑어보았다.
-모델 이름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해 주는 회사가 어디 있냐고 아 ㅋㅋㅋ
-아니. 이 정도면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 아님?
-아직도 못 알아낸 거 실화냐? 미치겠네 ㅋㅋㅋ
팀장 말대로 커뮤니티에는 온통 모델의 정체를 물어보는 글밖에 없었다.
그러다 몇몇 글에는 혜나의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왔다.
-어? 나 이 사람 알아. 우리 동네에서 얼짱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진짜임? 그 동네가 어디인데?
-그 예전에 영화 ‘악마’에서 나왔던 아역 아님? 그때보다 많이 커서 잘 못 알아볼 수도 있긴 한데, 비슷한 듯?
마케팅 팀장은 현재 커뮤니티에서 실시간 올라오는 글들을 확인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표님.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처음에는 저희 팀 전체가 의아했는데, 대표님은 역시 다른 걸 보고 계셨구나.”
강 대표가 며칠 전에 내린 이상한 업무 명령.
그건 혜나의 사진을 유명 커뮤니티에 뿌리고 J&D에는 혜나에 대한 이름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지시인지 몰라 팀 전체가 술렁였지만, 대표가 직접 내린 명령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이들은 그저 하라는 대로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들 눈에는 강세원 대표가 무슨 마법을 부린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거 내 아이디어 아니야.”
강 대표는 솔직히 지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설마 이렇게 잘 먹히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건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지 않던가.
“대표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요? 그럼요?”
“연욱이.”
“네?”
“혜나 동생 연욱이. 그 아이가 하라는 대로만 했을 뿐이야.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해 본 거고.”
“지, 진짜요? 연욱이가 이제 14살밖에 안 되지 않았어요?”
“응, 이제 중1이지. 근데 오늘 보니까 그놈은 사업적 감각이 타고난 거 같다.”
이정화 팀장을 비롯해 마케팅 직원들은 이번 마케팅 전략이 겨우 중학생한테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뻥치는 게 아니라 진짜야. 나한테 혜나 이름을 알리지 않은 채로 사진을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들에다 뿌리고 그냥 잠잠히 기다려 보라고 했어. 그럼 알아서 이슈화가 될 거라고.”
“그걸 그냥 믿고 하셨다고요?”
“그게······. 그때 얘기를 나누는데 왠지 그놈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려 가지고. 하하.”
강 대표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건 진짜 장연욱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다음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다음은요?”
“응?”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냐고요. 지금 이슈화가 됐는데, 이대로 지켜만 보실 거예요?”
“아니, 안 되지. 생각해 보니까 이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못 들었네.”
“그럼 얼른 전화해 보세요! 연욱이한테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봐야 저희도 대처를 할 거 아니에요.”
“그, 그럴게.”
직원들의 성화에 강 대표는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분명 사장은 자기인데, 오늘은 왠지 직원들이 윗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 연욱아. 나다. 아, 다름이 아니라······.”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장연욱이 하는 말을 메모지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런 뒤 그 메모지를 직원들에게 넘겼다.
“이대로 하면 될 거라는데?”
이정화 팀장은 얼른 메모지를 낚아채 읽어본 뒤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응?”
“연욱이, 가수 말고 그냥 우리 회사 직원으로 쓰면 안 돼요?”
“하하, 재능 낭비 아닐까? 그 얼굴로 회사 직원을?”
“하-. 그러니까요. 얘는 그냥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아무래도 이정화 팀장은 연욱이의 다음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다른 직원들은 대체 메모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 건지 궁금해 자꾸 기웃거리기만 했다.
“어때? 괜찮은 거 같아?”
“이보다 나을 수가 없죠. 지금부터는 저희가 밥값 할게요. 아! 그리고 나중에 연욱이한테 일 덜어 줘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세요. 다음에 제가 한 턱 쏴야 할 거 같아요.”
“왠지 앞으로 이 팀장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 같다.”
이정화 팀장은 직원들에게 돌리며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분배해 주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미워하는 회사 대표는 없을 것이다.
그는 조용히 사무실을 나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회사가 연욱이 덕분에 시끌시끌하게 변하는 것만 같다.
***
[‘그분’ 프로필 떴다.]
모델의 정체를 두고 여러 추측만 난무하던 가운데, 드디어 혜나의 프로필이 공개되었다.
이미 커뮤니티에서는 혜나를 ‘그분’이라 칭하던 중이었다.
-알고 보니 GN 엔터테이먼트 연습생이셨음. 현재 데뷔 준비중이시라고 함. 그리고 영화 ‘악마’에 출연했던 그 아역도 맞음. 거기다 동네에서 이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함.
-그러니까 그 동네가 어디냐고ㅋㅋㅋ 거기로 이사 좀 가게
-와. 그 영화 아역 배우가 맞다고? 그때랑 느낌이 너무 다른데? 아역일 때도 예뻤지만, 지금은 그냥 넘사벽이다. 잘 커줘서 고맙습니다.
-데뷔? 가수로 데뷔한다는 거야?
-ㅇㅇ가수 데뷔하려고 현재 연습생 생활 중이심
-괴물 신인 ㅎㄷㄷ
-솔로로 데뷔하는 건가?
-설마 저 얼굴에 노래까지 잘 부르겠음? 노래 잘 안 불러도 괜찮으니까 데뷔만 해 주세요.
프로필이 공개된 글 역시 커뮤니티의 인기글로 올라가 그동안 모델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회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해맑게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나온 혜나의 프로필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미소 짓게 만들었다.
사진 속 혜나의 모습은 참 행복해하는 모습이었고, 보는 사람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혜나에게 빠져드는 회원들도 많아졌다.
-프로필 뜬 거 어디서 가져옴?
-GN 엔터에 가면 있음
-오늘 갑자기 프로필 올라왔음. 아마 거기서도 커뮤에서 화제 되는 거 보고 바로 올린 듯
GN 엔터테이먼트 직원들은 강세원 대표를 통해 내려진 장연욱의 지시대로 따랐다.
기획사 사이트에 혜나의 프로필을 올려 두고 커뮤니티 회원들이 알아서 찾아가게끔 유도를 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혜나의 팬덤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 ‘그분’ 사진 더 내놔
-돈쭐 내 줄 테니까 더 내놓으셈
-설마 데뷔 늦게 시키는 건 아니지? 응? 대답해. 돈 줄 테니까 제발.
거기서 멈추지 않고 회원들은 GN 엔터테이먼트 사이트에 쳐들어와 협박 아닌 협박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분’ 다음 스케쥴 알아왔다.]
-일단 GN 엔터에서 만드는 뮤비에 하나 출연할 예정이고, 광고도 하나 더 찍을 예정이라는데 천하 전자 스마트폰 광고라고 함. 아직 논의 중이래.
-천하 전자에서 써 주려나?
-신인이 이렇게 커뮤에서 화제된 적이 있던가? 천하 전자 쪽에서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 하지 않을까?
-원래 그 회사는 유명 연예인 내세워서 찍는 곳이 아님. 그냥 일반인 데려다가 찍는 경우가 더 많음. 조금 더 사람들한테 어색하지 않게 접근하겠다는 마케팅 전략 ㅇㅇ
아직 결정되지 않은 스케쥴까지 새어 나가면서 GN 엔터테이먼트 직원들은 당황했지만, 오히려 잘 된 거라고 판단했다. 현재 모델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천하 전자 마케팅 팀에서도 현재 화제가 된 커뮤니티 글들을 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기세를 몰아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천하 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광고까지 찍게 된다면 혜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
“네? 저, 정말요?”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 중이던 혜나 누나는 강세원 대표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입을 쩍 벌렸다. 얼굴을 보니 무슨 좋은 일이 생긴 듯하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대표님!”
전화를 끊고 나서 혜나 누나는 우다다 거실로 달려왔다.
“엄마! 아빠! 연욱아!!”
“무슨 일이야? 대체 무슨 전화길래 그래?”
“엄마! 천하 전자에서 날 모델로 쓰겠대!”
“응? 천하 전자? 엄마가 알고 있는 그 천하 전자?”
“그렇다니깐! 이번에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돼서 새로 광고를 찍는데, 거기 모델로 내가 뽑혔대!”
부모님은 아침 식사도 잊어버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이야, 그럼 이제 TV 켜면 혜나 얼굴부터 볼 수 있는 건가? 천하 전자면 거의 모든 채널에서 광고가 나오잖아.”
“거기 유명한 연예인들만 뽑는 곳 아니었어? 아직 넌 데뷔도 안 했잖아.”
“여보. 우리 혜나가 데뷔를 안 하기는! 뮤지컬도 하고, 영화도 찍었잖아. 모델 일도 했었고!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해.”
두 분은 혜나 누나를 꼭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다. 우리 혜나가 최고야.”
“그래. 우리 딸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어제 아빠도 커뮤니티 봤어.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더라. 벌써 팬클럽도 만들었던데?”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가 된 덕분에 천하 전자에서도 혜나 누나를 최종 선정하기로 한 듯 보였다. 요즘은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확인하며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확인하지 않던가.
이것 역시 빅데이터의 일종으로 기업들은 수집되는 정보 외에도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은다고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어디로 쏠려 있는지 알아야 그들도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다.
훗날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걸 그룹으로 뽑히게 되는 블랙 로즈 멤버들도 데뷔 전에 천하 전자 모델로 뽑혀 광고를 찍고 한 층 유명세를 떨치지 않았던가.
공교롭게도 혜나 누나 역시 천하 전자의 모델로 뽑히게 됐다. 그렇다면 누나 역시 양어깨에 날개를 단 듯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지 않아도 어제부터 학교 애들이 나한테 그 커뮤니티 얘기 엄청하더라. 거기 글 주인공이 너 아니냐고.”
“그래서?”
“그냥 맞다고 했지. 그때까진 그게 그 정도로 화제가 되는 줄 몰랐거든.”
당분간 더 피곤해질 거 같다.
버스 말고 무조건 택시를 타든가 해야겠다.
혜나 누나는 잘 구운 햄을 입에 쏙 넣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 내가 진짜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줄게.”
“아이고, 됐어. 너희들이 건강하게 크는 것만 봐도 여한이 없다.”
“에이. 그래 놓고 억소리 나게 돈 가져오면 좋아할 거면서!”
“허허. 그건 그렇지.”
우리 가족은 항상 웃음이 넘쳐난다.
8살부터 지금까지 이 가족의 일원으로 살면서 한 번도 우울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그만큼 바르신 분인 것들도 있지만, 항상 사람의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혜나 누나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런데 연욱이는 곧 있으면 스타 탤런트 나간다고 하지 않았니?”
“아빠도 엄청 기대하고 있어. 방송할 때 회사 사람들한테 다 소문내서 보게 할 거야.”
혜나 누나는 확실하게 기반을 다졌으니,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뭔가 저리 말씀을 하시니 부담이 됐지만, 회사 사람들 앞에 자랑스럽게 어깨를 내세우실 수 있도록 뭔가를 보여 드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