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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49화 (49/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49화 >

“연욱아. 이거 문제 어떻게 푸는지 알아?”

나는 문제를 보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것도 모르면 인생 헛 산 거지.”

“······.”

아, 실수.

“아니. 너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한테 하는 소리야.”

이미 늦었나.

사내놈이 고작 저 말 한마디에 울먹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네가 공부를 잘해도 그렇지. 어떻게 나가 죽으라는 소리를 할 수가 있어?”

“······혹시 난청이니?”

“됐어. 나 혼자 풀 거야. 똥쟁이 장연욱.”

나는 콧김을 강하게 내뿜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친구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놈은 초등학교 때 나더러 똥쟁이 장연욱이라며 놀리던 놈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반이라는 게 레전드네.”

똥으로 엮인 인연이라니.

찝찝하군.

“연욱아~ 이따 학교 끝나고 뭐해?”

똥쟁이 빌런이 지나가고 이번에는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 내게 모여들었다.

나는 이번에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원 가지 않을까?”

“아, 피아노 학원? 나도 이번에 거기 다니게 됐는데. 같이 가자!”

“어? 나도! 나도 같이 갈래. 꿀벌 피아노 학원 말하는 거지? 나도 이제 거기 다녀!”

“안 돼! 연욱이는 나랑만 같이 갈 거야!”

내 자리에 모여든 여학생들이 정작 내 의사는 묻지 않고 서로 자기가 같이 가겠다며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싸운다고 한들 어차피 나랑 학원 같이 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야! 장연욱!”

학교가 끝나고 나서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혜나 누나가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내 뒤를 쪼르르 따라오던 여학생들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는 누나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누나는 그런 무리를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야. 친구들이야?”

“응.”

“그렇구나. 그런데 너희들 어디 가니?”

“네? 저, 저희들 학원이요.”

“그래? 그럼 어서 가.”

혜나 누나가 손을 휘휘 젓자 여학생들은 우물쭈물하다 아쉬운 듯 내게 인사를 건넸다.

“여, 연욱아. 우리 먼저 갈게.”

“이, 이따 학원에서 봐.”

그러고는 빠르게 교문 밖을 나섰다.

“누나. 그러다 후배 괴롭히는 일진이라고 소문나겠다.”

“이게 어딜 봐서? 나는 그냥 저 후배님들이 안타까워서 그렇지.”

“뭐가 안타까워?”

“니 친구들이라며? 근데 너 저 애들 이름은 알아?”

“······.”

왠지 내가 진짜 나쁜 놈이 된 듯한 기분이다.

“으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근데 3학년도 오늘 일찍 끝나?”

“내가 고딩이냐. 1학년 끝나는 시간이랑 얼추 비슷하지. 빨리 가자. 버스 놓치겠다.”

“아, 버스 싫은데. 택시 타면 안 돼?”

“돈이 아주 썩어나나 봐?”

“그건 아닌데······.”

내가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정류장을 가면 꼭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버스 순환이 잘 안 돼서?

아니. 혜나 누나와 나를 보려고 모여든 학생들이 많아서다.

“오, 왔다!”

“야, 조용히 해.”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없이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정류장에 즐비해 있었다.

또 사람 가득인 버스 타고 가게 생겼네.

“누나는 은근 이런 거 즐기더라.”

“호호. 사람들이 나 좋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니? 넌 이런 거 의외로 싫어하더라. 엄청난 관종인 줄 알았는데.”

“그냥 좁은 버스에 사람들까지 북적이면 답답해서 그래.”

유명 영화배우나, 스타들의 일화를 들어보면 학교 다닐 때 이런 일을 매번 겪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버스에 탈 때까지 일부러 정류소에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잔뜩 있는 건 일상이었고, 동네에서 가장 잘생기거나, 혹은 예쁘기로 유명해져서 각 학교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땐 그냥 영화 같은 얘기라고만 여겼는데, 설마 그 일을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미 이 동네에서는 우리 남매를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고등학생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우리를 구경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그중에는 누나에게 접근해 제발 사귀어 달라고 매달리는 놈들도 있었다.

문제는 이게 혜나 누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보는 여학생이 뜬금없이 사랑 고백을 하는 일이 빈번했고, 내 얼굴을 한번 보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꽤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다.

하루에 열두 번 사랑을 말하고- 라는 가사가 있다.

근데 하루에 열두 번 사랑 고백을 받으면 그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혜나야. 오빠가 잘해 줄게. 오빠 집 돈도 많아.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다 사줄 테니까.”

“죄송해요. 전 오늘 처음 본 사람이랑 사귈 생각 없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일주일 전에도 봤잖아. 그때도······.”

“아무튼, 싫어요. 전 연애할 생각 없어요.”

오늘도 대차게 상대를 까 버리는 혜나 누나였다.

하지만 이놈은 좀 집요하다. 일주일 전에도 똑같이 고백했던 놈이 포기하지 않고 돌아와 또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나는 전혀 상대방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대체 내가 어디가 싫어서 그래? 이 오빠가 잘해 준다니깐?”

“이거 놓으세요.”

“야, 자꾸 튕기지 말고. 응? 계속 튕기면 매력 없다?”

딱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는데, 이놈이 기어코 선을 넘으려고 한다.

나는 누나 팔을 잡고 흔드는 놈을 밀쳐 냈다.

“뭐, 뭐야?”

“누나가 그만 하라잖아요.”

“이 새끼가 미쳤나? 너 몇 살이야?”

나는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다가갔다.

내 나이가 이제 14살밖에 되지 않지만, 키는 벌써 175cm까지 컸다.

“14살인데, 불만이라도 있으세요?”

그에 반해 고등학생인 이놈은 아직 나보다 작았다.

그래서인지 주춤 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누나가 중재에 나섰다.

“저기 오빠. 저희 동생이 운동부라서요. 사고 치면 안 되니깐 여기까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그래? 운동부는 사고 치면 안 되지. 네 누나 때문에 내가 참는 거야. 또 깝치면 가만 안 둬.”

이놈은 폼이란 폼은 다 잡고 자리를 떠버렸다.

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누가 그래? 나 운동부라고.”

“그냥 해 본 말이지. 진짜 싸울 거 같았단 말이야. 사람 심장 떨리게 하고 있어.”

“저 새끼가 누나를 막 끌고 가려는 것처럼 잡으니까 그렇지.”

원래 종종 있던 일이라 그냥 무시하고 넘기려 했는데, 저놈이 힘으로 누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걸 보자마자 갑자기 눈이 돌아가 버렸다.

누나가 말리지 않았으면 큰 사고 한번 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괜찮아. 저런 건 내가 이겨. 키도 나랑 비슷해 보이던데?”

중학교 3학년이 된 누나는 키가 168cm까지 자랐다.

나보다는 작은 키지만, 여자 중에서는 무척 큰 키였다.

그만큼 나랑 누나 둘 다 성장이 상당히 빨랐다.

한 가지 걱정인 건 14살 때 훅 크면 나중 가서 키가 더 안 큰다는 말을 들어서 이대로 성장이 멈추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참. 아까 나한테 전화 왔었어.”

“누구한테?”

“소속사에서 내일 오라는데?”

“내일? 연습 있나?”

“아니. 뭐 상의할 게 있다나 뭐라나.”

“또 제대로 안 들었구나.”

“아니거든. 제대로 들었거든. 근데 정확히 뭔지 얘기를 안 해 준 거라고.”

평소 좀 덜렁거리는 면이 있는 누나라서 의심이 갔다.

뭐, 자세한 거야 내일 가 보면 알 것이다.

“오늘 교수님 레슨 있다고 했나?”

“응, 누나 먼저 들어가. 가서 제발 숙제부터 하고.”

“그래야지. 겜 한 판만 돌리고.”

“아니. 또 그러다 밤늦게까지 하려고?”

“응, 아니야.”

혜나 누나는 신난 아이처럼 웃으면서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분명 저러다 또 밤늦게 숙제하다 잠도 제대로 못 잘 것처럼 보였다.

“알아서 잘하겠지.”

알아서 잘 못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학원으로 들어갔다.

“왔냐?”

“네, 교수님.”

“그럼 여기 앉아 봐.”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분위기를 잡는 거지?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이창호 교수는 내 위아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갑자기 감탄사를 내뱉었다.

“크, 진짜 많이도 컸다. 4년 동안 참 많이도 컸어. 그것도 아주 잘.”

“새삼스럽게 갑자기 왜 그러세요?”

“말하는 본새도 뭔가 예의 바른 거 같으면서도 싸가지가 없다니깐?”

“그거야 제가 스승을 잘 모신 탓이죠. 하하.”

이창호 교수는 악보 뭉치로 내 머리를 살짝 때리며 본론을 꺼냈다.

“너 콩쿠르 나갈 생각 없냐?”

“지겹게 나간 거 같은데요.”

“이놈아. 신영 콩쿠르 나가고 나서 딱 한 번 더 나갔다. 2년 동안 나간 곳도 없잖아.”

“그냥 굳이 나가야 되나 싶어서요.”

이창호 교수는 못마땅하게 날 바라보다가도 내 고집을 알고 있는지라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놈을 제자로······.”

“저더러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실 땐 언제고.”

“그래도 콩쿨 몇 번 나가면서 더 경험을 쌓을 줄 알았지. 이게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이야.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서 나중에 국제 콩쿨까지 우승하면···!”

“우승하면?”

“명예나 상금 같은 건 집어치우고 가장 실용적인 것만 말해 줄게. 군대 면제야.”

“······.”

갑자기 미친 듯이 국제 콩쿨에 나가고 싶어졌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크흠. 손가락이 부셔질 정도로 연습하면 된다. 국제 콩쿠르는 진짜 괴물 같은 것들만 나오니깐. 오죽하면 우리나라도 우승 경험이 딱 한 번뿐이겠냐?”

사실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국제 콩쿨은 단순히 재능이 충만하다고 해서 우승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지 않던가.

“가능할까요? 거긴 인간이 아닌 사람들만 가는 곳이잖아요.”

“그래. 너처럼 연습하는 놈이 그런 곳에서 우승하면 그건 사기지.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는 짓일 게야.”

“저 나름 연습 열심히 하는데요?”

“그게 어딜 봐서 연습이야, 이놈아. 국제 콩쿠르 나오는 놈들은 연습량도 괴물이야. 밥 먹고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연습에 매달려. 그런데 말이다.”

이창호 교수는 탄식하듯 말을 이었다.

“진짜 미친 생각 같지만, 왠지 너라면 그 무대에서도 먹힐 거 같단 말이지. 지금부터 준비하면 한번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정말 우승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냥 내 예감이 그렇다는 거야. 그놈들도 괴물이지만, 너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물이긴 하거든. 하하.”

이창호 교수가 말하는 괴물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국제 콩쿨은 적어도 5년은 바라보고 준비해야 한다.

만약 그 기간을 거쳐서 국제무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문득 세계무대에 서는 나를 잠깐 상상해 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 * *

다음 날이 되어 나와 혜나 누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GN 엔터테이먼트로 향했다.

“어휴. 너희들은 어떻게 된 게 매번 볼 때마다 더 커서 오냐?”

강세원 대표는 나와 혜나 누나 앞에 음료수를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트레이닝을 받는 곳이 아니라, 이곳 대표실에 부른 것을 보면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이제 연욱이는 중학교 1학년이고, 혜나는 3학년 맞지?”

“네.”

“대표님이 보기에는 딱 좋은 나이라고 보는데.”

“좋은 나이요?”

강 대표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너희들 데뷔하기 딱 좋은 시기인 거 같다는 뜻이야.”

순간 나와 혜나 누나는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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