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25화 (25/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5화 >

일주일.

아니. 일주일도 안 된 시간에 나는 초보자가 못 모르고 건들면 족히 2~3달은 걸린다는 황혼을 마스터했다. 원래 알고 있는 곡이기도 했고, 유독 이 몸은 기타가 잘 맞는 모양인지 마스터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당연히 이 사실을 가장 기뻐하는 건 아버지였다.

“이야-. 우리 아들 진짜 너무 멋있다.”

눈을 감고 내가 황혼을 연주하는 걸 끝까지 감상했던 아버지는 열심히 박수를 치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혜나도 달려와 내 옆에 앉았다.

“연욱아. 너무 잘 친다.”

“고마워.”

혜나 누나의 칭찬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지 내게 말했다.

“연욱아. 한번만 더 연주해 보자. 잠깐만 기다려 봐.”

그러고는 휴대폰으로 녹화를 하기 시작하시더니, 내게 연주를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동영상으로 남겨 두시려는 건가.

나는 다시 기타를 잡고 천천히 줄을 튕겼다.

이제는 눈을 감고 쳐도 되는 수준이라 더욱 연주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줄을 튕기면 튕길수록 내가 음악에 빠져 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항상 무언가를 연주할 때면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들어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 족쇄가 완전히 풀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했다.

그렇게 훨훨 날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연주가 끝나 있었다.

“아빠?”

“응? 아! 그래.”

내 연주에 완전히 심취해 있으셨던 건지, 아버지는 멍하니 있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셨다.

“아. 미안. 누나랑 잠깐 여기서 놀고 있어 볼래?”

무슨 일이신지 서둘러 방을 나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뒤로 하고 혜나는 아는 노래들을 열거하며 얼른 연주해 달라고 보챘다.

마침 악보도 있어서 나는 몇 가지 곡을 뒤져 연주해 주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악보에는 동요도 있었고,

“아름다운 세상 속~”

예전에 유행했던 가요도 있었다.

내가 곡을 연주해 주면 혜나는 옆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러 주었다.

한창 노래를 부르던 혜나가 말했다.

“기타 진짜 잘 친다.”

“그래?”

“웅. 앞으로도 쭉 기타 쳐 줘. 내 옆에서.”

“응?”

“내가 노래 부를 때 네가 옆에서 기타 쳐 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나는 잠시 기타 연주를 멈추고 혜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나중에 가수가 되고 나서도 내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응!”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 주는 건? 뭐, 걸그룹이라든지······.”

“싫어.”

“으응?”

“난 연욱이랑만 같이 무대에 올라갈 거야. 연욱이가 연주해 주는 거만 노래 부를 거고.”

혜나는 침울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혼자는······ 무서워서 싫어.”

“······.”

혜나가 첫 무대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같이 무대를 하면서 무대공포증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연욱이는 나랑 같이 노래하는 게 싫어?”

“아니야. 나도 좋아. 누나가 원한다면 항상 옆에서 연주해 줄게.”

“응. 꼭 그렇게 해 줘야 돼?”

사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건 단순히 취미에 불과했다. 그렇게 진지하게 할 생각도 없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가끔씩 취미로 연주하려 한 거였다.

하지만 혜나가 오늘 나한테 말하는 것을 보니, 기타를 대충 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무대공포증을 완전히 이겨내고 나 없이도 다른 사람들과 섞여 무대에 올라설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옆에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

혜나가 무대에 서고 싶다면 그것이 꼭 걸그룹일 필요는 없다.

싱글로도 충분히 가능하고, 나와 같이 무대에 서는 남매 그룹으로 활동을 해도 괜찮다.

잠깐. 남매 그룹?

우리나라에 남매 그룹이 있었던가.

큰 인기를 끌었던 남매 그룹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말은 남매 그룹이 대중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뜻인데, 나와 혜나라면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어린 아이의 철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 * *

“여보. 잠깐 이거 좀 봐봐.”

“응? 뭔데 그래?”

재현은 아내에게 아까 녹화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어머. 연욱이 기타 연주한 거 촬영했어?”

“응. 소리 죽이지?”

“그러게. 엄청 간드러지게 잘 치네.”

“자세히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 연주랑 확연히 달라. 연욱이만의 해석이 들어간 연주라는 거지.”

“에이. 연욱이가 벌써부터 자기만의 해석을 연주에 담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냐. 잘 들어보면 다르다니까? 중간 중간에 자기가 편곡을 해서 음을 바꾸거나 추가하는 곳도 있어. 일주일 만에 곡을 마스터했을 뿐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넣은 거지.”

효진도 남편이 흥분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연욱이가 일주일 만에 저 어려운 곡을 마스터한 것에 모자라 그저 악보에 따라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이걸 너튜브에 올려볼까 생각 중이야.”

“응? 너튜브?”

“응. 연욱이가 연주하는 걸 찍어서 너튜브에 올리면 어떨까-하고. 그리고 연욱이랑 혜나가 같이 노래 부르는 것도 영상으로 녹화해서 올리면 괜찮지 않을까? 나중에 아이들 커서 추억도 될 테고.”

뭔가 상업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그냥 아빠의 마음으로 남들에게 자랑도 하고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저장해 두고 싶은 마음 같았다.

만약 돈 때문에 하는 일이었다면 반대를 했겠지만, 지금 재현의 얼굴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단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건 그냥 자기 아들 잘난 걸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다.

부모에게는 항상 자기 자식이 최고이며, 큰 자랑거리이지 않은가.

학교에서 100점만 맞고 와도 동네방네 다 소문을 내고 다니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좋아. 당신 마음대로 해. 나중에 연욱이랑 혜나가 커서 어릴 때 찍은 영상 보면 추억도 되고 좋을 것 같다.”

“그치? 내가 조금만 수정해서 올려야겠다.”

“주말인데 좀 쉬엄쉬엄 해.”

“괜찮아. 이 정도는.”

효진은 매번 피곤에 절여 있던 남편이 오랜만에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삶의 활력소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재현과 효진에게는 딱 그러했다.

아무리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그 아이들이 웃으면서 뛰어와 안긴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디 보자.”

효진은 남편이 컴퓨터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는 뒷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 * *

몇 개월 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머님, 아버님.”

EMS 권주영 실장은 직접 선물 보따리를 들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아, 네. 실장님도 잘 지내셨어요?”

“네. 연욱이랑 혜나 덕분에 뮤지컬이 잘 풀려서 회사 생활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하.”

권주영 실장이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필시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혜나와 함께 인사부터 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아이고. 우리 연욱이랑 혜나는 언제 봐도 예쁘네. 이거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예뻐지는 거 같네.”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이들 크는 속도는 정말 빠르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내가 봐도 혜나와 나는 크면서 더욱 외모가 빛을 발하는 듯보였다.

이런 말하면 좀 미친놈 같아 보이겠지만, 거울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멍하니 내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달까.

“이제 뮤지컬 2월에 뮤지컬이 마무리 되고 벌써 8월이 끝나가고 있으니, 반년 정도가 흐른 셈이네요.”

“네. 시간 참 빠르죠?”

“사실 혜나랑 연욱이 프로필을 받아간 곳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희 쪽으로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 적도 있고요. 그때마다 연락을 드리긴 했습니다만······ 추가 작품은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는 건가요?”

‘괴물’ 뮤지컬이 끝나고 나서 다른 뮤지컬 연출 감독들이 나와 혜나에게 각각 캐스팅 제의를 넣었다. 그러나 우리 둘에게 똑같은 작품이 들어온 게 아니고 각자 다른 작품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에 혜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혼자 서는 무대는 너무 무섭기 때문에 나와 같이 출연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을 돈벌이에 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부모님은 혜나의 의견에 따라 정중히 제안을 거절해 왔다.

나도 혜나와 같이 하는 게 아니라면 딱히 뮤지컬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작품 3개를 전부 까 버렸다.

“혜나가 혼자 무대에 서는 걸 무서워해요. 동생과 같이 하는 게 아니라면 싫다고 해서······. 그리고 저희 부부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마음이 편하진 않아요. 그래서 들어오는 광고들도 전부 거절하고 있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혜나와 연욱이는 소속사도 아직 없겠네요?”

“네. 소속사는 저희가 결정하기보다는, 조금 더 크고 나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 꿈이 커가면서 바뀔 수도 있고, 꼭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부모님의 말씀에 권 실장인 작게나마 탄성을 내질렀다.

“두 분 대단하십니다. 제가 이런 쪽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자기 아이를 아역 때부터 성공시켜 혹사를 시키는 부모들을 많이 봐왔거든요.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두 분의 마인드가 참 존경스럽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하하. 충분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저도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해해 주십시오. 오늘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다름 아니라 연욱이와 혜나에게 중요한 캐스팅 제의가 왔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쪽에서는 두 아이의 소속사가 저희 EMS라고 생각했는지, 저희 쪽에다 문의를 넣었어요.”

“보통 때라면 전화로 알려 주시지 않나요?”

“예. 그렇기는 한데······ 제안을 주신 분이 좀 의외라서요. 거물이시기도 하고요. 혹시 최진우 감독님이라고 아십니까?”

평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분들이기에 당연히 그 이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 네. 유명한 감독님이시잖아요. 그분이 낸 영화는 저희들도 다 봤고요.”

“네. 우리나라 영화판에서는 원탑이시죠. 그분이 이번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계시는데, 아역 배우들을 섭외하고 계세요. 그리고 저번 뮤지컬 마지막 공연 때 직접 관람을 하시고 연욱이와 혜나의 프로필을 문의하기까지 하셨거든요.”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더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어요.”

“저희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마 작품 구상을 하시느라 프로필만 가지고 가시고 쭉 간직하고 계셨나 봅니다. 이번에 두 아이 오디션을 보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넣으셔서 제가 직접 알려드리기 위해 만나 뵈러 온 겁니다.”

권 실장은 최진우 감독의 명함을 부모님 앞에 내놓았다.

“최 감독님 명함입니다. 저희 쪽에 소속되어 있는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명함만 받아왔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고 이쪽에 전화를 걸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최 감독님 영화 출연은 아이들에게도 큰 경험이 될 겁니다. 향후 아이들이 연예인 쪽으로 꿈을 정할 때도 최 감독님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면 높이 평가할 테니까요. 그리고 사실 마음 같아서는 연욱이랑 혜나를 저희 소속사에서 데려가고 싶지만, 저번에 혜나 꿈이 가수라고 들어서요.”

“맞아요. 혜나 꿈이 가수에요.”

“네. 나중에 어떻게 바뀔진 몰라도, 저희 EMS는 뮤지컬 전문 기획사라 따로 가수 양성을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와 계약을 하는 건 혜나에게 독이 되겠죠. 그래도 좋은 기획사를 찾을 수 있게 저희가 도움은 드릴 수 있습니다.”

“어머. 그렇게까지 해 주실 필요는······.”

“하하. EMS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뽑으라고 하면 두 말 하지 않고 혜나랑 연욱이를 뽑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저 두 아이만큼은 꼭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 그런 겁니다.”

이 아저씨, 생긴 건 좀 무뚝뚝해서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생각이 깊은 사람 같았다.

“아무쪼록 두 아이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일을 계속 한다면 아이들에게 소속사는 필수적일 겁니다. 그때 저희가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릴게요. 부담 갖지 마시고 꼭 연락 주세요.”

그 말을 남기고 권 실장은 먼저 돌아갔다.

부모님은 한참 동안이나 최진우 감독 명함 앞에서 고민을 이어 갔다.

소속사라-.

지금 당장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만, 앞으로 혜나가 가수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좋은 소속사에 들어가야 한다. 저번처럼 가수 인생을 조져 버리는 기획사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소속사 잘못 만나면 그 날개가 꺾여 버린다.

이번만큼은 내가 눈을 부릅뜨고 혜나가 잘못된 소속사에 들어가지 않게 막을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