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51화 >
“어때? 나 예뻐?”
평소에 전혀 화장을 하지 않는 누나지만, 오늘은 얼굴에 힘을 좀 줬다.
그래 봐야 볼 터치를 조금 했을 뿐이다.
그런데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외모의 급이 한껏 더 올라가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특히 두 볼에 광이 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 아주 좋아.”
“정말?”
“어. 평소에는 푸석한 사과였다면, 지금은 딱 백설공주한테 쥐여준 독사과 같아.”
“야! 뒤질래? 예쁘다는 거야, 뭐야.”
이상하게 누나한테 예쁘다는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하겠다.
아무래도 남매이다 보니 상대를 칭찬하는 게 점점 더 인색해진 기분이랄까.
솔직히 예쁘긴 정말 예뻤다.
염색을 따로 하지 않아도 더 짙게 보이는 검은 긴 생머리와 오뚝한 코.
핑크빛처럼 연한 빛깔의 입술.
얼음조각상처럼 차가울 것만 같은 하얀 피부와 사람을 빨아들이는 보석 같은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내가 특별히 누나를 광고 모델로 강 대표에게 추천한 이유는 또래 여자 애들보다 큰 키에 있었다.
물론 키만 크다고 해서 다 모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황금 비율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것이 딱 누나를 두고 표현하는 말 같았다.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춤을 춰서 그런지 긴 기럭지와 잘록한 허리가 환상의 비율을 만들어냈다.
이건 단순히 내 생각만이 아니다.
그 증거로 유명 의류 브랜드인 J&D에서 누나를 첫 대면에 바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야~ 우리 딸 화장 했어?”
“응~! 오랜만에 조금만 해 봤어.”
부모님은 정말 오랜만에 촬영을 나가는 누나를 보고 박수 치면서도 조금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정말 같이 안 가도 돼?”
“괜찮아. 소속사에서 다 케어해 준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제발 엄마 아빠는 집에서 좀 쉬어. 이제 내가 돈 마아아니 벌어 와서 일도 그만두게 해 줄게.”
“어이쿠, 이거 우리 혜나 덕분에 엄마 아빠가 호의호식하게 생겼는데?”
나도 혜나 누나 말처럼 하루빨리 성공해서 부모님이 일부터 그만두시고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 남매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던 분들이 아니던가.
“연욱아, 가자! 다녀올게~.”
“그래.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응~”
나는 혜나 누나와 같이 밖으로 나오면서 뒤늦게 뭔가를 깨달았다.
“잠깐만.”
“왜?”
“근데 나는 왜 데려가는 거야? 소속사가 알아서 케어한다며.”
“후후. 우린 그룹이니깐. 너 전우조 몰라 전우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죽는 전우조. 이렇게 껌딱지처럼 같이 붙어서 다녀야 돼.”
“누나가 전우조를 어떻게 알아?”
“응? 그 리얼 사나이 예능에서 나오던데?”
요즘 좀 뜬다는 리얼 사나이를 보고 이상한 걸 배워온 것 같다.
그리고 툴툴거리긴 했어도 사실 누나가 날 데려가지 않았으면 무척 섭섭했을 것이다.
“혜나야~ 연욱아~ 여기야.”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차량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연예인 차량이었다.
연예인을 상징한다는 바로 그 검은색 벤이었다.
“꺅! 오빠. 우리 오늘 이거 타고 가는 거예요?”
“하하. 오늘 혜나 스케쥴 있잖아. 그럼 당연히 소속사에서 차는 한 대 내줘야지. 근데 연욱이도 같이 가니?”
앞으로 우리 남매 매니저를 맡게 된 이 형의 이름은 김동욱이었다.
혜나 누나는 매니저 형의 물음에 얼른 내게 팔짱을 꼈다.
“우린 그룹이잖아요. 절대 떨어지면 안 돼요.”
“혜나 말이 맞다. 얼른 타. 미리 가서 메이크업도 받아야 하고 할 거 많아.”
“네!”
동욱이 형은 시골 청년 같은 느낌을 주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강 대표 말로는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와, 우리가 이걸 다 타 보네. 진짜 연예인 된 기분이다. 그치?”
“응, 그러네.”
고작 벤 하나 탔을 뿐인데, 느낌이 묘했다.
특히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코팅된 검은 창문들이 왠지 마음을 들뜨게 했다.
혜나 누나 말대로 정말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으나, 아쉽게도 이런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여느 10대들과 마찬가지로 우린 금방 차에 질려 핸드폰 게임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 다 왔다.”
“고마워요, 오빠.”
“얼른 내리자. 다들 기다린다.”
혜나 누나와 나는 차에서 내려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촬영을 위해 모인 감독과 스태프들, 그리고 강세원 대표까지 있었다.
“대표님~”
혜나 누나는 반갑게 강 대표를 향해 뛰어갔다.
강 대표도 해맑게 웃어주며 혜나 누나와 하이파이브부터 했다.
언제부터인가 누나는 강세원 대표와도 엄청 친해져 있었다.
가끔 저런 붙임성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는 누굴 만나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데 말이다.
워낙 세상에 사기 치는 놈들이 많아서 생겨난 버릇이었다.
그에 반해 혜나 누나는 전혀 사람을 사귀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언제나 주변인을 끌어모으는 마성의 힘이 있었다.
“연욱이도 같이 왔네? 잘 됐다. 안 그래도 너랑 할 얘기도 있었는데. 일단 촬영부터 먼저 할까? 혜나는 얼른 가서 메이크업······. 아니. 오늘 웬일로 화장을 다 했어? 뭐 만질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에이. 또 그러신다.”
“아니야. 난 빈말로 칭찬 같은 거 잘 안 해. 아무튼, 촬영 준비 빠르게 하자. 저기 감독님도 기다리고 계신다.”
“네~!”
혜나 누나를 보내고 나서 강 대표는 나를 붙잡았다.
“연욱이 너는 잠깐 나 좀 보고.”
“네.”
나는 강 대표와 같이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판기 앞에 앉았다.
그는 음료수 두 개를 뽑아와 하나를 내게 건네며 물었다.
“그래. 생각은 좀 해 봤어? 저번에 했던 얘기 있잖아.”
“스타 탤런트 말씀하시는 거죠?”
“응, 내가 그쪽 PD랑 만나봤거든. 근데 네 프로필 보니까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더라고. 네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면 바로 꽂아 넣어 주겠대.”
항상 느끼는 거지만, 강 대표는 참 손 닿는 곳이 많은 것 같았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 PD와 따로 연락하는 것도 그렇고, 유명 의류 브랜드인 J&D와도 재빨리 컨택해서 혜나 누나를 그곳에 모델로 만든 것도 그렇고 말이다.
역시, 성공의 핵심은 인맥에 있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건가.
“몇 가지 준비를 했어요.”
“그래?”
“네. 제 레슨을 봐주시는 교수님이 같이 도와주셔서요.”
“대충 어떤 거?”
“음.. 눈을 가리고 피아노 치는 거랑, 3~5분가량 되는 곡을 듣고 그대로 악보에 적어 놓는 것도 있고, 누가 노래를 틀어 주면 그걸 다 외워서 치고 거기다 편곡까지 섞는 것 등등이요.”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강 대표는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듯 보였다.
“내가 다시 그쪽 PD한테 얘기해 볼게. 아마 촬영 전에 오디션을 봐야 할 거야. 그쪽에서 오케이 하면 성공인 거고.”
“네.”
그 외에도 몇 가지 상황을 강 대표에게 전해 듣던 중이었다.
“대표님. 촬영 시작했습니다.”
“그래?”
비서의 말에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촬영장으로 가 보았다.
벌써 메이크업을 끝내고 브랜드 옷을 입은 혜나 누나는 한창 촬영 중이었다.
“좋아요. 조금 더 시크한 표정 지어 줄 수 있습니까? 차갑게 노려보는 듯한······. 오! 딱 그겁니다!”
감독이 요구하는 주문을 군말 없이 들어주며 포즈를 잡고 있던 혜나 누나는 강렬한 눈빛으로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때로는 빙긋 웃으며 주변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감독의 입에서는 계속 원더풀, 뷰티풀과 같은 감탄사만 나오고 있었다.
“아~ 이거 너무 아쉽네. 오늘 촬영 예정인 옷이 이거밖에 없습니까?”
나중 가서는 감독이 괜히 회사 직원들에게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감독은 촬영을 마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랜만에 혜나 씨 덕분에 즐겁게 촬영하고 갑니다.”
“저도 감독님 덕분에 너무 편하고 좋았어요. 다음에 또 부탁드려요!”
“하하. 언제든 불러 주세요. 혜나 씨라면 바로 달려와서 찍어 드릴 테니까.”
촬영을 시작한 지 2시간.
보통 6시간 넘게 걸린다는 모델 촬영이 굉장히 빠르게 끝났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 시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이번 촬영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특히 감독 얼굴만 봐도 아주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강세원 대표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감독에게 달려갔다. 그는 옆에 있던 나도 같이 끌고 갔다.
“이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아이고. 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어때요? 오늘 촬영은 잘 됐습니까?”
“보물입니다. 보물. 대표님께서 아주 귀한 보물을 데려오셨어요. 마음 같아서는 더 오래 찍고 싶었는데, 이게 커트할 만한 사진이 없어서 말입니다.”
“하하. 이 감독님이 잘 뽑아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저 정도 모델을 데리고 찍은 사진인데, 안 좋을 수가 없죠. 그냥 무수정본으로 그냥 올려도 될 판입니다.”
그러다 이 감독은 강 대표 옆에 있던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다가 강 대표에게 물었다.
“그, 그런데 대표님. 여기 있는 이분은 누굽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강 대표가 나를 앞에 내세우며 말했다.
“우리 소속사에서 키우고 있는 또 다른 보물입니다. 이름은 장연욱이고, 혜나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 감독은 내 위아래를 훑어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사람 얼굴 보고 놀라는 건 오늘만 두 번째네요. 저기 혜나 씨도 그렇고, 여기 연욱 씨를 보면 하나님이 한땀 한땀 장인의 손길로 만든 것 같지 않습니까? 제 얼굴은 발로 대충 만드신 거 같은데 말입니다.”
“감독님의 마음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습니다. 이 두 녀석을 보고 있으면 신은 공평하다는 게 다 거짓말 같다니까요?”
이 감독은 내게 명함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이시환 감독이라고 합니다. 혹시 나이가······.”
“아. 이제 14살이에요.”
“예? 14살이요? 아니. 정말입니까? 요즘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고 하긴 하는데······ 아!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시환 감독은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대표님. 저희가 남자 모델도 하나 구하고 있긴 한데, 왜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게 아직 14살밖에 안 되기도 했고, 회사에서 원한 건 건장한 성인 모델이라서 말입니다. 거기다 키도 180cm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해서요.”
“어휴. 이 정도면 아무 문제 없어요. 제가 회사에 한 번 건의해 봐야겠네요.”
그런 뒤 이 감독은 밝은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연욱 씨. 우리 꼭 다시 봅시다.”
“아, 네. 감독님. 감사합니다.”
내 나이가 어린데도 절대 말을 놓거나 어른 행세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뭔가에 정신이 팔린 듯 횡 가 버렸고, 강세원 대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 역시 너한테 확 꽂혔네. 저 양반이 저렇게 보여도 J&D 내에서 입김이 세. 모델 선정하는 데에는 저 사람 눈이 정확하거든. 혜나를 한눈에 보고 점찍은 것도 이 감독이야.”
강세원 대표, 이 사람 의도적이었구나.
그는 일부러 이시환 감독에게 날 보여 준 것이다.
J&D 내부에서 모델 선정에 입김이 강한 이시환 감독이 분명히 날 마음에 들어 할 걸 알고 날 데려온 것이었다.
J&D에서는 날 처음에 깠지만, 이 감독이 추천한다면?
그들은 결국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혜나만 모델로 나오는 건 억울하잖냐. 너도 같이 나와야 그림이 살지.”
그는 내 등을 두드리고 나서 혜나 누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강 대표의 뒷모습이 조금 멋있어 보였다.
***
[혹시 이 모델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
유명 커뮤니티 질문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사진 하나를 올려놓고 그 안에 있는 모델의 이름을 묻는 여느 평범한 게시글이었다.
-처음 보는 모델이네?
-ㅇㅇ 모델분이 너무 내 취향이라서 혹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 분인지 물어보러 옴.
-J&D 브랜드에 저런 모델이 있었나? 엄청 예쁘네. 누구임? 아는 사람 없냐?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사진 속 모델이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도 나오지 않아 글 작성자는 J&D 브랜드 홈페이지까지 뒤져서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모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다른 사이트를 뒤져 봐도 나오지 않자 작성자는 그냥 포기하려고 했다.
오랜만에 참 마음에 드는 모델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말이다.
“어?”
그런데 질문 글을 올린지 이틀 뒤에 다시 들어간 사이트에 댓글 알림이 굉장히 많았다. 거기다 항상 0통이었던 쪽지함이 지금은 100통을 넘어서고 있었다.
[형님. 모델 이름 알아내셨나요?]
[모델 이름 알아내셨으면 꼭 좀 공유 부탁드려요.]
그는 자신이 올린 질문 게시글이 사이트 인기글로 올라갔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조회수는 벌써 10만을 넘어섰고, 댓글도 1,000개를 돌파했다.
-대체 누구야? 이름 좀 제발 알려줘
-여기 능력자가 이렇게 없냐? 커뮤 다 죽었네
-아니. 진짜 누구야? 아직도 알아낸 사람 없어?
-내가 너무 답답해서 J&D에 전화까지 했는데, 거기서도 안 알려 주더라.
-모델 이름을 안 알려 주는 회사가 어디 있음? 개 어이없네.
-일 똑바로 안 하네 ㅋㅋㅋ
“이, 이게 다 뭐야.”
커뮤니티에 가입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인기글로 올라가는 건 처음인 터라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저 모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