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9화 (39/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9화 >

“내가 말했지? 예선 통과는 쉬울 거라고.”

예선전이 끝나고 나서 곧바로 결과 발표가 이어졌다.

오늘 예선전에 참석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떨어지고 나머지는 본선 무대로 진출하게 됐다. 거기서 본선 1차를 치르고 2차까지 끝내게 되면 콩쿠르는 마무리가 된다.

다행히 예선전은 통과해 쪽팔림은 면할 수 있었다.

“김 교수. 오늘 다 같이 식사나 하자면서? 바로 가려고?”

“아, 네. 오늘은 급히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박 교수도 지금 가?”

“네. 저도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송해요, 교수님.”

콩쿠르를 시작하기 전에는 꼭 식사 자리에 참석하고 싶어 했던 교수들이 지금은 도망치듯 떠나가고 있었다.

이창호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교수님.”

“응?”

“아무래도 왕따 당하시는 거 같은데요?”

이창호 교수는 완강히 부인했다.

“허허. 연욱아. 내가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이쪽 바닥에서는 얼마나 유명한······.”

“그거야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해 주셔서 잘 알고 있어요.”

“크흠-. 아무튼, 다들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 저 중에서 예선 통과 못 한 제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 그렇게 막 판단하는 거 아니야.”

이창호 교수가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내 옆에 있던 혜나 누나가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연욱아. 너무 불쌍해 보이신다. 진짜 친구 없으신가 봐. 우리라도 같이 놀아드려야 하나?”

“그러다 후회할걸. 누나가 안 겪어 봐서 그래.”

“뭐 어때~. 우리 동생 가르쳐 주시는 고마운 분이잖아. 따로 돈도 받지 않으신다며?”

그건 맞다.

원래 대학병원을 가면 교수특진이라는 걸 따로 받지 않던가.

당연히 교수 레슨비는 보통 학원과 차원이 다르다.

교수의 이름값과 학교에 따라 레슨비도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그중 이창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탑을 달리는 사람이니 아마 어마어마한 레슨비를 자랑할 것이다. 아마 억만금을 들고 와 제발 우리 아이 좀 봐달라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진짜 고마운 사람이었다.

저 몸값 비싸신 양반이 거의 매일 날 만나러 오고 있으니 말이다.

혜나 누나는 쓸쓸해 보이는 교수에게 다가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교수님. 혹시 저희랑 밥 먹으러 갈까요?”

“응? 아까 연욱이가 싫다고 했는데.”

그러자 혜나 누나는 내 쪽을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다.

난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그땐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들이랑 드시는 거 같아서 예의상 거절했던 거죠. 교수님이랑 먹는 밥이 제일 맛있어요. 하하.”

방금까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이창호 교수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럴까? 오늘 고생도 하기도 했으니, 특별히 소고기 어때? 교수님이 다 사 줄게.”

그러자 혜나 누나는 열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와~ 역시 교수님. 내가 말했지, 연욱아? 네 교수님 진짜 대단하신 분 같다고 내가 저번부터 계속 그랬잖아.”

“그래? 언제?”

“호호. 얘가 또 모른 척하는 거 봐.”

누나가 허벅지를 꼬집고 나서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교수님 레슨 받으러 갈 때마다 그랬지. 기억나네. 하하.”

“여기 볼 일 다 봤으니까, 얼른 가자. 내가 근처 식당 좋은 데 알고 있어.”

이창호 교수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우리 둘을 데리고 겉만 봐도 으리으리하게 비싸 보이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혜나 누나는 두리번거리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야, 여기 엄청 비싸 보인다. 히익! 가격 봐.”

“자연스러운 척해. 자연스러운 척.”

“저런 가격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연스러운 척을 해?”

“······.”

하긴. 저렇게 비싼 가격의 한우를 먹어본 적이 없긴 하지.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여기 고기가 일품이야. 최고급 한우만 나와.”

우리 교수님 통이 크시네.

하지만 무작정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경우가 있지 않던가.

사장이 직원들을 비싼 중국집에 데려가 아무거나 다 시켜도 좋다고 말해 놓고 정작 자신은 짜장면 한 그릇만 시키는 것 말이다.

“에이. 그래도 저희가 어떻게 그래요. 교수님이 시켜 주세요.”

“음. 그럴까? 그럼 갈비살부터 먹어볼래? 아니다. 여기 육회가 진짜 맛있어. 그거부터 먹어 봐. 고기 구우면서 먼저 먹고 있으면 딱이야.”

그러나 이창호 교수는 정말 우리가 먹고 싶은 거라면 다 사주려는 모양이다.

그는 가격표를 신경 쓰지 않고 이것저것 고기를 주문했는데, 그 박력에 순간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오~”

우리 두 사람은 먼저 나온 육회 한 점을 입에 물고 눈을 번쩍였다.

고기가 이렇게 사르르 녹을 수도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천천히 먹어. 다 먹으면 또 시키면 되니까.”

이창호 교수는 흐뭇하게 미소를 보이며 우리 두 사람이 먹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 말했다.

“두 사람 사이가 좋아 보이네?”

“네?”

“보통 남매끼리는 사이좋기가 힘들거든. 그런데 둘은 서로 참 친한 거 같아서. 싸우지 않는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그거야 제가 잘해서죠.”

“제가 잘해 주기 때문이에요.”

국수 면발처럼 육회를 먹고 있던 우리 남매가 동시에 대답하자 이창호 교수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와, 장연욱. 사람 그러는 거 아니다. 이 누나가 얼마나 잘해 주는데, 그걸 쏙 빠뜨려?”

“누나야 말로 병원 가 봐. 그거 단기 기억상실증이야.”

“아니거든!”

웃긴 건 투닥거리면서도 둘 다 고기 먹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둘이 그만해. 그러다 진짜 싸움 나겠네. 그런데 혜나 너는 꿈이 가수라고?”

고기를 우물거리며 혜나 누나가 대답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주워 들었지. 정말 노래 부르는 게 자신 있고, 꿈을 키워 보고 싶다면 교수님한테 말해. 내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관심 있으면 트레이닝 같은 거 한번 받아 봐.”

“음-. 그건 부모님한테 먼저 물어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리고 연욱아.”

“네?”

이창호 교수는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연희한테······. 그러니까 네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한테 들었어. 넌 피아노 말고 작곡을 하고 싶다면서?”

결국 그 이야기가 이창호 교수의 귀로 들어갔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긴 했다.

이창호 교수는 정말 진지하게 나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정말 피아노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싶은 생각도 들고.”

“누나 꿈이 가수라서 그걸 도와주고 싶다며? 네가 곡을 써 주고 싶은 거야?”

혜나 누나는 열심히 움직이던 젓가락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날 도와주고 싶어서 곡을 써?”

“네 동생이 얼마나 누나를 생각하는지, 글쎄 잘 치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작곡을 하고 싶다잖냐. 그런데 정말 누나를 도와주고 싶은 거라면 작곡이 아니라 예술 경영을 가야지. 거긴 기획사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니까.”

예술 경영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경영보다 곡을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나는 절대 깰 수 없는 약속을 하나 하지 않았던가.

혜나 누나는 냅다 내 등을 때리며 소리쳤다.

“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피아노를 왜 그만둬. 그렇게 좋아하면서!”

“아파라. 아니, 내가 언제 그만둔다고 했어?”

“너, 나 때문에 뭐 포기한다는 소리 한 번만 더 해.”

“누나 때문에 포기하는 거 아니라니깐 그러네. 그냥 재밌어 보여서 하려는 거지.”

이창호 교수는 우리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혹시 연욱이 너 작곡할 줄은 아니?”

당연히 알고 있다.

음대에서 배운 짬밥이 있으니까.

“네? 아··· 조금요.”

“조금? 할 줄 안다는 거야? 언제 배웠어?”

“그냥 독학으로 정말 조금만 배웠어요.”

“그렇단 말이지······.”

뭔가 이창호 교수의 눈빛이 불안하다.

호기심이 가득한 저 눈동자.

항상 저럴 때면 끔찍한 연습량으로 이어지곤 했다.

“일단 오늘은 먹자.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이창호 교수는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해 보였다.

아마 본인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겠지.

괜한 말로 들떠 있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듯했다.

* * *

“아. 잠깐만. 알 것도 같은데. 하- 이거 어렵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건 취소.

이창호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난 얼굴이었다.

“아~ 교수님. 실망이네.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세요.”

“으으-.”

어느 자리에서나 이상한 개그와 언변으로 대화 주도권을 붙잡던 이창호 교수는 오늘 최대의 난적을 만났다. 그는 신음까지 흘리며 머리를 쥐어짜는 중이었다.

옆에 앉아 있는 나도 애써 티를 내진 않았지만, 머릿속이 온통 혜나 누나가 낸 문제로 가득했다.

“잘 생각해보세요. 새우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뭐겠어요? 새우를 다른 말로 또 뭐라고 하잖아요.”

그러자 교수님이 무릎을 탁치며 소리쳤다.

“아! 알았다! 대하드라마!”

“정답~! 이야. 교수님 진짜 잘 맞추신다.”

“으하하!”

벌써 30분째 이러고 있다.

혜나 누나는 대체 어떻게 저런 개그들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장연욱 바보. 어떻게 한번을 못 맞추냐.”

“연욱이는 수련이 더 필요하겠구나. 어떻게 누나랑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쯧쯧.”

“······.”

살다 살다 이런 걸로 차별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보니 이창호 교수랑 혜나 누나가 죽이 엄청 잘 맞는다.

“또 없냐?”

“아, 하나 더 있죠. 반성문을 영어로 쓰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제, 제발 그만.

그렇게 30분을 더 문제에 시달리다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누나도 참 대단하다. 난 교수님이랑 할 얘기가 별로 없던데. 개그도 썰렁하기만 하고.”

“왜~? 재밌으신 분 같던데. 난 유명한 서울대 교수님이시라고 해서 좀 무서울 줄 알았어. 그런데 오히려 귀여운 구석이 있으시던데?”

“이창호 교수님이 그 얘기 들었으면 오늘 자지러지셨겠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누나는 갑자기 무섭게 눈을 뜨며 말했다.

“그리고 너!”

“으응?”

“아까 그건 무슨 얘기야. 나 때문에 피아노를 포기하고 작곡을 한다고? 진짜야?”

“아. 그거.”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진짜 나 때문에 포기하는 거야?”

“아니야. 그냥 작곡이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거짓말하지 마. 내가 너 한두 번 보니? 거짓말할 때 다 티 나거든?”

혜나 누나의 매서운 손바닥이 내 등을 연속으로 후려치며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속에 있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 아파! 아니. 누나가 도와달라며!”

“뭐?”

“누나가 혼자 무대 올라가는 건 무섭다며. 그래서 도와달라고 했잖아. 같이 올라가자고.”

그러자 누나는 멈칫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당연하지. 무슨 10년 지난 일도 아니잖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구먼.”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다.

“왜 그래. 혹시 누나는 내가 한 약속도 잊고 있었어?”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니. 그냥 네가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괜히 나 때문에 너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니야.”

나는 혜나 누나의 숙인 고개 위에 있는 정수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재밌잖아. 내가 쓴 곡을 누나가 불러 주고, 또 그게 잘 돼서 돈도 왕창 벌고. 원래 노래 부르는 사람보다 노래 작곡한 사람이 돈 더 많이 번대. 누나 지금 소처럼 나한테 코 꿰인 거야. 앞으로 내가 작곡해 준 곡만 불러야 되니까.”

몇 번 더 누르자 다시 살아난 혜나 누나였다.

“이씨, 내가 정수리 만지지 말랬지.”

“안 돼. 이거 꾹꾹 누르는 촉감이 좋다니깐.”

“너도 일로 와.”

“응, 안 가.”

“야! 너 죽었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냅다 뛰어 집 앞으로 뛰어갔다. 혜나 누나는 그 뒤를 무섭게 쫓아왔다. 얼마나 살벌하게 쫓아오는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 모두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웬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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