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3화 (33/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3화 >

꿀벌 피아노의 원장, 연희는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산뜻했다.

새해가 밝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동안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학원을 운영해 왔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혜나와 연욱 남매가 다시 학원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쌤도 영화 보셨어요? 전 벌써 3번 넘게 봤다니까요?”

“은정쌤도? 나도 당연히 2번 챙겨 봤지! 내가 임성곤 배우를 엄청 좋아하는데, 어떻게 된 게 연욱이가 임성곤 배우보다 더 빛이 난다니깐?”

“어후. 난 빨리 연욱이랑 혜나가 다음 작품 찍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만약 작품 찍는다고 하면 학원을 또 안 올 거 아니에요.”

“그것도 그렇네.”

꿀벌 피아노 선생님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역시 연욱이와 혜나였다.

뮤지컬에 나온다고 했을 때, 선생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두 사람의 공연을 찾아갔으며, 이번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2번 이상은 꼭 보는 팬심을 보였다.

원장인 연희는 딱히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녀도 이미 영화를 2번이나 볼 만큼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그 남매가 다시 학원에 돌아온다는 전화를 효진에게 받았을 땐 얼마나 기뻤던지.

특히 연욱이는 남다른 피아노 실력이 있어서 효진이 직접 레슨을 맡기도 했다. 다시 한번 그 아기자기한 손으로 치는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었다.

“오늘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네?”

오랜만에 연희의 피아노 학원에 들린 이창호 교수는 밝게 웃고 있는 연희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응. 요즘 따라 그냥 자꾸 웃게 되네? 기분도 엄청 좋고. 오빠도 좀 웃고 살아 봐.”

“허허. 나처럼 잘 웃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대학 교수만큼 잘 웃는 사람도 드물어. 내가 무슨 농담을 던져도 학생들이 다 자지러지거든. 내가 유머 감각이 뛰어난가 봐.”

뭔가 할 말은 많았지만, 그냥 꾹 삼킨 연희였다.

대학 교수가 하는 말에 웃지 않는 학생과 조교는 없을 것이다.

그가 내 목숨 같은 학점을 쥐고 있으면 말이다.

“오빠. 사실 오늘 내가 오빠를 부른 건······.”

“왜? 새로 발견한 원석이라도 있어? 네가 옛날에 추천해 준 고등학생도 지금 우리 학교 잘 다니고 있잖아.”

그가 말한 대로 예전에 연희는 재능이 있다고 여긴 중학생 하나를 열심히 키워 이창호 교수에게 따로 레슨을 부탁했었다.

연희와는 사촌 관계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연희와 연희의 언니인 가희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류를 이어왔던 건데, 아무리 자기가 예뻐하는 연희의 부탁이라도 음악과 관련된 건 타협이 없는 이창호였다.

“조금이라도 별로면 난 바로 까 버리는 거 알지?”

연희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에게 사람을 추천하는 일이다.

실력이 없는 아이를 추천할 만큼 연희는 멍청하지 않았다. 물론, 이미 몇 번 이창호 교수에게 까인 전적이 있긴 했다. 이제까지 그의 시험에 통과한 건 고작 한 명. 그나마 그 한 명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는 될 수 없다며 딱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연희가 여러 아이들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창호 교수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석을 다듬어 예쁜 빛을 발하는 보석을 만들기를 원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재능이 있는 아이를 발견해 제대로 키워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충만한 것이었다.

“음. 그런데 좀 어려. 괜찮아?”

“연희야. 원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은 보통 4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서 전문 트레이닝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쇼팽 콩쿨 우승한 김우진 피아니스트 알지? 다른 아이들 젖병 물고 있을 때부터 전문 코스 밟아가며 훈련 받았다더라.”

피아노를 목표로 한다면 가급적 어린 나이어야 한다.

중학교 때부터 재능을 깨닫고 연습을 한다고 해도 보통은 이미 늦었다고 말할 만큼 이 세계는 매우 냉혹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각 대회를 나가 경험을 쌓아 자신의 재능을 한껏 키워 놓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유리하다.

“올해 10살이야. 초등학교 3학년.”

“그래? 엄청 늦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나이네.”

“응. 근데 그 아이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적이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이미 다양한 곡들을 섭렵하고 있어. 한번 노래를 들으면 그걸 바로 기억해서 피아노 건반으로 옮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오~ 그래?”

“응. 피아노 실력도 실력이지만, 듣는 귀도 열려 있어. 청음 테스트를 해 본 적은 없어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절대음감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음-. 그렇구먼.”

이창호 교수는 조금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이 신경 쓰여 연희가 물었다.

“왜?”

“뭐, 귀가 열린  건 좋은데 절대음감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깐. 너도 음악해 봐서 알 거 아니야.”

절대음감은 대부분 선천적이다.

주변 환경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고, 노력 끝에 후천적으로 절대음감을 갖는 사람도 있다.  절대음감이라고 하면 음악을 선율로 듣지 않고 음악의 음높이를 하나하나 캐치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절대음감은 신의 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청음 시험을 볼 때도 써 먹을 수 있고 교수가 나눠 주는 악보를 보고 바로 음을 파악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기 마련.

절대음감일수록 소리에 매우 예민해져 튜닝이 조금이라도 엇나간 악기를 연주하면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선율 자체가 깨져 버려 집중력이 깨져 버린다. 그 소리에 민감해질수록 피아노 연주가 힘들어지고 오히려 세세한 것만 신경 쓰다 정작 늘어야 할 피아노 실력은 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피아노 같은 경우는 온도와 습도에 큰 영향을 받고 장력에 의해 튜닝을 해 놓은 음이 금방 내려가기 때문에 강박증처럼 피아노 튜닝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근데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긴 하지. 그래서,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다 재능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고 하니 잔을 내려 놓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느 이창호였다.

그런 그를 보고 연희는 풉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저렇게 열정이 대단한 것을 보면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이야.”

연희가 안내해 준 방 안을 이창호가 슬쩍 들여다 보았다.

잘생긴 남자 아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조용히 리듬을 타며 건반을 터치하고 있었다.

잠깐. 저 아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음······.”

“왜 그래?”

“어디서 꼭 본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 오빠도 영화 봤구나?”

“응? 영화? 아-!”

그제서야 기억을 떠올린 이창호 교수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기 연예인이 다니는 학원이었냐? 아주 잘 나가는 학원이었네.”

“그러엄~. 누구 학원인데.”

두 사람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연욱아~ 오늘 원장님이 특별한 손님을 모셔왔거든. 같이 레슨해도 괜찮지?”

“아, 네.”

아이가 덤덤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자 이창호 교수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일단 멘탈은 괜찮은 듯보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 저번에 연습했던 걸 한번 쳐 볼까?”

연희가 피아노 앞에 가져다 놓는 악보를 보고 이창호 교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나타 8번?

모차르트 소나타에서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8번, 1악장. Allegro maestoso.

모차르트 곡은 통통 튀는 곡들이 많은데, 이 곡도 그러하다.

청중들에게 모차르트 소나타 11번과 16번, 그리고 8번이 가장 인기가 많은데, 어두운 분위기의 선율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했을 당시 어머니가 지병으로 사망하고 파리에서 아주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모차르트의 마음이 담긴 곡이었다.

“피아노 배운지 몇 달 안 됐다고 하지 않았어?”

“응. 내가 욕심을 좀 부려 봤어.”

피아노를 이제 막 배우고 있는 아이한테는 무척 어려운 곡이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충분히 배워 볼만 하나, 모차르트의 곡은 많은 기교를 요구하기 때문에 손이 자기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 아이는 어떤 연주를 보여 줄까.

이창호 교수는 입을 다물고 연욱이가 연주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자세는 제법 잡혀 있네.’

연주를 시작하기 전 연욱이는 숨을 가라앉히며 건반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댔다.

순간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저 잘생긴 얼굴이 감정을 잡으며 굳은 표정을 보이니, 한층 더 빼어난 외모가 되었다.

연주를 듣기도 전에 먼저 얼굴에 사로잡혀 먹힐 것만 같았다.

‘거기다 피아노까지 잘 치면 금상첨화겠지만······.’

선곡이 별로 안 좋았던 것은 아닐까.

다른 곡들도 있는데 하필이면 소나타 8번이라니.

그래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귀를 열고 있던 이창호였다.

따란~ 따란~

마침내 곡이 시작되었다.

통통 튀면서 동시에 착 가라앉는 듯한 선율이 피아노방을 가득 채웠다.

마치 오랫동안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아이의 연주는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이 곡을 그냥 들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테, 그러니까 피아로를 강하게만 치는 느낌만 든다. 그러나 무작정 건반을 세게 치는 곡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부드러움과 강함이 조화를 이룬 미세한 터치를 섞어 놓아 주어야 곡이 살아난다.

처음에는 소리를 크게, 그 다음은 작은 소리에서 점점 올라가는 큰 소리로.

연욱이란 아이는 곡의 특징을 아주 잘 이해한 듯, 그 높낮이를 오고 가며 연주를 이어 나갔다.

‘끝까지 볼 필요도 없겠네.’

이창호 교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건 그냥 괴물이잖아.’

세상 심각하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귀엽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아이에게 있는 엄청난 재능의 크기가 눈에 훤히 보였던 까닭이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강렬한 빛을 발할 보석의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이 원석은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 * *

처음 이 아저씨가 들어왔을 땐 누구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분명 어디서 본 거 같긴 한데, 기억을 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곡 연주가 끝난 뒤 원장 선생님의 말을 듣고 퍼뜩 떠올리게 되었다.

“인사 드려, 연욱아. 이분은 이창호 교수님이셔.”

이창호 교수!

저번 생에서 이창호 교수의 특강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접한 적이 있다.

그의 손을 거쳐 나간 피아니스트들이 많지 않던가.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여러 악기와 작곡에도 능력이 있어, 다양한 분양에서 인재를 키워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창호 교수의 제자가 되면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돌았고, 실제로 그의 밑에 들어가 잘못된 사람은 없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이 왜 잼민이들 모여 있는 꿀벌 피아노에?

원장 선생님이랑 관계가 있는 건가?

“연주는 잘 들었다. 이름이 연욱이라고 했지?”

“네.”

이창호 교수가 내 곡을 감상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나면서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지려고 했다.

들은 바가 있다.

이창호 교수는 음악에 매우 진지해서 조금이라도 연주가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까 버린다고 말이다.

이 사람 귀에 내 연주가 얼마나 엉터리처럼 들렸을까.

오늘 괜히 잘못 걸려서 양파처럼 계속 까······.

“연주 실력이 아주 훌륭하더구나.”

“······?”

“혹시 괜찮다면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와도 될까? 네가 연주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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