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30화 (30/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30화 >

영화 촬영은 대본 순서대로 촬영을 하지 않는다.

각각 정해 둔 씬을 번갈아 가면서 촬영하는데, 촬영 중반에 엔딩을 먼저 찍을 수도 있고, 영화 초반부를 가장 끝에 찍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들었다.

오늘 우리가 찍게 될 건 혜나와 내가 연구실에서 사고에 휘말려 그곳을 파괴하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액션씬으로 한 달 전부터 무술 감독에게 개인 트레이닝을 받았다. 물론, 아직 우리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최 감독도 과한 액션을 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CG로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찍는 시대이지 않던가.

우리가 하는 건 딱히 많지 않다.

대충 와이어에 매달려 다니다 손 몇 번 흔들어 주고 대사 몇 개 쳐 주면 된다. 그 대사도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 밖에 없어 외울 것도 없었다. 거기다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것도 잠시 잠깐이다. 조금만 찍고 진짜 액션 장면은 다 CG 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전 점검도 몇 번이나 했고, 줄이 끊어질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정말 괜찮겠죠?”

“예, 어머니. 괜찮습니다. 저도 제 영화의 배우들이 다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항상 세 번 이상 체크를 하는 게 기본입니다.”

영화 촬영, 그것도 액션 장면을 촬영 중에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렇기에 감독들은 매번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신중을 기한다. 만약 누가 촬영 중에 목숨을 잃는 큰 사고를 당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날로 영화 촬영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영화를 개봉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촬영 전에 몇 번 더 테스트할 겁니다. 절대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정확히 촬영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는 불안해하시는 것이다. 최진우 감독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직접 스턴트맨들을 앞세워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하는지 보여 주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떨어지게 되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밑에 안전 매트리스도 깔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와이어로 붕 떴다가 내려올 거라서 혜나랑 연욱이는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만 날 겁니다.”

부모님은 우리와 함께 스턴트맨들이 와이어에 매달려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을 구경했다. 그것을 본 내 솔직한 심정은······.

‘재밌겠다.’

놀이동산을 좋아하는 혜나도 눈을 반짝였다.

“와-. 재밌을 거 같아.”

“후후. 재밌으면 이따 스태프 아저씨들한테 말해. 몇 번 더 태워 달라고.”

최 감독의 말에 부모님도 미소를 지으셨다.

갖고 있던 불안감을 거의 내려놓으신 듯 보였다.

“저는 그럼 촬영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조금 이따 촬영 들어가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우리 남매는 촬영 전 옷을 갈아입고 스타일리스트들에게 분장을 받았다.

실험실에서 피폐하게 살던 남매가 연구실을 부수고 나가는 것이니, 최대한 초췌하게 보여야 했다.

“아. 어떡하지. 분장을 해도 너무 귀여워. 잘 못 먹고 약물에 찌든 아이들처럼 나와야 하는데.”

“이리저리 분장을 시켜도 우리 연욱이는 잘생김을 숨길 수가 없네. 혜나도 그렇고. 내가 설마 이런 걸로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두 스타일리스트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한창 그들 손에 분장을 받던 중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대충 분장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연욱아~ 혜나야~”

저 아저씨는 또 왔네.

누군가 했더니, 최진우 감독의 동생, 최진영 작가였다.

저번에도 사비를 들여 커피차를 가지고 오더니, 오늘도 간식빵을 잔뜩 실은 차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영화 촬영이 있을 때마다 얼굴을 비추는 것 같다.

최 감독도 자기 동생이 주책이라고 생각했는지 핀잔을 주었다.

“넌 또 왔냐? 할 일 없어?”

“연욱이랑 혜나 촬영 있는 날에는 가급적이면 스케쥴을 빼고 있지.”

“차라리 저 남매 매니저를 해라.”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한번 해 봐? 하하.”

최진영 작가는 어지간히 나와 혜나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저런 커피차나 간식차를 가져오는 게 돈이 꽤 많이 든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저렇게 해 주는 것을 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삼초온~”

혜나가 먼저 최진영 작가에게 달려갔다.

여러 번 촬영을 같이 하면서 아예 삼촌이라고 부르며 둘이 꽤 친해졌다.

나도 뭐 최진영 작가가 싫지 않았다.

부모님한테도, 그리고 혜나한테도 잘해 주는 사람을 내가 왜 싫어하겠는가.

“어이구. 우리 혜나. 그동안 잘 있었어? 오늘 액션씬 찍는다며?”

“응! 저기 와이어에 매달려서 막 날아다닐 거야. 나 초능력도 쓰고 그런대.”

“하하. 기대되네. 우리 형님이 잘 찍어 주셔야 할 텐데.”

그러다 그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최 감독에게 물었다.

“형. 그런데 오늘 배우들이 많이 모이셨네. 촬영할 게 많은가?”

“아니. 별로 없어. 연욱이랑 혜나 찍고 몇 개 씬만 더 찍으면 끝나.”

“근데 출연하는 배우들 거의 다 모여 있는 거 같은데?”

그러자 최 감독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같은 이유지.”

“응?”

“너도 혜나랑 연욱이 촬영하는 거 구경하려고 후다닥 쫓아온 거잖아. 저 양반들도 같은 이유 때문이야.”

“역시 다들 보는 눈이 있네. 혜나랑 연욱이 촬영은 못 참지.”

“······.”

최 감독은 짜게 식은 눈으로 제 동생을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촬영장의 분위기가 활기 넘친다고 나쁜 건 없을 테니까.

“최 작가님~ 간식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예. 많이들 드세요. 우리 혜나랑 연욱이 많이 예뻐해 주시고요.”

“어휴. 저 남매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오늘 저도 일부러 스케쥴 빼서 촬영장 구경 온 거라니까요? 애들이 액션씬 찍는 거 보려고.”

“미리 씨도? 나도 그거 보려고 어제 촬영 밤샘하고 왔잖아.”

나와 혜나 촬영이 있는 날에 점점 배우들이 모여들더니, 나중에는 대선배 허준영까지 나오게 됐다. 그것을 계기로 아예 배우들은 우리 남매 촬영 날에 전부 모이는 게 룰이 되었다.

“자자. 배우님들. 이제 촬영 시작해야 하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 주세요.”

“오. 하나 보다. 보러 가자.”

그들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와이어를 달고 있는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연욱이 분장한 거 맞아? 대본에는 피폐해진 모습으로 나와야 한다는데, 꼭 아이돌이 컨셉 잡고 꾸민 거 같잖아.”

“저희들도 정말 노력 많이 했는데요. 아무리 해도 연욱이한테 후광이 있어서 그걸 지우기가 참······.”

스타일리스트들이 토로하는 고충을 들어주며 공감하고 있던 배우들은 마침내 내가 와이어를 타고 허공 위를 날자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난다. 날아.”

“멋있게 잘 나네.”

“연욱아! 여기 봐봐!”

그들은 각자 핸드폰을 들고 와이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를 촬영하기 바빴다.

이게 영화 촬영을 하는 건지, 아니면 서커스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최진우 감독은 확성기를 들고 내게 말했다.

“연욱아. 일단 연습부터 해 볼까? 어디를 바라보고 손을 뻗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와이어를 타고 올라오기 전에 보조 감독들로부터 어디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지 언질을 받았다. 그리고 스태프들이 헷갈리지 않게 번호로 표시를 해 두어서 차례대로 몸을 돌려가며 손을 뻗으면 됐다.

“연욱아. 연습은 거기까지 하고, 이제 찍을 거야. 대본대로만 하면 돼.”

최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고 잠깐 밑으로 내려와 있던 내 몸이 다시 붕 뜨게 되었다.

난 미리 연습한 대로 표시된 곳에 몸을 돌려가며 우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그냥 허공에 손을 흔들고 있는 거지만, 여기서 CG 처리가 들어가면 강한 초능력이 발휘되어 나를 포위하고 있던 요원들을 전부 밀쳐내게 된다.

“으아악!”

나와 같이 와이어를 매달고 대기 중이었던 스턴트맨들이 실감 나는 연기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그 덕분에 정말 내가 초능력을 발휘하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아휴. 깜찍해.”

“액션 장면인데, 저렇게 앙증 맞아도 되는 거야? 하하.”

배우들이 떠드는 소리에 최 감독은 쉿 소리를 내며 말했다.

“배우님들 조금만 정숙합시다. 이거 꽤 중요한 장면이라고.”

“네~ 감독님.”

“우리가 감독님 말씀은 잘 듣지.”

그러면서 핸드폰 촬영은 절대 멈추지 않는 배우들이었다.

“자. 다시 한번 가자. 연욱아. 방금 건 좋았어. 조금만 더 악을 쓰는 표정으로 해 볼까?”

나는 최 감독의 주문을 성실히 따르며 여러 번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녔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반복했을 때 비로소 최 감독이 컷을 외쳤다.

“오케이! 수고했어, 우리 연욱이!”

“오-. 벌써?”

“저번에 난 20번 넘게 테이크 하시더니. 감독님 편애가 심하시네.”

“저게 어딜 봐서 편애야. 그냥 연욱이가 잘한 거지.”

“흐흐. 넌 연욱이한테 좀 배워야겠다. 그때 실수 엄청해서 거의 30번 가까이 다시 찍지 않았냐?”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와이어만 타면 속이······.”

성공적으로 내 액션씬이 마무리된 듯하다.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어 타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이거 한번 봐봐, 연욱아.”

나는 CG 팀이 실시간으로 효과를 넣어 준 화면을 살펴보았다.

아직 정교한 CG까진 아니지만, 러프 이미지마냥 어느 정도 효과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나름 화면이 살아났다.

“우리 연욱이가 잘해줬으니까, 감독님이 최대한 잘 살려 볼게.”

액션 영화 베테랑이시니 어련히 잘해주실 거다.

“이제 혜나 차례네. 곧바로 들어가자.”

내 촬영분이 끝나고 이제 혜나 차례였다.

혜나는 아주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물었다.

“연욱아! 어땠어? 재밌었어?”

“응. 엄청 재밌었어. 누나도 얼른 가서 해 봐.”

“웅! 그래야겠다.”

혜나는 신난 발걸음으로 스태프들에게 달려갔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신 부모님 곁에 앉아 혜나가 몸에 와이어를 매다는 걸 지켜보았다.

“어머. 이제 혜나 차례야?”

“엄청 신나 보이네.”

“하하. 연욱이가 훨훨 날아다닐 때 나도 왠지 하고 싶더라.”

촬영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NG가 많이 나지 않고 스무스하게 흘러가면 서로 피곤하지 않고 활력이 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혜나야. 일단 연습부터 가볍게 해 보자.”

최 감독은 와이어에 익숙해지라고 몇 번 혜나를 놀이기구처럼 태워 주었다.

그럴 때마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혜나 덕분에 배우들 모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 촬영 들어갑니다.”

혜나가 와이어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한 최 감독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방금까지 해맑게 웃던 혜나도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연구실에서 모진 실험을 당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와이어를 탄 채 허공 위로 몸이 붕 뜨자 거센 비명을 지르면서 다시 땅으로 착지했다. 아직 음향 효과도, CG 효과도 없어서 그냥 비명만 지르다 끝난 것으로 보이겠지만, 모든 영상 작업이 끝나면 쾅! 소리와 함께 힘이 퍼져나가 총을 든 요원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오······.”

최 감독은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확성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혜나야. 너무 좋았다. 다시 찍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한번만 더 해 보자.”

배우를 통해 좋은 장면이 나올수록 감독은 더 큰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혜나도 한 번 더 와이어를 타고 싶었던 모양인지 밝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촬영이 이어지면서 최 감독은 마침내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좋다. 너무 잘했어. 수고했다, 혜나야.”

“네~”

구경을 하고 있던 배우들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벌써 끝이야?”

“저 남매는 너무 잘해서 탈이야.”

“NG를 거의 안 내잖아. 저번에 NG 내서 당황해하는 얼굴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는 부모님과 같이 무사히 촬영을 끝낸 혜나에게 다가갔다.

“누나!”

“웅~”

그런데 와이어를 풀고 똑바로 걸어오던 혜나가 갑자기 멈칫거리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누나?”

“여, 연욱아.”

순간 나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혜나에게 헐레벌떡 달려가 보았다.

그리고 혜나는 휘청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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