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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45화 (45/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45화 >

“뭘 그렇게 사람 잡아 먹을 듯이 쳐다 봐?”

“흐음······.”

누나는 위아래로 나를 물끄러미 살펴보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아까 그 지연이라는 아이한테 번호 줄 때 아주 헤벌쭉 웃더라?”

“내가 언제 헤벌쭉거렸어. 안 그랬거든?”

“다 봤어. 아주 잇몸이 다 튀어나와서 무슨 틀니인 줄.”

내가 그랬다고?

난 아주 덤덤한 얼굴로 번호를 준 거 같았는데.

아니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나?

“대기실에서 조용히 콩쿠르 준비나 하고 있을 것이지, 또 그새를 못 참고······.”

“아니. 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지연이가 먼저 나한테 말을 걸었다니깐?”

“오~ 이제 그냥 지연이, 지연이 자연스럽게 잘 나오네? 둘이 벌써 엄청 친해졌나 봐?”

“······.”

무슨 말을 해도 말꼬리를 잡힐 것 같았다.

그렇게 혜나 누나가 팔짱을 낀 채 잔소리를 퍼붓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말했다.

“우리 혜나 질투 하는구나?”

“응?”

“맞네. 동생이 다른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으니까 질투하는 거지?”

“내, 내가 무슨 질투를 한다고 그래! 어이없어, 진짜. 나도 학교에서 인기 엄청 많거든!”

“어이구. 그러세요? 그래, 맞아. 우리 혜나가 학교에서 인기 최고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혜나 누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세게 하며 먼저 밖으로 나가 버렸다.

부모님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는지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질 못하셨다. 나 역시 웃음을 터트리며 부모님과 함께 혜나 누나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내가 정말 헤벌쭉 웃으면서 번호를 줬던가?

* * *

“지연아. 어디 갔다 왔어?”

“응! 연욱이한테 번호 받으러 갔었어.”

“연욱이?”

손지연의 부모는 연욱이란 이름에 잠시 멈칫했다.

“혹시 오늘 콩쿠르 나온 남자애 말하는 거니?”

“응!”

“그렇구나······.”

떨떠름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손지연의 부모는 청중석에 앉아 지연이와 경쟁하는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전부 다 감상했다. 그리고 지연이에 필적하는 경쟁자는 없다고 단정 짓는 순간, 예선 때부터 말이 많았던 연욱이란 아이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 아이가 연주하는 곡을 다 들었을 땐, 하마터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박수를 칠 뻔했다. 그만큼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깔끔한 연주였다.

“연욱이랑 많이 친해졌니? 어떻게 친해졌어?”

“저번에 누가 나한테 대기실에서 초콜릿줬다고 했잖아. 그게 연욱이야.”

참 난해한 일이었다.

이번 콩쿠르 본선 2차에서 우승자가 결정되는데, 1위 자리를 두고 연욱이와 지연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게 뻔했다.

어떻게든 이번 콩쿠르에서 지연이를 우승시키고 싶었지만, 장연욱이라는 복병을 만나 전전긍긍하던 중, 딸아이는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어느새 연욱이와 번호까지 교환하는 사이가 되었다.

“여보. 어떡하지? 연락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니, 연욱이가 먼저 초콜릿을 줬다잖아.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닐까?”

“그건 너무 소설 아니야? 얘들이 무슨 첩보원들도 아니고.”

조금 생각이 과했나 싶었다.

그리고 지연이더러 그 아이랑 연락하지 말라고 막는 것도 꼴이 우습긴 했다.

“그 연욱이라는 남자애, 아까 보니까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 잘생겼더만. 지연이도 순수하게 호감을 느꼈나 보지.”

아빠는 별생각이 없는데, 지연이 엄마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금 손지연 귀에는 그 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번호를 내어줄 때 활짝 웃고 있던 연욱이의 얼굴만 생각날 뿐이었다.

* * *

본선이 끝나고 이창호 교수가 말했던 대로 나는 본선 1차를 통과해 본선 2차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미 본선 2차에 연주할 곡을 정해 둔 이창호 교수는 또다시 온종일 피아노실에 나를 붙잡아두고 연습시켰다.

[연욱아, 본선 2차 올라간 거 축하해! 나도 본선 1차 통과했어. 2차 때 대기실에서 또 만나겠네?]

손지연도 나와 같이 본선 1차를 통과했다.

그 아이도 한창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텐데, 간간이 내게 문자를 보냈다.

“야.”

“응?”

“너 또 헤벌쭉 웃고 있는 거 보니까 수상해. 지연이한테 연락이라도 왔냐?”

“아니, 대체 내가 언제 헤벌쭉 웃고 있었다고 그래.”

누나의 말을 퉁명스럽게 받아쳤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지연이한테 문자 온 걸 어떻게 안 거지?

진짜 내가 바보처럼 헤벌쭉 웃으면서 연락을 받나?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지. 네가 여자애들한테 연락받는 게 한두 번이야? 틈만 나면 여기저기서 연락 오잖아. 그거 전부 다 귀찮다고 씹는 놈이 지연이 연락은 꼬박꼬박 받는단 말이지.”

누가 내 번호를 뿌렸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도 모르는 애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많다. 지금도 얼굴 하나 기억나지 않는 애들이 문자를 보낸 것만 수십 통이 넘어 그냥 확인을 안 하고 쌓아 두는 중이었다.

“누나는 안 그러나 보네.”

“호호. 누나는 남한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단다. 그래도 너처럼 싸가지 없게 다 씹진 않고 하나씩 읽어는 줘. 가끔 정성스럽게 답장도 해 주고.”

“그게 더 잔인한 거야. 관심 없으면 딱딱 끊어줘야지. 괜히 사람 희망만 품게 하고.”

“음~ 그중에서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정성스러운 답장도 보내주는 거고. 안 그래?”

하도 남자애들이 누나한테 연락해대서 이젠 무신경해졌는데, 자기가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에 정신이 확 깼다.

“······누군데?”

“뭐가?”

“누구한테 관심 있냐고.”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아니, 아빠랑 내가 그랬지. 남자 새끼들은 다~ 늑대라고. 그놈들이 누나 앞에서는 되도않는 입을 털겠지만, 그거 다 거짓말이야.”

“오, 그래?”

“그러니까 혹시라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먼저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별해 줄 테니까.”

혜나 누나는 왠지 비웃는 듯한 입술을 가리며 말했다.

“남자는 다 늑대다 이거지?”

“응.”

“그럼 지연이한테도 말해줘야겠네? 너도 늑대 같은 남자니까 가까이하지 말라고.”

“······.”

어이가 없어서 잠깐 멍을 때리고 있는 사이, 누나가 벌레를 낚아채는 참새마냥 빠르게 다가와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뭐, 뭐야? 내놔.”

“음, 오케이.”

“뭐가 오케이야?”

“아- 지연이 번호 외운 거야. 신경 쓰지 마.”

누나는 다시 핸드폰을 내게 던져 놓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보인 누나의 눈빛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 * *

“어머니. 매우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저희도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일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강세원 대표는 한 장의 계약서가 아닌, 두 장의 계약서를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나는 혜나 누나를 위한 계약서, 다른 하나는 바로 나를 위한 계약서였다.

“대표님. 혜나랑만 계약하는 거 아니었어요?”

“저기······. 제가 그러려고 했는데, 저희 쪽 디렉터가 연욱이를 꼭 같이 데려왔으면 해서요.”

“디렉터요?”

“네, 작곡이랑 녹음을 맡고 있는 감독인데, 혜나가 오디션을 보던 날 연욱이한테 남다른 재능이 있는 걸 보고 마음에 들어 했나 봐요. 그래서 옆에 끼고 한번 키워 보고 싶다는군요. 하지만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어머님이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이 계약서는 없던 일로 해도 됩니다.”

어머니는 내 계약서를 찬찬히 훑어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부적인 활동은 아예 없는 건가요?”

“계약서를 보면 아시겠지만, 의무로 되어 있는 건 없습니다. 그러나 연욱이 인물이 워낙 잘났잖아요. 나중에 광고를 찍는다거나, 모델 일을 한다거나, 혹은 연기자로 진출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추후 논의를 한 다음. 연욱이가 원하면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조금 아쉬웠는지, 강 대표는 뒤에 말을 덧붙였다.

“아직도 연욱이와 혜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근황을 묻는 글들도 참 많고요. 그만큼 임팩트가 강했던 남매 아닙니까? 다시 스크린에 등장한다면 아마 반응이 좋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희가 구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더 있긴 한데······.”

“말씀하세요.”

“혜나가 저희 쪽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연욱이도 같이 트레이닝을 시켜 한번 남매 그룹을 데뷔시켜 보는 건 어떠냐는 말이 나왔었습니다.”

남매 그룹?

솔깃한 얘기였다.

“우리나라에서 남매 그룹이 크게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만, 연욱이와 혜나라면 먹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희 쪽 의견입니다. 그리고 저는 혜나가 솔로로 데뷔해 몇 년 동안 착실하게 경력을 쌓는다면 크게 성공할 거라 믿고 있고요.”

“그러니까 대표님 말은 남매 그룹으로 데뷔를 하고 혜나는 솔로로도 데뷔하자는 말씀이신가요?”

“예. 남매 그룹이 만약 잘 안 되면 솔로로 전향해도 되고, 만약 잘되도 그 기세를 이어가 솔로로 앨범을 내도 좋을 겁니다. 대신, 작곡은 연욱이가 해 주고요. 그럼 보기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남매 그룹.

나도 생각해보지 않은 조합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남매 그룹이 성공했던 적이 있던가?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거기다 혼성 그룹이라는 것 자체가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아 여러 기획사가 꺼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들 얘기이지 않은가?

“연욱이랑 혜나 조합이라면 충분히 이슈화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물론, 저희가 마케팅을 엄청나게 잘해야겠지만요.”

어머니는 계약서를 다시 훑어보다 나와 혜나 누나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작은 막대 사탕을 먹고 있던 혜나 누나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손짓을 보였다.

하도 저런 적이 많아서 이제 대충 손짓만 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혜나 누나는 다 좋대요. 근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래요.”

“그래? 연욱이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저는······.”

내가 처음 8살 몸으로 이 가족들 품에서 깨어나 지금까지 줄곧 혜나 누나를 스타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꼭 가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나가 원하는 것을 하면 되니까.

만약 누나의 꿈이 가수라면 솔로 가수, 혹은 예전처럼 다시 걸그룹으로 데뷔를 시켜 뒤에서 서포트를 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뮤지컬과 영화를 같이 활동하면서 나도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누나가 혼자 무대에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나도 그 옆에 같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마치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강 대표가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뭘 그렇게 뜸을 들여.”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누나가 사탕을 입에서 빼고 강 대표 앞에 다가갔다.

“대표님. 할게요!”

“으응? 한다고?”

“제 동생이 천재라는 거 대표님도 그때 보셨잖아요. 그리고 혼자 외롭게 데뷔하는 것보다는 동생이랑 같이 데뷔하는 게 전 더 좋아요. 다른 사람이 옆에서 연습 도와주기보다는, 연욱이가 연습을 도와주는 게 훨씬 좋고요.”

얼굴은 당장 도장을 찍게 하고 싶은 거 같은데, 강 대표는 슬쩍 어머니 눈치를 보았다.

“전 아이들 결정에 따를게요.”

마침내 어머니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강 대표는 입이 찢어질 것처럼 올라갔다.

아버지가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 계약서를 검토하기 전까지는 도장을 찍을 순 없지만, 거의 계약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강 대표는 다짐하듯 말했다.

“어머니. 다른 기획사들처럼 사기를 치거나,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혜나랑 연욱이는 내가 꼭 스타로 만들어 줄게. 물론, 그게 음악으로 될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될지는 나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우리 연욱이랑 같이 있게 해 주시면 돼요.”

누나는 버릇처럼 팔을 내 목에 걸은 채 미소를 지었다.

강 대표 말대로 누나가 어떤 방향으로 스타가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반드시 누나가 이번 생에는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물론 이번엔 그 옆에 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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