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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7화 (37/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7화 - (여기서부터가 유료 시작입니다.) >

‘미안. 내가 미안해.’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이건 혜나 누나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혜나 누나가 무릎을 꿇은 채로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전부 다 내 잘못이야.’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저건 성인이 된 혜나 누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제발 돌아와 줘.’

나는 울고 있는 혜나 누나에게 다가가기 위해 손을 뻗어 보았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혜나 누나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난 모든 걸 포기한 듯 보이는 그녀를 향해 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어떤 음성도 그녀에게 닿지 않는 듯했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며 마침내 몸을 구속하던 사슬을 풀어내고 사라져 가는 누나를 향해 달려갔다.

“누나!”

“웅?”

침대에서 벌떡 몸을 반쯤 일으킨 나는 그제서야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날 깨우려고 온 누나가 옆에 서 있었다.

“왜 불러?”

“아······.”

순간 뻘쭘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지, 지금 몇 시냐고 물어보려고 부른 거야.”

“흐응... 아닌 거 같은데. 혹시 내 꿈 꿨니?”

“그런 거 아니라니깐.”

“에궁. 우리 동생 어쩌나. 이젠 꿈에서도 이 누나를 잊지 못하고.”

혜나 누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으며 내 등을 토닥였다.

“응? 잠깐만. 이게 뭐야?”

그러다 내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는 걸 알고는 장난스러웠던 목소리가 진지하게 바뀌었다.

“왜 이렇게 등이 축축해. 너 또 악몽 꿨구나!”

“아니야. 악몽 안 꿨어.”

혜나 누나는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혹시 혼자 자는 게 무서워? 내일부터는 누나가 옆에서 같이 자 줄까?”

“돼, 됐거든.”

“에이. 왜~ 어릴 때는 매일 같이 잤으면서.”

그 말에 옛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누나 잠꼬대도 심하고 몸부림도 엄청 심하잖아. 발로 내 얼굴 때린 게 한두 번이야?”

“사람이 자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가 그렇게 민감해.”

혜나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잠꼬대와 몸부림이 심했다.

내 얼굴만 발로 치면 다행이지, 누나는 여러 번 침대 위에서 떨어져 다친 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부모님은 나만 침대를 쓰게 하고 누나 침대는 프레임을 치우고 매트리스 위에서만 자게 했다.

“넌 꼭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악몽을 꾸더라. 오늘 콩쿠르 예선전이라서 긴장했구나?”

저번 생에서도 그러더니, 이번 생에서도 내일 뭔가 중요한 일이 있으면 꼭 잠을 뒤척이거나 악몽을 꾸곤 했다. 이 성격은 어딜 안 가나 보다.

“이게 유전인가 봐. 난 시험 때만 되면 배가 엄청 아프더라고. 그래서 아침에 아무것도 안 먹고 가잖아. 근데도 시험 보기 전에는 꼭 배가 아파.”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흠. 어제 받아온 시험 성적을 보면 배가 아픈 걸로 커버 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닌 거 같던데요, 누님?”

“······들었냐?”

“부모님의 한숨이 지척에 닿으니 듣지 않을 수가 없었죠.”

“그래도 평타는 쳤어!”

“허허. 그게 평타라면 우리나라 교육 수준이 얼마나 절망적인 건지······. 쯧쯧.”

“야!!”

나는 누나가 베개로 내려치는 것을 가만히 맞아줬다.

푹신한 베개라 별로 아프지도 않다.

별 느낌도 없는 수준이라 그냥 맞고만 있으려 했는데······.

퍽-! 퍽-!

아. 데미지가 축적되고 있어서 그런가.

점점 정신이 아늑해진다.

“동생 깨우고 오라니까 왜 이렇게 안 오는······.”

그때 구원자처럼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등장했다.

“장혜나! 엄마가 동생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동생 깨우라고 보냈더니 왜 베개로 때리고 있어!”

“아니. 내, 내가 언제 괴롭혔다고 그래!”

누가 봐도 나는 불쌍하게 누나한테 두들겨 맞고 있는 동생이었다.

“어휴. 아주 동생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다니깐? 그만해!”

“악-!”

결국 어머니가 날리는 사랑의 등짝 스매싱을 맞고 나서야 혜나 누나가 물러났다.

누나는 방을 나서면서 입 모양으로 내게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장연욱. 나중에 두고 보자.’

어림도 없지.

“엄마. 누나가 이따 두고 보자고 협박해요.”

“장혜나! 너 자꾸 그럴래?”

“아이 진짜 너무해.”

나는 발을 쿵쿵거리며 나가는 혜나 누나를 보고 풉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가 내 등에도 사랑의 스매시를 날리셨다.

“너도 누나 그만 놀려. 그렇게 재밌니?”

그래도 얼굴은 웃고 계신다.

우리 남매가 투닥거리긴 해도 절대 심하게 싸우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집안이 시끌시끌하네? 다들 잘 잤어?”

나와 혜나 누나가 식탁으로 모이자 아버지도 방에서 나오셨다.

평일에는 부모님 모두 직장에 가시느라 가족이 전부 모여 식사를 하기 어렵다. 그러니 주말만큼은 꼭 같이 먹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어 아침에 늦잠을 주무시지 않는다.

“오늘 연욱이 예선전 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괜찮아요. 예선은 청중 없이 하는 거래서요. 예선 통과하면 본선 때 보러 오세요.”

저 작은 얼굴이 빵빵해질 정도로 밥을 넣고 있던 혜나 누나가 내게 조르듯이 말했다.

“진짜 보러 가면 안 되는 거야?”

“응. 안 와도 돼. 오늘 교수님이랑 둘이서만 갈 거야.”

“에이. 그래도 내가 옆에서 파이팅 하라고 응원하면 더 잘 칠 수 있지 않을까?”

“괜찮아. 오늘 집에서 푹 쉬어. 예선전은 사람 많아서 좀 오래 걸려.”

오늘 예선전에 부모님이 안 오시는 이유는 일단 예선전은 청중이 참석하지 않고, 둘째로는 참석을 한다고 해도 예선전이 워낙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족들 쉬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애써 예선전까지 오셨는데 내가 덜컥 떨어져 버리면 쪽도 그런 쪽이 없을 것이다.

* * *

“오늘 잘하고 와~”

“우리 연욱이 파이팅!”

“난 우리 아들 잘할 거라 믿어. 결과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해. 알겠지? 교수님. 연욱이 잘 부탁드립니다.”

“예. 이따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직접 나를 데리러 오신 교수님 차를 타고 콩쿠르가 열리는 장소로 떠났다.

신영 주니어 콩쿠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영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결을 펼치는 곳이었다.

물론, 아예 어렸을 때부터 유럽으로 떠나 해외에서 음악을 시작하는 영재들도 많은 터라 모든 대한민국 피아노 영재를 모았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충분히 인정받는 대회임은 분명했다.

“긴장되냐?”

대회장에 도착하고 나니,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안 되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걱정마. 내가 네 긴장을 풀어 주려고 따로 준비한 것이 있지.”

청심환이라도 한 알 들고 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아기를 낳으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예?”

“후후. 잘 생각해 봐. 난 저기 사람들이랑 인사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 이 양반은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싶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안 나왔다.

······그래서 정답이 뭔데?

궁금하잖아.

“어? 이창호 교수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창호 교수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 그래. 김 교수. 오랜만이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어쩐 일이긴. 내가 가르치는 제자 하나가 있는데, 그놈 예선하는 거 보러 왔지.”

“네? 교수님이 제자를요?”

신영 콩쿠르는 교수들 만남의 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자 육성 중인 제자들을 데리고 오는 자리이니 말이다.

누가 더 제자를 잘 키웠나 대결하는 대회라고 해야 할까.

“오늘 초등부 콩쿠르에 오셨다는 건, 말씀하신 제자가 초등학생이라는 건데······.”

“맞아.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야.”

“와~ 교수님께서 점찍은 아이라니. 궁금한데요? 원래 제자 같은 거 잘 안 받으시잖아요.”

그들은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주변을 탐색하더니, 이창호 교수가 가리키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래. 모두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빛은 경계심이 가득해 보였다.

“어머~ 교수님. 어디서 저렇게 잘생긴 제자를 데리고 오셨어요? 이거 연주 실력은 둘째치고 얼굴 보고 뽑으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잠깐. 저 얼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러게. 나도 어디서 꼭 본 거 같은 느낌이 나네.”

이창호 교수는 내 등을 팡팡 치며 교수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이 얼굴을 모르다니. 다들 영화 안 보고 살았어? 그 저번에 히트 친 영화 있잖아. 기억 안 나?”

그러자 하나둘 손뼉을 치며 탄성을 터트렸다.

“아~ 이제 기억났다!”

“어머! 설마 그 애라고요? 나 그 영화 엄청 재밌게 봤었는데.”

“그 영화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아예 안 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잘 컸구나. 거기다 이창호 교수님의 제자라니. 진짜 다 가졌네. 하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교수들이 말하는 것만 봐도 이창호 교수가 우리나라 피아노 쪽에서는 권위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내게 칭찬을 하면서도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피아노 배운지 2년밖에 안 된 놈이야. 아직 배울 게 한참 많아. 오늘은 경험 삼아 나온 거고.”

“호호. 그래요?”

“에이. 그래도 교수님이 뽑은 아이인데 보통은 넘겠죠.”

내가 피아노를 배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에 다들 조금은 경계심을 풀었다. 하지만 교수들을 따라온 제자들의 눈빛이 매서웠다.

마치 공공의 적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곧 있으면 예선 시작합니다.”

스태프의 안내에 교수들은 각자 자리를 돌아갔다.

“교수님,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래, 오랜만에 다들 식사나 한번 하자고.”

“넵, 저희야 좋죠.”

교수들이 극진하게 예의를 갖추는 것을 보니, 오늘따라 이창호 교수가 다르게 보였다.

“우리도 들어갈 준비 하자.”

“네. 그런데 교수님.”

“응?”

“아까 내신 문제, 정답이 뭐예요?”

돌아서니 귀신같이 긴장감이 싹 사라지고 그 문제만 생각났다.

“응, 안 가르쳐 줘.”

나는 낄낄거리며 예선장 안으로 들어가는 교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양반이 진짜 권위 있는 서울대 교수가 맞는지 너무나 의심스러웠다.

* * *

음-.

여긴 끔찍하게 숨 막히네.

나는 예선전 대기실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초등학생들이라 시끄럽게 떠들 만도 한데, 여긴 진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모두 말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무섭게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뭔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어린 나이에 벌써 다들 죽일 듯이 노려봐야 하는 경쟁이라니.

그런데 저 불타는 눈동자들이 왠지 내게 쏠려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기분 탓인가 했는데, 점점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눈동자 숫자가 많아졌다.

“살벌하다, 살벌해.”

나는 잠깐 대기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저런 숨 막히는 공간에서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붙잡혀 있어야 한다니.

거기다 저 초등학생들이 나만 무섭게 노려보고 있어 더 신경이 쓰였다.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대기실 말고 다른 곳에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대기실로 돌아갈 때였다.

“음?”

후드를 꾹 눌러쓴 채 문틈으로 안쪽을 염탐하고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상대의 뒤로 천천히 다가가 보았다. 그러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

“여기가 아닌가? 분명 대기실이 여기라고 했는데.”

실루엣도 그렇고 이 익숙한 샴푸 냄새와 향수 향기도 내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도둑 고양이처럼 좁은 문틈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의 등을 톡톡 건드렸다.

“누나. 여기서 뭐해?”

“헉-!”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한 누나를 내가 간신히 붙잡았다.

집에서 조용히 공부나 하고 있으라니까 여긴 또 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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