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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8화 (38/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8화 >

쪼옥- 쪼옥-

나는 카페에서 빨대를 물고 쥬스를 쭉 마시고 있는 혜나 누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기요. 혹시 동생 삥 뜯으러 오셨어요?”

“미안···. 지갑에 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없을 줄은 몰랐네.”

“하하. 카드는 장식인가 봐.”

“카드도 저번에 빼놓은 거 까먹고 안 가져왔······.”

누나는 푹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에휴. 됐어. 그거 마시고 집에나 가.”

“엥? 싫어. 내가 동생 응원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 청중 없이 하는 날이라니깐?”

“내가 이미 데스크에 다 물어봤어. 오늘 예선 참가하는 아이들 보호자는 참관하게 해도 좋대.”

“보호자? 누나가 내 보호자야?”

“당연하지!”

누나는 귀엽게 가슴팍을 두드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호자는 참관이 가능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지만, 굳이 예선을 보러 발품을 팔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본선보다 몇 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엄청 오래 기다려야 할 걸? 거기다 내 차례가 좀 뒤라고 하던데.”

“괜찮아. 기다리는 것쯤은 이제 익숙해.”

누나는 내 옆으로 와서 앉더니 자기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었다.

“자, 저번에 했던 약속이나 지킵시다. 나 이번엔 여기에서 막혔어. 이번에는 진짜 내 손이 문제가 아니라 게임사가······.”

“응, 아니야.”

나는 누나를 대신해 핸드폰 게임을 해 주다가 시선이 느껴져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혜나 누나가 있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뭐 묻은 줄 알았잖아.”

“후후, 우리 동생 얼굴에 잘생김이 묻긴 했지.”

오글거리는 멘트와 함께 누나는 내 머리를 부스스 쓰다듬다 짧게 꺅 소리를 냈다.

“와, 어떻게 머릿결이 나보다 좋아? 질투 나네.”

“그만해. 머리 빠져.”

“뭐야. 벌써 탈모 걱정하는 거야? 엄마 아빠 다 머리숱 많아서 괜찮을 걸~? 그리고 이거 너무 느낌 좋다. 은근 중독성 있어.”

“아! 잠깐, 이러다 죽겠다.”

“어어, 죽으면 안 돼!”

누나가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 바람에, 게임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가까스로 스테이지는 깼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누나에게 넘기면서 자연스레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다.

누나는 내 옆에 꼭 붙어 화면을 같이 바라보면서 물었다.

“연욱아. 넌 피아노 계속 할 거지?”

“응? 갑자기 왜?”

“그냥 물어보는 거야. 나는 매일 가수될 거라고 떠들어 댔는데, 정작 넌 뭘 하고 싶은지 얘기한 적이 없으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누나는 자신의 목표가 명확하고 가수가 될 거라는 꿈을 귀에 박히도록 말해 주었다. 그런 누나 옆에서 난 응원만 해줬을 뿐, 내가 뭘 할 거라는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

“넌 꿈이 뭐야? 피아니스트? 그래서 콩쿠르도 하는 거야?”

“갑자기 왜 꿈 얘기야.”

“궁금하니깐 그렇지. 누나가 동생 꿈도 모르면 쓰나!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내가 도와줄 거 아니야.”

“게임이나 깨시져. 저러다 캐릭터 죽겠네.”

“앗!”

집중해서 간신히 고비를 넘긴 혜나 누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냥 난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서 말한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거?”

“네가 좋아하는 것들 있잖아. 피아노랑 기타 치는 거 보고 있으면 참 좋아 보이더라.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악기랑 하나가 돼서 편안해 보이는 느낌이었어.”

“그래?”

“응. 엄청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그냥 넌 그때가 제일 멋있어.”

“······.”

기습적인 칭찬 공세에 반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난 피아노 소질이 없어서 잘 못 치겠더라. 기타도 그렇고. 넌 아빠 닮아서 엄청 잘 치나 봐.”

혜나 누나는 다른 또래에 비해서 악기 연주를 잘하는 편이었다. 물론, 나와 비교했을 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아빠가 말한 대로 남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열심히 게임하는 것 치고는 대화 내용이 심오하네. 철학 공부하는 줄.”

“야! 누나가 조언을 해 주면 좀······.”

“화면 보셔야죠. 어딜 봐. 저러다 또 죽는다.”

“아, 안 돼!”

나는 울상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누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집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버스랑 지하철을 여러 번 환승해서 탔을 텐데, 날 응원해 주려고 그 수고를 전부 감수하고 여기까지 와 주었다.

내가 겉으로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지금 속으로는 너무 고마웠다.

막상 여기 와 보니 조금 외롭더라고.

“힝. 벌써 들어가야 돼?”

어쩌다 보니 카페에서 시간을 많이 썼다.

우린 다시 대기실 앞으로 돌아왔다.

“가야지. 카페에서 너무 오래 있었어. 곧 내 차례일 거야.”

내 팔짱을 끼고 붙어 있던 누나가 손을 휘휘 저었다.

“어서 들어가. 너도 준비해야지.”

“응. 누나는?”

“너 예선 나올 때까지 관객석에 앉아서 기다리려고.”

“기다리는 거 지루하겠다. 얼른 가.”

“괜찮아. 너 먼저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누나 말대로 나는 먼저 대기실로 들어가려 했는데, 뭔가 까먹은 게 있었나 본지 누나는 나를 급하게 붙잡았다.

“아참! 이거 안 줬네.”

“뭐?”

“네가 좋아하는 G&G 초콜릿. 이거 먹으면 긴장감이 싹 풀릴 거야.”

누나는 내게 초콜릿을 쥐어 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감?

그건 아까 혜나 누나 얼굴 보고 나서 싹 풀렸다. 그래도 초콜릿은 참을 수 없어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

그런데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주변을 바라보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나만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특히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눈동자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난 들고 있던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다 하나를 건네주며 눈웃음을 지었다.

“너도 하나 먹을래?”

“······응.”

그러자 갑자기 무장 해제가 된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초콜릿 싫어하는 초등학생은 없다.

* * *

“별일이네.”

“그러게. 이창호 교수님이 어린애를 제자로 키운 적이 있었나? 보통 다 서울대 학생들만 키워 왔잖아.”

관객석에 모여 앉아 있던 교수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히 이들의 대화 주제는 이창호 교수와 그가 데려온 제자였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진짜 깐깐한 양반인데, 초등학생을 공들여 키우는 걸 보면······.”

보통 재능이 아닐 것이다.

이창호 교수가 깐깐하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한번도 키워 본 적 없는 초등학생을 콩쿠르에 데리고 나타났으니, 당연히 같은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교수들 사이에 이슈화될 수밖에 없었다.

벌써 그들은 각자 알고 있는 교수들에게 이창호 교수가 콩쿠르에 왔다고 문자를 보내 소식을 알리기까지 했다.

“근데 피아노 배운지 2~3년 됐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것밖에 안 배웠는데 벌써 콩쿠르에 나오는 건 좀 이상하지?”

“거짓말 아닐까? 분명 걸음마 때부터 배웠을 거야. 보통 그렇잖아.”

“이창호 교수님이 그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어? 평소에도 빈말은 잘 안 하는 사람인데.”

분위기가 싸해지는 이상한 아재 개그를 자주 치긴 해도 빈말을 하거나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던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가 아니더라도 냉정한 평가와 함께 확실한 피드백까지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아-. 궁금하네. 대체 연주 실력이 어떻기에 저 양반이 제자로 키우는 거야?”

“진짜 경험 쌓으라고 데려온 건가? 이거 긴장 안 해도 되는 거겠지? 괜히 우리만 들러리 서는 거 아니냐고.”

“진짜 2~3년밖에 연습 안 한 제자라면 경험 쌓으러 온 게 맞는 거겠지.”

“다들 뭘 그리 걱정을 해? 연습한 결과대로 나올 텐데.”

어느 교수의 말에 모두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연습에 따라 실력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연습량이 아니라 바로 재능의 크기다.

가진 재능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10일 동안 해야 하는 것을 하루 만에 끝내기도 하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점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연욱이라는 아이는 언제 나와?”

“아까 대기 번호 보니까 곧 나올 거 같던데?”

왠지 교수들은 자기 제자들보다 장연욱의 순번을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슬슬 지루함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애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저기 여기 혹시 자리 있나요?”

“아, 네. 앉아도 괜찮아요. 학생.”

대답을 해 준 여교수는 별로 꾸미지 않아도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여자아이, 혜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학생. 초면에 이상하겠지만, 엄청 예쁘네요. 난 무슨 연예인인 줄 알았어.”

“정말요? 감사합니다.”

“혹시 나이가······ 중학생? 고등학생?”

“이제 중학교 1학년이에요.”

“어머. 그래요? 되게 성숙해 보인다. 이거 칭찬이에요. 호호. 그럼 혹시 예술중 다녀요? 피아노 전공?”

“아니요. 오늘 남동생 응원하러 왔어요.”

“아~ 그렇구나. 동생은 좋겠네. 이렇게 예쁜 누나가 응원도 해 주고.”

“그쵸? 히히.”

그렇게 두 사람이 잠깐 수다를 떨던 중, 드디어 기다리던 순서가 다가왔다.

“다음은 장연욱 참가자 나와 주세요.”

혜나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던 여교수를 비롯해 청중석에 앉은 교수들 모두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장연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미 교수들을 통해 소문을 들은 참가자 학부모들도 날카로운 눈초리로 장연욱이 피아노 앞에 앉는 걸 바라보았다.

조금 어수선했던 청중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싹 바뀌는 것을 보고 심사위원들은 의아해했지만, 그들은 기계적으로 연주를 시켰다.

“자, 시작하세요.”

연욱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청중석 쪽을 바라보았다.

비록 청중석이 어두워 보였지만, 멀리서 봐도 한눈에 누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혜나도 연욱이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는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었다.

그런 혜나의 행동을 보고 여교수는 눈가를 꿈틀거렸다.

“혹시 남동생이라는 게 저 아이?”

“네!”

“음- 그랬구나.”

아까 홀에서 봤을 때도 아이가  빼어나게 생겼다고 생각은 했는데, 누나까지 이렇게 예쁜 걸 보면 참 이기적인 남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과연 연주는 어떨지······.

따란-!

예선 심사곡, 클레멘티 소나티네 연주가 시작되었다.

예선 심사가 힘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심사를 위해 같은 곡을 하루에 백 번도 넘게 들어야 한다.

본선만 들어가도 곡이 여러 개로 나뉘어서 들을 만하지만, 예선은 보통 곡이 하나로 통일 되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졸음이 쏟아져 온다.

그런데 연욱이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는 앞에 있던 참가자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모차르트처럼 건반이 통통 튀고 음이 가벼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빠른 연주이기 때문에 양손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그것도 이 곡에 담긴 기교를 선보이면서 말이다. 그러다 종종 미스 터치가 나는 구간이 있는데, 연욱의 연주에는 심사위원들의 귀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쯧-.”

연욱의 연주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교수들의 입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혜나와 떠들던 여교수는 괜히 엄지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 앞에 앉아 있는 이창호 교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뭐? 피아노를 배운지 2~3년밖에 안 돼?’

‘2년? 2년이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저게 어딜 봐서 경험을 쌓으러 온 거야. 그냥 다 잡아먹으려고 작정을 하고 왔구먼.’

누구 하나 졸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즐겁게 감상하는 반면, 대다수의 학부모와 교수들은 복잡한 심정이 여실히 얼굴에 드러났다.

보통 중반 정도 치면 심사위원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연주를 중단시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 하나 손을 들지 않고 끝까지 곡을 다 들었다.

“음- 잘했습니다. 고생했어요.”

연주가 끝나고 나서 그들은 저마다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잘 쳤다는 말까지 건넸다. 예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교수들은 저 앞에서 혼자 물개박수를 치고 있는 이창호 교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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