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40화 (40/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40화 >

“······.”

불편한 적막이 집안에 가득했다.

앞에 앉은 두 남자, 아니. 한 남자만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그에 반해 어머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머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대표님은요?”

“하하, 저야 어머님 덕분에 평안했습니다.”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강 대표님도 참 끈질기시네요. 이제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GN 엔터테이먼트의 강세원 대표.

저번 생에서도 몇 번 TV로 본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연예계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GN 엔터테이먼트가 대한민국 3대 대형 기획사에는 못 미치지만, 다양한 음악 장르와 폭넓은 분야에 진출해 점점 그 세력을 키우게 된다.

여러 기획사가 마약과 폭행 등으로 곤욕을 치를 때, GN 엔터테이먼트는 신기하게도 모든 논란을 피해갔다. 그로 인해 강세원 대표는 걸어 다니는 부적이 아니냐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만큼 강 대표가 사람을 가리고 가려서 받는다는 의미였다.

“제가 좀 끈질긴 면이 있죠. 잘하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하나라도 똑바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GN 엔터테이먼트는 아주 좋은 기획사였다.

일단 소속사에 소속된 연예인 중에 인성 문제로 논란이 된 적이 없다는 것만 봐도 대표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두 분이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면 강 대표가 몇 차례나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려 혜나 누나를 스카우트 하려 했던 거 같았다.

“어머님. 이렇게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세원 대표는 정중하게 자세를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양반이 좋게 봐줬더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어머니도 적잖게 당황하신 듯해 보였다.

“대표님.”

우리 두 사람의 눈초리를 느낀 모양인지, 강세원 대표의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혜나를 저희 소속사에서 한번 키워 보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애써 정정을 해 봤지만, 어머니의 생각을 바꿀 순 없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혜나를 소속사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님. 혜나는 연예인의 재능이 있는 아이입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보는 것이 어떨까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 하는 게 없는 아이입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어리잖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몇 번 더 강세원 대표가 끈질기게 설득해 보았으나, 어머니는 끝내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 강 대표는 침울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이대로 포기하나 싶었는데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어머님! 그땐 꼭 재고해 주십시오.”

보통이 아닌 사람 같았다.

어머님도 이젠 질렸는지 별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는 방에서 슬쩍 눈치를 보다 집 밖으로 나가는 강 대표의 뒤를 따라갔다.

“저기 대표님.”

“응? 아! 연욱아. 아까는 인사를 제대로 못 했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넌 진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것 같······.”

“왜 우리 누나를 스카우트하려는 거예요?”

“응?”

강 대표는 빙긋 웃으며 내 앞에 허리를 낮췄다.

“왜? 넌 빼고 누나만 데려가서 실망했니? 너도 꼭 데려가고 싶지만, 일단 혜나부터······.”

“아니요. 전 소속사 들어갈 생각 없어요. 그냥 대표님이 왜 우리 누나를 스카우트하려는 건지 궁금해서요.”

어린 초등학생의 질문이 꽤 당돌하게 들렸던 건지, 강 대표는 복도에서 주저리 떠들지 않고 나를 밖으로 데려가 근처 벤치에 앉았다.

“네 누나는 재능이 있어.”

“그래서 연기를 시키려고요?”

“아니. 난 혜나에게 연기보다는 가수의 재능이 더 크다고 본다.”

여러 소속사들이 혜나 누나에게 계약서를 내민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연기자로 키울 생각만 할 뿐, 누나를 가수로 키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강 대표는 누나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찾은 듯보였다.

그는 초등학생의 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어른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최근에 혜나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교내 행사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어.”

교내 행사?

나도 못 본 걸, 강 대표가 어떻게 가서 본 거지?

“예? 대표님이 누나가 다니는 중학교까지 가서 행사를 보셨어요?”

“아니. 거기 학교 선생님 하나가 찍은 영상을 본 거지. 내가 따로 부탁했거든. 혜나가 교내 행사 때 장기자랑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그러고 보니 저번 주에 혜나 누나가 나와 곡 하나를 연습해 장기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교내 행사라서 아쉽게도 난 보지 못했지만, 이 양반은 누나가 다니는 학교에 사람을 깔아 두기라도 한 모양이다.

“너희들이 같이했던 ‘괴물’ 뮤지컬에서도 느낀 거지만, 혜나는 음색이 조금 특이해. 청명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힌다고 해야 할까. 듣다 보면 왠지 내가 힐링을 받는 기분이야.”

강 대표 말대로 누나의 목소리는 특색이 있다.

목소리가 가는 것 같아 고음으로 치고 올라갈 때 끊길 것 같지만, 그땐 신기하게도 탄력을 받아 안정적인 고음을 내는 건 물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대단한 과외 선생님이라도 붙은 건지, 노래 실력이 크게 발전한 거 같았어. 혹시 너희 누나 전문 보컬 트레이닝이라도 받았니?”

누나는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옆에서 하나하나 지적해 가며 교정을 해 주었을 뿐.

“아니요. 없어요.”

“그래? 이상하네. 그런 맑은 목소리를 깨끗하고 안정적으로 내려면 훈련을 받아야 할 텐데. 예전 뮤지컬 봤을 땐 몇 가지 불안한 구석이 있었거든. 난 그사이에 교정을 받으면서 성장한 줄 알았지.”

성장이라-.

확실히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혜나 누나의 실력은 늘어가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면 좀 이상하겠지만, 이 아저씨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그러니까 저 시골구석에 있던 회사를 여기까지 키워낸 거겠지. 난 네 누나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 최고의 싱글 여가수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고.”

“싱글 여가수요?”

“응. 우리나라에 싱글로 데뷔한 여가수들이 많긴 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지. 길게 경력을 유지하는 사람도 없고. 하지만 네 누나가 지금부터 준비를 하고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땐 대체 불가한 가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는 나도 생각해 보지 못한 그림이었다.

“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해. 그것도 긴 시간을 두고 말이야. 우리가 대형 기획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투자할 준비는 되어 있어.”

열정에 찬 눈빛이다.

이 사람은 당장 눈앞에 이익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거 내가 어린애를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니에요. 누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줄은 몰랐어요.”

“네 누나는 몇 안 되는 귀한 보석 같은 존재이니까. 그런데 부모님의 뜻이 완강하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지.”

포기하는 건가?

“계속 안심시켜 드리고 벽을 허물어 드리는 게 내 역할 아니겠어?”

뭔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강 대표는 내 머리를 쓰다듬은 뒤 비서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대체 불가한 여가수.

과연 혜나 누나에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런 누나 옆에서 내가 같이 무대를 설 수 있을까?

* * *

“누나. 일어나.”

나는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혜나 누나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누나는 잠투정을 부리며 일어나지 않았다.

“으- 조금만 더 잘래.”

“안 돼. 일어나.”

“싫어.”

“일어나.”

그렇게 열 번 정도 흔들어 깨웠을까.

“누나~! 얼른 일어나라니깐?”

결국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일어날게.”

“말만 하지 말고 일어나세요. 좀.”

그러자 갑자기 양팔을 높이 들었다

“뭐?”

“뭐긴 뭐야. 일으켜 달라는 거지.”

“아니.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안 일으켜 주면 여기에 영원히 붙어 있을 거야!”

“쯧-.”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누나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누나는 그냥 축 늘어진 채로 온몸에서 힘을 빼 버렸다.

“진짜 이럴래? 무슨 슬라임이야? 이러다 녹겠네.”

“히히. 얼른 일으켜줘.”

반 정도 일으켰다가 나는 그냥 잡고 있던 두 손을 놔버렸다.

“악-!”

다시 매트리스로 떨어진 혜나 누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야! 다시 놓으면 어떡해!”

“오, 성능 확실하네. 혼자서도 잘 일어나고.”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는 누나를 놔두고 방을 나섰다.

“얼른 씻고 나와. 엄마가 밥 다 해 놨어.”

“두고 보자, 장연욱.”

저럴 때 보면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귀여울 뿐이다.

나는 거실로 나가 국을 뜨고 계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응? 누나는 깨웠어?”

“네. 지금 씻고 있어요.”

“그래. 누나 나오기 전에 너 먼저 먹고 있어. 얼른 앉아.”

아버지는 일이 있으셔서 일찍 나가신 상태고, 지금 누나는 씻는 중이라 어머니와 단둘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난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다 말했다.

“저기, 엄마.”

“응? 왜?”

“저번에 우리 집에 다녀가셨던 분들 있잖아요.”

“누구? 아. 그 강 대표님이랑 비서분?”

“네.”

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셨다.

“하도 찾아오겠다고 연락을 주기에 단단히 거절 의사를 말해 주려고 부른 것뿐이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니요. 굳이 그 사람들을 멀리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GN 엔터테이먼트는 매력적인 기획사가 아니던가. 이대로 뻥 차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말씀드리기 망설였던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냈다.

“누나 꿈이 예전부터 가수였잖아아요. 그런데 저도 음악을 조금 하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요. 그래야 더 풍부한 감정으로 표현이 가능하잖아요.”

“응, 그렇긴 하지.”

“저랑 누나는 그동안 활동도 하지 않았고, 부모님 말씀대로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누나는 누구보다도 꿈이 커요. 그러니까 하루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거 아니겠어요?”

“······.”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냥 내 얘기를 경청하며 고개를 조금 끄덕여 주실 뿐이다.

“저는 누나가 겉으로 말은 못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옆에서 노래 연습을 도와줄 때마다 당장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게 훤히 보일 정도니까요.”

“그래?”

“네, 엄마가 걱정하시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 누나를 믿어 보는 게 어떨까요? 그 강세원 대표님 말대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굳이 그 끝이 가수가 아니어도 돼요. 그냥 누나가 하고 싶다면 잠시 걱정을 뒤로 하고 한번 믿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자식들 걱정을 정말 끔찍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렇기에 예전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으실 터. 그러나 그것이 길어지면 결국 누나에게 큰 족쇄가 되어 버릴 것이다.

어머니는 차분한 얼굴로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볼을 살짝 꼬집으셨다.

“하여튼, 안 그러는 거 같으면서 엄청 누나를 챙긴다니깐? 혜나는 좋겠다. 이렇게 누나 걱정만 해 주는 동생이 있어서. 엄마 동생은 전혀 안 그랬는데.”

그리고 어렵게 마음을 바꾸셨다.

“네 말도 옳아. 엄마가 너무 너희들을 꼭 품에 안기만 했지? 그래도 아직은 너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곁에만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게 혜나가 하고 싶은 걸 막는 거라면 엄마도 다시 생각해 볼게. 그리고 혜나한테도 물어보고.”

이 정도면 거진 반은 허락이라고 봐야 했다.

누나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난 이미 누나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다.

같이 연습해 주다 보면 안다.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면 가장 빛나 보이고, 눈에 생기가 돈다.

그것들을 보고 어떻게 가수의 꿈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더욱 누나가 훨훨 날아오르길 바란다.

* * *

“장연욱 두고 보자. 감히 예쁜 누나를 내팽개쳐?”

혜나는 기지개를 쭉 핀 채 복수를 다짐했다.

“으으-. 그래도 졸려.”

시크한 동생 덕분에 그나마 잠이 조금 깨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다시 저 매트리스에 점프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혜나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동생은 잠이 없는 건지 어떻게 된 게 매번 일찍 일어나 있다.

저러다 수면 부족으로 쓰러지는 거 아니야?

“냄새 좋다.”

대충 세면을 마치고 방 밖을 나오니 뜨끈한 국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거기에 이끌려 거실로 나가던 중, 들려오는 연욱이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누나는 누구보다도 꿈이 커요.”

어쩌다 보니 엄마와 동생의 대화 내용을 엿듣게 되었다.

저번에 강세원 대표가 찾아왔던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사실 그동안 혜나도 고민하고 있던 내용을 동생이 속 시원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혜나라고 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녀도 계속 이대로 가만히 있기가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 속으로 쭉 품고만 있었는데, 동생은 그런 누나의 마음을 아주 잘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지 못 하는 누나를 대신해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누나를 한번 믿어 보는 게 어떨까요?”

누나를 믿어 보자는 연욱이의 말이 유독 귓가에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누나가 꿈을 꼭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 진심을 엄마도 느낀 것인지, 완고했던 마음이 차츰 허물어졌다.

결국 엄마가 다시 생각을 해 보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여기서 팔짝 팔짝 뛸 순 없는 노릇이다.

혜나는 고개를 위로 들고 중얼 거렸다.

“아.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이게 다 장연욱 때문이야.”

애꿎은 동생 탓이라도 해야 했다.

아까 일을 어떻게 복수 해 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이렇게 사람 눈을 핑 돌게 만들면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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