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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1화 (31/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1화 >

“양성 발작성 현훈으로 보입니다.”

“······네?”

“음-. 보통은 이석증이라고 부르죠? 회전성 어지러움 같기도 한데, 특정 자세에서 어지러움증이 심하게 동반되는 것을 보아, 이석증이 맞을 겁니다.”

“이석증이라고요? 보통 어른들만 걸리는 거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아이들도 충분히 걸릴 수 있어요. 요즘 들어 아이들이 이석증 걸리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죠. 보통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이석증이 오니까요.”

다행히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제서야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혜나가 쓰러지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와 들쳐 업었던 최진우 감독도 십 년 감수한 표정을 보였다.

“아마 아이가 피곤하고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는 게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러다 와이어 줄에 매달려 있을 때 증상이 발현된 것이고요. 이석증은 딱히 치료법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냥 어지러움증 약 먹고 자연스럽게 나을 때까지 푹 쉬면서 기다리는 게 최고입니다.”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라-.

이것이 부모님에게 비수로 꽂힌 것 같았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혜나가 겉으로 웃으면서 티를 잘 안 내긴 하지만, 뭐든 걱정이 많고 꼼꼼하게 하려는 아이에요. 그래서 쉬지 않고 연습만 했고요.”

최 감독과 배우들이 혜나를 좋아하는 건 얼굴이 예쁘고 귀여운 것도 있지만, 다른 아역들보다 훨씬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혜나를 지켜보던 난 알고 있지 않은가.

혜나는 재능도 있지만, 엄청나게 많이 노력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어 더욱 그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매번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거겠죠?”

“네. 몸이 많이 피곤할 때 재발을 하곤 하는데, 보통은 하루 정도 쉬면 금방 나아요. 하지만 환자의 증상을 봤을 때 어지러움이 꽤 심하더군요.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부모님은 수액을 맞고 잠들어 있는 혜나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곁에 있던 최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 혹시 촬영할 게 남아 있나요?”

“네? 아··· 그건 당장 확신할 순 없습니다. 아무래도 편집을 하는 과정에 장면 추가가 있을 때가 종종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그만 촬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석증이 큰 병은 아니지만, 혜나가 제 앞에서 쓰러지는 걸 봤을 때 얼마나 아찔하던지······. 심장이 철렁여서 숨이 멎을 뻔했어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최진우 감독도 혜나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더는 촬영을 시키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 역시 이해할 터.

“혜나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았으면 아무것도 안 시켰을 텐데······.”

이석증이 큰 병은 아니나, 몸이 피곤할 때면 재발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이석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을 몇몇 봐왔다.

보통은 6개월에 한 번 재발한다고 하는데, 그 빈도수가 심한 사람은 매주 한 번씩 극심한 어지러움증에 시달려 픽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혜나는 아직 11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이지 않던가.

의사가 말했듯, 어지러움이 심해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 것이다.

“아이들이 더는 촬영할 필요가 없게 잘 편집해 보겠습니다.”

최 감독은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혜나와 나는 이미 계약이 되어 있어 감독의 지시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가 재촬영을 원하면 그것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눈앞에서 혜나가 쓰러지는 걸 부모님과 같이 본 최 감독도 차마 혜나를 다시 불러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감독님. 여기는 저희가 있을 테니, 마저 남은 촬영하러 가셔도 됩니다.”

“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십시오, 아버님.”

“예.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최 감독이 밖으로 나가자 병실 밖에 있던 배우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감독님! 혜나는요?”

“혜나 괜찮아요?”

“자자. 괜찮다고 하니까 모두 그만 촬영장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얼굴도 다 알려지신 분들이 이렇게 막 뭉쳐서 돌아다니면 안 돼요. 지금 사람들이 사진 찍고 난리 났잖아. 혜나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니깐 다들 얼른 돌아가요.”

최진우 감독의 통제하에 배우들은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떠나야만 했다.

배우들은 지금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시는지, 부모님은 혜나의 손만 꼭 잡고 있었다.

나 역시도 혜나 곁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심장이 쿵 떨어진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겠다.

촬영을 잘 끝내고 가족에게 돌아오던 그녀가 갑자기 휘청 거리다 픽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만약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면 하루 종일 여기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누워 있는 혜나를 보면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등을 토닥여 주셨다.

“연욱아. 누나 괜찮아질 거야. 의사 선생님이 별 거 아니라고 했잖아.”

“······네.”

“당신도 이제 그만 울어. 혜나 괜찮아.”

“그냥··· 다 내 탓 같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렇게 고생을 시켰는지.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번 이석증 걸리면 재발이 잘 돼서 평생 고생한다고 들었어.”

나도 그게 걱정이었다.

이석증이 갑자기 발현되면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저번 생에서도 혜나한테 이런 병이 있었나?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혜나한테 절대 일 안 시켜. 작품 들어오는 것도 절대 안 시킬 거야. 당분간은 학교 공부만 하면서 지내게 하자.”

“혜나가 계속 작품을 하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 허준영 배우님도 혜나랑 연욱이가 이대로 영화판을 떠나면 안 된다고 만류하고 있고.”

“적어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시키고 싶지 않아. 혜나가 하고 싶다고 해도 내가 말릴 거야.”

자식이 바로 앞에서 쓰러졌는데 걱정을 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자식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어머니는 어떻겠는가.

모든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며 더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혜나와 날 막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오늘 일을 겪고 보니, 어머니 생각에 찬성하게 됐다.

성공도 중요하지만, 우선 건강이 최우선으로 되어야 한다.

혜나가 나중에 크게 성공을 해도 건강이 나빠지면 그런 성공은 아무짝 쓸모도 없다.

* * *

최진우 감독은 부모님과 약속한 대로 추가 촬영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혜나도 며칠 어지러움증으로 고생하다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동안 여러 배우들이 부모님께 연락을 하며 기획사 소개와 여러 작품을 제의하는 등,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했다.

그 어떤 제안도 전부 다 거절하며 나와 혜나가 더 클 때까지 놔두겠다는 뜻을 천명하셨다.

“와~ 혜나랑 연욱이 아냐?”

“혜나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니? 몸은 괜찮아?”

“네~ 괜찮아요!”

“하하. 못 본 사이에 더 큰 거 같지 않아?”

“그러게. 연욱이랑 혜나 둘 다 키도 좀 큰 거 같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영화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대망의 시사회가 열리는 날.

나와 혜나는 두 달 만에 배우들과 재회했다. 그들은 아직 우릴 잊지 않고 있었다.

“어이쿠. 혜나야. 그동안 간간이 소식 들었다. 몸은 괜찮지?”

허준영 배우도 우리를 보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전부 혜나 건강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네. 이제 괜찮아요.”

언제 다시 어지러움증이 발현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다.

혜나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지러움증을 많이 느끼는 터라 저번처럼 또 기절해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곧 있으면 시작합니다. 모두 모여 주세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배우들과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무대로 모였다.

보통 시사회는 주연급 배우들만 참석한다. 아역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드문데, 최 감독이 꼭 참석해 달라고 해서 우리 남매가 나오게 되었다.

영화 실험실의 아이들······ 이 아니라, ‘악마’ 라는 제목으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너희들 시사회는 처음이지?”

시사회에 오는 건 처음이긴 했다.

저번 생에서도 시사회를 가 본 적이 없다.

“그냥 관객분들한테 인사 잘하고 혹시 마이크 넘겨주면 짧게 인터뷰만 하면 돼. 그런데 아마 너희들한테는 마이크를 넘겨주진 않을 거야. 보통 감독님이나 주연 배우들만 간단히 얘기하는 정도이니까. 그러니 잘 웃으면서 있어야 한다?”

스태프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깥을 슬쩍 살펴보니 벌써 관객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이윽고 사회자가 시작을 알리면서 뜨거운 박수와 함께 배우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영화 ‘악마’는 액션 스릴러로, 비밀스러운 실험과 그 안에서 희생된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내용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최진우 감독의 목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관객들을 비롯해 배우들도 최 감독의 말에 집중했다. 물론, 시연회의 목적은 감독의 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기 위함이기 때문에 최 감독은 짧게 말을 끊었다.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가 허리를 숙이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사실 이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안녕하세요. 배우 임성곤입니다.”

“꺄아아-!”

시사회에 오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를 직접 만나보기 위함이다.

시사회가 끝나면 배우들의 사인도 받을 수가 있어 치열한 티켓팅 전쟁을 벌인다고 들었다.

젊은층에서 인기가 많은 임성곤 배우는 열렬한 환호 속에 짧은 인터뷰를 끝냈고, 차례대로 다른 배우들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느 정도 선에서 어련히 마무리될 거라 생각하던 중, 갑자기 최 감독이 마이크를 가져가 말했다.

“이번 영화는 한 남매의 이야기라고 했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해 준 저희 아역 배우들을 짧게 소개할까 합니다. 혜나랑 연욱이, 잠깐 앞으로 나와 볼래?”

응?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우린 마이크 잡을 기회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최 감독의 돌발 행동에 사회자와 스태프들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네~!”

혜나가 먼저 최 감독한테 뛰어가자, 나도 그 뒤를 따라 함께 뛰었다.

우리 남매가 뛰는 모습이 관객들한테 잘 먹힌 모양인지,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귀여워.”

“호호. 너무 귀엽다.”

최 감독은 웃으면서 혜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혜나야. 관객분들한테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장혜나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저렇게 예쁜 혜나가 인사를 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관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이크가 내 손으로 넘어왔다.

“안녕하세요. 장연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혜나처럼 발랄하게 인사를 하진 못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 한 인사였다.

“오~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잘생겼네.”

“그치? 애답지 않게.”

혜나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열심히 박수 쳐 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최 감독이 말했다.

“이 두 아역 덕분에 제가 영화 촬영하는 내내 아주 잇몸이 만개되었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고요. 저희의 마스코트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거기다 이 둘은 친남매입니다. 그래서 연기할 때 감정 몰입을 더 잘하는 거 같더라고요.”

“남매?”

“와-. 저 비주얼이 남매라고?”

“진짜 유전자 뭐야.”

관객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보고 사회자도 좋은 기회라 여겼는지 우리에게 다가와 대본에도 없는 멘트들을 날렸다.

“우리 귀여운 아역 배우들을 위한 시간을 좀 가져 볼까요? 이름이 혜나랑 연욱이라고 했지?”

갑자기 우리 남매를 위한 시사회가 열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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