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7화 >
“감독님. 주신 프로필을 보긴 했는데, 이거 편집 안 된 사진이 맞는 겁니까?”
“왜? 무슨 문제 있어?”
“문제라기보다는 아역 배우들 비주얼이 장난 아니라서요. 실물이랑은 다르겠죠?”
카메라 오디션이라고 해서, 이미 캐스팅이 거의 확정된 배우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대본을 읽어 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감독이 배우와 가볍게 호흡을 맞추면서 캐스팅을 결정하는 것인데, 보통 여기까지 오면 열에 아홉은 캐스팅이 된다.
그런데 오늘 보조 감독들이 받은 프로필은 왠 아역 배우 두 명이었다. 아직 주연을 누구로 할지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아역을 먼저 뽑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거기다 프로필에 나온 사진들만 보면 현실감각이 조금 떨어질 정도로 예쁜 아이들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과한 포토샵으로, 막상 실물을 봤을 때 실망감이 커진다.
“응. 다르지 당연히.”
“아~. 내 그럴 줄 알았지.”
보조 감독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최진우 감독은 씨익 미소를 보였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쁜 아이들이야.”
“예? 이 얼굴이 보정 받은 게 아니라고요?”
“그 사진 하나도 안 건드린 거야. 그럴 필요가 없는 마스크잖냐. 이따 오면 봐라.”
“어후. 괜히 기대감 뽐뿌 시켜 주시는 거 아니에요? 이러다 막상 봤는데 별로면 어떡해요?”
“흐흐. 그러니까 한번 보라고, 인마.”
이윽고 혜나와 연욱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배꼽에 손을 올리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남매의 모습을 보고 보조 감독들은 입을 떡 벌렸다.
“감독님 말씀이 맞네. 프로필 사진이랑 완전 다르네.”
“빨리 클 나이잖아. 그 사진 한 1년 정도 된 거야.”
“와. 감독님. 배우 보는 눈이 뛰어나신 건 알고 있었지만, 아역까지 발굴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저 아이들이 나한테 와 준 거지.”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스태프들이 아이들을 카메라 앞에 앉히고 대본을 나눠 주었다.
“짧은 대본이야. 무슨 상황이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거기 나와 있어. 한번 읽어 보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최 감독이 설명해주자 아이들은 알아서 대본을 펼쳐 보았다.
뮤지컬을 했던 경험이 있던지라 나름 익숙해 보였다.
감독들은 숨죽인 채 아이들이 준비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누나. 뭐 어려운 거 있어?”
“응? 아냐. 괜찮아.”
“혹시 도와줄 부분 있으면 말해. 옆에서 봐줄게.”
“응. 고마워.”
누나를 챙겨주는 기특한 연욱이를 보며 최 감독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참 남매 사이가 좋아 보인다.
최 감독도 위로 누나 하나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눈만 마주쳤다 하면 싸우는 통에 지금은 제대로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남매 사이가 다 이렇다. 마치 전생에 악연이라도 되는 것마냥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판을 벌인다.
그에 반해 저 남매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는 마음이 눈에 훤히 보였다.
오랜만에 왠지 큰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감독님. 저 남매, 너무 귀여운 거 아닙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최 감독만이 아닌 듯 보였다.
보조 감독들 역시 아주 귀여워 죽으려 한다.
두 아이가 대본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이는 광경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정신줄을 붙잡지 않고 있었으면 보조 감독들이 죄다 달려가서 같이 문제를 고민해줬을지도 모른다.
“준비 다 됐어요!”
보조 감독들의 반응이 웃겨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최 감독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응? 아, 그래.”
무안함을 지우기 위해 최 감독은 얼른 대본 한 부분을 가리켰다.
“자, 여기서부터 해 볼까?”
보조 감독들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시작부터 최 감독이 어려운 부분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지한 최 감독은 앞선 지시를 철회하고 다른 곳을 지목하려 했다.
“아저씨······.”
대본에 손을 가져가다 최 감독은 멈칫했다.
이미 혜나가 연기에 돌입한 탓이었다.
“엄마······ 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실험실로 납치되어 끌려온 아이는 슬픈 얼굴로 상대에게 애걸했다.
“엄마한테 데려다주세요······. 네?”
곧바로 감정 잡기가 힘들었을 텐데, 대사를 아주 매끄럽게 쳤다.
내심 감탄하고 있던 최 감독은 손수 상대 역할을 해 주었다.
“네 엄마 죽었어.”
“왜요······? 엄마가 왜 죽어요?”
“널 데리고 도망치려 해서.”
과연 여기선 어떨까.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과 허탈감. 그리고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끌려온 공포.
이 모든 감정이 섞인 표정을 혜나는 잘 표현해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읽어야 할 대본에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도 함께 쓰여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대본 위로 슬쩍 혜나의 얼굴을 살펴보는 최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는 짧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참.’
아이가 보여 주고자 하는 감정선이 너무나도 얼굴에 잘 드러났다.
‘사람 욕심나게 만드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 연기로 상대의 그릇을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최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가 괜히 음지에 숨어 있는 신인들을 찾아내 대배우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혜나의 재능이 보였다.
이 아이 꿈이 가수라고 했나?
그 꿈 접고 차라리 배우를 해 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꼭 가수를 접을 필요는 없다. 요즘 연예인들은 가수 활동을 하면서 배우 생활도 겸하는 추세니까.
훌쩍-
대본에 맞게 혜나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가 감정 이입이 매우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최 감독은 이 감정선이 깨지지 않게 다음 대사를 이어 갔다.
“울지 마. 울면 짜증나니까.”
“······.”
대본에서는 혜나를 독방에 가두는 교관이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본다고 되어 있다.
최 감독은 대본에 따라 매섭게 눈빛을 치켜떴다.
그게 정말 무서웠던 건지, 아니면 연기를 하는 건지 혜나는 정말 겁에 질린 모습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아이였다.
“제······ 동생은요? 제 동생도 죽··· 었어요?”
“네 동생? 나도 몰라. 너랑 같은 실험체니까 아마 잘 있겠지?”
“실험체?”
“야. 그만 물어봐. 내가 뭐 네 선생님이야? 확 그냥-.”
혜나는 움찔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원래 영화에서는 구석으로 도망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 그럼, 교관이 구시렁거리며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여기까지가 최 감독이 가리킨 영화의 한 씬이었다.
“이야-. 박수!”
혜나가 눈물을 닦아내며 극에서 빠져나오자 보조 감독들은 기다렸다는 듯 박수 쳤다.
“진짜 잘한다, 혜나야.”
“그러니깐.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하면서 봤어.”
“어른 배우들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최 감독은 잔잔하게 웃으며 혜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어. 힘들진 않았니?”
“슬픈 감정 잡는 게 힘들었지만, 감독님이 도와줘서 편했어요.”
“하하.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우리 혜나 이거 벌써부터 사회생활 하는 거 같은데?”
보조 감독의 농담에 혜나는 활짝 웃는 얼굴을 보였다.
“이거 딸을 하나 낳아야 하나.”
“그러게. 아들만 둘인데, 진지하게 딸을 고민해 봐야겠는데?”
아역 배우들의 오디션을 볼 때 매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아이들을 몇 번 울린 전적이 있는 감독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전부 혜나에게 무장 해제를 당해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자. 혜나는 이거면 충분한 거 같다.”
최 감독은 보조 감독들 못지않게 열심히 박수를 쳐 주며 자기 일마냥 기뻐해 주고 있는 연욱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기도 이곳에 오디션을 하러 온 걸 잊은 모양인지, 연욱이의 신경은 온통 혜나에게 쏠려 있어 긴장감도 없어 보였다.
“연욱아. 이제 네가 해 볼래?”
“아, 네.”
혜나에게도 처음부터 어려운 부분을 시켜 본 최 감독이었다.
그렇다면 공평하게 연욱이게도 감정 표현이 섬세해야 하는 부분을 시켜보면 어떨까?
“자. 이쪽을 해 봐.”
최 감독이 가리키는 대본을 보고 보조 감독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봐도 오늘 처음 대본을 읽어 본 아이한테 어려운 난이도였다. 거기다 앞에서 혜나가 저렇게 잘해줬으니, 동생인 연욱이는 나름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런데도 이걸 시켰다는 건 너무 최 감독의 욕심이 큰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누나······ 가지 마······.”
‘엇’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욱이의 스타트가 매우 좋았다.
그나마 서로를 의지하던 남매는 결국 각자 다른 장소로 떼어져 헤어지게 된다.
연구원들이 놓은 약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를 연기해야 되기 때문에 목소리를 최대한 얇게 내야 했다. 거기에 애절함이 함께 섞여 있어야 했기에 난이도가 높은 것이었다.
‘꼭 진짜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린 아이 같잖아.’
뭔가를 잃어버린다. 그것도 가족처럼 소중한 것을.
저 나이대에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욱이는 그 감정을 제대로 이해한 듯해 보였다. 마치 소중한 누군가를 정말로 잃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발······.”
짧은 대본이었고, 그리 긴 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에게는 진한 여운을 남겨야 한다.
남매가 이렇게 서로 갈라지면서 앞으로의 스토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
연욱이는 약 기운에 결국 정신을 잃는 것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마지막까지 숨을 참으며 연욱이의 연기를 감상하고 있던 보조 감독들은 아이가 상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는 척을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만 웃음을 빵 터트리고 말았다.
“잘한다. 잘해.”
“하하. 마지막에 우리 웃기려고 저런 건가?”
“그거 아니었으면 나 눈물 찔끔 흘렸을지도 몰라.”
“어떻게 남매가 생긴 것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 거야?”
최 감독은 칭찬 세례를 날려 주고 있는 보조 감독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는 연욱이와 혜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저건 인정해 줘야 한다.
‘뮤지컬 때도 느꼈지만, 그냥 천재 남매네.’
보통 얼굴이 잘나면 연기력이 좀 모자라서 연습을 많이 하기 마련인데, 저 둘은 그냥 다 가졌다. 분명 저 둘도 노력을 했겠지만, 재능이라는 빛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다 노력을 얹었으니, 나중에 크면 어떤 괴물들이 되어 있을지······.
‘그래서 별명이 괴물 남매였나.’
뮤지컬 ‘괴물’ 때도 저 두 아이의 별명이 괴물 남매였다.
그건 그냥 뮤지컬에 출연하는 남매를 두고 부르는 별명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역 같지 않은 실력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이었다.
얼굴이면 얼굴,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남매였다.
‘저 둘을 데리고 영화 흥행을 못 하면 그건 다 내 잘못이겠지?’
그렇기에 감독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이번 영화는 꼭 성공시켜야만 했다. 안 그럼 저 남매를 나중에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으니까.
원래 데뷔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두 아이의 영화 데뷔작은 꼭 큰 흥행을 터트려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