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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29화 (29/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9화 >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구른 허준영은 그동안 수많은 배우를 겪어 보았다.

별 또라이 같은 놈들도 있었고, 참 배울 점이 많다고 여긴 배우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새로웠다.

그동안 여러 아역을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아역 배우들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들의 생김새가 뛰어나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오랫동안 사람들을 겪어 보면서 허준영도 보는 눈이 생겼다.

뛰어난 감독은 사람을 보는 눈이 깨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 점에서는 최진우 감독을 따라갈 사람이 아마 대한민국에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어울리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잘 뽑아 온다.

‘그냥 딱 보면 알아요. 느낌도 느낌이지만, 머릿속으로 벌써부터 영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배우. 그런 배우들만 뽑아서 데려오는 거죠.’

예전에 술 마시면서 최진우 감독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허준영도 최 감독이 말하는 그 느낌과 시야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저 아이들에게서는 아우라가 샘솟고 있다.

연기든, 노래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항상 특정 분야에 성공하는 사람은 내면에 잠재된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것이 곁이 있는 사람들까지 동화시키는 것이다.

옆에 있는 임성곤도 그런 아우라를 뿜어내는 배우 중 하나다. 그런데 설마 9살, 11살밖에 되지 않은 아역들에게 그런 아우라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준영은 혜나가 대본을 읽으며 연기하는 모습을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름이 혜나라고 했나? 잘하네.”

아이의 연기가 끝나고 나서 허준영은 옆에 있던 임성곤에게 말했다. 그러자 박수를 치던 임성곤이 대답했다.

“선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얘가 연습을 많이 한 티가 나네요. 그리고 엄청 귀엽지 않습니까? 여기 대본 보면 혜나가 연구실 대원들을 다 때려잡는 장면이 있던데, 저 귀여운 얼굴로 주먹을 날린다라······. 상상이 안 갑니다.”

허준영도 임성곤 말에 동의했다.

왠지 저 얼굴은 액션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연기를 보면 또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자. 이제 연욱이 해 볼래?”

다음 차례는 혜나의 동생, 장연욱이었다.

과연 자기 누나처럼 잘 할 수 있을까?

최 감독은 한 가지 이상한 버릇이 있다.

마음에 드는 배우들을 자기와 가깝게 앉히는 건데, 다른 배우들은 그런 최 감독의 속내를 알지 못한다. 그와 오랫동안 작품을 해 온 허준영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자기 바로 옆에 앉혔다는 건 엄청 마음에 들었다는 거겠지?’

허준영은 최 감독의 눈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옆에 저 남매를 앉혔다는 건 필시 이유가 있을 터.

아이들이 귀엽기 때문에 옆에 앉힌 게 아니다.

아무리 아역이라도 연기 앞에서는 봐주는 게 없는 철저한 프로이지 않던가.

최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저 남매의 연기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기에 허준영은 기대가 됐다. 저 아이는 또 어떤 연기를 보여 줄지.

“우리 누나는요?”

“오늘 실험만 잘 견디면 데려다줄게. 어때?”

“거짓말. 저번에도 그래놓고.”

“이번엔 진짜라니깐?”

아이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실험실에 같이 잡혀 들어온 누나를 필사적으로 찾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 주며 잔인한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원들.

시나리오에서는 아이의 머리에 실험 장치가 연결되어 강한 전류가 흐른다고 되어 있는데, 정말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연욱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비틀었다.

“읍-!”

그러나 단순히 전기로 괴로워하는 표정만 지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실험을 견뎌내 멀리 떨어진 가족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함께 보여야 한다.

‘오. 제법.’

그런 점에서 방금 연기는 합격이었다.

앞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감독도 원테이크로 찍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저 깐깐한 최 감독은 배우에게서 포텐셜이 느껴지면 아무리 좋게 찍어낸 장면도 몇 번이고 반복해 더 좋은 씬을 얻어낸다.

“완전히 맛이 갔네. 눈을 봐. 초점을 잃었잖아.”

“폐기해야 하는 겁니까?”

“방금 실험도 제대로 안 먹힌 거 같은데······ 상부에 보고해서 폐기 처분받아.”

“네.”

여기서 허준영은 한 번 더 속으로 감탄했다.

이번 씬에는 연욱이가 쳐야 할 대사는 없으나, 반드시 해 줘야 할 표정 연기가 있다.

초점을 잃는 눈동자와 멍한 얼굴. 정말로 정신이 다 나가 버린 듯한 그런 표정.

연욱이는 그 넋 나간 얼굴을 하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보통 대본 리딩 때 배우들은 자신의 대사가 없는 표정 연기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욱이는 실제 촬영인 것처럼 매 순간 열정을 다 해 본인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렇게 연욱이가 맡은 파트가 끝이 났다.

눈을 떼지 않고 두 아이의 연기를 지켜봤던 배우들은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이거, 아역들이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호호. 그러니까요. 어쩜 저렇게 귀엽고 예쁠까. 연기하는 내내 얼굴에서 빛이 나는 줄 알았다니깐요?”

“난 스태프들이 저 남매만 조명 비춰 주는 줄 알았어. 아주 후광이 막······ 어후.”

배우들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있다.

어린아이들이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눈을 사로잡는 외모와 훅 찌르고 들어오는 연기력은 감탄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허준영도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임성곤에게 말했다.

“저런 아들이나 딸 하나 있으면 세상 안 부럽겠네.”

“하하.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내가 아역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거든. 명확한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딱 한 번 저놈은 꼭 크게 되겠다-라고 생각한 배우가 있었어.”

“그게 누굽니까?”

“김승우.”

“아-.”

김승우라면 ‘고향으로’ 라는 작품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고 단숨에 슈퍼스타가 된 배우다.

10살에 아역으로 영화를 찍고 나서 큰 인기를 끌어 각종 드라마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도 출연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어렸을 때의 얼굴 그대로 잘 자라줘서 여성 팬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허준영은 결코 얼굴로 사람을 판가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잘생긴 얼굴을 가져와도 관객을 휘어잡는 연기력이 없으면 그것은 스크린 속 산 송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승우랑 내가 작품 1개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마 나이가 12살 정도 됐을 거야. 그런데 확실히 다르더라고. 듣던 대로 연기를 참 잘했어. 딱 보자마자 그냥 남들과 다른 게 느껴졌지.”

“그렇죠. 확실히 김승우 배우는 이미 검증된 연기자 아닙니까?”

“그래. 떡잎부터 남다르다는 게 딱 시우를 보니까 알겠더라고. 아역인데, 아역 같지가 않은 배우 있잖아. 아마 평생 그런 괴물 같은 놈은 다신 못 만나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생각이 달라지신 겁니까?”

허준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우처럼 강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아역을 만나는 건 아마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것도 두 명이나 만나게 됐다.

“저 남매는 크게 되겠다.”

“저도 가급적이면 자주 스크린에서 만났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다음 작품을 같이 하면 더 좋고.”

아직 대본 리딩이라 저 아이들의 잠재력을 다 확인할 순 없었다. 그러나 임성곤 말대로 허준영 역시 가급적이면 저 귀여운 남매를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 * *

“잠깐만. 이것도 챙겨야 하고······ 여보. 다른 거 또 빠뜨린 거 없겠지?”

어머니는 오늘 유독 집 전체를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아버지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시는지 별말씀을 하진 않으셨다.

정신없이 어머니가 돌아다닐 때,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다가와 흐트러진 옷을 잘 정리해 주셨다.

“우리 토끼들. 벌써 영화 촬영한 지도 두 달이 지났네. 너희들이 참 고생이 많다.”

“아니야, 아빠. 영화 촬영하는 거 엄청 재밌어.”

“그래? 아빠는 혹시라도 너희들이 NG 날까 매일 덜덜 떨면서 본다.”

두 달.

아버지 말씀대로 벌써 영화 촬영을 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부모님은 매번 촬영 때마다 우리를 따라와 매니저 역할을 해 주신다.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셔야 하기 때문에 최진우 감독이 배려를 해 줘서 CJ 측이 별도로 매니저를 보내 우리를 케어해 주었다.

그리고 최대한 평일을 피하고 주말에 촬영하는 것으로 최진우 감독이 스케쥴을 만들어 주어 덕분에 부모님은 주말마다 우리를 따라 촬영장에 오셨다.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편히 쉬어야 하는데, 아이들 때문에 그러지 못하시는 게 마음에 걸렸으나, 부모님은 스크린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만난다는 생각에 오히려 좋아하셨다.

“후. 찾았다.”

어머니는 작은 십자가 목걸이를 나와 혜나에게 하나씩 걸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 손을 꼭 붙잡아 빌었다.

“제발 오늘 아무 사고도 안 일어나길.”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늘 혜나와 나는 액션씬을 찍어야 한다.

딱히 액션이라고 별 거 없다.

그냥 초록색 벽을 뒤에 두고 열심히 허공에 주먹만 휘저으면 된다. 문제라면 와이어를 몸에 달고 번쩍 날아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 감독은 그냥 놀이기구 타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안정상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될 거라고 말이다.

액션 영화를 한두 번 찍어 보는 사람이 아닐 테니, 매번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하고 있을 터. 그냥 와이어에 매달려 몇 번 초능력을 쓰는 연기만 해 주면 금방 끝날 듯했다.

“난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래, 여보.”

“괜찮아. 최진우 감독님이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잖아. 간단한 촬영이기도 하고. 너무 걱정 마.”

“그렇겠지?”

“응. 그리고······ 당신 저번에 허준영 배우님이 말했던 거 어떻게 생각해?”

나는 부모님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허준영 배우가 부모님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러지?

“우리 처음 영화 촬영할 때 약속했잖아. 당분간은 아이들 더 이상 일 시키지 말자고.”

“응. 그렇긴 한데, 허준영 배우님이 너무 열렬하게 설득을 하셔서. 솔직히 당신도 우리 아이들 연기하는 거 보면 느끼는 게 있잖아.”

“맞아. 내 새끼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재능이 있어 보이긴 해.”

“뛰어난 재능이지. 그러니까 허준영 배우님이 다른 감독들한테 전화까지 돌려 가면서 우리 아이들 오디션 한번 보라고 설득을 했겠어?”

허준영 배우가 나와 혜나를 위해 인맥까지 동원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허준영 배우님이 그랬잖아. 혜나랑 연욱이는 크게 될 아이들이라고. 정말 재능 넘치는 아이들이니, 휴식기를 갖기 보다는 차라리 더 높이 날아 올라야 한다고.”

매번 촬영장에 갈 때면 옆집 사는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게 대해 주긴 했는데, 우리 남매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부모님까지 설득해 우리가 당분간 촬영 없이 긴 휴식을 갖는 걸 막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열심히 저어야 한다고.

스타라는 건 결국 본인의 노력과 재능도 있지만, 그 시간의 흐름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반짝 뜨는 스타라도 갑자기 공백기를 거치고 나면 인기가 금방 사라지듯, 허준영 배우도 그런 점에서 우리 남매가 영화판을 떠나지 못하게 막으려 하는 듯했다.

“좀 더 생각해 보자, 당장 결정할 일도 아니고. 아이들 의견도 중요하잖아.”

“응. 그러자.”

어머니와 대화를 끝낸 아버지는 나와 혜나의 손을 붙잡고 문 밖을 나섰다.

“오늘 촬영도 후딱 끝내고 피자나 먹으러 갈까?”

“웅-! 좋아!”

피자?

나는 조금 굳은 표정을 지었다.

느끼한 피자보다는 촬영 후에 먹는 뜨끈한 국밥이 최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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