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24화 (24/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4화 >

최 감독이 나와 혜나의 프로필을 가져갔다는 소식만 듣고 그 이후부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문샛별 감독이 뭔가 착각을 한 건 아닐까.

아니면 최 감독은 우리 프로필만 가져갔다가 흥미가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딱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연욱아~”

아버지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한쪽 손에는 작은 기타가 들려 있었다.

“우리 아들 기타 가르쳐 주려고 아빠가 기타 하나 사왔다.”

아버지가 사 오신 건 어린이용 기타였다.

9살짜리가 어른들이 쓰는 기타를 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도 겨우 잡는 코드를 아이가 작은 손으로 잡아낼 순 없지 않은가.

“자. 어때?”

슬쩍 브랜드를 보니 좀 가격이 나가는 걸 사오셨다.

어린이용 기타라고 해서 절대 싸게 받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어차피 어린이용 기타는 내가 조금만 커도 치지 않게 될 텐데, 이렇게 비싼 걸 써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기타 넥과 바디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촉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렴 어떤가.

나중에 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부터 실컷 쳐 주면 되지.

“감사합니다.”

“아니야. 이왕 시작하는 거 좋은 기타로 해야 나중에도 치기 편해. 한번 쳐봐.”

“네.”

가볍게 기타줄을 튕겨 보았다.

청명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소리 좋지?”

“네. 완전 좋아요.”

“하하. 코드 칠 줄 알면 아마 더 좋을 거다. 자. 아빠가 기본적인 코드부터 알려 줄게.”

아버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타 코드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이건 G 코드라는 거야. 그리고 이건 C, 그 다음은 D, 마지막으로 이건 Em.”

기타를 처음 배울 때 익히는 기본 코드들이었다.

저 코드들이 익숙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기타 배우는 걸 포기할 정도라는 F와 B 코드로 넘어간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답답하게 칠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요?”

“응? 아, 응. 그게 G 코드야.”

“이건요?”

“오-. 맞아. 그게 C 코드.”

“이건요?”

“그, 그건 D 코드.”

“이건 Em 코드 맞죠?”

“그래. 우리 아들 기억력이 엄청 좋구나. 한번 보여줬을 뿐인데 벌써 다 익혔어?”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다.

아버지는 가져온 악보를 펼쳐 내 앞에 내놓았다.

“그 기본 코드로 칠 수 있는 곡들이야. 비틀즈라는 그룹 혹시 아니? 옛날 굉장히 유명했던 그룹이었어. 이건 Let it be 라는 곡인데, 아빠가 대충 치는 법만 알려 줄게.”

원래 G 코드로 시작하는 곡이 아니긴 하지만, 기타 입문을 위해 쉬운 코드로 변형된 곡이었다. 아버지는 손수 노래까지 불러 주시며 비틀즈의 Let it be 곡을 연주했다.

곡이 끝난 뒤에 나는 열심히 박수를 쳐 드렸다.

“노래 좋지?”

“네.”

“자. 한번 쳐 볼래? 아빠가 천천히 옆에서 알려 줄······.”

나는 아버지가 쳤던 대로 똑같이 따라 곡을 연주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당황하며 내가 곡을 치며 노래 부르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셨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라는 노래는 참 쉽고 좋은 노래였다.

입에 착착 감기기도 하고, 귀에서 자꾸 맴도는 중독성 강한 노래였다.

괜히 이 노래로 비틀즈가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나는 곡을 마치고 기타를 내려놓았다.

“······아빠?”

“아! 그, 그래. 그런데 우리 연욱이 기타 배우는 거 처음이지?”

“네~”

“어휴. 처음인데 진짜 잘 치네. 어쩜 그렇게 잘 쳐? 보통 처음에는 많이 헷갈려서 버벅 거리는데.”

“아빠가 잘 알려 줘서 그렇죠.”

“하하.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아버지는 신이 나서 곧장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곡부터 F 코드가 등장했다.

기타 초보자들을 울부 짖게 만든다는 F 코드.

한 손가락으로 6개의 줄을 전부 다 누르면서 다른 손으로는 또 하나씩 줄을 꾹 눌러줘야 하는 마성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나중에 기타치는 게 익숙해지면 F 코드는 눈 감고도 칠 수 있지만, 초보자일 땐 숙달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코드를 잡는 게 어렵다.

딱히 요령이라고 할 건 없다.

능숙하게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하는 게 최고였다.

“자. 이게 F 코드라는 거야. 초심자한테는 굉장히 어려운 코드지. 한번 해 볼래? 손가락이 많이 아플 수도 있어.”

“네.”

음. F 코드라.

저번 생에서도 기타는 칠 줄 알았기 때문에 F 코드를 잡는 게 어렵진 않다.

문제는 이 몸이 기타 코드를 능숙하게 잡는 건 아무래도 힘이 들······.

“응?”

생각 외로 나는 F 코드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나도 바로 잡을 줄은 몰랐던 터라 응? 하고 내뱉었다.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 켜져서 나와 기타를 번갈아 쳐다보셨다.

“하, 한번 기타줄 쳐 볼래?”

디리링-

보통 F 코드를 처음 잡으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타에서는 깨끗한 F 코드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결국 참았던 탄성을 터트리셨다.

“와-. 이걸 한번에 잡는다고?”

그러게요.

이걸 한번에 잡네.

솔직히 나도 한번에 잡을 줄 몰라서 그냥 예전 버릇대로 해 본 건데.

“연욱아. 이 코드도 한번 쳐 봐.”

아버지는 이제 과감해지셨다.

F 코드 다음으로 어렵다는 B 코드와 더불어 아예 하이코드까지 올라갈 기세였다.

조금 진정하셔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버지 텐션이 너무 올라가 있었다.

“이야······.”

F코드가 섞인 곡까지 쉽게 쳐 내자 아버지는 뭔가를 잠깐 고민하다 내게 말했다.

“연욱아. 이런 건 이제 의미가 없겠다. 기타의 꽃은 핑거스타일이지.”

“예?”

“기다려 봐.”

아버지는 후다닥 방으로 달려가 악보 하나를 가져오셨다.

“황혼이라는 곡이야. 핑거스타일 연주를 해야 하는 곡이고. 단순히 코드를 잡아서 치는 개념이 아니란다. 이건 타브 악보라는 건데, 여기 쓰인 번호 보이지? 이 번호를 따라서 기타줄을 하나씩 잡아 줄을 튕기는 거야.”

아버지. 이건 너무 진도가 빠른 거 같은데요.

하지만 아버지의 급발진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기타를 처음 가르쳐 주는데 F 코드에 B 코드까지 한번에 잡고 곡을 연주한다면 누구라도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을 것이다.

이 황혼이라는 곡은 핑거스타일의 대표 연주곡으로, 기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배우고 싶어 하는 곡이었다.

하지만 초보자가 치기에는 난이도가 어렵고 타브 악보를 봐 가면서 기타줄을 하나씩 잡아 기타줄을 튕겨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자. 아빠가 치는 거 먼저 봐.”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이런 곡쯤은 쉽게 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아버지의 기타줄에서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타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곡을 듣고 꼭 한번 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런 곡이야. 좋지?”

“네. 아빠 너무 기타 잘 치세요.”

“하하. 아무래도 이런 쪽은 네가 날 닮은 거 같다. 너 정도면 천재 소리 들어도 돼. 어린 아이가 기타 배운 첫날부터 F코드랑 B코드 잡고 곡까지 연주했다고 말하면 아마 사람들이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 할 걸?”

아버지는 타브 악보를 가리키며 내가 기타줄을 잘 잡을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타브 악보를 보니까 예전에 배운 황혼이란 곡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 오르고 있었다.

“자. 첫 마디만 천천히 쳐 보자.”

“네.”

나는 쉽게 첫 마디를 연주했다.

어차피 쉬운 부분이라 아버지도 놀란 표정을 보이진 않으셨다.

“자. 그 다음 마디부터 어려워져. 딱 봐도 복잡해 보이지? 여기 줄 두 개를 잡고 있다가 곧바로 한 손가락만 떼서 여기 세 번째 줄을 잡아야 돼. 그런 다음 다시 첫 번째 줄로 돌아가고.”

“음-.”

나는 타브 악보를 한번 쳐다 본 다음 열심히 강의를 하고 계신 아버지를 슬쩍 쳐다 보았다.

이거 며칠만 연습하면 금방 칠 수 있을 거 같은데.

저번 생에서 내가 기타를 독학하면서 익혔던 곡이기도 하고, 왠지 이 몸은 기타줄을 잡는 데에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무리 머리로는 내가 칠 줄 안다고 해서 몸이 금방 따라 주는 게 아니다. 특히 기타는 자주 쳐서 단단한 기타줄에 손이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쉬지 않고 쳐줘야 한다.

그런데 이 작은 손가락들은 금방 기타줄을 잡아내고 있었다. 이 황혼이라는 곡도 며칠만 연습하면 금방 마스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밑천 다 드러내 봐?

“흠-!”

나는 헛기침을 한번 뱉은 뒤 아버지가 가리키는 두 번째 마디 부분을 연주해 보았다.

“옳지. 그렇게 하나씩······ 어?”

오랜만에 치는 거라 조금 버벅 거리긴 했다만, 두세 번 반복하자 이젠 틀리지 않고 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부분은? 이것도 칠 수 있겠어?”

나는 거침 없이 다음 마디로 이어갔다.

이번에도 몇 번 버벅이긴 했다만, 금방 부드럽게 칠 수 있었다.

“이,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치지?”

“감사해요.”

“아니야. 네가 내 아들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휴. 일단 다음 부분도 쳐 보자.”

아버지는 쉬지 않고 계속 다음 마디로 진도를 옮겼다.

나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나게 연주를 하고 싶었는데, 손이 찌릿하게 아파와 기타줄에서 손을 뗐다.

그것을 보고 아버지는 아차 싶은 마음에 빨갛게 부어 오른 내 손가락을 잡고 호호 불어 주었다.

“미안해. 우리 아들이 너무 기타를 잘 쳐서 처음 치는 초보자라는 걸 깜빡했네. 많이 빨갛다. 이 예쁜 손에 굳은살 생기겠는데?”

기타를 배우면 필연적으로 손가락마다 굳은 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에 기타를 많이 치고 싶어도 손가락이 빨갛게 부어 올라 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내가 딱 그렇다.

“오늘은 여기까지 치자. 이제 기타 배운지 첫째 날인데, 진도를 너무 많이 나갔어.”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아니야. 오히려 아빠가 더 고맙지.”

아버지는 나를 품에 꼭 껴안으며 흔들었다.

“어휴. 우리 아들 너무 예뻐서 어떡한담. 평생 아빠 곁에만 있어라. 알겠지? 아빠는 너랑 혜나 없으면 아마 못 살 거야.”

“······네.”

그때 잠깐 장례식장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더욱 깊이 아버지 품에 파고 들었다.

이번에는 절대 혜나와 내가 이분의 곁을 먼저 떠나지 않을 것이다.

* * *

“당신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네.”

효진은 아까부터 헤벌쭉 웃고 있는 남편 재현을 보고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여보. 어쩌면 내가 접은 기타리스트의 꿈을 연욱이가 대신 이뤄 줄 수도 있겠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연욱이한테 기타 사줘서 치는 법 알려줬거든. 오늘 내가 연차까지 써서 알려줬다니깐? 그런데 우리 아들이 정말 잘 치는 거 있지?”

효진은 남편이 주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기타 배운 건데, 잘 치고 못 치는 게 어디 있겠어. 그냥 당신 아들이라서 잘 치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니깐? 연욱이는 진짜 천재야! F코드랑 B코드도 한번에 치고 입문곡은 그냥 눈 감고도 칠 수준이야.”

“진짜? 오늘 처음 기타 치는 법 알려줬다면서 F 코드를 치게 했어?”

“응. 코드를 너무 능숙하게 잘 잡길래 한번 쳐 보라고 했지. 그런데 그걸 한번에 잡는 거 있지? 그래서 이건 시간낭비겠다 싶어서 바로 핑거스타일 연주곡도 쳐 보게 했지.”

신이 나서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아내에게 말해 준 재현이었다.

“아니. 어떻게 연욱이가 그 어려운 곡을 한번에 쳐······? 당신이 잘못 본 거 아니지?”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 오늘 치는 거 보니까 황혼도 2주일 안에 마스터 할 거 같더라. 진짜 연욱이는 재능이 있어. 아니. 그냥 재능 정도가 아니야. 저 정도면 천재가 맞다니까?”

왠지 이 말을 다른 곳에서도 들은 것 같은 효진이었다.

“이상하네.”

“뭐가?”

“연희도 연욱이가 피아노 천재라고 나한테 열변을 토했었거든. 제발 연욱이가 피아노 그만 두지 않게 도와 달라고.”

“그래?”

“응. 지금부터 피아노 제대로 시작해서 나중에 콩쿨 나가 보는 건 어떠냐고 그러더라. 그런데 당신도 연욱이가 기타 천재라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재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오케이. 그럼 바꾸자.”

“뭘?”

“연욱이는 그냥 음악 천재인 거야. 두고 봐. 우리 연욱이가 제대로 음악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아주 훨훨 날아다닐 걸?”

재현의 눈에는 벌써부터 하늘 높이 비상하는 연욱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남편의 표정이 귀여워 효진은 풉 웃다가도 다른 아이들에게 없는 연욱이의 재능에 흥미가 생겼다.

정말 우리 막내 아들이 음악 천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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