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21화 (21/200)

<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21화 >

“얘들아. 준비는 다 됐니?”

“네~”

오늘은 핑크베어 모델 촬영 첫째 날이었다.

보통 모델 촬영은 한번에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을 오래 촬영장에 세워 둘 수 없기 때문에 날짜를 나눠서 찍는다고 들었다.

어머님은 나와 혜나를 최대한 예쁘게 입혀 놓은 뒤, 나가기 전 다시 한번 체크를 했다.

“여보. 얘들 어때? 괜찮은 거 같아?”

“우리 애들이야 언제 봐도 예쁘지. 뭘 입어도 예뻐. 그리고 지금 입고 가는 옷으로 사진 찍는 거 아니잖아.”

“어휴. 그냥 내가 다 불안해서 그래. 얘들 모델 비용도 만만치 않게 받았잖아. 솔직히 그렇게 많이 받을 줄 몰랐어. 그래서 그런지 더 신경이 쓰이네.”

나와 혜나가 얼마를 받았는지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 한다. 하지만 두 분이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니 꽤 페이가 센 것 같았다.

“하하. 얘들이 우리보다 돈을 더 잘 버는 거 같은데? 이참에 일 때려치우고 얘들 매니저라도 해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이 우리가 벌어 들이는 돈으로 일을 그만 두고 편히 쉬셨으면 한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우리 얘들 혹사시킬 생각 추호도 없어. 난 사실 얘들한테 계속 이 일을 시켜야 하는지도 고민이야.”

“알아. 농담이야, 농담. 나도 토끼 같은 내 새끼들이 부모 먹여 살리겠다고 땀 흘리는 거 절대 못 봐.”

보통 아역 때부터 스타가 되면 부모가 혈안이 돼서 돈을 벌게 한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완전히 반대였다.

돈에 대한 욕심이 적으신 것인지, 아니면 우리 남매를 너무 사랑한 탓인지, 적어도 이분들 밑에서 크면 돈 때문에 가정이 깨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내 부모님은 돈보다는 아이들의 행복을 중시하시는 분이다.

적어도 애들 돈을 까먹으며 살 분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 행복한 가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따뜻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큰 축복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대표님이랑 같이 뵈었죠? 이지현 실장이라고 합니다.”

핑크베어 본사에 도착하자 저번에 봤던 이지현 실장이 우릴 맞이해 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 대표님도 오시려고 했는데, 지금 스케쥴 때문에 바쁘셔서요. 아마 촬영 중간쯤에 오실 것 같아요.”

그녀는 본사 지하에 있는 촬영장에 들어가기 전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촬영장에 들어가면 스타일리스트들이 아이들 메이크업을 조금 해 줄 거예요. 그렇다고 피부에 안 좋은 것들을 써 가며 무리하게 꾸미진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러다 그녀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촬영을 맡게 되신 사진가 분이 이쪽 업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아주 프로페셔널 하세요.”

부모님은 이지현 실장의 어투를 보고 대충 눈치를 챘다.

“그 말씀은 많이 진지하시다는 거겠죠?”

“네. 아이들이라고 해서 대충 찍으시는 분이 아니에요. 구도나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촬영을 하실 수도 있어요. 최고의 결과가 나와야 만족하시는 분이라서요. 그래도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게 저희 쪽에서 잘 컨트롤 해 보겠습니다.”

“음-. 잘 알겠습니다.”

두 분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사진도 결국 예술이지 않은가.

오늘 촬영을 맡은 카메라맨도 그들 중 한 명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아주 긴 촬영이 될 수도 있겠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진영 작가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말끔한 인상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던 최진영 사진작가는 묵묵한 표정으로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뒤 우리 남매에게 시선을 돌렸다.

표정만 봐도 아주 진지함을 200% 드신 거 같은데, 나와 눈이 딱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굳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얘들아. 너희들도 인사 드려.”

“안녕하세요~.”

그는 몸을 낮춰 우리 남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반가워. 오늘 아저씨랑 멋진 사진 찍어 보자. 그런데 얘들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좋네요. 처음에 사진만 봤을 땐 보정 받아서 예쁜 줄 알았는데······ 기대 이상이어서 사실 지금 많이 놀란 상태입니다.”

“호호.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제가 빈말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모델들이 나와줬는데, 제 인생 작품을 내놓지 못 하면 카메라 생활 접어야죠.”

최진영 작가는 곧바로 촬영 준비에 돌입했다.

“자자. 서둘러 준비합시다. 얘들한테 예쁜 옷 입혀서 보내 주세요. 일단 먼저 옷 입고 나오는 아이부터 촬영 시작하도록 하죠.”

우리 남매는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핑크베어 옷이 잔뜩 있는 드레스룸에 각각 한 명씩 들어갔다.

내게 붙은 스타일리스트는 두 명.

젊은 두 여성은 드레스룸에 들어온 나를 보고 박수를 쳐댔다.

“와아-. 대표님이 난리치면서 섭외한 이유가 있었네.”

“그러니깐. 오늘 아주 끝장 날 거라고 하시더니, 진짜였잖아?”

“오늘 얘 옷 입히는 재미가 있겠다. 하-. 뭐부터 입혀야 하지?”

“나도 입히고 싶은 게 갑자기 너무 많아진다. 그래도 신상품부터 입혀야 하니깐, 그거부터  입혀 보자.”

두 사람은 새 옷들을 꺼내 건네 주었다.

“이름이 연욱이라고 했지? 저기 탈의실 들어가서 이 옷들 입고 와 볼래?”

“네.”

개인적으로 핑크베어 옷을 좋아하진 않는다.

왼쪽 가슴팍에 박혀 있는 핑크 곰 때문이었다.

젤리처럼 생긴 이 핑크 곰은 여러 상품으로 생산될 만큼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혜나도 이 핑크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핑크베어 필통도 가지고 있다.

난 앞에 있는 거울도 쳐다보지 않고 빠르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 입었어요.”

“아. 그래? 빨리 입고 나왔······ 와-!”

내가 밖으로 나오자 두 스타일리스트는 감탄을 터트리며 내 앞뒤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나 사실 이번 신상품 별로 마음에 안 들었거든. 옷이 좀 별로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내 눈이 잘못된 거였나? 어쩜 이렇게 예쁘지?”

“네 눈 잘못된 거 아니야. 이건 그냥 모델이 잘나서 옷이 날개를 단 꼴이잖아. 보통 옷이 날개를 달아줘야 하는 건데, 연욱이는 옷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 주네? 신기하다.”

“핏도 좋고, 인물도 훌륭하고. 이 정도면 연욱이를 위해 만들어진 옷 같잖아. 오늘 사진 진짜 예쁘게 잘 나오겠다.”

두 사람은 내 머리 스타일을 가볍게 만져주며 혹시라도 이상 있는 곳이 없나 체크를 해 주었다.

“원래는 사진빨 잘 받으라고 화장도 조금 해 주는데, 연욱이는 할 필요가 전혀 없겠어.”

“머리도 스타일링 할 필요 없이 이대로 가면 될 거 같다. 오늘 우리 진짜 할 일 없네?”

“아-. 내 고객들이 전부 연욱이만 같으면 소원이 없겠다.”

두 사람의 극진한(?) 메이크업을 받은 뒤 나는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그리고 밖에는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이야. 우리 아들 엄청 멋있네?”

“어머. 이게 이번에 나오는 신상인가? 연욱이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러게. 이따 촬영 끝나면 한 벌 사야 하나?”

두 분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 촬영 준비를 하던 최진영 작가도 다가왔다.

“오. 연욱이는 준비가 빨리 끝났나 보네요.”

그는 내 주변을 빙빙 돌면서 엄지를 치켜 들었다.

“크-. 연욱아. 완전 합격이다. 오늘 아저씨가 기가 막히게 사진 뽑아 줄게.”

그러고는 나를 데리고 조명이 집중되어 있는 스테이지에 세워 놓았다.

조금 눈이 부셨지만, 나는 표정을 찡그리지 않고 최대한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어이쿠. 웃는 것도 너무 귀엽네. 그대로 여길 보면 돼. 하나 둘~.”

최진영 감독은 이런 저런 포즈를 요구하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자세 좋고~ 웃는 얼굴도 예쁘고~ 계속 그대로만 해 주면 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했던가.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최진영 감독은 사람을 들끓게 하는 뭔가가 있는 듯보였다.

가끔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어 사람을 웃기게 만드는 건 물론, 과장된 목소리 톤도 거북스럽지가 않아 편했다.

그렇게 나는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하얗게 불태우고 있었다.

* * *

“오늘 일정 다 끝났지?”

“예? 아, 네. 예정보다 몇 시간은 더 빨리 끝이 난······.”

“그럼 얼른 가자! 곧 있으면 촬영 시작하겠다!”

김아영 대표는 오늘 하루 스케쥴을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하며 본사로 향했다.

이렇게나 빨리 스케쥴을 끝내는 건 처음이라 그녀의 비서도 무척 당황스러웠다.

“오늘 촬영 때문에 무리하게 스케쥴을 빨리 끝내신 거예요?”

“응. 오늘 촬영을 진영이한테 맡겼거든. 근데 걔가 스타일이 엄청 진지해. 얘들이라고 해서 막 봐주지 않아. 그러다 애들을 몇 번 울리기도 했다니깐?”

“그런데도 오늘 촬영을 맡기셨어요?”

“성격이 좀 지랄 맞아도 실력은 좋으니까. 그리고 혜나랑 연욱이 같은 아이들을 허접한 사진작가 손에 맡길 순 없잖아. 최고는 최고한테 맡겨야 그림이 더 잘 사는 거야. 그런데 걱정이 좀 많이 되네. 진영이가 애들을 막 몰아붙이는 건 아닌지······.”

김아영 대표가 스케쥴을 전부 빨리 끝낼 정도로 키즈 모델들에게 신경을 쓰는 건 처음이라 그녀의 비서는 왠지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본사에 도착하고 나서 김 대표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음에도 빠르게 뛰어가 촬영장으로 내려갔다.

“어머. 대표님. 안녕하세요.”

“응. 촬영은?”

“시작했어요. 연욱이 먼저 찍고 있고요.”

“벌써? 뭐가 이렇게 빨라. 진영이가 또 급발진해서 얘 혹사시키는 거 아니야?”

최대한 빨리 온 건데도 벌써 촬영을 시작하다니!

김아영은 얼른 사진작가와 스태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이스~ 포즈 너무 좋고!”

감탄사를 연신 터트리는 최진영과 그 앞에 귀여운 포즈를 잡고 있는 연욱이.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스태프들.

보통 최진영이 작업을 할 때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때 최진영의 스태프 하나가 그녀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 응.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진영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아?”

“저도 몇 년 동안 작가님 따라다니면서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원래 모델이 마음에 들수록 텐션이 높아지시는 분인데, 오늘은 역대급으로 높으세요.”

“그러게. 원래 저런 얘가 아닌데, 이상하네.”

“그만큼 모델이 마음에 든 거겠죠. 키즈 모델 사진 찍는 거 사실 엄청 싫어하시는데, 대표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 거거든요.”

이윽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연욱아. 고생했다. 혜나 찍고 나서 다시 찍자. 알겠지?”

“네~.”

조용히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김아영 대표는 호기심에 얼른 최진영에게 달려갔다.

“진영아.”

“오. 누님. 오셨어요?”

“응. 네가 또 어렵게 구한 모델들 울릴까 봐 빨리 왔지.”

“어휴. 누가 들으면 울리고 싶어서 울린 줄 알겠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다 큰 모델도 울리는 놈이 무슨······. 그런데 오늘은 평소랑 많이 다른 거 같다?”

“하하. 그러게요. 저도 사실 누님 부탁 때문에 어거지로 촬영 맡은 거였는데, 오늘 안 맡았으면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칠 뻔했어요.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님.”

보통 촬영장에서 굳은 표정만 지으며 진지하게 촬영에 임하던 것이 바로 최진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활짝 웃는 얼굴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김아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키즈 모델 사진 찍는 건 싫다고 칭얼 거리던 최진영은 어디 갔어?”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죠. 아이들은 사진 촬영할 때 주의가 산만하고 한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 제가 우매한 거였습니다. 전 찍은 사진 좀 확인하러 갈게요~.”

콧노래까지 부르며 촬영분을 확인하러 가는 최진영의 뒷모습을 김아영 대표는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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