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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46화 (46/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46화 >

“이 부분은 뭔가 매끄럽지 않아. 네가 직접 귀로 듣기에도 좀 곡이 난해해 보이지 않냐? 한번 들어봐.”

이창호 교수는 내가 만들어온 악보를 직접 연주하며 부족한 부분을 수정해 주었다.

요즘 이창호 교수는 나와 레슨할 때마다 꼭 1시간씩 작곡에도 시간을 투자해 나를 가르쳤다.

내가 작곡에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피아노 연습과 작곡 연습을 동시에 시켰다.

“곧 있으면 본선인데, 작곡 연습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뭔가 대학생 시절 때가 절로 떠오른다.

“괜찮아. 이거 한 시간 연습 안 한다고 개판 날 놈이었으면 처음부터 가르치지도 않았어.”

“아~ 근데 저 오늘 연습 일찍 끝내도 되나요? 이따 누나랑 어디를 좀 가야 해서요.”

“네 누나랑? 어디 가는데?”

“저희 남매가 몇 주 전에 소속사랑 계약을 했거든요.”

“뭐, 뭐를 했다고?”

이창호 교수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GN 엔터테이먼트라고 아세요? 거기랑 계약했어요.”

“들어는 봤지.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그쪽 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들었고. 그런데 갑자기 너희 둘이 거길 왜? 정말 연예인 할 생각이냐? 다시 아역 배우로 활동하는 거야?”

조금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소속사랑 계약을 맺은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사. 나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어 했을 텐데, 내가 전혀 다른 쪽으로 빠지고 있으니까.

“당장 뭘 하는 건 아니에요. 저희를 남매 그룹으로 데뷔를 시키고 싶어 하는데, 저는 주로 작곡이랑 악기 연주를 하고 메인 보컬은 누나가 맡아서 할 거 같아요. 아마 몇 년은 연습생 생활할걸요?”

“흠······. 연기 같은 거 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네, 음악을 주로 할 거 같아요.”

“뭐, 소속사야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진 않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격렬하게 반대를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덤덤할 줄이야.

“왜 그렇게 보냐?”

“전 교수님이 반대하실 줄 알았거든요.”

“내가 왜? 그냥 네 연습에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조금 걱정을 했던 거지. 나중에 정말 네가 피아니스트가 되면 소속사는 꼭 필요해. 그래야 어디든 가서 공연을 할 거 아니냐.”

“피아니스트가 안 되면요? 제가 피아니스트는 되기 싫고 그냥 남매 그룹으로 데뷔해서 연예인이 되려고 한다면요?”

“그거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나도 욕심이 있긴 하다만, 솔직히 내가 돈도 안 받고 널 레슨 해주는 건 내 개인적인 흥미 때문이야.”

이런 얘기는 조금 신선했다.

“천부적인 재능.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난 그게 쓸데없이 희망을 주는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수없이도 많은 천재를 봐왔지. 그 뒤를 쫓는 노력하는 자들의 처절한 발버둥도 함께 봤고.”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노력하는 자들.

나도 원래 그들 중 하나였다.

내가 10시간을 투자해 이제 겨우 1을 하고 있으면 천재는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을 투자해 10을 해낸다.

“너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놈들은 아마 모를 거다. 노력하는 자가 얼마나 발버둥을 치며 바득바득 기어오르려고 하는지.”

안다. 그것도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게 올라갔으나, 결국 그 정상을 차지하는 건 재능 있는 자들이었다.

“난 천재들도 가르쳐 봤고, 노력하는 자들도 가르쳐봤어. 그리고 둘 다 어느 선에서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 역시 눈앞에서 봤지. 결국 천재든, 노력하는 자든 각자의 한계가 존재하고 그 끝에 부딪힌다는 거야. 그걸 깨닫는 순간 그 애들은 크게 절망하고 아예 음악을 포기하기까지 해.”

천재와 노력하는 자.

둘 다 모두 벽에 막혀 절망에 빠지는 곳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한계다.

“그런 걸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흥미를 잃었다고 해야 하나? 더는 제자를 거둬서 열정을 다 해 키우는 걸 하지 않게 됐지. 어차피 다들 또 벽에 부딪혀서 구렁텅이에 허덕일 게 뻔하니까. 그러다 널 보게 된 거야.”

“저를요?”

“그래. 이제까지 봐왔던 재능 중에서 가장 월등했어. 꺼졌던 불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야 할까? 네가 연주하는 걸 보고 문득 궁금해지더라고. 저놈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지 뭐 그런 거.”

“음-. 이런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좀 변태 같으세요.”

“하하! 거기다 감히 교수님한테 건방지게 말하는 것도 가끔 마음에 들고 말이다.”

이창호 교수는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네가 작곡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로 키워 보겠다는 내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아서 조금 짜증이 나긴 했어. 근데 생각을 달리해보니까, 굳이 널 피아니스트로만 국한할 필요는 없어 보이더라고.”

“그러면요?”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놔둬 보는 거지. 동시에 내 욕심도 조금 채우고. 피아니스트도 하면서 남매 그룹인지 뭔지도 하고, 거기다 작곡도 하는 거야. 어때? 아마 너처럼 자유분방하게 음악하는 사람은 없을걸?”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건 우물을 한 곳만 팔 능력밖에 없으니까 그러는 거고. 너처럼 미친 재능의 소유자가 우물 하나로 만족하겠냐? 뭐, 네 한 우물만 파야 되는 거라면 결국 네 한계는 거기까지였던 거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겠지.”

누군가는 한 우물만 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재다능함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여러 개의 우물을 팔 수가 있다.

내가 인생을 오래 살아본 건 아니나,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않던가?

이창호 교수는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왕 나왔으니 하자. 내가 피아노 배운지 고작 3년도 안 된 놈을 미쳤다고 콩쿠르에 올려보낸 거 같냐?”

“그냥 경험 쌓으라고 보내신 거 아니었어요?”

“나도 커리어가 있는 사람이다. 아무나 막 콩쿠르에 올리면 어떻게 되겠냐?”

“개쪽을 당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하! 이놈이 또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왔어? 아무튼, 네 말대로 개쪽을 당할 수도 있지. 나도 주변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이쪽 바닥은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명성도 당연히 중요하거든. 이상한 놈 하나 잘못 올려서 공든 탑을 쓰러뜨릴 순 없잖아.”

즉, 이창호 교수는 내가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내지 않을 거라 확신했던 것이다.

“내가 널 그 콩쿠르에 보낸 건 다른 교수들의 콧대를 짓뭉개려고 했던 거야. 너한테 그만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마 그놈들 열이 뻗쳐서 제대로 잠도 못 잤을걸? 그날 콩쿠르 때 나만 보면 도망가는 거 봤지? 흐흐.”

교수들이 왜 그렇게 이창호 교수를 피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양반은 그걸 또 즐기고 있었다.

“아무튼, 잡담은 여기까지. 연습을 게을리하면 될 것도 안 되기 마련이야. 지금은 잡생각 집어치우고 연습에만 집중해.”

잡담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된 조언이었다.

다재다능한 음악가라-.

이창호 교수가 오늘 내게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았다.

* * *

“누구랑 연락하냐? 또 지연이야?”

“아니. 누나는 무슨 내가 지연이랑만 연락하는 줄 알아? 뭐만 하면 지연이래.”

진짜 지연이랑 문자를 하고 있어서 놀랐지만, 나는 애써 아닌 척을 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성질이야. 좋으면 좋다고 남자답게 왜 말을 못 해?”

“그런 거 아니야.”

우리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테헤란로에 있는 GN 엔터테이먼트로 가는 중이었다.

이제 정식으로 계약을 한 상태고, 본격적으로 연습 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에효. 우리 동생이 다른 여자한테 빠져서 누나는 거들떠도 안 보니까 나도 별수 없네.”

“뭔 소리야.”

“나도 연락하자는 남자애들 많거든. 너만 있는 줄 알아? 오늘 ㄱ부터 ㅎ까지 다 훑어서 연락 돌릴 거야.”

씩씩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누나를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누나가 핵인싸 기질이 다분하긴 하지만, 정작 남과 연락하는 데에 있어서는 많이 귀찮아하기 때문에 분명 10분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혜나 누나는 벌써 흥미를 잃었는지 폰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나. 다 왔어.”

“아!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내 카드 대신 찍어줘.”

“어차피 깨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누나 목에 걸려 있는 캐릭터 카드집을 쭉 잡아당겨 카드기에 찍은 뒤 아직도 핸드폰을 보며 가만히 서 있는 누나를 강제로 끌고 내려왔다.

그렇게 질질 내 손에 끌려오던 누나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악! 조금만 더 때리면 깨는 건데!”

“내 그럴 줄 알았다.”

“아, 이 게임 지워버릴 거야. 이걸 지는 건 개발사 음모야.”

“누나는 참 음모론 좋아해. 혹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거 아니지?”

“시끄러.”

투덜거리는 누나와 함께 기획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실에서 박성호 트레이너와 처음 보는 몇몇 사람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래. 어서 와.”

“안녕하세요.”

“여기는 우리 기획사 프로듀서분들이야. 각자 인사 나눠.”

3명의 프로듀서.

우리는 각자 한 명씩 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너희가 데뷔하게 되면 여기 있는 분들이 작곡도 해 주고 방향도 잡아주는 거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너희들 실력이 어떤지 알아두라고 불러뒀어.”

“네.”

“일단 혜나 먼저 들어가 볼래? 곡은 네가 부르고 싶은 거 아무거나 말해. 우리가 MR 틀어 줄게.”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라 오디션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것과 조금 비슷한 상황처럼 보이긴 했다.

우리 남매 그룹이 데뷔를 한다고 해도 내가 작곡한 곡을 무조건 쓰지 않을 것이다. 여기 있는 프로듀서들이 내 곡을 세세하게 뜯어보고 수정해서 내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전에 우리 두 사람의 실력을 대충 파악하고자 모인 것 같았다.

GN 엔터테이먼트에서 처음으로 준비하는 남매 그룹이기도 하니, 다들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투맨의 선물 부를게요.”

“오~ 그 노래 좋지. 대신, 여자 키로 바꿔서 MR 틀어 줄게.”

“네~!”

혜나 누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를 뽑아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볍게 인사만 하고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프로듀서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애가 참 예쁘네.”

“그치? 영화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예뻐. 사진으로도 보긴 했는데, 진짜 실물은 못 따라가는구나.”

“비주얼은 무조건 합격이다. 제발 저대로만 잘 커 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갈 거 같은데.”

그리고 혜나 누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남의 얘기 같던 설레는 일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어~”

투맨의 선물이란 곡은 듀엣곡이면서 높은 음역대를 요구하는 곡이라 남자들도 부르기가 무척 힘들다. 아무리 키를 조정한다고 해도 여자들이 소화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곡이었다.

하지만 이 곡은 나랑 많이 연습해 본 곡이고, 여러 번 교정을 거치기도 했기 때문에 어느 곳 하나 흠잡을 곳 없이 깔끔했다.

그건 프로듀서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거 얼굴도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면서 노래까지 잘하면 사기 아니야?”

“하-. 가끔 저런 거 보면 자괴감 든다니깐. 누가 신이 공평하다고 했냐?”

“진짜 키우는 맛이 있긴 하겠네요. 아직 중1밖에 안 됐다면서요? 벌써 저렇게 잘해주면 앞으로가 엄청 기대되는데요?”

나는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누나가 노력했는지 알기에 기특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혜나야. 노래 잘 들었어. 이제 다시 들어와.”

박성호 트레이너는 혜나 누나를 부른 뒤 내게 고개를 돌렸다.

“연욱아. 이제 네가 들어가 봐야지?”

“네?”

“남매 그룹이잖아. 혜나가 메인 보컬 역할을 하겠지만, 너도 노래는 불러야 되니깐. 저번에 혜나 노래 부르는 것만 보고 네가 노래 부르는 건 안 본 거 같아서. 지금 한번 봐 보자.”

그러고 보니 내가 노래를 부를 거라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매 그룹으로 정말 데뷔를 할 거라면 나도 당연히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은가.

악기 연주와 작곡에만 신경을 썼더니, 그쪽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아, 네.”

나는 얼떨결에 녹음실로 들어가 헤드셋을 꼈다.

혜나 누나만큼 노래 실력이 있는 게 아닌데, 괜찮을까?

난 먼저 선곡을 하고 흘러나오는 MR에 따라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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