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42화 (42/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42화 >

가이드 보컬이라 함은 새로운 노래가 나왔을 때 그 곡을 가수가 잘 부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이드 보컬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자신만의 해석으로 다시 탈바꿈 하는 것이 바로 가수의 역할이다.

나는 누나가 헤드셋을 낀 채 눈을 감고 가이드 보컬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까지 누나가 오디션을 보면서 긴장을 하거나, 실수를 했던 적은 없다.

다만, 무대 공포증이 남아있어 관객이 많은 무대를 올라갈 때 손을 떨거나 하는 증상을 보였다. 그나마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완화되는 듯해 보였다.

최근에 있었던 교내 행사에서도 별 차질 없이 장기자랑을 무사히 마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번 노래 괜찮네.”

가이드 보컬이 부르는 노래를 같이 감상하고 있던 강 대표가 말했다.

이은지 디렉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미완성곡이에요.”

“그래? 다 완성된 거 아니었어?”

“완성된 거긴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요.”

혜나 누나가 헤드셋으로 듣고 있는 노래를 우리도 똑같이 듣고 있다.

언뜻 들어 보면 완성된 곡처럼 보이나, 이은지 디렉터 말대로 뭔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연인의 사랑을 애절하게 부르는 전형적인 발라드 곡.

별생각 없이 들으면 좋은 노래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딱 강세원 대표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노래 중간중간 잡음 같이 귓가에 파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곡에 정말로 잡음이 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귀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혜나 누나가 노래 연습을 하는 걸 도와줄 때도 틀린 부분이 있거나, 귀에 거슬리는 곳이 있으면 곧장 이런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그럼 곧바로 연주를 멈추고 누나를 교정해 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완성되면 누구한테 곡을 주려고?”

“그건 아직 안 정했어요. 뭐, 떠오르는 가수 몇몇 있긴 한데 아직은 미정이에요.”

“근데 오디션 치고는 좀 빡센 거 아니야? 공개도 안 된 곡을 부르라고 하다니. 보통 가수들도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잖아.”

강 대표 말대로 어려운 숙제였다.

아직 외부에 공개도 되지 않은 곡이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처음 듣고 따라 불러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다 들었어요.”

“응?”

같은 노래를 3번 정도 들었을 때 혜나 누나가 우리 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은지 디렉터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재차 확인했다.

“혜나야. 정말 다 들었어? 몇 번 더 들어도 돼.”

“괜찮아요. 들을 만큼 들은 거 같아요. 가사는 여기 종이 보고 하면 되는 거죠?”

“응, 너 온다고 내가 그쪽에 미리 가져다 놓은 악보야. 바로 불러 봐도 괜찮겠니?”

“네!”

마이크를 끄고 이은지 디렉터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 3번만 듣고 바로 따라 부르기는 힘들 텐데.”

그러면서 가이드 보컬의 목소리를 뺀 MR을 틀어 주었다.

혜나 누나는 마치 여러 번 녹음을 해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당신은 내게 선물 같아~ 설레는 내일이 기다려지는 건 그대 때문이겠죠.”

흔들림 없이 곡을 시작하는 혜나 누나였다.

음 높낮이 폭이 꽤 커서 적잖은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혜나 누나의 음정이 이탈되는 일은 없었다.

노래를 조용히 듣고 있던 이은지 디렉터의 입꼬리가 차츰 위로 올라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녀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이드 보컬이 노래를 불렀을 땐 일반 발라드 곡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뀌자 노래의 색깔도 확 달라졌다.

“대표님 말씀이 맞네요.”

“응? 뭐가?”

“저 얘, 음색이 확실히 특이해요. 가는 목소리라서 고음을 제대로 칠 수 있을까 했는데, 신기하게 묵직한 음을 내면서 올라가네. 그것도 청명함을 유지하면서요.”

이은지 디렉터 얼굴만 봐도 오디션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합격이다.

그리고 옆이 있던 박성호 트레이너도 흥미로운 눈동자로 혜나 누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욕심나는 목소리네요. 한번 키워볼 만하겠어요.”

“하하, 내가 말했잖아. 재능이 충만한 아이라고.”

“그런데 혜나 학생이 어디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나요?”

“응? 아니. 없다던데.”

“그래요? 신기하네. 꼭 어디서 교정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치? 나도 그렇게 들렸다니깐. 그래서 물어봤는데, 따로 노래를 배운 적은 없나 봐.”

이은지 디렉터는 노래가 끝난 뒤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혜나야. 한번만 더 불러줄 수 있을까?”

“네~!”

혜나 누나에게 한번 더 노래를 부르게 시킨 이은지 디렉터는 아무 말 없이 녹음실 가득 흘러나오는 누나의 목소리를 감상했다.

강 대표와 박성호 트레이너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로 불렀던 것보다 더 노래가 깨끗하게 들려왔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인상을 심어줬다.

노래가 다 끝나고 나서 박성호 트레이너가 먼저 짧게 박수를 쳤다.

“이야, 고작 두 번 만에 이렇게 달라진다고?”

강 대표는 마치 자기가 칭찬받은 것마냥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흐흐. 그만큼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시다는 거지.”

“처음 불렀을 때보다 음색이 더 깨끗해졌어요. 듣다가 소름이 쫙 돋았잖아요. 감독님도 그렇죠?”

이은지 디렉터는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뭐, 괜찮게 부르네.”

“에이. 평가가 너무 박하시네.”

“원래 이 감독이 저러잖아. 저것도 큰 칭찬이야.”

그러다 강 대표가 내게 물었다.

“연욱아. 너는 어땠어? 네 누나 노래 진짜 잘 부르지?”

“아, 네. 잘 부르네요.”

박성호 트레이너는 입너에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욱이도 이 감독님처럼 평가가 야박하네.”

평가가 야박한 게 아니다.

누나는 정말로 잘 불러 주었다. 하지만 선곡이 별로였다.

이은지 디렉터 말대로 노래가 미완성이라 그런지 귀에 거슬리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고생했어, 혜나야.”

“진짜 잘 불렀다. 완전 감동했잖아.”

누나가 녹음실을 나오자 강 대표와 박성호 트레이너는 엄지손을 치켜 들며 칭찬을 늘여 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은지 디렉터가 누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혜나야. 혹시 보컬 학원 다닌 적이 있니?”

“아니요. 없어요.”

“그래? 네가 노래하는 걸 들어보면 누가 옆에서 교정을 해 준 티가 나. 그럼 평소에 연습은 어떻게 하는 거야? 혼자해?”

“아, 연욱이가 절 도와주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옆에서 같이 연습해 주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을 해 주고요.”

“응? 연욱이가?”

모두의 시선이 갑자기 가만히 있던 내게 쏠렸다.

“연욱이 네가 누나를 연습시켜줬다고?”

“그냥 피아노 연주해 주다가 조금 거슬리는 곳만 집어 주는 게 전부였어요.”

“그런 것치고는 혜나가 교정을 잘 받은 거 같던데? 그럼 혹시 방금 혜나가 부르는 노래 듣고 거슬리는 곳은 없었니?”

거슬리는 곳이라.

가이드 보컬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부터 계속 거슬리는 구간이 있긴 했다.

“음······.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곡 자체에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 있었어요.”

이은지 디렉터의 미묘했던 표정이 흥미로 가득 찬 얼굴로 바뀌었다.

“그래? 정확히 어느 부분?”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상대가 먼저 물어봤으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보를 가져왔다.

“이쪽 마디랑, 이쪽. 총 두 군데요. 둘 다 모두 절이 반복되면 다시 나오는 부분이다 보니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러자 이은지 디렉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와 악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말 이 부분들이 귀에 거슬렸어?”

“네.”

“신기하네. 나도 똑같이 이 두 곳만 거슬렸거든. 그런데 어떻게 음을 짜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일단 놔둔 거야. 가이드 보컬이 부르는 걸 듣다 보면 촉이 올 거라고 생각해서.”

“아마 누구라도 똑같이 생각했을 거예요.”

“아니야. 아까 강 대표님 하는 말씀 못 들었니? 그냥 좋다잖아. 다른 사람들도 노래 듣고 좋다는 얘기밖에 하지 않았어.”

이은지 디렉터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혹시 연욱이 너 어디서 음악 공부하니? 작곡이라든가······.”

“그냥 피아노만 조금 쳐요.”

“작곡은 아예 공부 안 하고?”

“그건 그냥 독학으로 조금 했어요.”

“작곡을 독학으로? 쉽지 않을 텐데.”

그러자 옆에 있던 혜나 누나가 거들었다.

“우리 연욱이가 못 하는 게 없어요. 피아노 연주도 엄청 잘해서 지금 콩쿠르 본선 준비 중이에요.”

“그래? 정말 너희 남매는 다재다능하구나. 얼굴 잘생기고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었네. 그 비주얼로 피아노 치면 심사위원들이 다 뻑 가겠다.”

이은지 디렉터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넌 이 악보를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어?”

“네?”

“귀에 거슬린다며. 네 귀에 거슬리지 않게 하려면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할까?”

내 귀에 거슬리지 않게?

나는 악보에 담긴 음표를 보고 머릿속으로 재생을 시켜 보았다. 그리고 나와 이은지 디렉터가 똑같이 지적한 부분에서 파직 마찰음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조정시켜 줘야만 하는 걸까.

나는 대체 가능한 여러 조합을 하나씩 집어넣어 보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렇게 열다섯 번째 조합까지 가서야 파직 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음, 이건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좋지 않을까요?”

나는 즉석에서 마디 하나를 고쳤다.

그러자 이은지 디렉터는 잠깐 확인하고 나서 다른 부분을 가리켰다.

“이건?”

방금 전과 똑같이 머릿속으로 음을 떠올리며 최대한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음들을 대입해 보았다. 몇 번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마찰음이 생겨났지만, 조합이 거듭될수록 그 소리가 약해졌고 결국 최적의 음이 나오게 되었다.

나는 다시 펜을 들어 해당 부분을 전체적으로 손보았다.

이렇게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바꿔도 되나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니 이은지 디렉터가 직접 보고 판단할 거라 생각했다.

“······.”

그녀는 내 악보를 찬찬히 살펴보다 키보드를 두들기더니,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감독. 왜 그래?”

“연욱이가 수정해 준 대로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내가 수정한 대로 정말 곡을 다시 만든다고?

요즘 곡 뽑아내는 거야 어렵지 않다.

그냥 컴퓨터와 연결된 기계로 세상 모든 악기 소리를 낼 수가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작곡을 하면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서 작곡가들은 싫어하지만 일반인 귀에는 다 똑같이 들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음대를 다닐 땐 아예 AI가 원하는 장르를 입력하면 알아서 곡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 당시 국내에서 히트 친 몇 개의 곡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을 땐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한번 들어 볼까?”

단 몇 분도 안 돼서 수정을 마친 이은지 디렉터가 곡을 재생시켰다.

보컬이 없는, MR만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오~ 어디가 달라졌는지 말 안 해 줘도 알겠다.”

강 대표 말대로 두 군데만 고쳤을 뿐인데도 노래가 확 바뀐 느낌이다.

거슬리는 부분이 사라지니 한결 듣기 편해졌다.

이 노래를 혜나 누나가 부르면 어떤 소리가 나올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은지 디렉터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혜나야. 가이드 보컬이 없긴 하지만, 한번 바뀐 대로 불러 볼 수 있겠니?”

“한 번만 더 들으면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더 노래를 재생시켰다.

혜나 누나는 집중하며 노래를 들은 뒤,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 흘러나오는 반주에 따라 노래를 시작했다.

귀를 괴롭히던 마찰음이 사라지고 나니 더욱 선명하게 혜나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풀밭에 누워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특색 있고, 잔잔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히는 목소리였다. 이제껏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들어 보지 못한 특별한 목소리.

내가 저번 생에서 혜나 누나의 팬이 된 것도 바로 이 목소리 때문이었다.

꼭 내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들렸던 까닭이다.

그리고 오늘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같은 걸 느끼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모두 눈을 감은 채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누나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을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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