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2화 >
“옳지. 바로 그거야!”
최진영 작가는 연욱이의 촬영을 마무리 하고 혜나를 세웠다.
남매가 어쩜 이리 예쁘고 똘똘한지.
정말 신기하게도 저 아이들은 자신이 요구하는 포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해 주고 있었다.
키즈 모델들은, 그것도 국내 키즈 모델들은 예술성에 한계가 있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오늘 그런 고정 관념이 모조리 깨 부셔졌다.
이 아이들이라면 아주 제대로 작품을 뽑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혜나야~ 이번에는 활짝 웃으면서 옆으로~ 잘한다!”
쉴 새 없이 터트리는 플래쉬.
똑같이 웃는 표정으로 포즈를 잡고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혜나는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아이가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들었다.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몸을 맡기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포즈가 사진의 퀄리티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진영 작가도 열정이 활활 타올랐다.
“저기 작가님.”
한창 촬영에 푹 빠져 있는데, 누가 옆에서 부른 터라 집중력이 깨졌다.
최진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왜?”
“혜나만 촬영하신지 벌써 1시간 반이 넘어서요. 사진도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찍혔고······.”
“뭐? 벌써?”
시간을 보니 정말이었다.
보통 3~40분에 한번 촬영을 끝내고 잠깐 휴식하는 동안 피드백을 한 다음 다시 이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초과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촬영에 집중한 것이었다.
“진영아. 내가 우리 모델들 혹사시키지 말라고 했지!”
“아니. 누님은 아까 가신다고 하더니, 왜 또 오셨어요?”
“네가 혜나 혹사시키고 있다는 연락 받고 이렇게 달려왔지! 어린이들은 오래 촬영시키면 안 돼. 무슨 성인 모델이랑 일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이고. 미안해요. 저도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줄은 몰랐어요.”
“나한테 사과하지 말고 얼른 혜나랑 부모님한테도 사과 드려!”
최 작가는 대기실에 있는 혜나와 연욱이 부모에게도 달려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혜나가 너무 제 마음에 쏙 들게 촬영에 임해 줘서 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네요.”
“아니에요. 저도 혜나가 너무 재밌어 하는 거 같아서 남편이랑 같이 흐뭇하게 구경하고 있었어요.”
최 작가는 혜나에게도 몸을 낮춰 사과했다.
“혜나야. 아저씨가 미안해. 힘들었지?”
하지만 혜나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촬영이 이렇게 재밌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됐다.
“아니요. 너무 재밌었어요. 또 찍고 싶어요.”
“하하. 그럴까? 나도 혜나랑 사진 찍는 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
그러더니 슬쩍 김아영 대표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흠흠. 원래는 혜나랑 연욱이가 사진을 따로 찍는 거만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오늘 같이 찍는 건 어때요?”
“응? 혜나랑 연욱이를 같이 세워서 찍자고?”
“네. 추가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건 정말 제가 꼭 찍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싱글로만 찍기에는 너무 아까울 거 같아서······.”
이쪽 업계에서는 몸값이 비싼 최진영 작가가 추가금을 받지 않고 더 찍어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김 대표는 바로 오케이를 외치고 싶었지만, 부모의 허락이 우선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괜찮으시겠어요?”
효진과 재현은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어 보았다.
“너희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연욱이랑 같이 사진 찍을래!”
“그래? 연욱이도 괜찮겠니?”
“네. 좋아요.”
아이들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최진영 작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케이! 그럼 조금 쉬었다가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고맙다, 혜나랑 연욱이. 아저씨가 혼신의 힘을 다해 찍어 주마.”
최 작가는 으쌰으쌰 거리며 촬영분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죄송해요. 원래 최 작가가 저런 사람이 아닌데, 오늘따라 유독 텐션이 높아서······.”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이따 촬영 끝나면 저희도 사진 몇 장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요.”
“아! 물론이죠! 핸드폰으로도 보내드리고 따로 USB에 넣어서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촬영장은 사진을 찍는 작가도, 모델들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혜나와 연욱이 덕분에 훈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김아영 대표는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었으면 했다. 그러려면 이 아이들이 다 크기 전까지 모델로 붙잡고 있어야겠지?
* * *
“여보. 이것 좀 봐.”
“우와. 그 사람이 그쪽 업계에서 거의 탑급이라고 하더니, 진짜였나 보다. 사진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네.”
“그치? 어쩜 이렇게 잘 찍어줬는지 몰라. 이 정도면 우리가 돈 내고 찍어야 하는 수준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모님은 차가 잠시 정차할 때마다 김 대표가 핸드폰으로 보내 준 사진들을 감상했다.
“우리 토끼들. 이거 봐. 진짜 잘 나왔지?”
그 아저씨 생긴 거부터 심상치가 않더니, 사진 찍는 실력이 일품이었다.
편집을 좀 가미해서 사진이 더욱 빛을 발하는 건가?
“사진 찍어 준 아저씨가 그러는데, 편집은 하나도 하지 않은 것들이래. 그런데도 이렇게 예쁘게 잘 나왔어. 신기하지?”
“웅-! 너무 예뻐.”
혜나와 나는 사이좋게 양옆으로 서서 찍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사진이 더 있지만, 나는 이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사진에서 혜나가 제일 밝게 웃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참. 김 대표님이 이중에서 마음에 드는 거 골라서 SNS에 올려도 된다고 했는데.”
“그래?”
“응. 홍보 효과도 되고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당신이 마음에 드는 거 골라서 올려 봐.”
“호호. 그럴까? 그런데 대체 뭘 골라야 하는 거지? 너무 다 잘 나와서 고르기가 힘드네.”
SNS라.
거기 반응이 요즘 어떤지 확인을 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
나는 사진 구경을 위해 들고 있던 아버지 핸드폰으로 SNS에 들어가 보았다.
수많은 팬들이 우리를 위해 글을 남겨 두었다.
-연욱아. 대한민국은 4면이 바다인 거 아니? 동해 남해 서해 사랑해~
-누나는 굴을 좋아해. 니 얼굴.
-혜나랑 연욱이 얼굴이 너무 허전하다. 명불허전.
SNS는 유독 주접이 많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다.
그래도 절로 미소를 띠게 만드는 글들이라 싫진 않았다.
“연욱아. 뭐 봐?”
“응. 우리 팬들이 써 준 글들.”
“팬? 뮤지컬 오빠 언니들?”
“응. 우리 뮤지컬 봐 주러 오시는 분들이 써 준 글들이야.
나를 위해서, 그리고 혜나를 위해서 쓰인 글들이 많다.
우리 남매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될 줄도 사실 예상하지 못 하기도 했다.
“너무 아쉬워.”
SNS를 쭉 훑어보던 혜나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곧 있으면 공연 마지막이잖아.”
혜나 말대로 막공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디션 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막공이 다가오다니.
언제 또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남매의 무대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 * *
“여러분. 오늘이 대망의 막공입니다. 다들 오늘만큼은 제에발 실수 하지 말고 화려하게 마무리 합시다. 특히 지환이 너는 대사 좀 흐리지 말고. 알겠니?”
“네엡!”
“감독님. 우리 지환이가 어때서요? 잘만 하고 있구먼.”
“재한 씨는 제발 애드립 좀 그만 쳐. 저번에 그랬다가 박자 놓칠 뻔했잖아.”
“후후. 오늘도 기대하십시오. 아주 빵 터트려 볼 라니깐.”
괜히 애드립을 잘못 쳤다가 분위기가 싸해지게 만들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류재한 배우는 다른 배우들과 전혀 상의도 없이 애드립을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뭐, 뮤지컬 공연이 라이브이다 보니 애드립을 치는 배우들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문제는 류재한 때문에 상대 배우가 빵 터져서 진행이 멈출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관객들도 그 상황을 매우 재밌어해 별로 문제가 되는 건 없다고 해야 할까.
“연욱이랑 혜나도 오늘 잘 부탁한다.”
“어휴. 우리 아역 슈퍼스타들은 걱정할 게 없지. 내거 뮤지컬판에 구르면서 아역 때문에 표가 다 팔리는 건 처음 봤다니깐?”
“맞아요. 혜나랑 연욱이 나오는 날은 아주 피켓팅이라던데.”
“응? 피켓팅? 그게 뭐야?”
“피 튀기면서 티켓팅 한다는 뜻이죠.”
아역 배우를 보기 위해 표를 구한다-라는 말이 조금 웃길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
그런데 ‘괴물’ 뮤지컬에서는 그런 괴현상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었다.
나와 혜나의 공연이 잡힌 날에만 사람들이 몰려 들어 티켓 전쟁을 벌인다고 한다. 또한 그에 2배에 달하는 티켓이 암표로 거래되고 있어 여러모로 골치를 썩고 있다고 들었다.
“아참. 그것들 봤어? 우리 연욱이랑 혜나가 핑크베어 키즈 모델이 되었다네? 사진도 진짜 기가 막히가 잘 나왔더라.”
“저도 봤어요! 진짜 귀엽던데.”
“그러니깐. 나 거기에 발려서 성인용으로 옷 몇 벌 샀잖아.”
“거기 아동복만 파는 곳 아니었어?”
“많이는 아니지만, 어른들이 입을 수 있는 옷들도 팔아요.”
갑자기 화제가 핑크베어 쪽으로 바뀌었다.
앙상블들과 배우들, 거기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 합세해 나와 혜나가 찍은 핑크베어 모델 사진을 공유하느라 바빴다.
그런 과열된 분위기를 잠재운 건 바로 문샛별 감독이었다.
“다들 진정들 좀 해. 곧 있으면 공연 시작이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응? 잠깐. 그건 무슨 사진이야? 나도 처음 보는 건데?”
“어제 연욱이랑 혜나 SNS에 올라온 사진이요.”
역시 프로다운 자세구나 라고 감탄을 하려 했는데, 문 감독도 어느새 저쪽 무리에 껴서 사진 탐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헛기침을 뱉었다.
“흠흠. 아무튼, 오늘 열심히 해 봅시다. 그리고 혜나랑 연욱이 잠깐 이리로 와 볼래?”
문 감독은 우리 둘을 다른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말했다.
“너희 둘은 오늘 마지막 공연하고 나서 스케쥴이 어떻게 돼?”
“네?”
“다른 공연 잡은 거라고 있어? 아니면 다른 곳에서 캐스팅 되었다든가.”
“아뇨. 없어요.”
“그래? 없단 말이지······.”
문 감독은 턱을 긁적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보였다.
“너희들 이대로 연기 그만 둘 건 아니지? 감독님은 혜나랑 연욱이를 계속 무대에서 만나고 싶거든.”
아직 나랑 혜나는 다른 오디션 스케쥴을 잡지 않았다.
별도로 알아보지 않은 것도 있고, 부모님도 우리 남매가 벌써부터 사회인들처럼 돈을 벌고 다니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아마 그분들은 우리가 학업에 집중하기를 바랄 것이다.
무대를 끝내고 와서 지쳐 쓰러져 잘 때면 부모님이 굉장히 슬픈 눈으로 우릴 바라보셨던 게 기억난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누나는 어때?”
“난 감독님이랑 다른 배우님들이랑 같이 무대 서는 게 너무 좋아.”
혜나의 대답에 문 감독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너희들이랑 같이 무대 서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너희들일아 만나고 싶어. 일단 잘 알겠어. 오늘 마지막 공연, 파이팅하자.”
“네! 다 부셔 버리고 올게요!”
“호호. 그래. 오늘도 혜나가 다 부셔 버리고 와.”
나는 혜나와 손을 잡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슬쩍 문 감독 쪽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는 듯보이던 문 감독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