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48화 (48/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48화 >

본선 2차 마지막 무대.

예선 때는 가득 차 있던 대기실이 지금은 조금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긴장감은 몇 배나 더 가중된 듯했다.

그 말 많던 손지연도 오늘만큼은 말 한마디 없이 초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지연 학생. 차례 됐으니까, 준비해 주세요.”

이름이 호명되자 지연이는 손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일어났다.

나는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잘하고 와. 연습한 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

그런 내 응원을 듣고 지연이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정말 응원해 주는 거야?”

“응?”

“넌 우승하고 싶지 않아? 내가 잘 치면 연욱이 넌 우승 못 할 텐데? 난 네 경쟁자이기도 하잖아.”

뭔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승하든, 네가 우승하든 상관 안 해. 이 콩쿨이 우리 마지막은 아니잖아? 너도 앞으로 미래가 창창하고. 콩쿨은 이거 아니어도 지겹게 하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치고 와.”

“가끔 너 말하는 거 보면 꼭 아저씨 같아.”

“그래, 내가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긴 해. 얼른 가. 기다리겠다.”

“아, 응!”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뛰어가는 것을 보니, 긴장이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았다.

“혼자 남으니까 더 썰렁하네.”

공교롭게도 내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꼭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분이랄까.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게 고역이긴 했다만,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대기실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통해 손지연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면 귀에서 파직! 거리는 스파크가 들려왔다.

“갈수록 더 심해지네.”

언제부터인가 이런 증상이 생기더니,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음정, 아름답게 춤을 춰야 하는 노래가 어느 한 부분에서 꼬여 버리면 어김없이 스파크가 튀는 듯한 증상이 발현된다.

그리고 퍼즐 맞추듯이 그 음에 빠진 조각을 채워 넣거나, 제대로 교정을 해 준다면 잡음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절대음감?

세상 모든 절대음감들이 이런다고?

세상에는 참 다양한 천재들이 있다. 음악을 듣는 것에서도 남들보다 몇 배는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음악회 같은 데에서 피아니스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40분 동안 연주를 하면 청각 쪽으로 유별나게 뛰어난 사람은 어느 부분에서 미스 터치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확실히 나도 요즘 들어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긴 하지.”

저번에 소속사에 가서 혜나 누나와 내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도 남들이 듣지 못하는 무언가를 나는 아주 또렷하게 듣고 있었다. 그들도 분명 베테랑일 텐데, 그들의 귀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내게는 들렸다.

내가 그냥 민감한 것인지, 아니면 절대음감을 넘어서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전 생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이번 생에서 충만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남의 얘기 같았던 넘쳐흐르는 재능을 몸소 느끼며 하나씩 그것을 터득하는 중이었다.

이런 현상도 분명 그중 하나일 것이다.

짝짝짝-!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5분가량 되었던 지연이의 연주가 끝이 났다. 청중들은 뜨겁게 박수 치며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훗날 대한민국을 빛내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손지연이 아니던가.

그녀의 천재적인 연주 실력이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리라.

“장연욱 학생. 준비해 주세요.”

“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흐트러진 옷을 단정하게 했다.

조금 전까지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우승에 집착하지 말고 내 음악을 마음껏 들려준다는 생각만 하자.

나는 환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무대로 올라가 청중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짧은 숨과 함께 빠른 박자로 연주를 시작했다.

베토벤의 고별 3악장.

대학생들의 입시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중고등학생들이 치기에도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곡이라 이런 콩쿠르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 그리고 청중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정교한 테크닉이 가미되어 있는 곡이 필요하다며 이창호 교수가 연습시킨 곡이었다.

따라란-!

고별 3악장은 사실 도입부 표제를 보면 재회라고 쓰여 있다.

전쟁 때문에 오스트리아 황제와 헤어지게 된 베토벤은 1악장을 고별이라 썼고, 2악장은 부재. 마지막 3악장은 황제와 다시 만나면서 재회라고 썼다.

그래서 3악장은 시작 부분이 화려하고 시원하다.

마치 화려함과 빠른 템포를 선호하는 쇼팽의 스타일과 비슷하여 처음 들었을 땐 쇼팽의 곡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딴-! 딴-!

나는 쉼 없이 두 손을 움직이며 곡에 빠져들었다.

처음 1분은 내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과 하나 됨을 느꼈다.

그 순간부터는 내가 무대 위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연주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몽롱하면서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움이 온몸을 가득 채운다.

내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

이대로 손만 위로 뻗으면 하늘로 훨훨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완전한 몰입.

세계적인 연주가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연주하는 순간, 모든 걸 잊고 오직 음악에만 집중하고 그 안에 푹 빠져 버린다는 것을.

예전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면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와아-!”

“브라보!”

마지막 터치가 끝나면서 전혀 다른 세계로 가 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청중들이 뜨겁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조금 멍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여운이 남아 자리에 앉아 있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그럼에도 박수 소리는 끊이질 않았고, 사방에서 앵콜이 쏟아졌다.

내리쬐는 조명 덕에 청중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환호성만 들어도 그들이 보내는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난 환하게 웃으며 청중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오기 전보다 더 빠르게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환희였다.

그 환희와 기쁨은 분명 무대 위에서의 음악과 그것을 듣고 함께 기뻐해 주는 청중들로부터 왔을 것이다.

* * *

마지막 무대가 끝이 나고 심사위원들은 얼마 되지 않아 심사 결과를 알려 주었다.

이 콩쿠르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봤을 1등.

그 대망의 주인공은 예상과는 달리 지연이가 아니라 나였다.

“으흑-!”

지연이는 세상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평소에 잘 티도 안 내더니, 진짜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거 참 난감하게 됐다.

설마 이번 일로 미래가 바뀌어서 지연이가 피아노를 포기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나 때문에 우리나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하나가 사라져 버리는 거잖아?

“저기······. 지연아.”

“연욱아. 훌쩍-. 축하해. 훌쩍-! 나는 네가 꼭 훌쩍, 될 줄 알았어. 훌쩍-.”

“······.”

이게 축하를 받는 건지 아닌 건지.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음에는 훌쩍, 내가 우승할 거야. 훌쩍-.”

“응, 꼭 그래야 돼!”

“물론이지. 훌쩍.”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승부욕에 불타올라 저 귀여운 눈동자가 매섭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울고 있는 여자는 지연이뿐만이 아니었다.

“연욱아~!”

어머니에 이어,

“으흑-! 장연욱 이 재수 없는 놈!”

혜나 누나까지 펑펑 울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다들 진정 좀 하세요. 누가 보면 내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줄 알겠네.”

어머니는 내가 이런 큰 콩쿨 무대에서 우승할 줄은 몰랐는지 감격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거기다 누나도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퍽 때리며 똑같이 울고 있었다.

“아빠, 어떻게 진정 좀 시켜 주세요.”

“크흡-.”

“······설마 아빠도?”

맙소사.

아버지까지 남자의 눈물을 보이셨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눈물 많은 가족이었나?

누나는 당황하는 날 보고 핀잔을 주듯 말했다.

“우린 이렇게 기쁜데, 어째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아니. 나도 기쁘지. 근데 막 눈물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서······.”

“으-. 하여튼 천재들은 이게 문제야. 어차피 자기가 우승할 거 다 알고 있으니 감흥도 없는 거겠지.”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거지?”

“몰라. 바보야.”

나는 누나 볼에 묻은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만 울어. 예쁜 얼굴 퉁퉁 부어서 못 생겨지겠다.”

“흥, 난 찐빵처럼 부어도 엄청 귀엽거든?”

“자아도취가 심하시네. 그것도 병이야, 누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퉁퉁 부은 누나의 얼굴이 귀여우면 귀여웠지, 절대 못 생겨 보인 적은 없었다.

“아이고~ 연욱아!!”

어머니와 혜나 누나를 차례로 진정시키고 나자 이제는 이창호 교수가 달려와 나를 껴안고 번쩍 들어 올리려고까지 했다.

“어휴. 예쁜 놈. 넌 진짜 잘났다, 인마. 이걸 또 우승해버리네?”

“절 우승시키려고 선곡도 신경 쓰신 거 아니었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설마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지. 넌 대체 어떻게 돼 먹은 놈이야? 하하! 내가 제자 하나는 잘 뒀다니깐?”

이럴 때일수록 사회생활을 해 줘야 하는 거다.

“이게 다~ 교수님이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죠.”

“흐흐. 짜식. 나중에 유명해져도 이 교수님의 은혜를 잊으면 안 돼. 알겠지?”

이창호 교수는 몇 번이나 더 내 볼을 꼬집었다.

평소라면 차갑게 뿌리쳤겠지만, 이 아저씨가 오늘 아주 회춘한 것처럼 기뻐하는 것 같아 그냥 놔뒀다. 그렇게 슬슬 볼이 얼얼하게 아파져 올 때쯤이었다.

방송을 통해 안내의 말이 흘러나왔다.

“곧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승자의 앵콜 공연이 있으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앵콜 공연?

“앵콜 공연이 있어요?”

“몰랐냐? 오늘 네가 우승한 곡으로 치면 돼. 별거 없어. 가서 트로피 받고 아까처럼 멋들어지게 치면 되는 거야.”

가족들은 다시 관객석으로 들어가고 나는 스태프들 손에 이끌려 대기실로 갔다.

“가면 줄을 일렬로 서면 돼. 이름이 호명되면 그때 나와서 상을 받으면 된단다. 다들 잘 알겠지?”

곧 있으면 시상식이 바로 시작되기 때문에 스태프들은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들이 지정해 주는 자리에 서서 무대 위로 나갔다.

그곳에는 심사위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3등 안에 들지 못하고 본선 2차에만 들어온 아이들에게는 메달을 걸어주고, 1등부터 3등까지의 수상자들에게는 트로피를 수여하였다.

“축하한다. 오늘 좋은 연주 보여줘서 고마웠어. 진짜 잘 들었다.”

상을 건네주는 심사위원의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1등과 3등. 별로 달라 보일 게 없는 트로피였지만,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자, 그러면 이제 1등 수상자의 앵콜 공연이 있겠습니다.”

나는 트로피를 스태프들에게 맡겨 두고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미 콩쿠르는 끝이 났지만, 그 간질거리는 긴장감이 여전히 이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 갔다. 그러면서 짜릿하게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다.

음악을 하는 내가 좋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사람들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내가 좋다.

단순히 내가 오늘 1등을 해서가 아니다.

설사 꼴찌를 했더라도 이 행복감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이전 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무대의 아름다움이 나를 매혹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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